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목소리는 그에게는 닿지 않는다.

신뢰 관계가 전부 망가져 버렸으니, 모든말이 전해지지 않는다.


얀붕이와 바람피고 있었을 때는, 후붕이를 배신하고 있다는 배덕감으로, 쾌감을 얻고 있었다.

그 걸쭉한 검은 쾌감은 새로워서, 바보같이 빠져들고 있었다.

후붕이가 없어지고, 뻥 뚫린 마음의 틈을 채우듯이.


비디오속에서의 나는, 후붕이를 상처입히는 말을 많이 내뱉고 있었다.

얀붕이에 맞춰서 내뱉은 말에 진실은 없고, 그저 쾌감을 얻으려 적당히 말했을 뿐이었지만, 그 모든 것이 후붕이에게 들려버렸다.

내가 그 자리에서 적당히 한말은, 무엇보다도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후붕이를 상처입히고 말았다.


필사적으로 거짓이라고 말하려했지만...

전해지지 않는다.


신뢰가 없어져 버렸기에, 나의 말은 신용될 수 없다.


나는 신뢰를 되찾기 위해, 오늘도 후붕이 집의 정원에 앉아 계속 기다린다.


내가 정말로 후붕이를 좋아한다는 것을, 시간과 태도로 증명해야만 한다.


지금의 나에게는 그것만이, 가능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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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꺼져 지박령"


"..."


정윤아라는 이름을 가진 그녀가 정원의 꽃에 물을 주면서, 심한 욕을 내뱉는다.


타인인 내가 정원에 맘대로 주저앉아 있는 것은, 역시나 불쾌한 일일 것이다.

자각은 하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움직일 생각 없었다.


"그러면 그 비디오, 경찰에 신고하면 되잖아"


나는, 얀붕이에게 최대한의 고통을 주고 살해한 동영상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물론, 후붕이에게 보여주라고 건네준 것이지만, 그녀도 대충 보았음에 틀림없다.

경찰에 잡히면 징역은 확정이겠지. 힘들겠지만, 그래서 후붕이의 기분이 조금이라도 회복되면 기쁠 것이다.


"그딴걸, 그에게 보여줄 수 있겠냐?"


"...보여줘. 후붕이에게 신뢰받고 싶어서, 열심히 그를 괴롭히고 죽인 거니까..."


"역시 멍청하네, 너. 우리 엄마와 같은 수준으로 멍청해"


"...상관없어"


그렇게 말하니, 그녀는 그 이상 나에게 말을 거는 것은 멈추고, 집 안으로 돌아갔다.


매일같이 현관의 옆에 주저앉아있는 나를 보고 욕을 하지만, 그녀는 억지로 나를 내쫓치는 않는다.


나는 집에서 가져온 수제앨범을 열었다.


3권의 그것은, 내 소중한 보물로, 후붕이와의 소중한 추억의 사진이 많이 들어가 있는 소중한 앨범이다.


한 장의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시울이 뜨거워져, 눈물이 흘러넘쳐 온다.


후붕이의 미소, 이제 사진으로 밖에 볼 수 없다.


나는 오늘도 떨면서, 화장실 갈 때 빼고는 하루종일 거기서 후붕이를 계속 기다렸다.


후붕이의 집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나는 결국 집으로 돌아간다.


그런 속죄의 나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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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한번 정도의 빈도로,  화장한 그녀와 후붕이가 집에서 나온다.

절대로 후붕이에게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녀는, 의외로 후붕이와 잘 어울렸다.

오늘도 데이트에 가는 것 같다.


"잘 다녀와"


나는 힘껏 미소를 띄우고 후붕이를 배웅했다.

후붕이는 나를 곁눈질로 확인하더니, 그대로 아무 말 없이 그녀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아주 조금만, 신혼부부의 기분에 잠기고 기뻤다.

두 사람이 앞으로 데이트할거라고 생각하면, 어두운 기분이 들지만.


"더... 더 괴로워야해..."


후붕이가 몇배나 더 괴로웠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더 괴로워야 한다. 그것이 내가 할 수있는 속죄중 하나니까...


그 날, 심야까지 기다리고 있었지만 후붕이와 그녀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보통 화가라고 한다면 집에만 있을 것이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후붕이는 좋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다양한 곳에 가서, 사진을 찍어 가는 일이 많았다.

그러는 동안 여관 같은 곳에 멈춰서 천천히 시간을 보내는 것도 아주 좋아해서, 자주 그렇게 보냈었다.


