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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링크

사실 괴벨스가 처음부터 유대인을 증오했던 건 아니다. 괴벨스의 집안은 반유대주의와는 거리가 멀었을 뿐만 아니라 유대인과의 왕래도 많았다. 심지어 청년이 되었을 때도 그는 유대인 혐오에 반대했다.


< "난 유대인을 싫어하는 게 이해되지 않아. 그들도 똑같은 인간인데 왜 멸시받아야 하는 거지? 내가 가장 존경하는 교수도 유대인이야.

그와 학구적인 토론을 할 때마다 유대인들의 능력은 아주 뛰어나다는 걸 인정하게 돼. 좋은 사람이라고.

정치에 관심있는 주변 사람들은 유대인을 독일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건 인간의 도리가 아니잖아?" - 괴벨스가 친구에게 쓴 편지 중  >

심지어 괴벨스는 나치당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는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이라는 극우정당 따위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을 넘어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나치당은 그런 괴벨스의 마음을 조금씩 현혹시켰다.

나치당은 그동안 괴벨스가 누리지 못한 것, 가지지 못한 것을 보여줬다. 그가 어린 시절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며 갈망하던 "소속감"과 자신은 장애 때문에 가지 못했던 "군대" 그리고 썩은 유대계 자본들에 대한 "분노".

나치당은 괴벨스에게 "소속감"과 돌격대라는 "군대" 그리고 반유대주의라는 "분노"를 선물했다. 너무나 달콤한 선물을 받은 괴벨스는 그것에 중독되었다. 그러나 진정한 선물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그의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인물, 아돌프 히틀러가 진실된 선물이었다.

괴벨스는 1924년 처음 나치당과 히틀러에 관심을 보였다. 그때는 히틀러가 맥주홀 폭동을 일으키고 감옥에 수감되었을 때였다.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맥주홀 폭동의 실패는 오히려 히틀러를 전국적인 애국 극우 인사로 만들어줬다. 괴벨스가 어린 시절부터 찾던 영웅. 독일, 괴벨스를 구원할 신화 속 "영웅"이 나타난 것이다.

악마가 악마를 만났다. 이보다 정확한 설명은 없으리라. 히틀러는 괴벨스의 인생을 완전히 바꿨다. 많은 대중매체에서 히틀러를 충동적이며 화를 잘 내는 모습으로 묘사하지만, 그는 상냥하게 말을 했으며 전문가들을 존중했다.

대학을 졸업해 박사 학위까지 가졌고, 마을 주민들의 '박사님' 소리를 들으며 기뻐하던, 하지만 동시에 작은 체구와 장애 때문에 조롱받던 괴벨스는 자신에게 따뜻하고 상냥하게 대해주며 존중해주는 히틀러에게 감동했다.

괴벨스는 히틀러를 만나고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다. 한때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소년은 철저한 반종교주의자가 되어 나치의 신자, 히틀러의 사도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역사에 무수히 많은 발자취를 남기기 시작했다.

괴벨스는 나치당의 베를린관구장이 되었다. 이것은 나치당의 운명을 맡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베를린을 포함한 프러시아 지역은 사민당과 공산당이 강세를 보이던 지역으로, 우리나라로 비유하자면 극우정당이 광주에서 활동한다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베를린은 독일의 수도이자 심장이었고, 히틀러와 나치당은 반드시 베를린을 차지해야 했다.

베를린으로 이동한 괴벨스는 공격(Angriff)이라는 신문을 발행하고 유대인을 향한 중상모략을 시작했다. 괴벨스는 베를린 부경찰청장이던 베른하르트 베이스처럼 유대인처럼 생긴 인물들을 공격했다. 최근의 조선족 몰이로 이해하면 쉬울 것이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했지만, 외모를 이유로 인신공격을 하는 걸 보호하진 않았기에 괴벨스는 수많은 이들에게 고소를 당했다. 물론 성과도 있었다. 유대인에 대한 인신공격과 공산당원에 대한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며 나치당은 베를린에서 조금씩 지지를 얻었다.

괴벨스 본인이 러시아 사회주의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물론, 나치당도 좌파적인 정책을 주장했기에 공산당원들 중 나치당으로 넘어가는 사례도 많았다. 많은 이들이 나치당의 돌격대를 앞세운 과격한 행동에 매료되어 나치당에 가입했다.

그러던 중 괴벨스의 행동에 날개를 달아주는 사건이 생겼다. 1928년, 그가 국회의원이 된 것이었다. 물론 당시 나치당의 지지율은 다른 정당들에 비하면 형편없었지만 어쨌든 괴벨스는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괴벨스에게 면책특권이 생겼다는 걸 의미했다.

이제 괴벨스는 귀찮은 법적 문제에서 자유로워졌고, 그의 화려한 어그로로 고발을 당해도 벌금형에서 끝나게 되었다. 심지어 그는 벌금조차 할부로 지불했다. 벌금의 할부 허용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장치라는 걸 생각하면 괴벨스는 이런 제도의 헛점을 잘 이용하는 인간이었다.

그는 이런 제도를 '민주주의의 무능함'이라 말하며 비웃곤 했다. 민주주의의 무능함이라고 하기엔 완벽한 제도는 없다는 것이 더 정확한 말이겠지만 말이다.



------ 다음 편에서 이어짐.

괴벨스가 역사에 여러 의미로 큰 흔적을 남긴 인물이라 생각보다 글이 길어지네... 부디 잘 읽어줬으면 좋겠음.
이 글은 나치 옹호를 주장하는 게 아니니 오해하는 일 없길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