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모음


***


'어? 으, 으응... 안녕...'


'저기... 너무 그렇게 인사 자주 하지 말아줄래...?'


'아니아니...! 너가 싫은건 아니고... 그냥 그... 하아...'


'미안... 너를 ...기엔 내... 이 너와 맞지 않아...'


.

.

.


'또 잠들고 말았나...'


머리가 아플땐 보통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하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잠조차도 잘 수 없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잠만 들었다고 하면 내용을 기억할 수 없는, 불쾌하기 그지없는 꿈을 꾸기 때문이다.

차라리 내용이라도 명확하게 기억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을. 그랬다면 차라리 복기라도 할 수 있을텐데.

중간 과정은 모조리 생략하고 잔향만이 남아 나를 괴롭히는 것이 고통스럽기 그지 없었다.


본래 잠에서 깨면 개운하다고들 하던데.

내겐 항상 개운함 대신 공포와 절망, 우울감과 두려움만이 존재했다.


그러니 내가 잠을 자길 꺼려하는 것은 아마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눈만 감으면 괜스레 우울감과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 몰려오기 마련이니까.

행여나 또 다시 그 지옥같은 시간을, 감정을 겪어야 할지도 모르니까.


'지금 몇시지... 수업은 또 언제 끝난거야?'


텅 빈 교실에 홀로 남아 있자니 어젯밤의 일이 또 한 번 머릿속을 스쳐간다.

그래, 그때도 지금처럼 나 홀로 방에 앉아 멍하니 천장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와 누나의 언쟁. 그 과정에서 듣지 말아야할 속사정을 듣고만 나.

물론 처음에는 충격적이었으나 생각을 거듭할수록 오히려 안심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따지고보면 그녀들이 한 말들은 모두 나를 위하고 아낀다는 논조에 가까웠으니 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들을 그동안 편견 어린 시선으로 바라봐온 것이 사실이다.

기억을 잃고 깨어난 상황에서 주변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었으니 어쩔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어젯밤의 일로 한 가지 확실해진 것은, 적어도 그녀들이 내게 품는 감정 자체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비록 방식은 다소 어폐가 있고 미심쩍은 부분이 있을지언정 그 의도와 진심만은 처절할 정도로 느껴졌다.


문제는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는지.

다시 말해 어떤 일이 있었길래 그녀들이 그렇게 되었는지였다.


"하아... 지원이, 죽다 살아났어요... 그런데도 느끼신게 하나 없으신거에요??"

"우리 가족... 엄마 아들!! 제 동생!!! 죽다 살아났다구요...!! 엄마 때문에에...!!!!"


"...."


"그러니 제발 그만하세요... 네?"

"저도 제가 이런 말 할 자격 없다는건 알고 있지만... 제발!!!"

"우리 지원이 좀....!! 제발 이번만큼은 지키게 해주ㅅ..."


아무리 잊으려고 한들 도무지 뇌리에서 지워지지가 않는다.

그만큼 내 기억에게 있어 굉장한 충격으로 다가왔다는 의미겠지.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요전날 내가 내린 결정에 의문이 드는 요즈음이었다.

학교에서의 첫 날을 지내고 소영이와의 만남을 거치며 민지와의 새로운 인연또한 맺으며 다짐했던 그것.


'그냥 닥치고 살아'


누가 뭐라고 한들, 그리고 과거가 어땠다고 한들 지금은 지금이다.

진실을 알아낸다는 것은 지금 당장은 몰라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 나의 일상에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칠지도 모르니 말이다.

아무리 궁금한 것이 있다고 한들 평화를 깨면서까지 이를 해소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찜찜한 기분이 사라지지 않는다.


무시를 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는 법.

결국엔 근원적인 물음의 해답을 찾아 갈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일테고 이는 나조차도 예외가 아니었다.

기억의 저편에 사라진 일생의 파편에 대한 갈망은 내 예상보다 훨씬 고차원적의, 그리고 고강도의 절제력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신들로부터 상자를 선물 받은 판도라의 기분이 이러했을까.

아니, 어쩌면 햄릿에 더 가깝다고 보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은 오로지 내 손에 달려있으니 말이다.


"야, 윤지원! 뭐하냐! 수업가야지!"


"으... 으응?"


그때, 눈 앞에 나타난 특유의 까무잡잡한 피부에 검은색 똑단발.

보이시한 매력이 통통튀는 분위기의 소유자, 다름 아닌 소영이었다.


"난 또... 소영이구나."


"응? 지원아 너 어디 아파?"


아까도 말했지만 요근래 잠을 잘 못 자는 중이다.

더군다나 어젯밤은 사정이 사정인지라 한숨도 자지 못했다.


잠을 자지 않으면 피곤해지는 것 당연지사.

그리고 그 피곤함은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드러나기 마련이다. 


"응? 아아, 아니...? 완전 멀쩡한데."


"아니 전혀 안 멀쩡해 보이는데. 네 얼굴을 좀 봐!"


그녀가 내민 거울 속에는 왠 피골이 상접한 해골 하나가 쾡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그것이 나임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혹시 너... 굶고 막 그래? 그러지 않고서야 이런..."


"아니, 굶지는 않는데."


"그럼 뭐... 잠을 안 자기라도 하는거야?"


"음..."


"바보야. 다 티 난다고..."

"잠은 똑바로 자야지.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


"..."


소영이는 그런 내가 많이 걱정된 듯 싶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부담스러울 정도로 밀착하며 신경 써주려고 하진 않을테니 말이다.

물론 그런 그녀가 싫다는건 아니다. 오히려 고마워하며 성의를 표해도 모자랄 상황.


다만 이전처럼 그녀의 눈을 빤히 바라볼 수가 없었다.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요전날에 보여주었던 눈빛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니, 별거 아니니까 신경쓰지마."


"...정말 괜찮은거 맞지?"


"괜찮다니까. 너무 그렇게 신경 안써줘도 돼."


"...읏"


'지원아. 너가 이렇게 행동해선 안된다.

너가 학교에 적응 할 수 있도록 도와준게 닮 아닌 소영이지 않냐.

그녀가 네게 보여줬던 호의를 무시로 갚을 셈이냐' 라며.


스스로를 아무리 다그쳐도 역부족이었다.

아무래도 역시 그 눈빛이 문제인 듯 싶었다.


'대체 눈빛이 뭐라고 나는 이토록이나 두려워 하는걸까...'


