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돌아온 갑진년을 맞아서, 이 짤과 함께 영조가 경종을 독살했다는 밈이 커뮤니티에 심심찮게 보인다.


사실 영조가 능력&업적과는 별개로 그 특유의 졸렬함과 혐성 소시오패스 모습 때문에 역덕들 사이에서 평가가 좀 짜기도 하고, 당장 영조 치세에도 많이 퍼져있던 밈이라 음해성 밈으로 보면 꽤나 절묘하고 웃기단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뇌절이 없으면 찐따가 아니지. 왜 안나오나 했더니 슬슬 진지하게 영조가 경종을 독살했다/죽이려했다는 주장을 하는, 밈에 뇌가 절여진 놈들이 커뮤니티 곳곳에 등장하고 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영조가 경종을 죽인다는 것 자체가 얻을 이익도 없고 이유도 없으며 하이리스크 로우리턴 그 자체인 뻘짓이다. 그리고 그랬다는 증거도 없다.




1. 게장과 감은 정말 상극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거 없다 ㅋㅋ


당시에는 궁합이 나쁜 음식으로 취급받았단 것은 <본초강목>에도 나온 사실로 보이나, 적어도 현대 의학에선 두 음식의 궁합이 나쁘다는 그 어떠한 근거도 없다.


물론 상하기 쉬운 게와 소화불량을 일으킬 수 있는 감의 탄닌 성분이 시너지를 내면 아주 그냥 죽여준다(진짜로)는 얘기가 있긴 하나, 아예 기미상궁이라는 보직도 존재했을 정도로 독살에 예민했던 조선이란 나라의 왕에게, 심지어 병상에 있는 상황인데, 식사로 썩은 게장이 올라갔다는게 더 이상하고, 올라갔다고 해도 누군가는 눈치채야 정상이다.


즉, 경종은 진짜로 게장과 감 쳐먹었다고 죽은게 아니었을 확률이 높다.


물론 "아 ㅋㅋ 진짜 게장하고 감 먹이고 인디언 기우제 지냈겠음? 독을 따로 탔을 수도 있지~"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영조와 경종이 서로 죽일만큼 사이가 나빴는가?



2. 경종과 연잉군(영조)의 사이


우선 경종과 영조는 아비는 숙종으로 같으나, 경종은 그 유명한 희빈 장씨의 아들이고, 영조는 무수리 출신의 숙빈 최씨 사이의 아들이므로 둘은 이복형제 사이가 된다.


이복형제란 단어만 보면 두 사람이 사이가 나빴을거 같다는 생각이 모락모락 들 수 있다. 하지만 실록이나 역사의 기록을 보면, 적어도 대외적으로 보았을때 두 사람의 사이가 그렇게까지 나쁠 이유는 없어보인다.


우선 당시 연잉군(영조)은 정치적으로 상당히 몰려있었다. 당장 그 유명한 삼수의 옥 사건은 물론이고, 툭하면 연잉군(영조)을 왕으로 옹립하자는 반란 썰이 들려올 정도였다.


사실 당장 삼수의 옥 사건만 봐도 연잉군(영조)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인데, 조선 뿐만 아니라 동서고금 모든 역사를 통틀어 보아도, 자의든 타의든 역모에 이름이 오른 왕족의 끝은 보통 좋지 못한게 상식이다.


하지만 그런 연잉군(영조)을 끝내 내치지 않은게 경종이다. 

경종 입장에서도 연잉군(영조)을 굳이 적대할 이유가 없었던게, 당시 조정에 있는 사람 중 가장 정통성 있으면서 효종의 정통성을 해치지 않는 유일한 인물이 연잉군(영조) 하나였다.

물론 궁녀 가지고 땡깡 피우는 등 다른 기록들을 보면 아예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닌걸로 보이나, 정말 한 쪽이 다른 하나를 독살할 정도로 사이가 나빴다면 그냥 삼수의 옥 때 경종이 옳다구나 하고 연잉군(영조)을 잡아다 족쳤을 것이다.


다만 이러면 또 "하지만 영조는 자기 자식으로 슈뢰딩거의 뒤주 실험을 해버린 소시오패스 아님? 이득이 있다면 눈 딱 감고 질러버렸을 수도 있지 않냐?" 라고 하는 찐따들이 있을 것이다.


그럼 정말 경종을 죽여서 영조가 얻는 것이 있었을까?



3. 경종의 상태



실록의 묘사를 보면 경종은 이미 오랜 기간 복통, 설사, 오한에 시달렸으며 그 상태가 아주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오한 증세가 나타난게 8월 2일인데, 실록에서 연잉군(영조)이 감을 진상한 날이 8월 20일이다. 

즉, 최소 한 달 이상 저런 증세를 겪었다는 말인데, 현대 의학에서도 위험한 상태인데 전근대 조선에선 오죽하겠는가. 위험한 수준을 넘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굳이 '독살'이란 무리수까지 써가면서 죽여야 했을까?



애초에 소시오패스적 사고고 자시고 간에, 일국의 왕을 독살한다/시도한다는 무리수까지 둘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당장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사람을 상대로 말이다.


