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야가 흐릿하다. 언제부턴가 펜을 잡고 굴리는 것조차 벅차다.

애써 서류를 보아도 왜인지 글자가 기어 다닌다.

이거 큰일인데. 계속 이렇게 늦장을 부리면 유우카에게 혼나버리는데.

 

“선.생.님~?”

 

아, 이런……

힘겹게 입꼬리를 올린다.

업무 때마다 유우카의 잔소리는 무섭다.

내가 여러모로 부족해서겠지만 유우카의 질책 담긴 말은 여전히 주눅 들게 된다.

 

“아, 유우카….”

 

“선생님. 제가 분류작업을 하는 동안 이런 간단한 서류작업도 하지 않으셨네요?”

 

역시 무섭다.

등 뒤에 흐르는 식은땀이 두 배로 늘었다.

 

“그게 말이지 유우카… 요즘 너무 피곤해서 일이 손에 잘 안 잡히네.”

 

“…확실히 많이 피곤해 보이시네요.”

 

자꾸 눈두덩이를 매만지는 선생을 빤히 바라보고는 유우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죠. 급한 일은 제가 끝내놓을 테니 휴게실에서 한숨 쉬고 계세요.”

 

“그래도……”

 

“괜찮으니까! 어서 가서 푹 쉬세요. 내일 조금 더 노력해주세요!”

 

유우카는 미적거리는 선생을 일으켜 휴게실 쪽으로 밀었다.

어쩔 수 없이 밀려나면서 선생은 약간은 힘주어 하하- 웃었다.

이러나저러나 날 위하는 학생이다. 잔소리도 모두 걱정돼서 하는 말이겠지.

 

“응, 고마워. 그럼 부탁할게.”

 

“네! 저에게 맡겨주세요.”

 

믿음직한 유우카의 목소리를 들으며 선생은 휴게실에서 쪽잠을 청했다.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유우카가 덮어준 것으로 추정되는 담요를 밀어내며 일어났다.

주변은 어두컴컴했다.

시계를 확인하자 시각은 새벽 5시.

여전한 몸 상태에 눈가를 찌푸리면서 불을 켰다.

 

“큰일인 걸 이대로면 유우카에게 또 혼나는데 말이지…”

 

어떻게든 정신을 깨우기 위해 커피를 마신다.

나아진 건 없지만 버틸 순 있다.

 

“……아로나가 조금 도와주면 괜찮을 텐데…”

 

…싯딤의 상자가 더는 작동되지 않을 때 이전만 하더라도 피곤하더라도 아로나의 도움으로 어떻게든 업무를 헤쳐나갔지만 이마저도 작동이 멈춘 후엔 불가능했다.

……아마 내가 부족했기 때문에. 그럴 리 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서 떠났다고.

 

“후-”

 

한숨으로 모든 잡념을 털어버린다.

지금은 당장 급한 업무를 생각한다.

이 급한 업무를 털어내면 미루고 미뤄낸 ‘여행’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이번엔 진짜 한계가 찾아온 것 같으니.

 

의자에 털썩 앉았다.

펜을 잡고 서류와 씨름한다.

적어도 당번인 유우카가 덜 고생하도록 업무를 줄여주는 것이 선생으로서 도리겠지

 


 

#1 프롤로그

 

“그거 걱정이네요. 선생님이 많이 피곤해 보이신다니.”

 

“그렇다니까? 얼마나 걱정을 시키는지…”

 

노아의 물음에 유우카는 이래저래 걱정만 시킨다고 하소연했다.

노아는 싱긋 웃었다.

 

“그래서였군요. 유우카의 표정이 시름에 잠겨있었던 이유가.”

 

“그렇다니까. 정말이지-!”

 

“그렇다면 빨리 선생님을 도우러 가야겠네요. 분명 당번인 유우카에게 미안해서 업무를 처리하고 있으실 테니까요.”

 

“그치만 세미나의 업무가…”

 

“제가 처리할게요. 저도 선생님이 피곤하신 건 신경 쓰이니까요.”

 

노아는 뭉쳐진 서류 더미를 정리하며 말했다.

 

“어서요. 분명 선생님이 신경 쓰여서 세미나 일은 손에 잡히지도 않을 거잖아요?”

 

“…고마워. 이 빚은 나중에 꼭 갚을게!”

 

유우카는 미안한 표정으로 감사를 표하고 세미나 밖을 달려나갔다.

그 모습을 노아는 흐뭇한 표정으로 보다가 유우카가 시선 밖으로 나가자 의자에 앉아 업무를 시작했다.

 

“그런 표정으로 있으면 보내주지 않을 수 없잖아요. 유우카.”

 

노아는 유우카의 안절부절못하는 귀여운 표정을 상상하며 살포시 웃음 지었다.

 

 

유우카는 빠르게 샬레 동아리실 문 앞까지 왔다.