소영이도 이런 나의 변화를 느꼈는지 내게 진의를 물어오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마치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것 처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간절함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

"지원아. 혹시라도 내가 불편하다거나 하면..."


"뭐? 내가 몇 번이나 말했잖아. 그런거 아니라고."

"너가 불편하다니... 내가 어떻게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있겠어?"


"하지만 지금도 내 시선을 피하고 있잖아."


"그, 그건..."


"다 티나거든... 눈치채지 못한다면 그게 바보지."


분명 내 마음은 이게 아닌데.

어째서인지 자꾸만 본능적으로 밀어내는 듯한 느낌이다.


"저기, 소영아 나는..."


"아냐, 다 이해해. 많이 혼란스럽겠지."

"따지고보면 너가 학교에 온지도 고작 하루 지났을 뿐이고..."


"..."


"그래도 지원아... 나는 언제나 진심이었어."

"그래서 어제 그 말을 한거고... 믿어달라고 한건데..."


"그, 그러니까 소영아..."


"결국엔 내 불찰이겠지. 안 그래?"


애써 웃어보이는 소영이를 보며 나는 가슴 한켠이 시큰함을 느꼈다.

슬픔은 아니었다. 동정도 아니었다. 하물며 분노는 더더욱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지금 이 순간, 내가 그녀에게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은.

알싸할 정도로 기괴한 감정의 정체는 말이다.


"..."

"늦겠다. 이만 가자."


"어? 자,잠깐만 소영아...!!"


침묵의 끝, 내게서 말없이 돌아선 소영이는 끝내는 교실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교실에는 전해지지 못한 매아리의 잔흔만이 남아 나를 지독하게 괴롭히고 있었다.


"하아... 미치겠다 정말로..."


정말이지, 의심병에 걸리기라도 한걸까.

세상 모든것을 차마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는 기분이다.


무엇이든간에 의심하고 또 의심하고.

그러다 어느 이름없는 산야에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운명이겠지.

이렇게 생각하니 세삼 삶이 참 부질없는 것 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에효 씨발..."


나는 힘없이 근처 의자에 쓰러지듯 몸을 기대어 앉았다.

지금쯤 소영이는 이미 일찌감치 도착했겠지. 나도 가야하는데...

하지만 그런 바람과는 달리 온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다음 수업까지 2분도 채 남지 않은 시점.

그러나 내겐 자리에서 일어날 힘조차도 남아있지 않았다.


"...땡떙이 처버릴까."


그저 던지듯이 툭, 하고 내놓은 말이었는데.


"나쁘지 않지... 떙떙이."


"앵?"


불쑥, 하고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그곳에는 뚱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민지가 서 있었다.


"미, 민지...? 민지 맞지?"

"여기서 뭐하고 있었던거야??"


"애... 앵? 여, 여기 있으면 안되는거였어?"


"아니 그건 아닌데...!!"

"그, 그렇다면 언제부터...?"


"시, 시점을 말하는거라면 으음..."

"너랑 소... 소영이가 싸우고 난 이후부터?"


"뭐, 뭐어? 싸운거 아니거든?"

"그나저나 소영이랑 함께 있던 시점이라니... 거진 처음부터잖아..."


어째서 눈치채질 못한걸까.

민지가 원채 조용한 아이긴 했다만, 아무리 그래도 존재감이 이렇게 없을 줄이야.

뒷수습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던 내게 민지가 쭈볏쭈볏 다가와 말했다.


"저기... 괜찮아? 아까 뺨도 마구 때리고 그러던데..."


"아, 이거? 아냐, 아무것도."


"보통 아무것도 아닌 일로 스스로의 뺨을 때리진 않잖아...?"


"괜찮다니까 그러네! 진짜 아무 이유도 없..."


그 순간, 스윽- 하며 나의 뺨을 스쳐지나가는 감각.

손길이 주는 차갑고도 아찔한 감각에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고야 말았다.


"우와아아앗! 차, 차가워?!?"


"역시 화끈화끈... 아프진 않아? 아플 것 같은데..."


"자, 잠깐...!!"


"꺄앗?!"


나는 재빨리 민지의 손길을 처내었다.

여러 이유가 있을테지만 아마 불쾌감, 순간적인 불쾌감이었다.

민지는 적잖이 당황한 듯 했다. 그리고 이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앗... 미, 미안...! 뺨이 많이 부었길래..."

"놀라게 만들었다면 미안해...! 기분 나쁘게 할 생각은 없었어..."


붉게 부어오른 손을 어루만지며, 민지는 말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니 괜스레 또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문득 이랬다 저랬다 하는 스스로의 꼴이 꼭 갈대처럼 느껴진다고 해야하나.

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정신상태인지 모르겠다.


정말이지, 미쳐가기라도 하는걸까.


"아, 아냐... 나야말로 미안해."

"손은 괜찮아? 내가 너무 과했지...?"


"손은 뭐...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만..."

"무슨... 일이라도 있는거야? 구, 궁금해, 알려줘!"


"알아서 뭐... 좋을게 있나."

"아까 전 일은 신경쓰지말고, 곧 종 칠테니 수업이나 가자."


"내, 내가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뭐?"


예상 외의 답변에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민지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마, 말 그대로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뭘 어떻게 도와주겠다고?"


"그... 그건 잘 모르겠는데."


"에휴..."


나도 모르게 나오는 한숨.

그도 그럴것이, 내가 고민하는 이유는 소영이 때문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당장 스스로도 문제의 원인을 찾지 못해 해매는 중인데 생판 남인 민지가?

정말이지 웃음만 나오는,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그, 그러니까...! 아까 대충 보니까 사소한 트러블이 있던 것 같던데..."

"그... 소영이랑 말이야! 아, 아무튼... 혼자서 고민하는 것 보단... 낫지 않을까...?"


"하아... 민지야. 말은 고마운데 이건 너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야."

"그리고 대체 왜 나를 도와주려는건데? 너가 뭔데? 왜? 무슨 이유 떄문에?"


"..."


아, 이런. 너무 몰아붙였나.

이런 것 까지 어머니를 닮을 줄이야. 정말 가족이 맞긴 한가보다.


그나저나 그건 그거고, 이 사단을 대체 어떻게 수습해야할지가 문제였다.

이대로라면 난 선의를 배푸려는 사람에게 역정을 낸 쓰레기가 되어버린다, 쓰레기가...


"...미안, 민지야. 방금 전 말은 실수였어."


"아... 아냐. 괜찮아. 그런 반응은 익숙하니까 뭐..."