실제로 영조는 이 독살설로 평생을 괴롭힘 당했고, 글 맨 위 짤처럼 정적들이 진지하게 물고 늘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가만 놔둬도 죽을 병자 건드려서 긁어부스럼을 만드는건 소시오패스라고 부르는게 아니라 오랑우탄 지능이라고 부르는게 맞지 않을까?


또한 이런 몸상태 덕분에 또 하나 자동으로 논파되는 것이 "영조가 세조처럼 '단종', 즉 적장자의 탄생을 두려워한게 아니었을까"라는 설이다.

몸상태가 저 모양 저 꼬라지인 양반이 야추가 서기야 하겠는가? 저 몸상태로 야스가 아니라 세우는거라도 가능하다면 정력왕의 타이틀은 왕건이나 연산군이 아닌 경종 더 '딕' 엠퍼러에게 돌아가야 마땅할 것이다. 오오 정력의 왕이시여...



4. 당시 연잉군(영조)의 정치적 입지


자, 설령 영조가 무리수를 둬가며 경종을 죽였다고 쳐보자.


(소론: 뭐 어쩌라고 ㅋㅋ)


개국에 명명백백한 공이 있고 자기 세력도 있는 마당에 정도전의 호감고닉짓과 이성계의 어거지 후계자 선정 덕에 확고부동한 지지를 받고있던 이방원, 신숙주와 한명회 등 훈구파와 자신만의 세력이 분명하게 존재했던 세조, 반대파가 하필 조선 최악의 JOAT 임금 그 자체인 덕에 지지세력이 자동생성되었던 중종, 역시 반대파가 세자 버프 유통기한이 끝나버린 GOA T 임금이라서 지지세력이 자동생성 되었던 인조와 달리,

당시 영조는 지지세력은 커녕, 아까 말했다시피 경종이 쉴드 안쳐줬으면 삼수의 옥 때 이미 죽었다.

영조를 지지하는 노론은 경종의 통수를 정통으로 쳐맞고 ~환국 빔~ 당했으며, 당시 조정을 꽉 잡고 있던 자들은 연잉군(영조)의 반대파나 다름없던 소론이었다. 실제로 영조도 즉위 당시에 이런 적들로 가득 찬 정치적 상황 탓에 고생 깨나 했다.

이런 정치적 상황에서는 영조가 경종을 죽이는 것보다, 경종을 살려두고 자기 지지기반을 더 다지는 것이 훨씬 더 이득일 것이다.

굳이 미친놈마냥 도박을 할 필요도 이유도 당위성도 없다는 말이다.



4.의료 사고?


"그런데 영조가 인삼과 부자 처방해서 죽은건 팩트 아님?"

이런 주장도 할 수 있다.



다만 일시적으로 인삼과 부자를 먹고 상태가 안정된 것은 실록 기록으로 분명하게 확인되며, 동의보감에도 인삼과 부자를 동시에 사용하는 방법이 기록되어있다고 한다.

물론 내가 한의학에 대해선 문외한이기도 하고, 경종이 저러다가 픽 죽어버린 것도 사실이긴 하기에 이 부분은 말을 아끼겠다.

그래도 굳이 영조를 변호해보자면, 이 글에서도 누누이 말했듯 당시 경종은 슬슬 검은 갓 입은 양반이 손 흔들고 있을 수준으로 아슬아슬한 상태였다. 솔직히 이런 상황에서 어짜피 죽을 양반 뭐라도 해보고 비벼보는게 멀뚱멀뚱 있는 것보단 나을 것이란 판단이 섰을 수도 있고....

이 부분은 사실 잘 모르겠다. 한의학 잘알이 써주겠지...



지금까지 살펴봤듯 영조가 인성도 하자가 있고 졸렬한 모습을 보인 것도 맞으나, 경종 독살설은 역시 밈이 지나쳐서 조금 과하게 까이는 것이라고 보는게 마땅하다.

아무리 소시오패스라지만 자기 자식 뒤주에 쳐넣을 때도 후계에 대한 정치적 고민을 한 독한 놈이, 진짜 눈앞의 유혹을 못이기고 경종을 담갔을까? 

영조는 인성이 병신이긴 하지만, 절대로 능력이나 정치력이 딸리는 놈은 아니다. 이 인간이 능력이 딸렸으면 치세 내내 소론하고 쎄쎄쎄 했거나 사도 고로시하다가 자기도 좆됐겠지...

당장 반대파가 주장했다고 그거 곧이 곧대로 다 믿을거면

이 아저씨는 임진왜란 JOAT 개씹폐급이고 조선의 진정한 명장은 충무공 원 '더 그레이트' 균이 되어야 한다...

역사 밈은 밈으로만 보고 너무 심취하지 말자.




결론 3줄 요약

1. 영조가 경종을 독살했다는건 실리도 당위성도 증거도 없음. 그냥 밈임.

2. 정적들이 말했다고 다 믿을거임?

3. 의료사고가 차라리 가능성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