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TR요소 주의



1편 : https://arca.live/b/regrets/21444488

2편 : https://arca.live/b/regrets/21481458







"그래서 수확은 좀 있으셨나요?"


점원이 잔을 부드럽게 닦아내며 내게 묻는다. 그런데 어쩐지 잔을 만지는 손놀림이 굉장히 유려하면서 또 색정적인 것이 시선을 빼앗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체 왜 저렇게 야하게 보이는 걸까. 일부러 저러는 걸까? 나는 살짝 뺨이 달아오르는 걸 느끼면서 침음이 절로 새어 나오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뭐, 정확히 말하면 2만금의 꿈은 모조리 꿈으로만 남게 됐죠."


"못 찾으셨구나."


"찾았어요. 찾긴 찾았죠. 다만... 그러니까..."


말끝을 흐리는 내 모습을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점원. 하지만 술도 얻어 마신 마당에 계속 얼버무리는 것도 실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덤까지 들고 갈 비밀도 아니고, 애초에 누군가 들어주길 속으로 바라기까지 했으니 말이지. 나는 점원과 사이를 가로지르는 바테이블을 바라보며, 잠깐 이어진 침묵을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으로 삼았다. 그리고 슬슬 입을 열려는 찰나, 그녀가 먼저 선수를 친다.


"말하지 못할 비밀이라면..."


"아니, 아닙니다. 그냥 단순히 부끄러운 기억이라 그랬어요."


"그럼 더더욱..."


"그 뜻이 아니라, 아니, 아닙니다. 그냥 들어주세요. 별 거 아니니까요."


그녀의 말을 두 번이나 끊으면서 부정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 의문이 들지만.

무언가 고집을 부리고 싶었다. 뭐 때문인지, 아니면 알량한 자존심 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녀가 내 이야기를 계속 들어주길 바랬다.

단순 이기적인 심보가 분명했지만 아무래도 나는 속으로 쌓인 게 많은 모양인지 그녀와의 대화를 영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후훗, 좋아요... 그럼 좀 더 들려주실래요?"


내가 욕심을 부리는 것을 알아챘는지 확신은 못하겠지만, 일단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내 이야기를 계속 경청해주고자 했다.

살며시 입꼬리가 위로 솟는 것을 억지로 가라앉히고는 나는 유난히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




"여기도 없어. 아, 정말..."


그녀는 역력하게 실망감을 드러내더니 철퍼덕 소리와 함께 땅바닥에 엉덩이를 찧었다. 저 순산형 엉덩이로 땅을 내려 찍었으니 분명 땅은 무사하지 못했으리라. 하지만 나는 그녀의 모습을 잠깐 바라보고는 다시 반지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의 기세로 주변을 뒤졌다. 그러면서도 잠깐 고개를 들어 용병놈이 제대로 호위를 서고 있나 감시하기도 하고, 그녀가 지금 뭘 하고 있나 확인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 쪽에서조차 반지를 찾을 수가 없었다. 이쯤 되면 슬슬 불안한 기류가 형성되는 걸 막는 건 불가능한 수준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지도를 들고 내게 다가오더니 속상한 게 그대로 느껴질 정도로 말끝이 떨리고 있었다.


"여기가 목표 17지점인데, 남은 목표 지점은 2개 뿐이잖아... 어떡해 우리..."


여기서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나는 잘 모르겠다. 해답은 없지만 해답에 가장 가까운 말이 필요한 시점일까? 가끔은 이럴 때가 제일 곤란하다.


"괜찮..."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후배 하나 못 챙겨줄 정도는 아니니까."


"선배님..."


분명 아까 호위 서는 모습을 봤는데 갑자기 주위에 나타나선 뜬금없이 나의 역할을 가로채가는 용병 새끼. 이 순간 만큼은 얼굴 표정을 관리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나도 모르게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순식간에 차오르는 분노라는 감정이 뒤춤에 매어둔 단도로 손을 뻗게 만들었지만, 그 순간 그녀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겨우 인내심을 품고 손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호위는 어쩌고 여기에 계신 겁니까."