"그, 그럼 이만 가볼게! 방해해서 미ㅇ..."


"..."


괜스레 어색해진 분위기 때문에 난처해지기도 한 두 번이어야지.

이 정도면 문제의 원인이 다른게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아아아악!!! 모르겠어!!!"


"앗, 까... 깜짝이야...!!"


"미안...!!! 미안!!!!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뭐가 사실이고 뭐가 거짓인지 모르겠다고!! 그렇다고 해답이 있는 것도 아니야!!"

"그냥 짜증나!!! 아무런 이유도 없이 열받고 화가 난다고!!! 모르겠어!!!!!"


"지원아..."


"...젠장!"


이젠 나도 내가 뭔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 자신의 행동에 대한 결과는 있는데 원인을 모르니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마치 수학시간의 따분한 방정식을 푸는 것 마냥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대체... 대체 왜 이러는걸까 나는...'

'무엇을 바라고 있길래 이토록 스스로도 갈피를 잡지 못하는걸까...?'


차이점이 있다면 방정식은 답이 존재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는 점.

그리고 일말의 단서도 남아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저기, 지원아... 괜찮아?"


"미안해 민지야... 방금 나 굉장히 이상해보였지? 나도 알아. 안다고."

"그래서 미치겠는거야. 이상한게 한 둘이 아닌데 누구도 설명해주질 않아... 누구도 내 말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는다고."

"...나도 내가 뭐하는건가 싶다. 어차피 이런 이야기 해봤자 너는 이해할 수도 없을텐데."


"어쨰서 그렇게 생각해...?"


"응?"


"어, 어째서 내가 이해할 수 없으리라 생각하냐구."


민지가 담담한 어조의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비록 잠깐이지만 그녀에게서 왠지 모를 기백이 느껴졌달까.


"물론... 내가 널 완벽하게 이해할 순 없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럼에도 시도는 해볼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게... 조금 많이 어려운 문제야."

"미안하지만 민지야. 나 때문에 너가 골머리를 썩힐 필요는 없ㅇ..."


"가,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프진 않아...?"

"괜스레 숨도 막 막히고... 여러모로 힘들거야, 아마도..."


"...뭐?"


"스트레스란 본래 그런 법이니까...? 그, 그리고 지원이 넌 기억... 상실증에 걸렸잖아."

"아마 모두가 아는 사실을 나만 모른다는 것이 조금 억울하면서도 슬플것 같아... 거기다가 알려주는 사람도 없고."

"그래서 모든게 의심이 되겠지... 모두가 나를 속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고, 하지만 물증은 없고... 더욱 답답해지고..."


나는 두 귀를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가 한 말은 나의 내면을 정확하게 꿰뜷어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참 힘들었을 것 같아."

"무, 물론 어디까지나 내 망상일 뿐 이니까...! 너무 신경쓰진 않아도 돼!!"


"어떻게... 안거야?"


"응? 어떻게 알았냐니...? 설마 맞춘건가?"

"다행이다...! 그냥 한 번 예상해본건데, 맞을줄은 몰랐어!"


"너... 정체가 뭐야?"


"에?"


"어째서... 어째서 그토록 잘 알고 있는건데?"

"아니, 그 전에 왜 날 도와주려는거야? 무슨 꿍꿍이라도 있는거지?"


"뭐, 뭐어? 그럴리가...! 아니야!"

"뭔가 오해를 한 것 같은데, 난 그저...!"


"가, 가까이 다가오지 마...!"


나는 본능적인 공포심에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어째서 내가 이런 행동을 하는지, 무슨 맥락에서 공포를 느낀 것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지만.

굳이 증거와 근거를 찾자면 나의 기억이, 나의 가장 순수한 기억이 명령하고 있었다.


민지로부터 떨어져라.

라고 말이다.


"지, 지원아..."


"내 질문에 먼저 대답해!"

"진짜 미안하지만... 추태인건 알지만! 그럼에도 난 알아야겠어. 대체 왜 날 도와주려는거야?"

"대체 나의 어떤 점 때문에 나를...! 널 밀어내고 모질게 대한 나를 도와주려는건데...?"


"그야 그건..."

"솔직하게 답해도 돼...?"


민지가 조용히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임으로 응수했다.

그러자 잠시 뒤, 민지가 천천히 입을 열어 말했다.


"...별건 아니구. 그냥... 도움이 되고 싶었어."


"도움?"


"응... 말 그대로 도움."

"그, 왜... 너도 그때 나를 도와줬었잖아."


아마 민지와 처음으로 통성명을 했던 때.

그녀를 괴롭히던 아이들로 부터 구해준 일을 말하는 듯 했다.


"혼자였던 나에게 다시금 다가와줘서..."

"...아니, 아무튼간에 내게 먼저 다가와서 도움의 손길을 건냈었잖아."


"..."


"그래서...! 나도 너를 도와주고 싶었어... 단지 그뿐이었어."

"명확한 해결책은 못 되더라고 최소한... 도움이 되고 싶었어."

"왜냐하면 너는 내 유일한 치... 치....."


"...친구?"


민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잔뜩 상기된 얼굴로 보아 차마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웠나보다.


친구.


민지의 행동에 다른 이유는 없었다. 단지 친구라서, 단지 도움이 되고 싶어서.

하지만 나는 그런 그녀의 행동을 색안경이라도 낀 것 마냥 불순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아."


자괴감이 들기 시작했다. 이전부터 종종 느껴왔지만 의심이 도를 넘어섰다고 해야하나.

편집증 환자마냥 모든 것을 의심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스스로가 한심하기 그지 없었다.


"...미안해 민지야."


"어, 어어...? 왜애...?"


"내가 너를 너무 심하게 대한 것 같아서..."

"넌 나를 나름대로 신경써준건데 내가 너무 민감하게 대답했지...?"


"아아, 아니야...! 나는 뭐... 괜찮아! 괜찮고 말고"

"오히려 나라도 이해가 될 것 같아...! 따지고보면 친구가 된지 하루밖에 안 지났으니까..."


날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애써 괜찮다고 말해주는 민지.

그러나 그런 그녀를 보는 내 마음은 여전히 편치 못했다.


"미안해... 미안해 민지야."

"잠시 머리가 어떻게 되기라도 했나봐. 나는..."


순간이지만 나 자신이 너무나도 두려워 견딜 수가 없었다.

누적된 공포의 탓일까, 어느새 내 눈가에는 눈물이 고여있었다.


"어라...? 지원아? 너 지금 혹시..."


