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에 간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이다.


우리 아파트 단지는 안에 놀이터가 있는데, 튼튼한 플라스틱 미끄럼틀이나 정글짐 같은 게 있어서 아이들이 많이 뛰어논다. 모래사장 옆 우레탄 블록이 깔린 장소에는 철봉이나 뺑뺑이 같은 성인용 운동기구도 있어서, 아이들뿐만 아니라 아파트의 아주머니 할아버지들도 많이 이용하곤 한다. 

나는 그 놀이터 벤치에 앉아 그곳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구경하는 걸 좋아했다. 그곳에 있으면 놀이터의 하늘을 감싼 공기를 마음껏 마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요상한 여인을 보게 되었다. 그녀는 흰 원피스와 모자를 쓰곤, 철봉 맨 바깥쪽 기둥을 회전축 삼아 온 몸을 빙빙 회전시키고 있었다. 무척이나 재밌다는 듯 잔뜩 웃으면서. 히히히. 이 날씨에 덥지도 않나? 나는 그 곳에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그녀가 참 생경해서 그 모습을 가만 보고만 있었다. 그랬더니 그 여자가 이번엔 내 쪽을 바라보면서 헤실헤실 웃는 게 아닌가.


놀이터에 원피스를 입고 온 것부터 이상했는데, 철봉을 잡고 돌면서 히히히 바보처럼 좋아한다니. 놀이터에 온 다른 아이의 보호자처럼 보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보호받는 아동의 입장은 더더욱 아닌 것 같았다. 나는 그녀에게 뭔가 말을 걸고 싶어서 일어나 다가갔지만, 이내 빙빙 도는 그녀 앞에서 가만히 멈추고 말았다. 뭔가, 미소가 너무 귀여워서 말을 걸기가 더 힘들었다.


그녀는 몸이 꽤 컸다. 족히 스물넷은 넘고, 키도 170은 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그녀가 철봉을 빙빙 돌면서 모래먼지를 휘날리고 있었으니 바닥에는 모래가 쓸린 자국이 가득했다. 내 바지에 계속 모래가 튀었다. 히히히. 호호호. 그리고 그녀가 갑자기 나에게 말을 걸었다. 


"뭘 그렇게 빤히 보구만 있어요?"

"재밌어 보여서요."


그리고 나는 계속 철봉을 도는 그녀를 바라봤다. 어쩌면, 완전 이상한 여자라기보다는 그저 스트레스에 잠깐 머리가 이상해진 여자일 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묘한 친근감이 들었다. 그녀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품고 있었던 건 아닐까?


"재밌어 보이면 같이 해요."


갑자기 돌기를 멈추고 그녀가 날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놀리는 듯한 웃음. 한 손은 계속 철봉을 잡은 상태로, 다른 손은 반대쪽 허공에 쭉 뻗고, 한 발은 땅을 짚고 한 발은 허공에 재밌게 내민 모양새였다. 꼭 발레리나같았다. '나 멋있지?' 그렇게 물어보는 것 같았다. 솔직히 좀 멋있어 보였다.

나는 그녀의 맞은편에서 철봉을 붙잡았다. 기둥에 붙은 반쪽짜리 날개는 이제 한 쌍의 날개가 되었다. 그리고 돌기 시작했다. 처음엔 한 발을 짚고 다른 발을 박차며 천천히, 점점 짚던 발에도 힘을 가하며 빠르게, 두 발로 걷고, 뛰고, 서로를 쫓고. 그렇게 한 쌍의 날개는 서로의 뒤통수만 쫓아가며 빙빙 돌았다. 머릿속이 어질어질했다. 그녀의 뒷모습만 변하지 않은 채 내 눈앞에 서성이고 있었다.


어지러워 잠깐 정신을 잃은 사이, 그녀의 앞태가 내 뒤통수에 부딪히며 비행은 끝이 났다. 우리는 넘어진 채 웃다가 모래바닥 앞에서 헛구역질을 했다. 온몸에 그녀의 무게감이 느껴졌다. 나만한 사람이 내 위에 쓰러진 건 오랜만이었으니까. 땅을 짚고 일어나자 그녀는 옆으로 풀썩 쓰러져 눕고는 배를 잡고 웃었다. 눈물까지 훔쳐가며 깔깔 웃는 게 아닌가. 그러고 하는 말이,


"뭐하는 사람이에요? 이상한 사람이네."


이히히히. 그녀는 아까 철봉을 돌 때보다도 잔뜩 웃고 있었다.

나도 웃음이 터져나왔다.





-

* 재밌게 읽으셨다면 남근선망 채널 방문 한번씩 부탁드려요. 남근선망 채널 (arca.l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