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용사물이라 하면 JRPG이고, JRPG와 용사물의 시초라고 하면 그 근본 중의 근본으로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를 꼽게 된다.
( 파이널판타지는 턴제 JRPG이긴한데 시리즈 전체가 흔히 생각하는 용사물은 아님 )

그럼 용사물의 클리셰들은 전부 다 드래곤 퀘스트에서만 나왔을까?
여기서 자주 쓰인다고 하는 클리셰와 그 실제에 대하여 검증해보도록 하자
물론 전설의 검 하면 아서왕 전설의 엑스칼리버고 하는 진짜 유래는 있을테지만 그건 이 게시글에선 배제하고 순수 근래 창작물에서의 유래만 따져보기로 함

1. 꽂혀있는 전설의 검 (선택받은 용사가 아니면 뽑히지 않음)


용사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장면들 중 하나로 보통 위의 이미지처럼 어디 동굴이나 숲에 꽂혀있거나 혹은 광장에 꽂혀있어서 용사를 선발하거나 하는 이미지가 있다. 그런데 사실 근본이 되는 드래곤 퀘스트에선 이런 식으로 전설의 검을 얻은 적이 없다.



용사물 클리셰로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드퀘의 고전 3부작 중 최고의 완성작이자 사실상 용사 전설의 시작점으로 알려져있는 드래곤 퀘스트 III의 주인공인 전설의 용사 로토는 마왕에 의해 파괴된 용사의 검을 스스로 다시 재료를 구해 제조하여 뚝딱뚝딱 만들어낸다. 여기서 나오는 용사의 검의 이름은 왕자의 검 (王者の剣).

(드래곤퀘스트 II의 장면)

시열대 상으로 3편의 이후 시간대인 드래곤 퀘스트 I와 II에서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용사의 검은 어둠의 패자라고 불리우는 용왕의 손에 들어가 성에 감추어졌다. 1편과 2편의 용사는 이 용왕의 성을 탐색하여 용사의 검을 얻는다. 여기서 나오는 용사의 검의 이름은 로토의 검 (ロトの剣).


가장 최신작인 드래곤 퀘스트 XI S 에서도 III과 마찬가지로 사신 니즈젤파를 쓰러트리기 위하여 재료를 모아 전설의 대장간에서 용사의 검을 주조해낸다. 여기서 나오는 용사의 검의 이름은 말 그대로 용사의 검 (勇者のつるぎ).

여기까지 보면 알 수 있듯이 바위에 꽂혀있는 검, 선택받은 자만 뽑을 수 있는~ 등의 모습은 딱히 보이지 않는다. 3편의 용사 로토의 검을 그 후예인 1과 2의 주인공들이 손에 쥐었으니 선택받았다면 선택받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용사로 선택받은 것과 용사의 검을 뽑아 선택받는 것을 별개로 둠)

그럼 이 클리셰는 어디서 온 것이냐, 그건 바로 첫 이미지에서도 유추할 수 있었겠지만 1986년에 첫 시작을 뗀 드래곤 퀘스트와도 동시기에 나온 희대의 명작 타이틀이며 다들 잘 아는 그 게임, 젤다의 전설 시리즈이다.



마스터 소드가 처음으로 게임에서 등장한 것은 젤다의 전설 시리즈의 세번째 작품인 1991년작 신들의 트라이포스.
3개의 문장을 가진 용사만이 미로의 숲을 지나 진정한 전설의 검을 뽑아 마왕 가논돌프와 대적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마스터 소드는 다시금 잠에 들 것이다···
영원히!