허나 분노의 감정마저 사그라진 건 아니었기에 그를 향해 내뱉은 말에는 독기가 담겨 있었다. 딱히 숨길 생각도 들지 않아 갈무리도 하지 않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그는 내 말에 담긴 독기를 느끼곤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마물은 없습니다. 제 두 눈으로 똑똑히, 꼼꼼히, 세세히 확인하고 왔으니 상관없지 않을까요?"


"여긴 자신의 두 눈도 믿을 수 없는 위험 지대입니다. 어둠과 동화된 마물들의 모습을 어떻게 똑똑히, 꼼꼼히, 세세히 확인해서 없다고 확신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드는군요."


"용병으로 오래 지내다 보니까 저한테 기감이라는 게 생겼거든요. 적대적인 생물체의 기색, 기척을 감지하고 파악하는 기술인데. 실례지만 지금 제 기감에는 마물보다 당신이 더 강렬하게 느껴지는데 말이죠?"


여전히 기분 나쁜 미소를 지우지 않고 내게 적의 어린 시선을 보내오는 그 용병의 눈에 칼침을 놓아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잠깐 시선을 돌린 나는 불안한 얼굴로 나와 용병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는 그녀를 시야에 담는다. 그녀의 앞에서 험한 모습을 보이긴 싫었고 그렇다고 저 용병에게 밀리고 싶지도 않았다. 1초라는 침묵 사이에 수도 없이 많은 사고가 이루어지고, 결국 내가 한 발 빼주기로 마음 먹었다.


"저희가 당신을 고용한 입장이란 걸 잊지 마시길."


"예, 그렇죠. 돈 주는 사람이 용병계에선 일인자 입니다. 그리고 저는 일인자 말에 충성하는 훌륭한 용병이고요."


"..."


비꼬는 게 확실했지만 한 번 인내하기로 마음 먹은 지금, 그다지 반응해주고 싶진 않았다.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한 뒤에 몸을 돌린 나는 옆에서 약간 안도하는 모습을 보이는 그녀를 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가자. 다음 지점으로."


"응."


지도를 펼치고 다음 장소를 찾았다. 다음은 18지점인데, 이곳은 17지점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었다. 거리가 먼 것 뿐이라 별 문제는 아니었고, 사실 진짜 문제는 마지막 19지점이었다. 사전에 개척단에 섞여 탐색하러 들어왔을 때, 이곳을 지나가던 순간 직감이 부르짖었다. 위험하다고, 이곳은 뭔가 있다고 말이다.

위험한 도전에 위대한 명예와 보물이 따른다는 말은 미친 놈의 거짓부렁이다. 보물 사냥꾼들에게 도전은 암묵적인 금기였다. 명예는 보물 사냥꾼에게 필요 없는 짐이었고, 보물이 목숨을 앗아가는 건 말 그대로 본말전도였다. 보물 사냥꾼을 왜 괜히 속된 말로 도굴꾼이라 부르겠는가. 사냥꾼은 도전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을 수 있지만, 도굴꾼은 그 단어를 입에 담을 수 없는 탓이다. 결국 나는 19지점에 진입하지 못했다. 그래도 혹시, 만약, 같은 생각을 담으며 지도에 체크를 남기긴 했지만 설마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아, 제길."


"하아... 어떡해..."


더는 돌아설 길이 보이지 않는다. 쉬운 길만 찾던 도굴꾼은 이제 보이지 않는 기로에 서있었다. 힘겹게 걸어왔던 18지점에서 얻을 수 있는 건 전혀 없었다. 다른 지점에서 귀한 광석을 한 두 개 정도 얻었지만 이곳은 그런 부산물조차도 남은 게 없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헛고생만 했을 뿐.


"지금까지 챙긴 게 뭐가 있었지?"


나는 지금까지 던전을 탐색하면서 얻었던 성과를 파악하기 위해 가방을 열어 젖혔다. 그녀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가방을 열어 젖혔다.


"희귀 광물 10개 남짓이랑... 장식용 칼이랑 낡은 의복, 그리고 마물의 핵 2개 정도..."