좋은 경치를 바라보며 느긋하게 지내면서, 때때로 사진을 찍고, 밤에 돌아다니고 밤하늘을 바라보고, 사진에 담고, 마지막엔 여관으로 돌아와서...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괴로워진다.


지금쯤, 후붕이는 그녀와 피부를 맞대고 있는 걸까.


나는 머리를 억지로 흔들어 싫은 생각을 지운다.

그녀는 말투도 거칠고, 애초에 만난지 얼마 안됐다.

아무리 그래도, 아직은 그런 일은 하지 않겠지.


하지만, 이대로 둘이 계속 함께 있는다면, 결국엔 시간문제가 아닐까...


몸이 얼어붙는 듯한 오한과 울컥거리는 구토감을 필사적으로 억누른다.


나는 앨범을 강하게 끌어 안고서, 하늘을 바라보며 눈물 흘렸다.


매일, 매일, 매일, 매일, 이렇게 후회의 나날을 보낸다.


어디까지나 자기 중심적으로,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지만, 내가 나에게 주는 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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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ㅈ나가고,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고, 한번 더 겨울이 왔다.


굉장히 눈에 거슬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욕설만 내뱉을 뿐 나를 억지로 내쫓치는 않고, 경찰도 나를 잡으러 오지 않았다.


나는 계속 현관의 옆에 앉아서, 후붕이에게 '다녀와' 와 '어서와'를 계속 말했다.

후붕이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무시했지만, 이따금 시선을 보내는 때가 있었고, 그것이 유일한 행복이었다.


언제나 후붕이의 집 앞에 갈 때, 나는 얼굴을 씻고 몸가짐을 정돈해 간다.

거울에 비치는 나는, 일년간 상당히 달라져 버렸다.

입술은 물기를 잃고 꺼칠꺼칠하게 금이 갔고, 후붕이가 빗어주던 자랑인 머리는 부스스해지고, 뺨도 야위어서, 예전에 자랑하던 모습은 그림자도 없다.


오늘도 책상 위에 있는 앨범을 손에 들고선, 후붕이의 집으로 향했다.

단 1년만에, 나의 보물인 3권의 앨범은 너덜너덜해져버렸다.


얼마나 노력하고 멈추려 해도 손이 떨려 버리고, 버티려고 노력해도 눈물이 멋대로 흘러넘쳐 더럽혀 버렸던 것이다.

매일처럼 후붕이와의 추억을 떠올리면서, 나는 절망의 나날을 보낸다.


앨범은 3권.

정확하게는 3번째 앨범은 전부 차지 않았기 때문에, 두권과 4분의 3권일까.


일년이나 지났는데도, 3번째 앨범은 채워지지 않는다.


후붕이와의 추억이 늘어나지 않으니까.


지금의 나는 이젠, 과거의 추억을 소비할 수 밖에 없다.


새롭게, 후붕이와 추억을 만들 수가 없다.


절망에 짓눌릴 것 같은 나날이었다.


그렇지만, 참지 않으면


내가 후붕이에게 준 절망은, 내가 받는 절망과는 비교가 되질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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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괜찮아?"


나는 어느 날, 모르는 소녀에게 말이 걸려왔다.

어딘가나를 닮은 것 같은 겉모습에, 분위기는 후붕이를 닮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하루?"


모르는 소녀인데도, 나는 어째선가 이름을 알고 있었다.


"괜찮아, 엄마. 분명 아빠는 용서해 줄거야"


왠지 모르게, 그녀의 윤곽이 희미해지고 있는 듯했지만, 나는 뺨을 만져 그 존재를 확인한다.


"엄마의 손, 따뜻하네..."


하루가 분명 나의 딸인 것이라고, 본능적으로 그렇게 느꼈다.

상냥한 딸은, 약해지고 있던 나를 격려하러 와 준 것일지도 모른다.


"미안해, 하루... 고마워..."


주저앉아 있는 나를 하루는 끌어안으며, 그 작은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따뜻한 느낌에, 눈물이 흘러넘친다.


"엄마, 너무 좋아..."


마지막에 수줍은 듯이 웃으면서, 하루는 빛으로 변해갔다.


나의 손에서, 빛이 되어 사라져 간다.


"기다리고 있을게"


사라지는 그녀를 붙잡으려 했지만, 넘어지고 만다.


"하루! 윽.."


"누구야, 하루는?"


냉정한 목소리.

목소리의 주인을 향해 시선을 돌리니, 면식이 있던 여자가 거기에 있었다.