이후 용사 링크는 가놀돌프를 쓰러트리고 모든 여정을 끝내며 마스터 소드를 다시금 본래의 자리에 돌려놓고, 이 검은 신들의 트라이포스2에서 다시금 후대의 용사 링크에게로 전승된다. 그야말로 클리셰 그 자체다


그리고 이 클리셰에 대한 변주인 광장에 꽂혀있어 그것으로 용사를 선별하는 (용사의 검이 왕국의 소유물인, 혹은 왕가에 대대로 전해내려오는...) 클리셰에 대해선 안타깝게도 그 유래를 찾을 수가 없었다. 적어도 용사물의 클리셰가 정립되는 도중 생겨난 경우가 아닐까 추측할 뿐




하지만 용사의 검이 숲이 아닌 동굴에 꽂혀있는 경우는 드래곤 퀘스트에서 찾을 수 있다. 드래곤 퀘스트 V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아버지가 훗날 전설의 용사를 찾아 건네주기 위하여 얻어둔 검을 집의 뒷편 지하동굴에 숨겨두었다. 그러나 5편의 주인공은 다소 특이한 케이스로 본인은 용사가 아니기 때문에 이 검을 사용할 순 없다.

2. 마왕에게 사로잡힌 공주 / 도움을 청하는 왕 / 공주와의 결혼 약속



대신 「 로라 공주님은 국왕 폐하님의 소중한 외동딸이라오.
         왕비님께서 돌아가신 뒤로는 로라 공주님만이 폐하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셨건만...
         그 공주님께서 마물에게 납치당한 지가 벌써 반년 째가 되어버리고 말았소.
         폐하께선 아무런 말씀도 없으시지만, 마음 속으론 얼마나 괴로워하고 계실 지...
         로토의 피를 이은 용사여, 부디 로라 공주님을 구해주시오! 」


마물들의 왕인 용왕에게 납치당한 라다톰의 공주인 로라 공주를 구해와달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도움을 청하는 화자는 왕이 아닌 그 옆을 보좌하는 대신이 그 역할이다. 마왕에게 납치당한 공주를 구해오는 용사 이야기는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 내에선 1986년에 나온 첫 작품인 드래곤 퀘스트 I가 유일하며, 그 외엔 이러한 플룻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히로인이 납치당하는 경우는 있긴 함)


이후 1편의 용사와 공주는 용왕을 무찌른 뒤 갇혀있던 공주를 구해내고, 평화가 찾아온 세계에서 함께 다른 나라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로라 공주가 용사를 사랑하고있다는 묘사가 분명히 게임 중 지속적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두 사람이 결혼했으리란 것을 어느정도 정황상 짐작할 수는 있으나, 일단 게임 중 둘이 결혼을 하였다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다.

즉 오오 용사여! 부디 공주를 구해와주게! 와 맥락을 같이하는 '결혼을 전제로 공주를 구해와주길 청하는 국왕' 이란 클리셰는 드래곤 퀘스트의 정식 시리즈 내에선 일단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 전후관계가 좀 뒤섞이다보니 생겨난 클리셰인 듯




고마워요 링크 당신은
하이랄의 영웅입니다.

이리하여 하이랄에 평화가 돌아왔다.
이것으로 이 이야기는 끝입니다.


그리고 똑같이 용사물의 근본, 젤다의 전설에서 역시 마찬가지로 1986년의 첫 작품 젤다의 전설에서부터 이 클리셰가 시작된다.
여기서 용사 링크는 어둠과 공포로 세계를 지배하려던 가논의 야망을 피해 자신의 하이랄 왕가가 지닌 트라이포스를 세상에 흩어뜨려 가논의 분노를 사 사로잡힌 하이랄의 공주 젤다를 구하기 위한 소년의 여정으로, 젤다 구출과 마왕 타도에 대한 사명을 삼게 된 것은 하이랄의 국왕을 통해서가 아닌 간신히 피신해온 젤다 공주의 유모, 임파를 통해서 전해받고 모험을 시작하게 된다.

즉 젤다의 전설에선 마찬가지로 마왕에게 사로잡힌 공주를 구한다는 클리셰 자체는 동일하나, 국왕에 의해 부탁받지 않는다. 운명이라면 운명일 수도 있겠으나 소년 링크가 가논을 쓰러트리고 젤다 공주를 구해내는 것은 용사의 사명같은 것이 아닌 순수한 정의감에서 비롯된 여정이었다고 묘사된다.




세라
여러분들께서· · ·
구해주신 것이지요· · · ?