"뭐? 그, 그러게 정말이네? 이게 왜 이러지...?"


"...잠깐만 실례해도 될까?"


그 말을 끝으로 민지는 조용히 내 미리 위로 손을 뻗었다.

잠시뒤 보슬보슬한 손바닥의 감촉이 쓰다듬듯 지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하였지만 신기하게도 점차 가슴이 안정되는 기분이었다.


"읏, 자... 잠깐! 뭐하는거야...!"

"내가 어린 애도 아니고 머리를 왜 쓰다듬어..."


"그래도 꽤 괜찮아지지 않았어?"


"확실... 히 그렇긴 한데..."

"그, 그래도 부끄럽잖아! 이런 행동..."


"푸하핫, 완전히 돌아왔네."


"돌아왔다고?"


"봐봐! 앙칼지게 성내는 것도 그렇고 딱 예전 모습이잖아."


민지가 말한 것 처럼 획실히 머리가 맑아진 기분이었다.

특유의 우중충하고 흐린 감각은 여전했지만 그럼에도 장족의 발전이었다.


"대체 어떻게..."


"응? 어떻게라니?"


"어떻게 한거야? 뭔가 굉장히 마음이 편해진 기분이라서..."


"아, 방금 그거? 별거 아니야."

"그냥... 옛날에 내가 힘들었을 때 누군가가 위로해준 방식이거든."


과거를 추억하는 민지의 눈빛은 슬픔에 젖어있는것 처럼 보였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퍽 안타까우면서도, 조금은 다른 인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1분 남았네. 빨리 안 가면 소영이가 화낼걸?"

"그럼 나 먼저 가볼게. 너도 늦지 않게 준비하고 빨리 ㅇ..."


"저, 저기..."


"응?"


나는 왠지 모르지만 급하게 떠나려고 하는 민지를 붙잡으며 말했다.

비록 알지 못하는 것이 많고 혼란스러운 머리도 다 정리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마워, 민지야."

"덕분에 한결 나아진 것 같아."


"..."

"너한테 그 말을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왜, 왜...? 내가 이런 말 하면 안돼?"


"아니, 안되는건 아닌데..."

"그... 조금 의외라서."


"난 아까 너한테 무지막지한 민폐를 끼쳤는데..."

"그럼에도 민지 넌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이해해줬잖아."

"그래서 말인데 정말 고맙..."


"자, 잠깐...! 거기까지... 거기까지만!"


"엣, 왜?? 이상한 의미 아닌데!"


"그, 뭐랄까... 하여튼 이유가 있어!"

"지원아 우린 친구지만 그..."


그 순간.

야속한 종소리와 함께 시끌벅적했던 복도의 소음도 차츰 잦아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저 멀리 어디선가 나를 찾는듯한 소영이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세, 세상에... 안되는데...!"

"미, 미안 지원아!! 나 먼저 가볼게!!"


"자, 잠깐...!"


민지는 어색한 미소와 함께 마치 달아나듯 교실을 나섰다.

잠시 뒤, 나는 다시금 교실에 혼자 남게 되었다.


"...지원! 윤지원!!"


"으, 으응? 소영이구나..."


"너 여기서 아직까지 뭐하고 있어? 수업 종 이미 친지가 언젠데!"

"설마 아직도 교실을 햇갈리는거야...? 그랬으면 미리 말을 하지!"


"그, 그건 아닌데..."


"아무튼 빨리 따라와! 선생님께서 너 빨리 대려오라고 하셨으니까!"


나는 소영이의 손에 이끌리다시피 짐을 챙기고 교실을 나섰으나.

어째서인지 도무지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어라? 너 지금 뭐하는거야?"


"..."


이상하다. 그저 몇 마디의 대화일 뿐인데.

그저 평범하기 그지없는, 친구 사이의 의미없는 대화일 뿐인데.

어째서 이렇게 가슴이 아프고 먹먹한 기분이 드는거지?


"....읍, 으읍."

"훌쩍, 흐으읍... 흑, 흑... 흐윽..."


"앵? 지, 지원이 너 지금 우... 우는거야?? 큰일났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람?? 내가 없는 사이에 뭔 일이 있었던거야 도대체??"


"훌쩍, 아... 아니야. 아무일도 아니야..."


문득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그저 따뜻한 말 한 마디를 원한것일지도 모른다고.

달리 거창한 위로나 동정 따위가 아닌, 내 말을 들어줄 존재가 필요했던걸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비록 나의 눈가에는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그것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분노의 눈물도 아니었다. 혼란의 눈물마저 아니었다.


단지 기쁨, 나의 이해자를 찾았다는 순수한 기쁨.

그 순간 나의 눈가에 맺힌 눈물은 기쁨의 눈물이었다.


***


그날 이후 적당히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나의 일상에는 소소한 변혁의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날 때 마다 골머리를 옥죄는 고통은 여전했지만 기분 나쁜 꿈은 더이상 꾸지 않기 시작했다.

걸음을 내딛을 때 마다 발목에 느껴지는 위화감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신경쓰지 않아도 될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대화를 할 때 마다 느껴지는 위화감은 굳건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나 더이상 불편하지는 않았다.


모든 것은 나의 일부, 나의 요소이므로 긍정하기로 한 것이다.

의심과 두려움. 무의식 속 잠재된 과거의 기억따위 더이상 신경쓰지 않으면 그만이다.


"다녀오겠습니다!"


"어어, 그래! 다녀오렴~"

"우리 지원이가 요즘 많이 밝아진것 같네. 좋은 신호려나?"


"지원이... 그때 분명히 우리가 했던 말 듣지 않았어요?"


"그, 그건 모르지... 그날 이후 도통 입을 열지 않으니 원..."

"엄마도 모르겠어. 솔직히 혼란스럽기도 하고... 그래도 기왕이면 좋은 쪽으로 믿고 싶구나."


"저도 그렇긴 한데... 흐음..."


의문과 의심으로 가득찼던 등굣길도 이젠 옛말이다.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나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타인들의 눈에는 이러한 나의 변화가 어떻게 받아들여 질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분명한 대책이고 동시에 새로운 삶의 기준점이기도 했다.


"야 윤지원."


"응? 소영이구나? 안녕!"


"너... 괜찮은거 맞아?"


"괜찮냐고? 응, 당연하지! 더할나위 없이 행복한데?"


"...그렇게 말하니까 더더욱 이상한걸."


소영이는 그런 나의 변화가 영 미덥잖은 듯 했지만 뭐.

