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계몽주의는 미신, 비합리성, 불분명성을 배격하고 이성의 힘으로 비합리성을 쫓아내려 했다.

특히 중세부터 이어진 기독교 문화의 보수성과 사회적인 금제들을 제거하고자 했다.

이러한 사조는 20세기 모더니즘까지 이어졌다.


다만, 양차 세계대전에서는 합리적인 방법으로 유태인과 소수인종을 학살하도록 계몽주의와 모더니즘이 활용되는 일이 벌어졌고, 그 후에는 이에 반대되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사상이 등장하여 합리성을 부정하게 되었다.

(거칠게 요약함)


포스트모더니즘은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를 만들었다. 기존의 합리주의적 기반에서 만들어진, 역으로 불합리한 규범들을 해체하고, 소수자 문제에 관심을 갖고, 여러 학문들을 통합하는 성과를 냈지만, (왜곡된)현대 페미니즘이라는 괴물을 낳았다.


2024년 대한민국은 계몽주의 이전의 비합리성과, 포스트모더니즘의 병폐로 태어난 (왜곡된)페미니즘의 콜라보가 지배하는 나라다.


기성세대는 농경사회 시절의 보수적인 가치로 가상물 포르노를 금지하고, 페미니스트들을 위시한 젊은 층에서는 실제로 피해자가 없음에도 가상물 포르노를 성 대상화, 성 상품화라는 핑계로 금지하고자 한다.


그 중 최고는 아청법에서 가상물에 대한 처벌이라 할 수 있다. 그 어떤 아동도 가상물 내의 성 행위를 통해 피해를 당하지 않음에도, 창작자, 심지어는 소지자까지도 처벌할 수 있다.


근거는 없다. 누구도 피해자가 없는 행위이지만 그저 내가 보기에 기분이 나쁘기 때문이다. 소위 기분상해죄가 실제로 적용되는 사례다.


이미 기분상해죄는 하나의 종교 교리가 되어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다.

저걸 금지해라. 왜냐하면 기분나쁘잖아. 이것도 금지해라. 이것도 보기 싫잖아.


극단적으로 적기는 했으나, 현재 한국의 가상물 포르노 금지에 대한 논리는 이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런 수준의 사고체계를 가진 현대인에게 필요한 것은 계몽주의다.

금지하라고? 왜? 누가 피해를 입는데? 기분나쁘다는 것이 금지의 근거가 되나?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매우 중요시하던 것이 바로 사상, 창작과 출판의 자유였다. 헌데 21세기 한국은 여기서 퇴행하여 그저 본인 보기 싫은 것들을 금지하고자 한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비슷하다. 일단 나 보기 싫은거는 금지해야 마땅하니까.


현대 한국인에게는 계몽주의의 빠따질이 필요하다. 기존의 미신들을 부숴버린 계몽주의처럼, 근거 없는 검열에 대해서 모두가 불합리하다고 느낄 필요가 있다. 

언젠가 나아지기를 바라지만, 젊은 층에서도 내로남불로 지 보기 싫은건 금지해야 한다 하는걸 보면 참 개탄스럽기 그지 없다.


계몽주의 철학자 볼테르의 유명한 어구를 적고 글을 마무리하겠다.

"읽고 춤추도록 내버려 두라. 이 두 가지 즐거움은 결코 세상에 해악을 미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