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그렇게 말하며 칼에 묻은 피를 닦았다.

 

분명 중상을 입히긴 했으나 그는 그놈이 다시 회복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쯧, 하고 혀를 찬 후 다시 그는 산에서 내려왔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은 그 험하진 않았다, 하지만 산의 분위기가 너무나 험했다.

 

분명 보름달이 뜬 밤임에도 괴이하게 자란 나무는 달빛을 막았고, 풀벌레 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까마귀 소리조차도 사라지니 정말 말 그대로 사박거리는 그의 발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이 밤중에 누가 이리 조용히 산길을 내려가는가?”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에 그는 고개를 들었다, 평범한 노인의 행색을 한 그는 인자하게 웃고 있었다.

 

“닥쳐라.”

 

“허허, 왜 그리도 날이 서 있는가.”

 

“보통 이리 말하면 일반인은 미친놈 취급하며 제 갈 길을 가더군.”

 

“......한 수 배워두지.”

 

이내 노인의 입이 길게 찢어지며 엄청난 속도와 함께 사라진다.

 

한숨을 한번 내쉬고 그는 다시 산에 내려간다.

 

산 아래는 화려했다.

 

색색의 등과 웃음소리가 넘쳐났고, 사람들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물론, 경직된 웃음이지만 말이다.

 

남자는 길을 걸어 대장간으로 갔다.

 

“오셨습니까.”

 

“.....평소처럼 부탁하지.”

 

“네, 이미 준비 해 두었습니다.”

 

남자가 무기를 가지러 간 사이, 그는 다시 사냥 계획을 재고하기로 했다.

 

‘그곳을 오는 어린아이가 있으리라는 데까진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애가 그놈을 감싸리라는 것은 더 생각하지 못했다, 어떻게든 그놈의 본모습을 보여주어 도망가게 하긴 했으나, 아마도 다시 갈 것만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빨리 어르신에게 방비를 더 강화해달라고-’

 

그렇게 생각하던 그때,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가 돌아본 곳에는 한 노파가 있었는데, 인상이 서글서글한 것이 성격이 좋아 보였다.

 

“살 것 없소, 그걸 살 만한 돈도 없고.”

 

“그런 게 아니라 혹시,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습니까?”

 

“불량배와 같은 일이라면 관아로-”

 

“제 아들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허공을 바라보던 그의 눈이 노파에게로 갔다.

 

“제 아들은 나무꾼입니다, 항상 저에게 나무를 해주고 나머질 파는 그런 아이였죠.”

 

“그런데 어느 날 그 애가 참한 색시를.......”

 

“그만하시오, 지금 같이 가겠소, 채비는 다 끝났는가?”

 

“예, 지금 갑니다!”

 

창고에서 나온 대장장이가 무기들을 늘어놓는다, 채찍, 쇠뇌, 애기살, 도끼, 호랑이가 그려진 방패 등, 전부 꽤 위협적인 병기들이었다.

 

“상태는 좋군, 그럼 이만 가보겠네, 필요한 조치는....알겠지?”

 

“네, 이번에는 성공하시길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안내하시오.”

 

 

산길은 꽤 험했다, 사람이 살지 않을 것 같은 동네다.

 

‘그곳과는 딴판이군’

 

하고 생각하며 그는 노파가 하는 말을 들었다.

 

“처음에는 신이 점지해 준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착한 아이는 내 생에 처음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어느 날 색시가 사라지자, 아들은 발광하며 숲을 쏘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애도 갑자기 사라졌지요.”

 

“저는 그 애가 죽은 줄 알고 저도 천천히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그 애는 하늘에서 말을 타고 오더군요.”

 

“그 애는 마지막으로 보는 것이라 말하곤 가려는 걸 제가 주책으로 죽 한 그릇 먹이겠다고 가지고 온 죽에 말이 놀라서 아들이 떨어졌습니다….”

 

“그 이후론 계속 지붕에 앉아서.....”

 

“내가 하나 조언해두자면.”

 

“마는 고작 뜨거움 때문에 놀라지 않소, 그놈들이 놀라는 경우는 단 하나, 수라나 그에 준하는 것을 봤을 때요.”

 

“그렇다면....”

 

“혹여, 나무꾼이 여기에서 멀리멀리 떨어진 곳까지 나무를 가진 않았소?”

 

“가끔씩은 질 좋은 목재를 구해오긴 했는데......”

 

그는 얼굴을 찡그리며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놈이 활동할 때면 언제나 내가 그놈을 쫓았, 그놈이 내 시선이 있는 곳에서 사람을 홀렸을 리 없다.’

 

그런 식으로 기억을 더듬던 찰나, 그의 머리에 한 남자가 떠올랐다.

 

여느 날처럼 그놈을 놓쳤을 때 그 남자가 나타났다.

 

눈이 퀭하고 힘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그 사내가......

 

“꼬끼오!!!”

 

어디선가 들리는 우렁찬 소리가 지금이 아침인 것을 알리는 듯했지만, 주위에는 어둠뿐이다.

 

“여기서 기다리시오, 곧 관청의 포졸들이 당신을 도우러 올 것이요, 아마도 죽을 때까지는 편히 살 수 있겠지.”

