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더라도, 나는 너를 사랑할 거야."



바보같은 소리였다. 그런 말을 했던 내 자신을 저주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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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는 몇년간 사귀었던 사랑스러운 연인이 있다. 그리고, 행복한 미소로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 집에서 알콩달콩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다고 믿으며 신혼생활을 보낸다. 어쩌다, 출장이다, 공조사다, 해서 며칠 정도 만나지 못하더라도, 서로를 사랑한다고 믿으며 신혼생활을 보낸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 누구보다도 행복할 것이다. 


당신의 아내가 다른 남성과 사랑을 속삭여왔다는 것을 모른다면. 


그리고 그것을 눈치 채는 순간, 신혼생활은 당신을 옭매는 끔찍한 수렁이 된다.


당신은 차라리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채, 당신의 배우자와 사랑을 속삭이는 것을 택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을 혼자 용서하고 묻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잊은 채로, 그 둘의 사랑이 먼저 식어버리고, 배우자가 당신에게 돌아오길 바랄지도 모른다. 그렇게 가짜 행복에 기뻐하며 남은 삶을 보낼지도 모른다. 


차라리, 그렇게 모른 채로 지내길 원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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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살이 침실을 비추고, 울리는 알람에 맞춰 일어난다. 옆에 누운 그녀가 작은 소리로 웅얼거리며 가증스럽게 모닝키스를 조르는 그녀에게 나는 그저 볼에 키스를 해준다. 이미 시간은 많이 지났다. 더 이상 그녀에게 그런 감정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천천히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그녀에게서는 종종 이 곳에 놓인 샴푸의 향이 나지 않을때가 많았다. 남성용 샴푸의 향. 그리고 그것은 내가 쓰는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씁쓸한 생각이 머릿 속을 감싼다. 그것을 떨쳐내기 위해 나는 샤워밸브를 비틀어 차가운 물을 뒤집어 썼다. 하지만 상념은 나를 풀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냉정하게 내가 처했던, 처한 위치를 다시금 깨달을 뿐이었다.


젠장.


그것말고는 다른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아니, 생각났다. 어째서. 그런 무의미한 말은 뇌리에서 떨쳐지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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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이건... 그런게 아냐, 설명할 수 있어...!"


"...이 상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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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아직도 생각나는 군.


지긋지긋한 기억이다. 그녀의 간통을 결국 내 눈으로 확인 했던때. 나는 주위 사람들이 조심스레 전한 이야기를 거짓으로 치부하고, 그녀는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곤했다. 그리고 그건 내 오만이었다. 그녀가 그럴 사람인지, 아닌 지에 대한 평가를 하기에, 나는 그녀를 너무나도 몰랐다. 


나는 그녀가 "진실로 좋아하는 사람"을 몰랐다.


나는 그녀가 매주 수요일 밤 늦게 들어오는 진짜 이유를 몰랐다.


그것을 알게 된건, 아주 작은 의심이 생긴 내 마음 속의 흠집을 통해서 였다.



"넥타이 내가 매줄게."


먼저 화장을 끝낸 그녀가 내게 다가와 넥타이에 손을 뻗었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녀도 불안한 표정, 불안한 마음은 숨길 수 없었다. 


"아니야, 혼자 할 수 있어. 걱정말고 먼저 준비하고 있어."


내가 지을 수 있는 최대의 미소로 그녀에게 말했지만, 정작 내 입가도 떨렸다. 마치, 가짜 미소라는 걸, 정말로 웃을 수가 없다는 걸 과시라도 하는 것처럼. 그래서 나는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넥타이를 매기 위해서 인 것처럼. 내가 맨 매듭은 영 못 생겼다.


"... 역시 내가 매줄게."


그녀는 내 손에서 넥타이를 뺏어 들고 천천히 매듭을 매기 시작했다. 넥타이 매듭처럼, 망가진 우리 관계도 다시 맬 수 있을까? 글쎄. 모르겠다. 너무 많은 것이 변했다.


"쨘. 깔끔하게 됐어."


그녀가 흐린 미소로, 내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게, 깔끔하게 됐네."


흔들리는 입가를 끌어올리며 대답했다. 



여전히, 그날 이후로 난 웃을 수 없다.



+



"오늘 저녁은"


"먹고 올게, 아마도 늦을 거야."



현관문에서 구두를 신으며 그녀가 하려던 말을 끊었다. 그녀는 말을 끝내지 못하고, 우물거리다 고개를 숙였다.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씁쓸하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녀의 흐린 미소는.


그녀는 노력하고 있다.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도록. 


나도 노력을 했었다. 그녀가 다시 내게 돌아오도록. 그날 이후로, 그녀가 내게 완전히 돌아오긴 했을까?


잘 모르겠다, 그냥... 내 자신을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누군가를 위하기 앞서, 내 자신을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먼저 갈게."



그녀보다 먼저 현관을 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출근했다.



+



그날 이후로 남편이 웃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그 사람과의 부적절한, 부도덕한 관계를 들킨 순간, 그 이후로 그는 망가졌다.


내 손이, 몸이 닿으면, 그는 슬그머니 피한다. 그건, 더러운 것을 피하는 것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그저, 괴로웠던 것이다, 그 기억이 나는 것인지. 



"오늘 저녁은"



나와 눈이 마주치면, 그의 표정은 굳어버린다. 그리고, 최대한 밝은 미소를 띄우려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그의 입가는 파르르 떨렸다. 



"먹고 올게,아마도 늦을 거야."



그는 망가졌다. 시간이 지나, 내가 다시 그에게 돌아왔을때, 그는 이미 산산조각난 유리조각같았다. 다시 붙이더라도, 금간 흔적은 남을 것이고, 예전만큼 단단할 수 없다. 



"먼저 갈게."