"후우... 텄다. 텄어."


정말 답이 없다. 다른 던전이나 유적 등을 파헤칠 때도 이 정도로 아무것도 안 나온 건 드물었는데. 완전히 씨가 말랐군.

19지점엔 정말로 가고 싶지 않았다. 보물 사냥꾼으로서의 경험이 말하고 있긴 하다. 저곳은 노다지일 거라고.

하지만 직감 또한 말하고 있다. 지금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목숨을 담보로 도박을 하진 말자고.

욕망과 본능이 싸우고 있다. 내면에서 충돌하고 있다. 


"가야 할까..."


일그러진 그녀의 얼굴을 환하게 미소 짓게 만들고 싶지만.


"말아야 할까..."


분명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다. 그녀는 물론이고 나까지 위험해질 수도 있다.


"씨발..."


발걸음을 옮겼다. 다시 채비를 갖추고 어둠 속으로 향했다. 욕설을 입에 담아 짓이기며 마지막으로 상황을 검토했다.

나는 도박을 하기로 했다. 정말 이런 생각을 하기는 싫었지만, 지금 이 순간에 용병이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저 용병 자식을 이용하면 좀 더 안전하게 19지점에서 탐색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상황이 위험해지면 용병을 미끼로 던져 시간을 벌 수도 있겠지. 모든 순간을 통틀어 지금 저 용병의 필요성을 여실히 느꼈다.


"19지점부터는 용병 분이 선봉을 맡아 주시길. 저희는 바로 뒤에 붙어 따라 들어가겠습니다."


"마물이 거의 없어서 심심하던 차였는데 좋네요."


용병은 처음 인상보다 눈에 띄게 거들먹거리며 19지점으로 발을 들였다. 자신감이 넘쳐 보이는데 대체 뭘 믿고 저렇게 당당한 걸까?

마음 같아선 들어가자마자 함정 같은 것에 걸려서 죽기 보다 고통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어쩐지 그것을 넘어선 불안함이 내 몸을 감싼다.


"안은 생각보다 깨끗한데?"


"...?"


용병과 함께 19지점으로 들어서고 느낀 점은 모두 대동소이 한 듯 싶었다. 깔끔하고, 정돈된 풍경. 던전에서는 단연코 보기 힘든 장소였다.

묘한 기시감이 느껴지는 용병의 한마디와 함께 우리들은 최대한 19지점에서 안전한 장소를 찾기 위해 이동했다.

하지만 어쩐지 마물의 기색은 커녕 흔적조차도 보이지 않아서 서서히 긴장이 풀려가고 있었다. 보통 이럴 때가 제일 위험하던데.


"뭔가 춥긴 하지만, 생각보다 안전한 거 같아."


"아니... 오히려 수상하잖아."


분명 내 직감은 이곳이 여전히 위험한 장소라며 속삭이고 있다. 직감을 곧 잘 신뢰하는 편인 나에게 있어서 이 장소는 던전이라는 이름과 걸맞지 않는 이질감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의 말대로 이곳은 다른 장소에 비해 살짝 서늘한 감도 있다. 그리고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그 순간.


쐐액―! 

어둠 속에서 거칠게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날아와 우릴 덮쳤다!


"으아악!"


"꺄아아악!"


"허억!"


각기 다른 소리를 내지르지만 행동은 똑같았다. 물체를 피하고 어떻게든 자세를 다시 갖추어 전투 태세에 돌입한다. 각자 숙련된 전투 경험을 바탕으로 순식간에 전투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앞서 나간 것은 용병이었다. 


"하아압!"


"...!"


두 손에 검 손잡이를 쥔 채 빠르게 어둠 속의 마물을 베어 넘기는 그였으나. 미지의 적은 그리 순순히 몸을 내어주지 않는 듯 했다. 생각보다 민첩한 녀석이었다. 허탕을 쳤다는 듯 표정을 구긴 용병이 다시금 공세를 이어가지만 마물에게 유효타를 먹이진 못하고 있었다.


"주문 욀게! 지켜줘!"


