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노아 복귀 소식 듣고 보러 간 처음에는, 와 돌아오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음. 사실 나는 스자헌 웹툰 완결나기 전까지 안 오나보다,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임. 완결 공지에서 1년 정도 공부 조지고 오겠다 해놓고 안 왔고, 백합기담 출간 공지에서도 이제 던져놨던 작품들 다시 쓰고, 다음 일은 일단 다 쓰고 생각하겠다 이랬는데 뭔 아무 소식도 안 들리고 앉아있으니. 걍 필명 또 갈아치웠나보다 했지.


옛날에 류세린 엔이세 1권 딱 읽고 뭔 이딴 소설이 다 있냐 생각했었다가, 어사일럼 읽어보니 존나 재밌어서 엔이세도 다시 읽고 미여정도 찾아서 읽었음. 당시 감상으로는 엔이세부터 읽으면 글이 너무 가벼워서 걍 아무 생각 없이 썼네,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는데, 엔이세랑 전혀 다르게 묘사도 촘촘하고 설정도 존나 방대한 미여정 읽고 다시 읽어보면, 이게 작가 역량에 대한 믿음이 달라지기 때문에 재밌게 볼 수밖에 없는 게 있었고.


근데 다 연중했잖아. 기분이 이상하더라. 작가 sns는 다 닫히고 후기랑 공지 보고 희망회로 존나 돌리고 있었는데... 신작? 뭐, 회귀썰??? 하, 스자헌 쓸 때 엔이세, 어사일럼, 미여정에서 쓰던 캐릭터들 자기복제 쪼오옥 빨아서 진심집필 하더니, 겜작되에서는 갑자기 인물 말투 죄다 단탈리안 개소리하는 말투로 변해버려서 망하고, 이번엔 회귀물 재탕해서 돈이나 빨아가겠다 이거냐?????????


그런 원초적 분노와 함께 일단 12,000원 결제하고 읽음.


근데 재미는 있더라.


그래서 할 말이 없어짐. 회귀물이긴 한데 전작 재탕이라고 말하면 걍 억까고, 캐릭터도 다 새로 짜온 캐릭터들이 맞았기 때문에. 존나 빡치는데 할 말이 없음. 소설이 재밌는데 어떡함? 할 수 있는 말이 없음. 개빡치게.



소설이 뭐 어떤 내용인지 그런 건 다른 감상에도 다 적혀있을 테니까 넘어가고,


일단 난 몰아서 보니까 피로도가 좀 강했음. 옴니버스 같은 구성인데, 대충 3~5화 분량에 회귀 1회차분의 내용이 다 담긴다고 보면 액기스만 뽑기 때문에 밀도 높고 재미는 있는데, 같은 이유로 떡밥 던져지는 밀도도 높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연재목록 보면서 내용 되새김질 하게 됨.



개인적으로 제일 마음에 들었던 파트는 극초반 성녀, 성좌 시스템이 구라핑이었다는 내용, 89회차 고요리 첫 등장, 천요화랑 무간 공략하는 거, 이렇게 3개였고. 만상유희에서 심아련 코인 타는 것도 좋았음.


반대로 재미가 별로 없었던 파트는 검후, 노도하, 마법소녀 파트였음.


검후 파트는 순수하게 말투가 힘들었고.


마법소녀 파트도 말투가 힘든 거긴 했는데, 검후랑은 좀 다른 게, 씹덕 말투를 싫어하는 게 아닌데도 재미가 없었다는 게 좀 다름. 뒤에 더 설명함.


노도하의 경우엔 뭔가, 유일하게 주인공이랑 허물 없이 대하면서 시바알... 왜 그러냐 나한테... 이러는 말투인데. 전작에서 이런 말투 나올 때는 별 생각 없었는데 지금은 코드가 나랑 안 맞는듯.... 그리고 이거랑 별개로 노도하 대사에서는 자꾸 좆 얘기를, 예를 들어 "터널이 아주 좆처럼 길다랗다"느니 하는 대사를 자주 하는데, 전작 백합기담에서 "좆까... 라는 대사를 입에 달고 사는 주인공은 아무래도 좀 힘들겠죠?"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그거 생각나더라. 그래서 왠지 작가가 애정을 갖고 있는 게 눈에 보이는데, 그냥 캐릭터가 내 취향은 아님....


마법소녀 말투가 마음에 안 들었던 이유를 좀 더 보충하자면,


보는 동안 만담 파트에서 거의 재미를 못 느꼈는데, 끝까지 읽고 생각해보니 캐릭터나 대사보다 괴이썰 푸는 게 더 재밌어서 그런 것 같음. 캐릭터들 티키타카하고 만담하는 것보다 학교괴담 괴이 파트가 훨씬 재밌는 걸 어떡하냐.


읽는 동안 무의식적으로 말 그만하고 괴이 보여달라고... 이런 심정이라 별로 재미를 못 느낀듯.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이 작가 작품이 고결함발사대가 되어버린 탓도 있는 것 같고.