현관문은 무겁게 닫혔다.



이제 와서 부서진 그를 붙이려고 해도, 붙이더라도, 그는 예전처럼 웃을 수 없다.



"미안해..."



닫힌 현관문을 향해 말해도, 그에겐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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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저지른 끔찍한 일로 산산히 부수어진 그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무엇을 하고 있어도 그 생각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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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사람하고는 정리했어."


"2년 동안 만난 사람이었는데, 힘들었겠네."



내게는 시선 조차 주지 않고 그는 말했다, 비꼬듯이. 내가 속여온 시간을 말하며. 차갑게, 말하고 있지만, 그의 눈은 빨갛다. 내가 상처입힌 그도, 그에게 상처입힌 나도, 괴로웠다. 결혼 준비에, 직장생활에 치인다는 핑계로 옛정에 매여, 헤어진 옛 애인과 사랑을 속삭이면서 그를 속이고, 바보로 만든 나는, 그가 내게 차갑게 굴더라도, 욕을 하더라도, 무엇을 하더라도 할말이 없다.



"잘못했어, 정말 미안해, 앞으로는 그런..."


"됐어."



반지를 빼서 탁자에 올려둔 그가 나가고 닫힌 현관문을 보며, 그 바보같은 실수를 하고 나서, 나는 깨달았다. 내가 그를 속인 시간은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다는 걸. 비록 며칠이 지나고, 몇달이 지나서, 그가 다시 내게 웃는 얼굴을 보여주기 시작했지만, 그의 입꼬리는 힘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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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워... 그렇지만 잊으면 안돼


먼저 퇴근해 집에 들어온 건 나였다. 당연하게도... 그는 나를 보고 싶지 않을 거니까. 내가 그에게 저지른, 그 일을 생각하면... 나라도 얼굴을 보는 것이 기분 나쁠 것 같다. 그럼에도, 억지로 웃으면서 내게 상냥하게 대해주는 그를 생각하면...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가 정말로, 웃을 수 있게, 정말로 행복할 수 있게...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남편은 그날 이후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나와 사귀면서, 끊었던 담배를. 건강을 생각해서 끊었으면 좋겠지만 내가 그런 말을 할 수는 없다. 그건 나때문이니까. 배란다, 탁자 위에 올려진 그의 재떨이에 꽁초는 잔뜩 쌓여있었다. 매일 저녁 그가 비우는 걸 보지만, 비운 만큼 꽁초는 다시 높아졌다.


그의 재떨이를 쓰레기통에 비웠다. 


재떨이에 꽁초가 더 높아지지 않길 바라면서, 그가 언제 올지도 모르면서, 나는 저녁을 준비한다. 언젠가는 그가 준비하던 저녁, 남편도 지금 나처럼, 내가 오는 걸 기다렸던걸까. 그런데도 나는 밤이 늦어서, 그가 열심히 준비한 저녁이 랩에 싸여 냉장고에 들어갈때쯤, 돌아왔던 걸까.


정말 나쁜 년이다, 나...


눈물이 방울방울 도마 위에 떨어진다. 내가 야근을 하는 걸로 생각하고, 응원하던 그의 카톡이 생각난다. 내가 거짓말을 하고, 그러고 있는 동안에도, 남편은 나를 기다리고, 걱정하고... 그랬는데... 



"무슨 일이야?"



식칼을 들고 눈물을 닦는 내 손에서 칼을 뺏어 도마 위에 내려놓은 건 남편이었다. 내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며, 그는 나를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어? 당신 늦는다고..."


"... 차가 안 막히더라. 내가 요리할테니까 앉아있어."


"아냐, 아냐, 내가 할게, 당신은 좀 전에 왔으니까, 쉬고..."



이 남자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그런 짓을 저질러서 그를 상처입혀버린 내게도, 그를 행복하게 해줄 권리는 있을까? 



"...사랑해."


"응? 뭐라고?"



나는 말 없이 그에게 입맞춤을 하고, 흔들리는 그의 눈을 봤다. 



"앞으로, 영원히, 당신만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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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야, 오랜만이다~ 너 군대가고 나서 처음 보는 거 같다?"


"누구... 아, 예리구나. 그래, 오랜만이네."



전여친... 은 아니고 그냥저냥 친하던 동기였다. 내가 2학년이 끝나고 군입대를 하고, 복학을 하는 동안 전과를 하고, 유학을 떠난 그녀와의 연락은 어느 샌가 끊어졌다. 페이스북, 카톡, 인스타그램. SNS로는 여전히 친구로 등록되어있었지만, 내가 취업준비를하고, 결혼을 하는 동안 제대로 된 대화는 커녕 간단한 안부인사 조차도 간신히 주고 받던 사이였다.



"다시 한국 들어왔나봐?"


"응, 학위도 따고 다시 여기 와서 취직해서 지내는 중이야."


"잘 됐네."



그녀는 내가 앉은 테이블의 맞은 편 의자를 꺼내 앉았다. 



"쇼핑 온 거야?"


"주말이니까."



그날 이후로, 제대로 된 대화를 처음 나눈 나와 아내는 화해를 했고, 다시 예전처럼 지내기 위해... 그래, "재활치료"를 시작했다. 그걸 위해, 주말인 오늘,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예리는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예전보다 살이 좀 빠진 것 같다?"


"뭐... 그럴 만한 일이 좀 있었어."



따로 이야기를 할 만한건 아니다. 그리고, 이미 그 일은 아내의 눈물로, 아내와의 이야기로 충분히 지워냈으니까. 



"몸이 힘들었든, 마음이 힘들었든, 그런 일이 있으면 얘기해봐."



예리가 옅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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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이 왔음을 알리는 짧은 진동이 울렸다.



[누구야 그분? 혹시 친구?]



아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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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 거는 거진 3년 4년된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