 

“제 아들은-”

 

“잘 들으시오, 당신의 아들은 이제 없소, 그놈에게 현혹된 자들은 괴이가 되고, 당신이 아들이라 부르는 것도 이미 괴이지 인간이 아니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죽여야 하오, 시체까지 확실히 태워서.”

 

“안 됩니다, 분명 다른 방도가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전부 그 괴이에게 죽었다는 사실을 밝힐지 고민하던 차에, 포졸들이 도착했다.

 

“모시고 가거라, 무례는 어르신께서 용서치 않으실 것이다.”

 

“도대체 어느 어미가 아들이 죽는다는데 보고만 있습니까?!!”

 

끌려가면서도 절규하는 노파를 뒤로하고 그는 길을 계속 걸어 나갔다.

 

“꼬끼오~~꼬꼬꼭꼬!!!”

 

소리의 근원지에는 무언가가 지붕 위에 올라가 허공을 보고 마구 울부짖고 있었다.

 

“돌이키긴 글렀군.”

 

혼자 중얼거리곤 그는 통아에 애기살을 먹였다.

 

그를 보았는지 괴성을 지르며 지붕에서 내려 괴이에게 애기살을 쏘았고, 그대로 한쪽 눈을 관통했다.

 

그러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건지, 괴이는 그대로 돌진해 왔고, 그는 재빨리 굴러 피한 후 허리에 매두었던 멸병을 던졌다.

 

닭 형태의 괴이에게 명중한 멸병은 꽃처럼 아름다운 폭발을 일으키며 괴이를 삼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마구 돌진해 오는 괴이를 전력을 다해 피하며 틈을 보던 그였지만, 갑작스레 나타난 노파에 그의 정신이 흐트러졌고, 결국엔 빈틈을 허용했다.

 

괴이의 부리가 그의 심장을 향해 맹렬히 돌진하는 순간.

 

“아들아!!”

 

잠깐이지만 분명히 멈칫거렸다.

 

그러나 잠깐이다.

 

그 틈을 타 그는 등의 칼집에서 칼을 꺼내 괴이의 목에 칼을 박아넣었다.

 

“끼에에에엑!!!!!”

 

닭의 성대가 맞나 싶은 고음의 비명이 작렬하고, 그는 칼을 한번 털고 그 위에 멸병 안의 내

용물을 털어놓았다, 한층 더 거세진 불이 괴이를 잡아먹어, 이제는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다.

 

저 멀리서 헉헉대며 뛰어오는 포졸들이 보인다.

 

“분명 내가 극진히 모시라 하지 않았느냐.”

 

“죄송합니다, 갑자기 엄청난 힘으로 뛰쳐나가시길래......”

 

옆을 돌아보니, 노파는 이미 땅에 주저앉아 망연자실 해 있었다.

 

“....당신의 목소리에 반응했소.”

 

노파는 놀란 듯이 얼굴을 들었다, 좌절과 후회로 뒤섞인 얼굴에 작은 희망이 솟아올랐다.

 

“하지만 그뿐이요, 노망난 노인이 자신의 아들을 보고 일면식이 있다고 하는 것 정도지, 그 

이상이 될 수는 없소.”

 

노파는 그 말을 들은 듯 만 듯 고개를 떨구고 환히 빛나는 불만을 지켜보고 있다.

 

“자네 아들은 인간이였지, 괴이가 아니라네.”

 

그에게까지 선명히 들리는 노인의 목소리.

 

“빨리 이분을 모셔라!! 무슨 말이, 설사 내 말이 들릴지라도 절대 들으면 안된다!!!”

 

포졸들이 황급히 노파를 등에 둘러업고 빠르게 집에서 빠져나간다.

 

“너무 크게 말했나 보군?”

 

어디선가 웅웅거리는 소리와 함께 부드러운 노인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놈도 네놈의 소행이겠지?”

 

“뭘 그렇게 당연한 것을 물어보나? 네가 저놈이 미쳐서 지붕에 오르는 꼴을 봤어야 하는

데......”

 

“천마도 네놈 때문에 놀란 것이고?”

 

“천마들은 순 겁쟁이뿐이지, 그냥 수풀에서 얼굴만 드러냈을 뿐인데 경기를 일으키는 꼬라지

란......장관이였지.”

 

“쓸데없는 짓 하지 말게, 지금은 재밌는 구경거리덕에 기분이 좋으니까.”

 

그가 등 뒤의 멸병을 꺼내는 것을 본 것인지 그냥 던진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또다시 

혀를 내두르며 하던 짓을 멈추었다.

 

“그래서, 이름이 뭔지는 정말 알려주지 않을 건가?”

 

“네놈을 확실히 멸하고 말해주지.”

 

“아들아!!!”

 

어디선가 여자의 구슬픈 비명이 들린다.

 

“제발 구해다오!!아들아!!”

 

“.....”

 

하지만 아들이라고 불린 그는 아무런 말도 없이 피를 닦고 칼을 갈 뿐이였다.

 

“이거 불효자식일세, 어미가 저리 구해달라고 소리치는데도 구해주지 않겠다는 건가? 그렇게 

부르짖던 정의는 어디로 간 건가?”

 

그는 다시 한번 침묵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 횃불을 뿌리고, 멸병의 내용물을 횃불에 뿌리고 아직도 밝게 타

괴이의 몸에서 불을 옮겨붙였다.

 

“....용의주도한 놈.”

 

다시 한번 무시하며, 그는 다시 그의 길을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