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매제도(專賣制度)란 도대체 무엇인가?


쉽게 말해 특정 상품을 국가가 독점적으로 공급하고 판매한다는 것


시장 경제에 익숙한 현대인에게는 꽤나 생소한 개념이지만, 전근대 사회에서는 이만한 세금 수입원이 또 없었다


술, 인삼, 철 등등 일상적으로 중요한 물품에 세금을 붙여 짭짤한 이익을 올릴 수 있었기 때문


그러나 그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다름아닌 소금이었다.



전통 중국 사회는 제한된 일부 해안 지역의 염전에서 천일염(天日鹽) 형태로 소금을 생산했다. 


간혹 바위에서 암염을 캐내거나 소금기를 품은 지하수에서 소금을 얻기도 했지만, 이는 교통이 원활하지 않은 일부 지역에서만 통용된 방식일뿐


국가에서 표준으로 삼은 소금은 기본적으로 천일염이었다고 보면 편하다


때문에 이를 어떻게 내륙으로 운송하고 균등하게 분배할 것인지 여부가 굉장히 중요했다.


당장 소금의 생산과 유통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한나라 시절의 염철론(鹽鐵論)에서부터 나오며


수당 시절을 거치며 대대로 국가에서 소금 전매 제도를 실시해 주된 세금 수입원으로 아주 쏠쏠하게 써먹었고


무협의 주 배경이 되는 명나라 시대에는 무려 세 번이나 법을 바꿔가면서 그 통제력을 강화하고자 했다.



명나라에서 최초로 실시한 소금 관련 법률은, 건국 시조인 홍무제가 직접 실시한 '개중법'이었다.


개중법의 내용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1. 돈 많은 상인들이 북쪽 변방의 오랑캐를 막는 군진에 군량미를 조정 대신 조달해준다

2. 그 대가로 '염운사사'라 불리는 관청에서 염인(鹽引)이라 불리우는 소금 판매 자격증을 발부한다

3. 염인을 받은 상인들은 거기 적힌 양만큼의 소금을 관청으로부터 받아 전국 각지로 유통하고 판매한다

4. 소금을 팔고 남은 수익 중 일부를 세금, 즉 염세(鹽稅)로서 관청에 납부한다. 


이렇게 세금까지 납부하고 나면 드디어 일련의 소금 거래가 완전히 끝나는 것


아무리 전매제도가 국가 독식을 목적으로 하는 체제라고 하지만, 전통 사회에서 황실이 국가 전체의 유통을 하나하나 관리할 수도 없는 노릇


당연히 과거부터 덩치를 키워온 거상(巨商)들과 적절히 사정을 봐주면서 협력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주로 소금 거래에 뛰어들었던 게 섬서와 산서 지역의 거상들이었다. 


이들은 과거부터 대운하를 중심으로 유통망을 형성하고 전국 각지에 다양한 물품을 보급하면서 상당한 자본과 노하우를 축적해 왔고, 때문에 명나라 조정 입장에서는 섬서&산서 상인만한 소금 거래 파트너가 없었다.


조정은 이들이 기존에 구축한 유통망에 숟가락을 얹을 수 있고, 산서&섬서 상인들은 소금 독점권이라는 막대한 이권을 누릴 수 있었으니 그야말로 Win-Win이었던 것.


그러나 의외로 산서&섬서 염상(鹽商)들의 전성기는 오래 가지 못했으니


명나라의 소금 관련 법률이 한차례 개정을 거치면서 새로운 라이벌이 떡하니 등장한 것이다.


 


건국 초기, 중농주의를 지향하던 명나라 조정은 '이갑제(里甲制)'와 지폐 발행 등 여러 조치를 단행하면서 상업의 지나친 발전을 억누르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게다가 명나라는 이전의 국가들에 비해 유난히 은(Silver)의 유통량이 많은 편이었다.


자연히 상업 발달, 폭발적인 인구 증가 등과 맞물려 은본위제가 전국적으로 정착하기 시작했고


명나라 조정도 이러한 추세에 맞춰 법률들을 여럿 손보면서 홍무제가 반포한 개중법의 내용까지 시대에 맞게 수정했는데, 이게 바로 홍치제 시절 나타난 '운사납은제'라는 법률이었다.