뭐라 설명하기 어렵다만.... 스자헌 때도 그랬지만 어느 순간부터 주인공이랑 모든 캐릭터가 나 정의롭고 건실합니다 어필을 멈추질 못하는 것 같음. 이상주의자적인 게 싫다는 뜻이 아님. 인물들이 자기만의 이상을 존나 강하게 갖고 있는 건, 엔이세 때부터 쭉 그래왔음.


근데 예전 작품들에서는 인물의 결핍에 대한 게 훨씬 더 많이 부각되고, 주인공이 아무리 이상적이라고 해도 주변배경이랑 소재 자체가 질척질척하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재미가 있었음.


어사일럼을 예로 들면 류세린은 당시 작품후기에서 한유진과 은사자백작은 자신이 현재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취향에 맞는 남캐 여캐라고 말했었는데. 한유진과 김공자, 장의사를 비교하면 한유진에 비해 나머지 2명은 능력치도 자의식도 너무 높으신 곳에 계심.


장의사만 그런 것도 아님. 당서린, 노도하, 성녀. 이들 모두가 이상주의자고, 물론 십족 토벌 이전의 당서린은 아이김제국 파트 흑룡주 마냥 동료의 희생을 겪었을 거고 노도하는 성격파탄자인 것처럼 묘사하지만, 그거야 화자의 억지일 뿐이고 복지사가 환자 뒷담 한 번 까면 바로 짤라버리는 봉사심 max의 인종임.


이들이 겪은 실패나 비극은 모두 이미 해결됐거나 당연히 해결될 일에 불과하고, 추한 꼴이나 못 볼 꼴은 구조적으로 보여질 수가 없게 되어있음. 이 캐릭터들은 애초에 주인공이 수십명을 다 시험해보고 걸러내서 남긴 최고의 인격자들이니까.


엔이세를 돌이켜보면, 엔이세 인물들은 죄다 인격자는 못 되는 반푼이들이라서, 서로 물고 뜯고 싸우는 맛이 있었음. 인물 관계도가 막 지른 것처럼 꼬여 있었고, 서로 증오하는 사이인 캐릭터들이 한 자리에 여러 차례 모였음. 관계적 측면의 사건성이 강했다는 말임. 그러니까 대사가 시작될 때마다 재미있었지. 근데 무한썰은? 죄다 인격자고 논리적임. 청학동 디베이트 토론장 마냥. 괜히 극단적으로 꼬아서 말하자면 이 소설의 등장인물은 딱 1명밖에 없다고 말할 수도 있음. 대사가 그냥 자문자답하는 수준이니까.


물론, 이해는 안 되지만 납득은 할 수 있음.


어쨌든 작가가 생각하기에 가장 선하고 완벽한 인물들을 써보고 싶은 거라면... 그리고 이런 캐릭터가 희소가치가 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근래의 사회 분위기를 봐도 이런 캐릭터들이 인기를 얻을 만한 느낌이 있고....


근데, 배알이 꼴리는 걸 어떻게 할 수가 없네.


비극적 사건을 연속으로 몰아맞고 멘탈 터진 미친년들도 쓸 줄 알면서, 그런 걸 쓰던 류세린은 어디로 가고 신노아는 도대체가 유교꼰대 같은 캐릭터들만 쓰는 거냐? 나는 바로 이 부분이 억울해서 미칠 것 같다.


아, 물론 무한썰에도 그런 파트들이 있기야 하지. 집행자 루트라든가. 근데 그걸로 존나 한참 모자라다니까.


그리고 집행자 파트도 결국 고결함 발사대라고 생각하는 게. 그냥, 뭐, 성녀가 갑자기 숨겨진 음습한 욕망을 드러내서 사람들 죽이고 다닌 것도 아니잖아. 데스노트 같은 느낌으로, 윤리적으로 고민해볼 여지가 있는 사유로 흑화한 거지. 이런 반쪽짜리 타락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고.


류세린의 단말마와도 같은 백합기담을 돌이켜보면, 백합기담 주인공 한백도 이상주의자였음. 게으른 이상주의자. 그리고 메인히로인 아야카는 미치광이 연쇄살인마였다. 둘이서 보비려고 하던 찰나, 아야카가 비 오는 날마다 사람 죽이고 강물에 던져버리는 미친년이란 걸 알아버린 한백이, 그 짓 그만하라고 말싸움 조지다가 특이점 와서 주종관계 살인마듀오 보빔물 찍어버리는 게 바로 백합기담이었다.


류세린의 소설에서는 결핍으로 인해 망가진 인물의 매력이 있었지. 스자헌 탑주의 흉악범 애인 컬렉션처럼.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지만 사랑한다는 데서 오는 배덕감. ...탑주 파트에서 황금율 나올 때는 이 씨발 배덕감이 성감대인 미친년들이 정의니 뭐니 운운하면서 시민들의 억울함을 자위도구 삼아 씹질하는구나 생각했었는데....


근데 신노아는 바로 그 씬에서 모든 미련을 던져버렸는지, 이제 인물에게 있어서 결핍은 그 인물을 더 고결하고 완벽한 존재로 만들기 위한 발사대에 불과해졌구나....


아쉽다.....


작품은 재밌는데, 그래서 뭔 말을 덧대서 말한들 궁색해질 뿐이지만.... 그게 너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