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2년 서울.


그럭저럭 준수한 중견기업의 대리인 41세 장대현은, 최근 유행하는 커다란 헤드폰을 쓴 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한 손에는 귀여운 딸 서아가 부탁한 후라이드 반 양념 반 치킨을 들고 아파트 복도를 걷던 그는, 비밀번호를 누른 뒤 현관문을 벌컥 열었다.


"아빠 왔다!!!"


모처럼 야식도 사들고 왔으니 딸아이가 아빠 품으로 달려들길 기대하던 그는, 그 대신 검은 양복을 입은 이들에게 둘러쌓인 가족을 발견했다.


"장대현 씨?"


"뭐, 뭐야?! 당신들 누구야?"


"아,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저희는 선별부 소속 공무원들입니다. 전 시 담당 선별 2과의 강신우라고 합니다."


훤칠하게 생긴 젊은 남성이 허리를 숙이며 명함을 건넸다. 명함에는 '공무원 선별부 2과 강신우'라는 소개글이 대한민국 정부의 무궁화 문양과 함께 적혀있었다.


"장대현 씨는 오늘 정오에, 차기 서울특별시장으로 선별되셨습니다. 8개월 뒤 임기가 시작하시기 전까지, 내일부터 시청에 출근하셔서 업무 관련 교육을 받으시면 됩니다."


"네? 아니 왜 제가..."


"다방면의 고려와 인공지능의 분석과 함께 후보를 고르던 중, 장대현 씨가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대한민국 수정헌법 11조에 의거해 해당 선별은 거부할 수 없으며, 심각한 재임 불가 사유가 발생하지 않는 한 사퇴는 불가합니다."


"어..."


알고는 있었다. 현재 한국은 정치인 전부가 선별되어 재임하고, 그 의무는 거부할 수 없다. 하지만 많고 많은 한국인 중에서 하필 자신이? 왜?


장대현은 혼란에 빠졌지만 검은 양복을 입은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듯했다. 그들은 용무가 끝났으니 더 이상 그의 집에 머무를 이유는 없다며, 내일 시청에서 보길 기대한다고 말하고는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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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결국 장대현은 시청으로 갔다. 별 수 없었다. 선별된 탓에, 그의 본래 직장에서도 해고 아닌 해고 통보를 받게 되었으니, 가족을 먹여 살리려면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 했으니까. 세련된 디자인의 시청 건물 안으로 그가 들어서자, 어제 보았던 강신우라는 남자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숙였다.


"환영합니다, 장대현 시장 선별자님. 오늘은 제가 직접 선별자님을 안내해 드릴 예정입니다. 오늘은 가볍게 시청 건물 내부를 둘러보고, 시장으로서의 업무를 전반적으로 소개만 해드리는 선에서 마무리 될 겁니다. 아, 인사하시죠. 이분이 현 서울특별시장, 유선아 시장님입니다."


숨길 수 없는 피로가 얼굴에 드러나는 여인은, 겉보기에는 50대 후반으로 보일 정도로 주름이 져 있었다. 분명 듣기로 현 시장은 45살로 알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잠시 눈을 꿈뻑이더니, 장대현의 손을 양 손으로 맞잡고 눈물을 흘렸다.


"아...아...! 드디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 저한테 왜 이러세요?!"


갑작스레 외간 여자한테 신체 접촉을 당한 장대현은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시장님. 업무 시간 3분 전입니다."


옆의 비서가 그리 말하자, 그녀는 겁에 질린 듯 손을 놓더니 허리를 숙이고는 재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대체 뭐야...?"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자, 따라오시죠."


혼랍스러운 그녀의 행동을 생각해 볼 틈도 없이, 강신우는 그를 건물 내부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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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내부를 간단히 둘러본 뒤 시장의 업무를 간략하게 교육받은 장대현은, 그제야 유선아 시장의 기이한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주 70시간 근무. 긴급상황 발생시 즉시 대응 필수. 급여는 월 500만원...? 이게 무슨 말같지도 않은 조건입니까?"


"우려하시는 부분은, 대한민국 고위 공직자에게 전면 무료로 지급되는 급속 체력회복제가 매일 지급되니 문제 없습니다."


"아니, 헛소리 말고요! 일주일에 휴일도 없이, 매일 10시간씩 근무라니 장난해?! 그래놓고 돈은 고작 500만원? 미쳤어?"


"해당 근무 조건은 같은 급의 공직자 전원에게 균등하게 통일된 사안입니다."


장대현은 거칠게 서류를 책상에 내던졌다.


"통일이고 나발이고 난 이딴 조건에 근무 안 해! 아니 못 해! 때려쳐!"


"'선별'을 거부할 경우 임기 기간의 3배에 해당하는 기간동안 가석방 없는 징역형에 처해지게 됩니다. 그래도 괜찮으십니까?"


"그게 대체 뭔 개소리..."


"전부 법률에 따라 집행되는 일입니다. 또한, 출소 후 장대현 씨는 일반 시민들에게 주어지는 건강보험 등의 정부 관련 혜택에 관한 권리를 전부 상실하시게 됩니다. 그래도 괜찮으십니까?"


"...그게 뭐야. 뭐 그딴 법이 다 있어?!"