세상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내가 생각해봤는데 소영아."

"어쩌면 과거가 그렇게 중요하진 않을지도 몰라."


"뭐, 뭐어? 그게 무슨... 갑자기 왜?"


"갑자기 왜... 냐니? 내가 뭐 이상한 말 했어?"


"아니 그건 아닌데 뭐랄까 그..."

"하아... 조금 의외라서. 다른 누구도 아니고 네가 그런 말을 하니..."


"아~ 저번에 기억 관련해서 한 말 때문에 그렇구나?"

"뭐, 신경쓰지 않기로 했어! 어차피 내가 살아가는건 과거가 아니라 지금이잖아?"


"하지만 지원아..."


"괜찮아! 너무 걱정해주지 않아도 돼."

"나는 나만의 삶이 있고... 이젠 어디로 가야할지도 알았으니까."


"그래도 지원아... 정말 모르겠어? 내가 널 부른 이유ㄹ..."


"맞다, 곧 수업이었지? 내 정신 좀 봐..."

"나 교과서만 챙기고 바로 갈게. 먼저 가고 있어!"


"자, 잠깐 지원아...!"

"칫... 그것 때문에 부른게 아닌데..."


방향성. 

그것이 이전까지의 나와 지금의 나를 구분하는 가장 큰 차이점이다.


이전까지의 나는 비유를 하자면 마치 망망대해속의 선장을 잃은 배와 같은 상태였다.

선장이 없으니 당연히 방향을 지시해주는 사람 또한 존재하지 않았고, 그렇기에 일억만리를 해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키를 잡아준 사람이 다름 아닌 민지였다.


"일어나지 않으면 쏘겠다."


"응, 에엣? 까... 깜짝이야...!"

"아... 지원이였구나? 아... 안녕... 헤헤..."


물론 처음 본 순간부터 그녀에게 묘한 끌림을 느끼긴 했다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깊이 몰입하고 속마음을 나눌 수 있을 상대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분명 민지와 나는 알고지낸 시간이 비교적 짧은 축에 속했지만 그럼에도 웬만한 절친들보다 죽이 잘 맞았다.

하물며 나를 낳고 키워오신 어머니, 그런 나와 함께 성장해온 누나, 나와 어렸을 적 부터 알고 지낸 소영이보다도 말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운명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을 정도의 사람.

내게 있어 민지는 그런 존재였다.


"그렇게 놀랄 것 까지야... 미안. 놀래킬 의도는 없었어."


"아, 아니야! 그냥 내가 조금 심약해서..."

"그나저나 소영이는...? 소영이는 안 온거야?"


"소영이는 아까 수업 늦겠다고 해서 먼저 갔어. 왜?"


"아... 별 의도는 없었어. 그냥 물어본거야."

"너랑 소영이는 평소에 바짝 붙어다니잖아. 그래서..."


"에이, 그냥 친구 사이인데 뭘."

"설마 그거 갖고 이상한 생각하거나 하는건 아니지?"


"뭐, 뭐어? 내가 그럴리가 없잖아??"

"그렇게 은근슬쩍 놀리지마! 정말... 짖굳기나 하고."


"푸핫, 난 뭐 농담도 못하나?"

"..."


민지는 조용하고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소영이와는 정반대의, 상극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아이였다.


그리고 왠지 모르겠다만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기류.

정확히는 민지가 소영이를 다소 의식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나 해야할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는 도통 말해주질 않아 알 방법이 없지만.

적어도 민지가 소영이를 마주하기 매우 꺼려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은 확실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민지를 만날 때엔 항상 소영이를 어딘가에 보내놓는 편이었다.

그 점이 소영이에게도, 그리고 민지에게도 나을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빨리 일어나."

"수업 시작하기까지 얼마 안 남았어."


"벌써? 내 정신좀 봐..."

"어, 어라...? 내 필통이 어디갔지...?"


"필통? 책상 아래에 있지 않아?"


"보통은 그런데... 이게 왜 없지...?"


민지와 친해지고 나서 알게된 사실들 중 하나는 바로 민지가 덜렁이라는 점이었다.

물건을 놓은 위치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건 물론이고 잃어버리는 일도 허다할 지경이니. 

친구 된 입장에서 신경을 쓰지 않을래야 도저히 안 쓸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어휴... 이럴 줄 알았다."


"사물함에 있는거 아니야?"

"그럼 너가 착상 아래를 찾아봐. 내가 사물함 찾아볼게."


"아아, 아니야! 내가 찾을게."


"그러다가 저번처럼 지각하면 또 어쩌려고 그래."


"그건 미안하지만... 아무튼 내가 찾을 수 있어!"


"너 저번에도 그렇게 말해놓고선 아무것도 못 찾았잖아."

"됐으니까 맡겨봐. 내가 이런건 또 기가 막히게 잘 찾거든."


"자, 잠깐만...!!"


다급한 민지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열어 젖힌 사물함이었지만.

곧이어 드러난 참상에 나는 경악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이게 다 뭐야?"


사물함 안에는 민지의 필통이 놓여져 있었다.

썩어버린 우유팩을 비롯한 각종 오물들과 함께 말이다.

재빨리 문을 닫았지만 때는 이미 늦어버린 뒤였다.


"봤구나...?"


"미, 민지야... 이건 대체?"


"너무 당황할 필요는 없어. 종종 이러니까."

"너도 알잖아. 내가 학교에서 어떤 처지인지..."


민지는 그렇게 자조하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설마 그때의 그 아이들이... 나는 분노에 떨지 않을 수 없었다.


"종종 이런다니... 그럼 예전에도 이런 일을 겪었다는거잖아?"

"설마 이것땜에 아까 나를 말렸던거야? 선생님께 말씀은 드려봤어?"


"말씀... 드릴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말씀 드려봤자 아무도 신경 안쓸건데 뭐."


"그래도 이건... 이건 너무 심하잖아!"


"조언은 고맙지만... 아니야."

"필통도 찾았겠다, 우리 이제 그만 수업가자. 늦겠다."


"아니,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거야?"

"괜찮을리가 없잖아! 친구가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데!"


"난 괜찮다니까. 너무 그렇게 신경쓰지 않아도 돼."

"...그리고 이미 익숙해 졌으니까 괜찮아. 이만 가자."


"신경 쓰고 자시고...!"


"...지원아."


내 이름을 나지막히 부르며, 민지는 나의 어깨를 두드렸다.

