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알다시피 히틀러가 모든 독일 장군들에게 충성을 받은 것은 아니다. 나중엔 암살까지 당할 뻔하기도 했고.


그럼에도 보헤미아 상병이 꼬장꼬장하고 거만한 독일 장군들을 휘어잡은 비결이 무엇일까?


일단 다른 대안이 없고, 운빨로 연승(뮌헨 협정, 폴란드, 프랑스 점령)하면서 위상이 높아진 것도 있지만, 결정적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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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히틀러의 비자금에서 나오는 뇌물은 총통부 사무국장인 한스-하인리히 람머스가 관리하고 지급했습니다. 람머스는 유대인 강제노동 동원의 책임이 있어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징역 20년형을 선고받은 고위급 전범이었으나 1950년대에 서독에 수감된 전범들이 대거 감형되며 10년만에 석방된 후 가족들과 조용히 지내다 죽었습니다.


2. 람머스는 원수 및 상급대장들에게 "희생보상금" 명목의 뇌물을 주며 이 돈은 국방예산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면서도 총통이 자신에게 부여한 권한에 따라 돈을 줄지 안줄지 결정된다며 우회적으로 히틀러에게 충성하지 않으면 돈이 끊길 수 있다고 장군들을 압박하며 돈 받은 사실을 절대 발설하지 말라고 편지에 썼습니다. 워낙 비밀스럽게 지급되어서 마르틴 보어만 총통 비서실장도 모를 정도였습니다.


3. 원수에게 매달 지급되는 4,000마르크와 상급대장에게 지급되는 2,000마르크는 소득세나 기타 세금을 떼지 않고 그대로 지급되었습니다. 이는 독일 국내법적으로도 위법행위로, 매달 2,400마르크 이상의 수입에는 최대 65%의 소득세가 부여될 수 있다는 법령을 어긴 것이었습니다. 람머스는 히틀러 비자금에서 자기도 매달 8,000마르크를 챙겼는데 괴벨스의 7,600마르크 지급보다 더 많습니다.


4. 람머스의 결정에 따라 항복한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원수, 발키리 작전 가담자인 에르빈 폰 비츨레벤 원수, 발키리 작전 가담을 의심받은 프란츠 할더 상급대장은 뇌물 지급이 중단되었습니다. 이 중 비츨리벤의 유가족들에게 람머스는 이제까지 받은 희생보상금을 전부 토해내라고 압박하여 유가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밖아넣었습니다.


5. 롬멜이 부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히틀러에 대한 충성을 강조한 시점은 뇌물 지급 직후였습니다.


6. 독일군 원수의 기본급이 연봉 26,500마르크였다는 점에서 히틀러는 원수들에게 기본급보다 더 많은 뇌물을 준 셈입니다.


7. 수표도 뇌물수단이 되었습니다. 히틀러는 원수들의 생일 때마다 생일선물로 수표 250,000마르크를 전달했습니다. 룬트슈테트는 60회 생일에 수표를 받고 람머스에게 세금 안뗄 방법과 괜찮은 투자처 어디 없냐고 문의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히틀러를 "보헤미아 상병"이라고 뒷담을 깝니다.


8. 현금 이외의 뇌물은 부동산이나 부동산 사는데 지원해주는 수표였습니다.


9. 부동산을 활용한 뇌물은 군의 원로인 아우구스트 폰 막켄젠 원수를 회유하는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막켄젠은 장검의 밤 사건에서 군부 출신인 쿠르트 폰 슐라이허 전 총리가 친위대에게 살해당하자 이에 격노해 장군참모협회에서 히틀러와 괴링을 비판하는 연설을 했습니다. 하지만 10일 후 괴링이 프로이센 주총리의 권한으로 프로이센의 브뤼소에 있는 1,250헥타르 상당의 부동산을 수여하겠다고 전해주자, 파티를 열어 히틀러를 초대했습니다. 그런데 이 땅의 일부는 원래 호헨촐레른 왕가의 사유지여서 네덜란드에서 망명중이었던 빌헬름 2세는 아주 불쾌해 했습니다.