"먼저 어둠부터 치워! 저 녀석은 어둠 속에서 물리적인 내성을 가지는 귀찮은 놈이야!"


"알겠어!"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곤 빠르게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마법이란 건 뚝딱 튀어나오는 게 아니기 때문에 용병과 내가 그녀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

나는 허리 뒤쪽으로 손을 넣어, 처음 용병을 찌를 기회를 놓쳤던 단검을 잡고 꺼냈다.


"용병 새끼 무기보다 후지면 이것도 갖다 팔아버려야지."


이전에 유적을 파헤치다 얻은 마력 깃든 단검을 손에 꼭 쥐고 빠르게 달리기 시작하는 나. 특출난 능력을 지닌 무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약점을 가리지도 않는 만능 단검을 거꾸로 쥐고서 독사가 먹잇감에게 이를 박아 넣듯이, 나 또한 몸을 높게 뛰어 마물의 어깨판으로 추정되는 부위를 강하게 내려 찍었다.

반응은 확실했다.


"크에에엑!"


"한 번 더!"


푹! 이번엔 제대로 살을 파고 드는 느낌이 들었다. 베는 걸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마물이나 사냥감에게 송곳니를 꽂아 무는 듯한 이 느낌은 좋아했다.


"캬아아아! 크아아아!"


과연 괴로워하고 있는 걸까? 대충 마물이 온몸을 비틀고 내가 달라붙은 것을 떼어내려고 하는 걸 보니 정말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용병도 쉬지 않고 검으로 마물을 베어보지만 어둠으로 지어진 장막을 끝까지 파고들지 못해 번번이 생채기만 생겨나고 있었다.


"다들 비켜!"


마물에게 집중하던 사이, 등 뒤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짧고 굵은 경고 메세지. 그리고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나와 용병이 자리를 피하고 그 자리를 마법이 채워가기 시작한다.


"빛이 당신을 태울 것 입니다!"


그러자 빛이 있었다. 섬광이 선을 그리며 마물을 향해 날아가 명중하고, 명중한 빛이 균열을 그리며 순식간에 19지점의 내부가 완전히 감싸였다.

찰나에 벌어진 일이었다. 무슨 일이 생긴 건지 파악하기도 전에 빛이 사그라지고 마물이 있던 자리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어둠이 걷힌 마물은 인간에 가까운 형태를 하고 있었다. 작게 으르렁거리는 듯한 신음을 흘리는 마물은 어깨를 부여잡고서 우리와 시선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인가 그녀인가. 갑자기 불필요한 의문이 들었다. 마물에게 무언가 동정심이라도 품은 걸까 나는?


"그어아... 가아아아!"


무언가가 나를 향해 쏘아져 날아왔다. 처음 어둠 속에서 우리를 향해 날아왔던 투사체와 같은 것이었다. 분명 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쩐지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눈앞의 그녀와 눈이 마주친다.


"피해―!!"


등 뒤로 그녀의 비명 소리가 들린다. 서서히 주변이 느려져 보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몸은 움직일 수 없었다. 설마 이건 주마등인가?

힘겹게 고개를 돌릴 수 있었다. 1분이 10분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어떻게든 몸까지 움직여 시선을 움직이는 순간, 내 눈에 띈 것은 발등에 박혀있는 긴 가시바늘 하나.


"이게... 뭐야..."


눈앞의 시야가 얼음장보다도 차가운 무언가로 가득 차게 될 즈음. 나는 의문만 가득한 채로 의식을 잃었다.



-다음에 계속-








Q 대체 후회가 어디 갔냐!

A 죄송합니다. 이제 빌드업이 막 끝난 참입니다. 다음 편엔 나옵니다.


Q 빌드업만 3편에 걸치는게 정상이냐?

A 제 능력이 부족한 탓입니다. 죄송합니다.


Q 죄송하면 끝이냐.

A 빨리 다음편 쓰겠습니다.


기대해주는 사람도 있어서 그 기대에 부응하고자 열심히 쓰고 있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아 미안한 마음이 앞서네. 정말 미안해.



//2021-02-22 수정1

위에 QA 전부 개구라 개소리입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