정윤아였다.


"여긴, 어디...?"


그녀를 발견한 나는, 이어서 상황을 파악하려 주위에 시선을 돌린다.


"너한텐 익숙한 장소일거야. 조금 먼지가 많지만 참아"


나는, 내가 바람을 저지른 후붕이와 나의 침실에서 자고 있었다.

상황을 인식한 순간, 몸이 무거워진 기분이 들었다.


"마당에 쓰러져 있었어, 너. 정말로 성가시네? 가족도 부재고"


그 말을 듣고, 나는 그제서야 내 상태를 직감했다.

울컥거리는 기침과, 의식이 몽롱해지는 듯한 두통, 고열. 왜 깨닫지 못했을까.


"걸을 수 있으면 병원에 가라, 차 불러 줄테니"


"괜찮아... 집에서 쉴테니까..."


그녀는 귀찮다는 듯이 대했지만, 정성스럽게 나를 돌봐준 듯했다.

어느새 인가 옷도 갈아입혀 준 것 같다.


더는, 그녀에게 폐를 끼칠 수는 없다고, 나는 후붕이의 집을 나가려했지만.

사고가 흔들리며, 몸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아서 쓰러져 버렸다.


"고집부리지 말라니까"


그녀가 나에게 어깨를 빌려줘, 억지로 들어올린다.


결국, 구급차를 부른 후, 나는 그 차에 밀어넣어졌다.


"근데, 남편을 슬프게 하는 거 그만둬. 자살하던가, 새로운 남자라도 찾아"


"...죄송합니다. 하지만, 비록 벽 너머라도, 후붕이의 곁에 있고 싶어요..."


나를 혼내는 내용에 비해서, 슬픈 듯한 표정을 하고 있던 그녀는, 희미한 의식이였지만 강하게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후붕이가 슬퍼하고 있다는 것을 듣고, 이러면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조금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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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그녀에게 아이가 생긴 것을 들었다.


그때의 절망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정도였고, 나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그녀에게 다가섰다.


그러나, 그녀의 배는 살짝 부풀어 있어, 사실인 것이라고 깨달았다.


"이제 그만 포기해줘. 남편이 말한대로, 앞을 향하고 살란말야"


"싫어... 정말 싫어... 좀 더... 괴로워 하지 않으면..."


"이제 괜찮으니까. 충분히 괴로워했다니까, 참..."


망신창이인 앨범을 가슴에 안고, 곤란한 표정을 지은 그녀의 앞에서, 흐느껴 운다.


후붕이의 아이를 낳고 싶었다.


하루를 낳아 주고 싶었다.


이뤄지지 않았다.


전부 내 자업자득으로, 인과응보다.


단 한 번의 실수가, 모든 것을 끝내버린 것이다.


꿈 속에서 만났던 소녀, 하루.

나의 딸이, 사라져 가는 감각이 들었다.


"우윽... 켁... 우... 우에에에엑"


"이,이봐! 괜찮은 거냐? 정말이지, 성가시네!"


달칵달칵, 웃음이 나올 정도로 몸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그녀에게 등을 두드려지면서, 위액을 토해낸다.


난폭한 숨을 가라앉히려 해도, 정돈되지 않는다.

피가 섞인 위액을 뱉고, 나는 의식을 잃었다.


다음에 깨어난 것은, 내 방의 침대 위였다.


"죽 만들었으니까, 먹어"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눈이 떠진 나에게 죽을 내밀었다.

식욕이 없다고 머리를 흔들며 거절했지만, 안 됐다.


"너 방금 위액과 피만 토했잖아! 제대로 밥좀 먹고 스토킹해!"


뭐야 그게, 의미 모르겠어.

울면서 웃는 얼굴을 띄우면서, 나는 억지로 죽을 먹게 됐다.

약도 같이 먹고, 그대로 침대에서 재워졌다.


"그럼, 잘있어"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방을 떠났다.


후붕이는 아니지만,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상냥하게 대해져서, 나는 몰래 눈물 흘렸다.


그녀의 상냥함과 따뜻한 마음에 구원받은 기분과 후붕이의 첫 아이를 빼앗겼다는 절망.


베개가 눈물과 콧물로 젖는 것도 개의치 않고, 그 날은 하루종일, 감정이 질척질척하게 섞인 눈물을 계속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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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결 파트 반만 남았네요!

남은 부분은 좀만 있다가 올릴게요!

새로 산 컴퓨터로 처음한게 글번역이라니

무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