10. 총통의 딸랑이로 악명높았던 국방군 최고사령관 빌헬름 카이텔 원수는 1942년 9월에 A집단군 사령관 빌헬름 리스트 원수가 히틀러의 진격 계획이 무리라고 반대하자 리스트의 편을 들다가 히틀러의 분노를 샀습니다. 카이텔은 자신이 총애를 잃을까 전전긍긍했었는데, 9월 21일에 히틀러의 수표 250,000마르크를 받고 이런 편지도 받았습니다. “나는 스스로 (중략) 그대가 보여준 충성과 헌신을 가능하게 만든 날에 진실로 감사를 보내고자 하오. (중략) 심각한 위기 동안 나와 내 업무에 대해 (중략) 그대가 내외적으로 보내준 태도가 변하지 않았음을 알고 있소. (중략) 친애하는 원수는 이 점을 고려하여 나의 개인적인 감사와 독일 민족의 감사인 이 작은 돈을 받아 주시오. 나는 그대의 60번째 생일에 그들의 이름이 그대의 생활의 편안함이 되게 하려 시도할 것이오.”이후 카이텔은 히틀러가 모든 연합군 특수부대는 재판 없이 즉결처분하라는 특수부대 명령을 열렬히 찬성했습니다.


11. 1942년 초에 소련군의 공세에 후퇴한 하인츠 구데리안 제2기갑군 사령관은 이 문제로 히틀러와 논쟁을 벌이다가 사령관에서 해임되어 보충군으로 배치되었었습니다. 계속 보충군으로 있던 구데리안에게 히틀러는 1943년 5월에 폴란드 디펜호프의 937 헥타르 면적의 부동산을 선물했습니다. 그 직후 구데리안은 히틀러의 기갑총감직 제안을 수락했습니다. 구데리안은 이 땅이 소련군에게 점령당한 직후 1945년 3월에 히틀러에게 대들다가 면직당했습니다.


12. 카이텔은 브라운슈바이크 인근 헬름셰로드에 히틀러가 준 돈으로 부동산을 607 에이커 면적의 부동산을 매입하려 했는데 돈이 모자라자 히틀러가 돈을 더 줘서 매입했습니다.


13. 빌헬름 폰 레프 원수는 뮌헨 인근에 부동산을 가지고 있었는데 바이에른 인근의 638,000마르크 상당의 숲을 히틀러가 전액을 부담해 줘서 매입했습니다. 레프 가문은 전후에도 이 땅에서 계속 살았습니다.


14. 발터 폰 브라우히치 원수는 히틀러에게 매달 4,000마르크를 받은 진실을 부정했습니다.


15. 에르하르트 밀히 공군원수는 히틀러에게 수표 250,000마르크를 받은 것을 인정했지만 그것은 루프트한자에서 일한 보상금이었다고 주장하며 어쨌든 그 돈을 거절할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16. 볼프람 폰 리히토벤 공군원수는 이탈리아에서 제2항공군을 지휘했는데 현지의 인플레 때문에 4,000마르크를 받아 이탈리아 리라화로 환전하면 3,000마르크 가치의 리라만 남는다며 돈 더 달라고 람머스에게 요구했습니다. 리히토벤은 전후 이 돈이 원수로 진급하면 당연히 주는 돈인줄 알았다고 주장했습니다.


17. 레프는 발키리 작전에서 히틀러가 부상받은 후에 람머스에게 히틀러 안부는 안묻고 이번 사태로 전달받게 되어 있는 수표 250,000마르크 전달에 차질이 생기지 않겠냐고 걱정했습니다.


18. 에리히 레더 해군원수는 수표 250,000마크르를 받은 사실은 인정했으나 세금 떼고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19. 전후 이 뇌물 수수건은 깨끗한 독일국방군 전설에 묻혀 언급이 되지 않았고 동독에서만 가끔 연구되었습니다. 히틀러에게 받은 거금을 장군들이 스위스 은행 등 제3국 은행을 통해 돈세탁하거나 현물화할 여유가 충분히 있었으리라고 추정됩니다.





뇌물 확실하게 안 받은 장군들은


발터 폰 라이헤나우 육군원수


발터 모델 육군원수


페르디난트 쇠르너 육군원수


카를 되니츠 해군원수


이 4명밖에 없음. 이놈들도 청렴해서라기보다는 나치즘에 심취해서 + 그냥 너무 충직해서이고




결론은 뇌물 받아먹을 거 다 받아처먹은 주제에


'나는 나치가 아니라 조국 독일을 위해 싸웠다'는 독일 장군들의 변명이 얼마나 개소리인지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