본래는 세미나 일을 끝내고 올 계획이라 조금 늦은 시각에 도착할 예정이었지만 노아의 배려 덕에 예정보다 일찍 도착하게 되었다.

 

“빨리 와서 선생님이 놀라시려나?”

 

약간 흐트러진 머리와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헛기침을 두 번 한 뒤 샬레의 문을 두드렸다.

 

“선생님?”

 

대답이 없다. 다시 한번 선생님을 부르며 문을 아까보다 조금 세게 두드렸다.

 

“선생님?”

 

조금 기다려보았지만, 여전히 대답이 없다.

…설마 아직도 주무신다고?

그렇게 피곤하셨던 걸까.

측은한 마음에 나중에 올까 했지만, 지금이라도 업무를 하지 않으면 또 야근하게 된다.

선생님의 생체리듬을 위해서라도 지금 깨어나 업무를 해야 한다.

 

“선생님 들어갈게요…?”

 

끝내 유우카는 결심하고 샬레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그러자 업무실 책상에서 엎드린 채 끙끙거리는 선생님이 보였다.

 

“선생님…!”

 

상상치도 못한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유우카는 빠르게 선생님 곁으로 달려갔다.

대답이 없으시길래 분명 휴게실에서 푹 쉬고 계시는 줄만 알았는데 그 반대였다.

 

식은 땀에 축축해진 머리와 옷. 약간 창백한 얼굴.

 

‘완전 과로로 인한 몸살이잖아!’

 

뻔했다. 또 중간에 일어나 업무를 수행하셨겠지.

그러니까 푹 쉬라고 말했었는데!

 

한 손으로는 게헨나의 응급의학부에 전화를 걸었다.

한 손으로는 선생님의 이마에 손을 댔다.

 

부디 크게 아프지 않기를 바라며……

 

“아, 뜨거워…?”

 

유우카는 자기도 모르게 손을 떼었다.

너무 뜨거웠다. 키보토스의 사람이 아닌 선생님이 버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서, 선생님.”

 

덜덜 떨리는 손으로 선생님의 어깨를 붙잡았다.

축축한 옷 너머로 매우 뜨거운 열이 느껴졌다.

그런…… 대체 어째서…

 

“응급의학부입니다. 시체… 아니, 부상자 발생입니까?”

 

“이런 건 예상에 없었는데… 선생님… 제발…”

 

유우카는 순간 패닉에 빠져 털썩 주저앉았다.

유우카로선 도저히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선생님……? 하야세 유우카씨입니까? ……유우카씨!”

 

“아? 아…… 여기… 빨리. 샬레의 선생님이… 너무 뜨거워서…”

 

전화 너머에 목소리에 겨우 이성을 되찾은 유우카는 선생을 구하기 위해 더듬더듬 구조를 요청했다.

생각은 망가진 상태로 매끄럽게 돌아가지 못했지만 유우카는 어떻게든 이성을 붙잡았다.

 

“샬레로 가면 되겠습니까?”

 

“샬레의 집무실…… 선생님이 과로로… 쓰러지셔서.”

 

“네, 출동하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전화에서 구급차 소리가 들려온다.

유우카는 어떻게든 상황설명을 이어나가고자 했지만 이성에 한계에 부딪혀 더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몸이… 너무… 뜨거워서… 어떻게 해야……”

간절하게 그 말만 더듬더듬 울먹이며 반복했다.

계속해서. 구급대원들과 히무로 세나가 선생을 데려갈 때까지.




일단 쓰다 말긴 했는데

첫 시작이 이렇게 선생이 쓰러지는 것에서 시작함.

쓰러지는 이유는 어른의 카드 남용으로 인한 부작용. 일종의 빚이 쌓여서 쓰러졌다~라고 일단은 생각했음

싯딤의 상자가 작동하지 않았던 것도 이 부작용에 간접적으로 원인을 끼침


카드를 남용한 이유는 2가지가 있는데 학생들이 선생을 신뢰하지 않아서(지휘를 제대로 듣지 않는 등) 

두번째는 선생이 작중에 나오는 선생처럼 처음부터 능력 짱짱한 먼치킨이 아니라는 것

신뢰하지 않은 이유도 존재하긴 하는데 완벽하게 정해두진 않았음


선생이 쓰러진 이유가 어른의 카드 남용이라는 게 밝혀질 예정이고 어떻게 밝힐지는 정해지진 않았지만.

아무튼 내가 지휘에 따르지 않아서 내가 ○○해서 카드를 사용한 선생이 이렇게 되었다 형식으로 몇몇 캐릭터의 후회를 한번 생각해봄. 다른 캐릭터는 피폐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는데 최대한 후회스럽게 버무리면 어떻게 되긴 하겠지. 원래는 던져놓고 일단 만우절이니까 생각만 해봐야겠다 였는데. 글 쓰는 거 넘 어려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