마치 이 이상 간섭하지 말라는 것 처럼. 일종의 경고처럼 말이다.

적어도 나의 개입을 원치 않는 것 자체는 확실해보였다.


"너, 기억상실증이라고 했지?"


"그렇지? 그런데 지금 그게 왜..."


"너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난 과거 큰 잘못을 저질렀어."

"그래서 친구들에게 밉보이고 이렇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거야."


"민지야..."


"솔직히 힘들때도 있었어. 슬프기도 했고. 하지만..."

"하지만 내가 저지른 일에 비하면 이건 새발의 피나 마찬가지일테니까."

"그러니까 응... 난 괜찮아 지원아. 너무 걱정해주지 않아도 돼."


애써 웃어보이는 민지였지만 나는 결코 웃을 수 없었다.

그녀가 느꼈을 고통과 애환이 어색하게나마 지은 미소로부터 여실없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문득 공명하듯 떨려오는 가슴이 나로 하여금 마냥 지나처선 안된다며 이끄는 듯한 기분이라고 해야하나.


도대체 왜 이러는걸까.

다른 모든 사람들, 나를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가족들, 하물며 유일하게 나를 신경써주던 소영이에게도 거부감을 느껴놓고선.

어째서 유독 민지에게만. 민지 앞에만 서면 이토록 나약한 망설임을 하게 되는걸까.


"저기, 지원아. 넌 그... 괜찮아?"


"음? 갑자기 왜? 괜찮냐니?"


"아, 아니 그러니까... 너도 내 처지를 알잖아."
"나와 계속 같이 다니면 너한테도 불이익이 갈 수도 있어... 저번처럼 말이야."

"그러니 나를 이렇게까지 챙겨주지 않아도 ㄷ..."


"저번이라면 그 일진 애들?"

"에이, 뭐 그런 괜한 걱정을 하고 있어! 괜찮아! 나도 내 몸 정도는 스스로 지킬 줄 안다고."


"그, 그렇지만 지원아! 내가 이런 말을 너한테 하는 이유는..."


기분탓일까.

내가 바라본 민지의 눈빛은 그 어느 때 보다 어두웠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니까? 그 애들이 다시 한 번 너를 괴롭히면 내가 혼쭐을 내줄게!"

"혼쭐을 내주진 못하더라도 뭐랄까... 최소한의 도움은 될 수 있을거잖아. 안 그래?"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긴 한데... 하아..."


"야!!! 오민지!!!!"


그때, 문득 나의 귀청을 때리는 목소리.


호랑이도 제말하면 나타난다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때 민지를 괴롭혔던 아이들이 돌아오고 있었다.


"부르면 재때 재때 오란 말이야, 어엉?"

"내가 말했지? 네 편은 아무도 없을거라고!"


"아얏...! 아, 아파앗...!"


민지의 머리를 끌어 안은 채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불량학생들의 무리.

그러한 와중에도 민지는 나를 향해 도망치라는, 무언의 눈치를 간절하게 보내고 있었다.

고통받는 그녀를 보고있자니 나는 더 이상 망설일 수 없었다.


"너희들, 그만해!!"


"아앙~? 지금 누가... 아! 너구나? 그때 주제넘게 깝쳤다는."


무리들의 리더로 보이는 그녀는 나를 바라보곤 씨익하고 웃으며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순간 무거운 중압감이 나의 어깨를 짓눌렀지만, 그렇다고 저번처럼 물러나고 싶지는 않았다. 


"윤지원... 맞지? 나도 다 기억하고 있거든."

"그. 래. 서~ 뭐야? 영웅놀음이라도 하고 싶은거야? 백마탄 왕자님 납셨네!"


"왕자님이고 뭐고... 이런 짓은 올바르지 않아!"


"....쿠욱, 풉! 하하하하!!! 야, 방금 이 새끼 말하는거 들었어?"

"이뤈 쥐슨 올붸르쥐에눼~ 하하하하!! 진짜 씹선비가 따로 없네...!"


바보가 아닌 이상 알 수 있었다.

저 미소는 단순히 웃기다는 이유만으로 나오는 반응이 아니라는 것을.

그럼에도 나는 저번처럼 물러날 수 없었다.


"너희들... 이런 짓을 하는 이유가 뭐야?"

"도대체 민지가 무엇을 잘못해서 이렇게 못살게 구는건데!"


"뭐? 못살게 굴어? 우리가?"

"하하하... 이 새끼 기억상실이라는게 쌩구라는 아닌가보네."


한창 미소를 지으며 웃던 그녀의 입꼬리가 갑자기 정색하듯 굳어지더니.

곧이어 강력한 충격이 내 가슴팍에 작렬함과 동시에 나는 벽으로 쓰러지듯 밀려나고 말았다.


"크윽...!"


"야. 내가 제일 싫어하는 유형의 인간이 뭔지 알아?"

"개좆도 모르면서 나대는 새끼들. 다른 말로 위선자들 이 새끼야..."

"윤지원 너. 민지가 무슨 잘못을 했느냐고 물었지 아까?"


"그, 그만해!! 지원이는 아무 잘못이 없잖아!!"

"차라리 날 괴롭혀!! 그 아이는 결백하다고...!!"


"닥쳐! 아구창 털어버리기 전에!!"


나의 멱살을 쥔 그녀의 손에 더더욱 힘이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민지는 마치 죽은 사람처럼 창백한 피부로 제자리에 굳어 가만히 떨고 있을 뿐이었다.


"하... 그래, 어디까지 이야기 했더라? 뭐, 민지가 어떤 잘못을 했느냐! 왜 괴롭히느냐!"

"나야말로 물어보자. 너는 왜 그러는데? 오민지 저 년이 뭐가 좋다고 그렇게 감싸주는건데?"

"내가 말했지? 뇌 세탁했으면 조용히 짜져 있으라고. 내 말이 말같지도 않았나봐?"


"쿨럭, 감싸주는데... 이유 따위가 왜 필요해...!"


"하아? 이거 완전 영화 주인공이나 할법한 말을 하네?"

"그래 뭐, 너가 쟤 남자친구라도 돼? 응? 대답해봐~ 해보라고 새끼야!"


나는 조용히 민지를 바라보았다.

민지 또한 두려움에 질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단 한 가지였다.


"...그래!"


"...뭐?"


"내가 오민지 남자친구라고...!! 귀 먹었냐!!"


"????"


그녀의 눈빛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마치 어? 이 대답을 바란게 아닌데? 하는 듯한 표정이랄까.