그리고 1987년 작품 파이널 판타지에서도 코넬리아 왕국의 옛 최강의 기사였던 가랜드의 손에 납치당한 제1왕녀 세라 공주가 나온다. 그러나 여기서도 주인공인 빛의 전사가 가진 동기는 순수한 영웅심에 의한 것으로, 포지션상 히로인이긴 하였으나 빛의 전사는 세상의 평화를 위해 결혼같은 것은 하지 않고 헤어진다. 세라 공주는 함께 왕국에 남아주길 바래었으나 포기하며 그를 도와준 뒤 앞날의 축복을 빌어준다.



마찬가지로 공주가 마왕에게 납치되기로 또 유명한 게임이 바로 다들 잘 아는 마리오 시리즈인데... 이건 뭐 다 잘 알테니 설명 생략
국왕같은 거 없다


3. 마왕의 직속 사천왕

( 상단 좌측에서부터 순서대로 리치, 마릴리스, 크라켄, 티아마트 )

사천왕이라는 클리셰가 처음 나타난 것은 1987년 작품 파이널 판타지가 최초이다.
여기서의 사천왕은 마신 카오스의 분신격 존재들로, 각각 4대 원소의 힘으로 세상을 무너뜨리려하였으나 빛의 전사에 의해 저지된다. 그러나 이 카오스 사천왕들은 본질적으론 마신으로 거듭나기 위하여 뿌려둔 4등분의 분신이기 때문에 독자 객체로 보긴 조금 애매하며, 인게임 내에선 이들이 사천왕이라고 칭해지지도 않는다.

( 상단 좌측에서부터 순서대로 불의 루비간테, 바람의 발바리시아, 물의 카이나초, 땅의 스컬밀리오네 )

공식적으로 처음 사천왕이라는 칭호가 JRPG 장르에서 처음 게임에서 언급된건 파이널 판타지 IV골베자 사천왕.
비공정 함대인 붉은 날개의 대장인 흑기사 골베자에게 충성하며 차례차례 주인공 일행을 압박해오는 역할을 보인다.

이들 역시 초대 1편의 넷과 마찬가지로 4대 속성을 기반으로 둔 컨셉으로 순서대로 나타나 주인공 파티를 습격해오는 사천왕이라는 클리셰는 여기서 왔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한 변주인 최후엔 한꺼번에 상대하는 기믹도 여기서 유래됐다.

하지만 이 역시 '마왕'의 사천왕은 아니다. 그럼 마왕의 사천왕은 어디서 왔는가?


( 상단 좌측에서부터 기가데몬, 안드레알, 헬 배틀러, 에빌프리스트 )

마왕 사천왕의 처음은 드래곤 퀘스트 IV에서 등장한 마족의 왕, 피사로의 휘하에 있는 데스피사로 사천왕이다.

이들은 피사로의 뜻에 따라 그의 심복으로서 앞장서서 활동하는 아주 정석적인 사천왕들이다. 참고로 여기서도 이 사천왕들을 공략하는 과정은 순서대로 쓰러트려가는 것으로, 이 점에서 사천왕은 차례차례 조우하는 것이 국룰임을 알 수 있다.

3-1. "놈은 사천왕 중에서도 최약체에 불과하지..."



바론 왕
무엇보다도, 녀석은 사천왕이
된 것이 수수께끼일 정도로
약해빠진 녀석이었으니 말이야-


게임 상에서 처음으로 이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된 것은 파이널 판타지 IV.
위에서 언급된 골베자 사천왕 중에서 바론 왕의 모습으로 위장 중에 있던 같은 사천왕 중에서 한 명인 물의 카이나초가 먼저 주인공 일행에 의해 격파된 바람의 발바리시아를 지칭하며 이러한 대사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거랑 별개로 대사 자체는 개그만화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의 단편 에피소드인 '소드마스터 야마토'에서 나왔다



4. 용사 파티


떡인지에서건 어디서건 JRPG 용사물의 작품에서 흔히 보이는 조합이 있다. 용사 | 전사 | 승려 | 마법사
이 조합의 근본은 드래곤 퀘스트 III에 있다. 드래곤 퀘스트 III에서는 아직까지 스토리상 용사의 동료가 될 네임드 캐릭터가 뚜렷히 존재하지 않았는데, 때문에 루이다의 주점이란 장소를 통하여 랜덤한 NPC 동료를 모집/조합하여 동료로 꾸릴 수가 있다.