운사납은제도 기본 베이스는 개중법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굉장히 치명적인 차이점이 하나 있었으니


소금 매매 과정에 따라붙는 세금을 은으로 납부할 수 있는 상인에게만 염인을 준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이는 신종 화폐인 은 확보를 게을리 했던 섬서&산서 상인들에게는 굉장히 큰 타격으로 다가왔지만


반대로 은의 가치를 일찌감치 눈치채고 차근차근 축적하며 기회를 엿보던 '휘주 상인'들에게는 도약의 날개를 달아주게 된다.


운사납은제의 도입으로 인해 휘주 상인들이 자연스럽게 산서&섬서 상인들을 밀어내고 소금 전매 사업을 야금야금 독식하기 시작했고


만력제 시기, '강운법'이라는 소금법 최종 테크가 탄생하면서 휘주 상인들은 청나라 때까지 거의 유일무이한 소금 거상으로 명성을 떨치게 된다.



사실 만력제가 누구인지에 대한 설명은 크게 필요 없을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임진왜란 때문에 굉장히 익숙한 이름일 테니까.


중요한 건 이 '강운법'이라는 게 도대체 뭐하는 법률이며, 그 탄생 배경은 또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


사실 강운법도 운사납은제와 본질적으로 다른 법률은 아니다. 


다만 기존의 운사납은제에 한 가지 조건을 새로 추가했으니


앞으로는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상인이 아니라, 오직 '강(綱)'이라 불리는 상인 길드에게만 소금 유통을 허락한다는 조치가 바로 강운법의 핵심이었다.


근데 이 '강'이라는 상인 길드는 말이 좋아 상인 길드지, 실제로는 그냥 휘주 상인들의 좆목단체나 다를 바 없었다. 


아까 운사납은제를 설명할 때 강운법의 제정 덕분에 휘주 상인들이 대박을 쳤다고 설명하지 않았던가? 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럼 도대체 왜 이런 강운법을 만들었는가?


간단하다. 만력제 시기로 들어가면서 민간의 소금 밀매가 너무 성행했기 때문.



오늘날도 마찬가지이지만, 독점 상품은 대개 값이 엄청 비싸면서 퀄리티는 오히려 안 좋다는 치명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무릇 경쟁이 없는 고인물은 썩기 마련. 현대 시장도 이런 식인데, 무려 명나라 시절의 소금 시장은 얼마나 썩었겠는가?


백성들은 비싸기만 하고 퀄리티는 형편 없는 소금을 구매하고 싶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소금을 밀매하는 밀매상들과 연결되어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는 소금을 몰래몰래 소비했다.


명나라 조정은 어떻게든 이런 소금 밀매를 단속하고 처벌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지만 소용이 없었고


나중 가서는 국가에서 소금 밀매 단속하라고 보낸 관리들이 소금 밀매에 동참해 이익을 챙기는 환장할 사태까지 벌어진다.


특히 무협에서 주로 규화보전을 익히고 황실의 스파이 노릇을 하는 걸로 나오는 '환관'들이 소금 밀매에 자주 동참했는데


외방으로 나갈 일이 있을 때 마쾌선/좌선/홍선 등 환관 전용 선박에 몰래몰래 밀수 소금을 실어 갖다 파는 것이었다. 


이러다 보니 국가에서 생산한 소금이 팔리지 않고 쌓이기만 하는 문제가 발생했고


자본력이 탄탄하지 않거나 기반이 부족한 군소 상인들이 무턱대고 소금 유통에 뛰어들었다가 매입한 소금을 되팔지 못해 파산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그래서 차라리 자본력도 막강하고 기반도 확실한 휘주 상인들의 길드, '강'에게 독점적 유통을 허락하고 세금을 안정적으로 뜯자는 목적으로 강운법이 등장한 것.


강운법 이후로 명나라의 소금 관련 법률은 멸망하기 전까지 변화하지 않았고


강운법으로 국가 공인 소금 상인으로서 독점적인 지위를 구축한 휘주 상인들은, 이후 청나라 시기에도 계속 소금 유통을 이어가면서 입지를 다지게 된다.




긴 내용을 읽어줘서 고맙다.


만약 다음 번에 또 비슷한 걸 쓰게 된다면, 그때는 중간 상인 역할인 아행(牙行)과 소금 밀매상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