"...그딴 법이라. 흥미롭군요."


그 말과 함께, 강신우는 홀로그램 스크린을 띄웠다. 화면 안에는, 젊은 시절의 장대현 본인이 밝게 웃으며 서 있었다. 그에게 뉴스 기자가 마이크를 내밀었다.


'강택진 의원이 제시한, 선별된 공직자의 근무 시간을 줄이고 선별자를 늘리거나 공기관의 24시간 상시 개방 규정 폐지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말도 안 되죠.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게 공직자잖아요. 밤늦게 일하는 사람들은 동사무소 같은 곳에 언제 방문하라고요? 그리고 공직자를 더 고용하면 세금도 더 나가는데, 조금만 더 희생해줬으면 좋겠네요.'


"...저건 그냥 별 생각 없이 한 말입니다!"


"글쎄요. 나중에 반대하는 시위 행렬에도 참여하셨던데. 참고로 강택진 의원은 저희 아버지십니다. 저희 아버지는 제 15차 외곽 토벌작전의 장기화로 인해 과로로 사망하셨죠."


"그래서, 보복을 위해 날 선별한 겁니까? 공무원이 그래도 돼?! 이거 권력 남용 아냐?!"


강신우는, 비틀린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신뢰할 수 있는 정부가 모토인 대한민국 공무원이 어찌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있겠습니까. 맹세코 저와 저희 가족은 선별자 님의 선별 과정에 일말의 간섭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불필요한 사적 감정이 선별자 님께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오늘 이 시간까지만 동행을 허락받았고, 이후로는 선별자님과 마주칠 일이 결코 없을 겁니다."


"의도가 뭡니까 그러면."


"행운을 빌어드리러 온 겁니다."


"뭐라고요?"


"부디, 따님 분은 저나 외곽 토벌에 선별되어 전사한 저희 형처럼 되게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 말과 함께 허리를 숙인 그는 방을 나섰다. 그 직후, 조금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남성이 입장했다.


"반갑습니다, 시장 선별자님. 저는 선별자님의 재임 기간동안 보좌관을 맡게 될 백정우입니다."


장대현은 그의 커다란 손을 맞잡고 악수를 나눴지만, 그의 신경은 온통 복잡한 표정과 함께 방을 나선 강신우에게 쏠려있었다.


"업무에 대해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희가 선별자님이 완벽한 시장이 되실 수 있도록 만들어드릴 테니까요."


당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이란 말이 뒤에 붙은 듯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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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시장으로서 취임한 지 정확히 1년 뒤 장대현은, 그날 보았던 유선아와 똑같은 표정을 짓고 다니게 되었다.


시장으로서의 삶은 끔찍했다.


이젠 가족의 얼굴을 보는 일 자체가 힘들었다. 선별 당신 갓 둘째를 임신한 상태였던 아내의 양수가 터졌을 때, 그는 서울 북동부 장벽이 무너진 건에 대하여 회의를 하고 있었다.


한동안 아빠 얼굴 보고싶다고 칭얼거리던 딸은, 이제 자신에게 말도 잘 걸지 않게 되었다.


아내 역시, 홀로 두 아이를 키워내야 했던 탓에 나날이 스트레스가 쌓여갔다. 지쳤는지 이제는 서로 인사도 잘 주고받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이 가족을 희생하여 남는 시간은, 모두 서울을 위해 강제로 투자되었다.


새로운 정책의 방향성을 두고 회의를 나눈다. 그 중 가능성 있어보이는 전략을 수많은 전문가에게 연락해 검증한다. 중간 중간 외곽의 침입에 장벽이 파괴될 경우 장벽을 확인하고 보수를 진행한다. 소요 사태가 일어나면 그것을 진압한다. 시민의 민원이나 합리적인 제안이 들어오면, 반드시 그것을 회의 안건에 올려 면밀한 검토를 거쳐야 한다. 필요시 공무 시찰 역시 나가며, 주기적으로 시민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시 전체를 순찰한다.


푸슉.


지쳐 비틀거리던 몸에 체력회복제가 꽂히자, 불쾌할 정도의 활력이 온 몸에 다시 차오른다.


"...제발."


"아직 민원 관련 토의, 시 순찰, 그리고 남서부 장벽 근처 소요사태에 대한 회의가 남았습니다."


"......"


그를 보좌하는 백정우는 마치 기계와도 같아서, 장대현 본인이 무슨 말을 하건 다음 업무를 진행할 뿐이었다. 그는 말없이 서류를 건네며 동시에 스크린에 자료들을 띄웠다.


"...제기랄."


그가 내뱉은 욕설을 못 들은 척, 백정우는 브리핑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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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무능한 상급자를 억제할 방법인가 그런 글을 본 기억이 나서 휘갈긴, 완전무결한 지도자를 강제로 만들어내는 디스토피아물 소재임. 나라 자체는 살기 좋은 편이고 지도자층은 원하든 원치 않든 국가를 위해 말 그대로 이 한몸 바쳐 희생하지만, 재수가 없으면 지도층으로 선별되서 정신나간 수준의 근로 환경에서 강제로 복무하는...존나 빡센 군대의 정치가 버전이라고 생각해도 됨.


이런 디스토피아물 누가 좀 '써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