이 틈을 놓치지 않은 나는 곧바로 몸을 뒤틀어 그녀의 손아귀로부터 빠져나왔고...


"야!!!!!!"


그 순간, 한없이 익숙한 목소리가 뒷문 쪽으로부터 들려오기 시작했다.


"...치잇. 귀찮은 년이잖아."


"소, 소영아..."


"너 그 손 당장 안 풀어? 지금 기억도 제대로 안 돌아온 아이를...!!"


어느덧 성큼성큼 걸어온 소영이는 단번에 나를 리더로부터 낚아챈 뒤 노려보기 시작했다.

머뭇거리던 그녀는 이내 소영이의 기백에 눌렸는지 혀를 몇번 차고는 말없이 문을 열고 떠났다.

동시에 교실 안에 머물던 긴장감도 차츰 사라져 어느덧 평소처럼 돌아와 있었다.


"쿨럭, 쿨럭.... 고, 고마워 소영아."


"...교과서만 먼저 찾고 온다면서. 이게 교과서야?"


"그, 그건 그러니까... 금방 찾고 가려고 했는데..."


"듣기 싫어! 너 잠시 나 좀 따라와."

"그리고 너...!!"


소영이는 잔뜩 화난 표정으로 민지를 지목하더니 말했다.


"앞으로 두 번 다시 내 눈에 띄지마... 알았어?!"


"..."


이에 민지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더러워진 필통을 들고 나가버렸다.

나는 그런 소영이의 행동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 뭐하는거야...! 민지를 왜.."


"...너. 나한테 무슨 할 말 있지 않아?"


"뭐? 나, 나한테 말하는거야...?"


"너가 아니면 누구겠어! 똑바로 말해!"

"저 년이랑 함께 있었던 이유가 뭐야? 그리고 내가 아까 들은 말은 또 뭔데?!"


"아까 전에 들은 말이라면..."


"너가 그랬잖아! 오민지 남자친구라며 네가!!"

"그거... 그거 진심으로 한 소리야?? 너 민지랑 그런 사이였어??"


"아니, 그... 그러니까 그게...!"


"눈 굴리지 말고 똑바로 말해!!!!"


멱살을 잡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저 웃고 넘어갈 수는 없는 분위기였다.

도대체 그녀가 화를 내는 이유가 무엇인지 나로써는 전혀 감이 잡히는 바가 없었지만...


"소영아...! 갑자기 왜 이러는건데!"


적어도 내가 판단하기로는, 지금 상황에서 최선의 수는 그녀를 진정시키는 것이었다.


"뭐...? 어째서 그렇게 말하는건데?"

"그럼 그게 진짜라는 소리야...?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일단 진정 좀 해봐 소영아! 아직 말 안 끝났어...!"


"너 제정신이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필이면 오민지랑...!!"


"잠깐... 소ㅇ, 소영아!! 잠시만 진정해보라니깐!!"


하지만 결과는 역효과.

소영이는 여전히 내 말을 듣지 않았고, 나는 여전히 그녀의 질문 공세에 시달리며 고통받을 따름이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녀가 이런 반응을 하는것인지... 답답함이 점차 나의 가슴을 옥죄기 시작했다.


"대체 왜 그러는데!! 뭐가 문제라서 그래?!"


"뭐가 문제냐고...? 뭐가 문제냐고오?!?"

"야 윤지원... 너 장난해?? 내가 함부로 막 다니지 말라고 했지!! 그런데 왜...!!"


"너야말로 지금 장난하는거야 뭐야??"

"내가 뭐 잘못한게 있어? 내가 민지랑 사귄다고 말한게 뭐! 그게 뭐가 잘못된건데!"


"윤지원 이 바보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 말이라도 말지...!!"


"큭,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 알려주기라도 해야할거 아니야!!"

"친구라는 사람이 대체 뭘 그렇게 꽁꽁 숨기는건데!! 너야말로 그러는 이유가 뭐야!!"

"대체 뭔데 내 인생에 이래라 저래라 간섭질이냐고...!!!"


결국. 기어코 임계점에 도달하고 말았다.

실수를 꺠달았을 때는 이미 늦어버린 시점이었다.


"...뭐? 방금 나한테 뭐라고 했어?"


"그, 그러니까 방금은 하..."

"소영아. 방금은 내가 실언을 했..."


"나한테 뭐...? 네 인생에 왜 간섭질이냐고...?"

"너가 뭔데 나한테 그렇게 말해...?? 나는 뭐 좋아서 이러는 줄 알아??"


"뭐, 뭐라고...?"


"나는 뭐... 근처에서 좋아한다고 달라붙는 사람 없는 줄 알아??"

"나도 인기 꽤 많아...!! 사귀자고 하면 당장이라고 승낙할 사람들이 천지에 널렸다고!!"

"그런데도 너가 친구니까... 네가 힘들어하니까 도와주는건데, 나한테 그런식으로 말을 해??"


"생뚱맞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갑자기 좋아하느니 뭐니하는 소리가 왜 나오는데!!"


"나도!!!! 너 따위 신경 끄라면 끌 수 있어!!!"

"너같은거 무시해버리면 그만이고...! 기억 잃으면 잃은대로 바보같이 살게 놔두면 그만이라고!!"

"그런데도 나는....! 꼴에도 너가 친구라고 잘 대해주려고 한건데...!"


"뭐?! 무시...?? 야. 한소영... 부탁인데 말 가려서 해...!"

"그리고 아까부터 무슨 맥락인지 모르겠는데...!! 내가 묻고 싶은건 민지에게 왜 그렇게 대하냐! 그 한 마디였어!"

"그거 하나 대답하는게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왜! 이렇게 나를 막... 할 말 못할 말 다 하면서 괴롭히는데?"


"괴롭혀...? 이게 지금 괴롭히는 걸로 보여...??"


"그럼 괴롭히는거지!! 아니라고 생각해?"


"윤지원 너....!!"


소영이의 눈시울이 점차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나를 빤히 노려보는 그녀의 눈빛은 단순히 분노에 가득 찼다고 정의하기엔 다소 복잡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물러나기엔 이미 선을 한참이나 넘은 뒤였다.


"너... 너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아무 것도 모르면서...! 너 때문에 온갖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한 나한테 어떻게...!!"


"크읏, 그러면 좀 설명을 해주던가!!"

"매번 아는 척! 만 하면서 정작 알려주진 않고... 누구 놀리는거야 뭐야!!"