그리고 이 때, 루이다의 주점에서 모집할 수 있는 동료의 디폴트 조합 설정이 바로 용사|전사|승려|마법사 (리메이크판 기준, 원판은 용사|전사|무투가|승려) 인 것이다. 3편을 이후로는 모험에 함께하는 용사의 동료들이 네임드 캐릭터로 고정되어 함께하지만, 드래곤 퀘스트 V등 루이다의 상점 시스템은 틈틈히 이어져서 내려오고 있다.

5. 비키니 아머



드래곤 퀘스트 III의 전사(女).
설명 생략



6. 최종보스 → 진 최종보스 → 히든보스





하하하하하핫!
기쁨의 순간에 조금
놀래키고 만 것 같구나.
내 이름은 조마. 어둠의 세계를 지배하는 자······.

내가 있는 한 언젠가 이 세상도 어둠에 갇히게 될 것이다.
자, 괴로워하고 번민하도록 하여라, 너희들의 괴로움이야말로 이 나의 즐거움······.
살아있는 자 모두를 내 제물로 삼아 절망으로 세계를 뒤덮어주마.

내 이름은 조마. 모든 것을 멸하는 자.
너희들이 내 제물이 되는 날을 기대하도록 하지······.
으하하하하하하하하.....!


최종보스의 이후 진정한 최종보스가 있는 전개가 처음 나타난 것은 드래곤 퀘스트 III.
마왕 바라모스를 쓰러트린 전설의 용사가 동료들과 함께 평화의 기쁨으로 들어찬 왕국에 귀환하며 엔딩에 다다르려는 순간, 화면이 암전되며 천지가 뒤흔들림과 함께 왕국의 병사들을 언령만으로 몰살하며 지저세계로부터 암약하고 있던 대마왕 조마가 사념파를 보내며 지상세계와 용사를 향해 선전포고를 해오며 짧은 평화의 종식을 선포한다.

기존에 용사가 쓰러트렸었던 마왕 바라모스는 대마왕 조마가 그저 지상세계로 보낸 일개 마물 하나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며 기존의 마왕으로 알려졌던 바라모스와 대등한 힘을 지닌 지하세계의 마물들이 지상을 침공해올 것을 알리는 이 순간은 JRPG 역사에서도 손에 꼽는 반전으로, 당시에 인터넷은 커녕 게임공략도 잡지 찾아서나 봐야했던 일본의 수많은 잼민이들을 지리게 만드는 어마어마한 영향을 주었다. 당연히 조마에 관련된 정보는 일체 없었다



*「 그그고고고고······.
    누구냐?
    이 몸의 잠을 방해하는 자는?
    나의 이름은 에스타크······.
    지금은 그것만이 기억에 있을 뿐······.
    과연 나 자신이
    선이었는가 악이었는가 그조차도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한 나를 깨운 것은 무슨 일이냐
    나를 멸하기 위해 찾아온 것인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허나, 나를 멸할 수는 없으리라.         」


JRPG에서 처음 등장한 히든 보스는 드래곤 퀘스트 V의 지옥의 제왕 에스타크.

금지된 진화의 비법에 손을 대어 불사의 괴물로 변해버린 존재로, 전작인 드래곤 퀘스트 IV에서 천공의 용사에 의해 격파된 에스타크가 먼 미래의 시간대인 후속작에서 다시금 부활하여 등장한 형식이다. 이 때도 마찬가지로 히든 보스라는 타이틀답게 에스타크와 만날 수 있는 던전인 수수께끼의 동굴의 존재와 진입 방법에 대하여선 아무런 정보도 없었다.


일단 당장 생각나는건 이 정도인데 또 궁금한 용삼물 클리셰 유래 있으면 질문받음. 아는 한도 내로 답해줌
나도 정리해보면서 여러모로 공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