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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붕아, 와서 밥먹어!"


"응, 잠시만..."


꽤나 이른 아침, 얀붕이는 머리를 빗다 말고 황급히 뛰쳐나왔다. 오늘은 주말인지라 이렇게 얀붕이의 곁에 있을수 있었다. 


원래 떨어져 있으면 떨어질수록 정이 더 팔리 식는 법이라, 2번째 인생에선 최대한 얀붕이와 같이 있으려고 노력했다.


일단 지금은 적어도 전생보다는 상황이 더 나았다. 얀붕이가 나때문에 완전히 망가지는것은 막았으니까.....


"어때, 맛있어? 입맛엔 맞을지 모르겠네..."


"음...맛있어! 우리 얀순이 요리도 잘하고, 너무 멋있는데?"


"헤헤...."


얀붕이는 빙긋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 손길을 타고 느껴지는 온기에 마치 구름이 걷히듯 부정적인 생각들이 씻기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문득, 잠시 잊었던 무언가가 불현듯 떠올랐다.


"그런데 얀진이는? 밥 안먹겠데?"


"지금 자고있어. 아직 피곤한가봐."


"아...."


또다시, 그 장면이 떠올랐다. 얀붕이의 아이를 데리고 온 얀진이 말이다. 그것때문에 내가 다시 과거로 날아오기도 했고


이미 다 지나간 일이지만, 아직 그 장면을 생각하면 제일 먼저 느끼는 감정은.....미안함이었다.


이상하게도 전혀 질투가 나지 않았다. 사실 나를 믿고 평생동안 사랑하는 사람을 맡긴 얀진이와 얀붕이를 둘다 배신하고, 상처입혔다는 사실에 몰려온 죄책감이 질투심까지 먹어버렸을 것이다.


비록 화해는 했다지만, 우리 사이는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 마치 부서진 퍼즐 조각들을 수습하려 애썼으나 절반 이상이 없어지고, 끊어진 실을 풀과 테이프로 얼기설기 이어붙인것처럼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내게 있다. 한순간의 경솔한 행동으로 가장 친했던, 그리고 사랑했던 두 사람의 인생까지 망쳐버렸다. 이건 영원히 속죄한다 해도 아마 용서받지 못할것이다.


"얀순아, 난 이제 다 용서했으니까 그만 기분 풀어.....괜히 나까지 심란해지잖아..."


"얀붕아..."


얀붕이는 그세 표정이 안좋아진걸 눈치챘는지, 바로 내 곁으로 다가와 등을 토닥여줬다. 난 잠시 흐르려는 눈물을 간신히 집어넣었다.


"약속할께, 다시는 얀붕이 의심 안하고 또 상처주는 일도 없을꺼라고. 정말...."


'끼이익...'


"뭐야, 둘이서 뭐해..?"


그때, 방안에서 잠옷을 걸친 얀진이가 눈을 비비며 걸어나왔다. 그러자 난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기...얀진아, 내가 밥해놨는데.....좀 있다 먹을까?"


"어, 응 .나 샤워좀 하고..."


"기다릴께!"


얀진이는 흐느적거리며 화장실로 들어갔고, 뻘쭘해하던 얀붕이는 책을 집어들고 잠시 방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이제 마냥 편하게 지내기는 글렀네...그래도....."


예전엔 그냥 친한 동생, 정말 착하고 귀여운 아이였다. 같이 놀땐 그 무엇을 할때보다도 즐거웠고, 손을 잡고 함께 걷는것마져도 신이 났다.


하지만 첫번째 삶이 완전히 파탄나버리고, 너무 늦기 전에 겨우 수습한 2번째 삶에서도 옜날같은 느낌은 기대할수 없었다. 그러나 얀진이를 탓할수도 없었다. 분명 모두 내 잘못이었으니까...


"고마워, 언니."


그때, 뒤에서 아무 인기척도 없이 나타난 얀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순간 소름이 끼쳐 어깨를 들썩였다.


"피곤할텐데, 여기까지 와서 요리랑 청소도 해주고.....집안일 도와줘서 고마워."


"응...."


얀진이는 분명 웃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웬지 모를 차가움과 어색함이 묻어나있었고, 나도 겨우 지은 웃음으로 답했다.


"나 화장실좀 갔다올테니까...먼저 먹고있어."


"응..."




'하아...정말이지 너무 불편해서.....'


나는 세면대를 내려다보며 연신 한숨을 쉬었다.


정말 예전으로 돌아가면 좋겠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이미 완전한 생이별을 간신히 막은것만 해도 나에겐 너무나 과분한 행복이었고, 어떻게든 얀진이와 얀붕이에게 평생 사죄할 기회라도 얻은게 다행이었다.


"차라리 예전처럼 다시 전생을 했으면 좋을텐데..."


하지만 그런 비현실적인 일이 다시 일어날 가능성은 딱히 없었....나?


"아니...잠깐만, 그때 남은 목숨이...."


기억났다. 그 상태창(?)에 적힌 여러 문구중 하나가


'남은 목숨 3개'


남은 기회가 3번이라면, 그럼 다시 과거로 돌아갈수있다. 그럼....


애초에, 그 선배와 바람을 핀 사실 자체를 지운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