"넌 아무 것도 모르니까!! 알려준다고 한들 이해할 수 없을게 분명하니까!!"


"너가 뭔데 그걸 판단해!!! 내가 이해할 수 있는지 없는지, 너가 뭐라고!!!"


"..."

"네 친구 이 병신아...!!!!!"


"친구?? 헛소리 하지마!!! 친구에게 거짓말이나 하냐 너는???"

"그리고 매번 친구 친구 하는데...! 솔직히 난 아직도 너가 어색하거든??"


"...!!"


"매번 부랄친구니 뭐니 하면서 쫒아올 땐 언제고, 뒷구석은 음험하기 짝이 없잖아!"

"왜? 화났어? 너만 화났냐? 나도 화났거든!! 나는 뭐 화낼 줄 모르나? 네 감정만 감정이야??"


"...적당히 해."


"뭘, 뭘 적당히 하는데! 응? 너야말로 적당히 해!!"

"아는게 있으면 공유하라고! 그게 친구인거잖아!! 넌 왜 계속 입을 다물 뿐인데?"


"그만하라고...!!"


"싫어!! 그만하길 원하면 내 질문에 대답을 먼저 해!!"

"왜 민지에게 그렇게 함부로 대하는거야? 너가 그 아이에 대해서 뭘 안다고!" 


"윤지원!!!!"


"아직 말 안 끝났거든 한소영!!!!"

"민지는 적어도...! 적어도 너보다는 나한테 친절해. 알아? 적어도 너처럼 질문을 의도적으로 회피하거나 하지는 않는다고!!"

"하...! 어차피 이렇게 말해봤자 넌 여전히 그대로겠지! 여전히 그 잘난 입을 열지 않을게 분명하고...! 마치 우리 엄마처럼!!!"


"...."


"그거 알아? 나 이제 더 이상 널 못 믿겠어!"

"차라리 너보단 민지가 더 내 부랄친구 같..."


찰싹!


뜨거운 아픔이 오른쪽 뺨에 느껴짐과 동시에.

나를 붙잡아주던 이성의 끈도 결국엔 끊어지고 말았다.


"때렸어...? 때린거야 지금...?"


"흐윽... 훌쩍, 나쁜 새끼...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같으니라고..!!!"

"너 오민지가 누군지 몰라서 그래...? 진짜로 몰라서 그러는거냐구...!!"


"그래 모른다, 어쩔래!!!!!!"


"우웃...!"


나는 곧바로 소영이에게 달려들어 그녀를 세게 밀어버렸다.

그러나 방금 전의 기백과는 달리, 나의 손에 닿은 그녀의 몸은 너무나도 가벼웠다.

잠시 뒤, 커다란 굉음과 함께 소영이는 도미노마냥 제자리에 힘없이 쓰러져 무너지고 말았다.


"....흑. 흐윽... 훌쩍, 흐윽..."

"아파... 아프잖아..."


"하아... 하아.... 하아...."


내가 무슨 짓을 한거지?

바닥에 널브러진 그녀의 모습을 보고 나서야 나는 내가 무슨 짓을 한건지 비로소 체감할 수 있었다.

곧이어 끔찍하리만큼 커다란 자괴감과 수치심이 나의 온 몸을 사정없이 찔러대기 시작했다.


"그... 그러게 진작에 말해줬으면 이럴 필요까지는 없었잖아!!"

"친구라며...!! 나는 널 믿었는데...!! 너만은 끝까지 믿고 싶었는데...!!"


"..."


"그런데 너는 왜... 왜 나한테 솔직할 수 없었던건데...!!"

"민지랑 사귄다고 한거? 뻥이었어!! 상황을 벗어나려고... 그저 민지를 구하기 위해서 한 거짓말이었다고!!"

"이제 좀 궁금증이 풀렸어?? 응?? 이렇게 간단한 문제인데... 왜 그렇게 빙빙 돌려서 말하길 택한거야 너는...!!"


"..."


물론, 그것은 진지한 분노라기 보다는 스스로의 치부를 덮기에 급급한 비겁자의 면피성 발언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소영이는 그런 나의 추한 모습을 그저 묵묵히, 쥐죽은 듯 고요히 경청하고 있었다.


"그냥....! 그냥 설명 한 번 해주는게 그렇게 어려웠던거야...?"


"..."


그리고 그런 그녀의 침묵이.

나는 미치도록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크윽, 젠장...!!!!"


결국, 나는 또 다시 도망칠 수 밖에 없었다.

교실 문을 넘어 복도로, 복도를 넘어 교문으로, 교문을 넘어 세상으로.


미친듯이 내달렸다. 죽을듯이 발을 굴렀다.


안되는데. 

곧 수업 종이 치는데.

모두가 날 기다리고 있을터인데.

선생님도 날 무척 걱정하실건데.


그런데 왜일까.

정작 중요한건 그게 아닌 듯한 느낌이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거지? 소영이와의 대화? 민지와의 관계? 

미리 알리지 않은게 실수였던걸까? 그게 아니라면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은 나의 탓?


어째서 매번 이렇게 일을 그르치는거지?

어머니도, 누나도, 소영이도, 이번에는 민지마저도. 세삼 모든게 문제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게 아니라면 정말로 나 자신이 문제인걸까? 내가 그녀들의 역린인걸까?


어째서? 나는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그저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한 행복을 누리며 평범한 친구들과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고 싶었는데.

그래서 스스로의 의견도 묵살한 채 헌재에, 현실에 안주하기를 택한 것인데.


그럼에도 어느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룬게 없다면.


그건 내가 평범하지 않다는 증거인걸까?


미칠것만 같은 기분이다. 

머리가 너무나도 아프다. 깨질듯이 고통스럽다.

출구가 없는 미궁 속에 갇힌 느낌이다. 


어두컴컴한 암흑 속에서 홀로 길을 찾는게.

모두가 길을 알고 있지만 정작 스스로는 알지 못하는게.

오직 나만이 정답을 알지 못하는게.


오직 나만이 이 세상에서 격리된 듯한 기분.


"하아...! 하아...! 하아...!"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집 앞이었다.

단번에 문을 열고 들어가니 내부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행선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본능이 이끄는대로 몸을 맡길 뿐.

거실을 지나쳐 계단을 오르고, 길게 펼쳐진 복도를 지나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그곳.


손님방이었다.


***


중간고사 쌈@뽕하게 조지고 다시 연재합니다

비록 학점은 조졌지만 그래도 지원이 사가는 끝마처야 하니까...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