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arca.live/b/novelchannel/100425346

앞서 이 글은 념글 보고 쓰는데, 보충하는 글 정도로 봐주셈. 밑에 3줄 요약 있음.




늑대. 

한반도에서는 주로 이리 또는 말승냥이라고 불렸으며 북부돼공이 주로 말하는 미제 승냥이에서 승냥이 역시 늑대를 말한다.

한국에는 특이하게도 늑대 관련 설화나 전승, 야사 등이 거의 없는 편인데 정말로 한국에 늑대 개체수가 적어서일까?




 일단 한국의 늑대 개체수를 알기 위해서는 일제가 벌였던 해수구제산업을 참고해야 한다. 역사시간에 자지 않은 장붕이라면 아는 해수구제사업은 조선총독부가 한반도에 "사람과 재산에 위해를 끼치는 해로운 짐승들을 구제한다."라는 명분을 내세워 한반도의 야생동물을 별다른 동물보호정책 없이 남획 및 퇴치한 사업으로 6.25 전쟁과 쥐약의 무분별한 남용과 같이 한반도의 야생동물의 멸종에 관여한 삼대장으로 유명하다. 

 참고로 흔히들 호랑이나 곰, 늑대 같은 맹수들만 조졌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물범, 여우, 맷돼지, 노루, 조류 등 다양한 야생동물을 족치는 사업이었다. 이 때 일제는 포획한 동물들을 기록해 두었는데 이 기록을 참고하면 한반도에 어떤 동물이 많았는지 대략 추측해 볼 수 있겠다. 그 기록은 아래와 같은데,



출처 해수구제사업 - 나무위키


 "출처가 나무위키잖아!!!"라고 빠다를 들기 전에 변론을 하자면 일단 저 문서는 출처나 참고 문헌이 상세하게 나와있고, 다른 기사나 자료에서 1000마리 대 후반에서 3000마리 가까이 잡았다는 기록이 있는 걸로 봤을 때 나름 참고할 만한 문서라고 생각한다.


 암튼 자료에서 보듯 해수구제사업 당시 늑대는 매년 평균 100마리 정도 잡혔고 사람에게 제일 많이 피해를 끼친 맹수는 늑대라고 기록되었을 만큼 한반도에서 늑대는 흔한 맹수였다고 추측할 수 있다. 

실제로 세종실록 지리지의 전라도 전주부 부분(https://sillok.history.go.kr/id/kda_40007001)에는 전주의 토산물(土貢)로 표범가죽, 여우가죽과 함께 이리(늑대) 가죽이 있었다고 적혀 있으며, 지명에도 늑대골, 이리골이나 낭도, 낭림산맥과 같이 이름에 이리(늑대)가 들어간 지명이 종종 있으며 설화나 민담과 달리 이리와 관련된 속담도 꽤 있는 편이다. 


 물론 한반도에서 늑대가 본격적으로 급증하기 시작한 시기는 17세기 중반부터인데, 그 이유는 조선에서 호랑이를 대대적으로 사냥했기 때문이었다.  호랑이는 늑대와 경쟁자 관계인데 체급면에서 우위인 호랑이가 늑대를 죽이거나 몰아내기 쉬워서 한반도에서는 늑대가 잘 살지 않았다. 

 근데 조선시대로 들어서면서 개간지가 늘어남에 따라 점차 호랑이가 살 수 있는 서식지가 줄어들었고, 또 조선에서는 국가적으로 호랑이를 퇴치했기 때문에 호랑이의 개체수가 급감하였으며 자연스레 늑대가 한반도의 최상위 포식자가 되었지만 그 시기가 18세기 중반정도로 늦은 편이었다. 따라서 일반 사람들이 늑대를 자주 접했던 역사는 다른 맹수에 비해 짧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본에는 예전부터 호랑이가 거의 살지 않았음에도 칸막이 속 호랑이와 같은 설화가 존재했고 호랑이를 불법의 수호자나 용과 대비하는 영물로 보았던 걸 보면 동양에서 동물의 개체수와 설화의 유무는 크게 상관이 없기도 하다.  실제 한민족은 늑대가 많이 살았던 만주 지역에서 내려왔음에도 고대에서부터 늑대 관련 설화나 민담이 없다.


그럼 왜 한국에는 이리와 관련된 설화나 민담은 거의 없을까?




 그건 아마도 한국에서 늑대의 위치가 다른 동물들에 비해 인지도 측면에서 애매하기 때문일 것이다. 



 일단 늑대는 다른 맹수들에 비해 악명에서 밀리는 편이었다. 보통 인간에게 해를 끼칠 위협이 높은 동물들은 설화나 민담, 야사에서 자주 등장하는데 한반도에 살았던 늑대는 몽골늑대로 늑대 종류 중 소형에 속해 성인 장성 여럿이 몽둥이만 들면 잡거나 쫓아낼 수 있었다고 하며, 개가 있으면 싸움을 회피하는 습성이 있었다고 한다.


".... 두 번째 다른 늑대의 특성은 늑대는 개와 적극적으로
투쟁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늑대가 민가를 습격해서 돼지는 물론 사람들까지도 잡아먹는
잔인성을 발휘 했지만 개를 잡아먹은 기록은 없다.

반대로 개가 늑대를 죽였다는 기록도 없다.

훈련된 사냥개로서 늑대를 추적하는 사냥꾼도 있었건만 한번도

성공한 기록이 없다....(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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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늑대도 따라오다 개 짖는 소리가 나면 동구 근처까지

오다가 가버린다. 1대1로 싸우면 늑대가 이기지만 개는 무리로 달려들기 때문에 도망간다. (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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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blog.naver.com/kc6731/120187841489


그리고 기본적으로 산에서 살았기에 민가 근처에서 살면서 원딜 시에스 뺏어먹는 서폿마냥 가축을 자주 빼먹던 여우나 담비에 비해서는 덜 마주하는 편이었다. 여우나 담비의 설화나 전설이 많은 이유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한편 늑대에 비해 호랑이는 악명이 높았는데,

https://youtu.be/uL7uDVClNXE

조선에서는 얼마나 호랑이가 무서웠는지 호랑이가 사람을 납치해가는 호환을 전염병인 마마(엄마아님)와 붙여 호환마마라고 불렀으며, 국가에서는 호랑이 잡는 특수부대인 착호갑사를 운영했었다. 가히 국가권력급 맹수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키 2m, 몸무게 200kg은 기본으로 나가는 놈들이 송곳니는 고양잇과 중 제일 발달해서 치악력도 제일 세고, 앞발도 잘 쓰고, 기본 공격은 잠행 공격에 나무도 잘타고, 고양잇과 주제에 헤엄도 잘치고, 유연성과 민첩성도 뛰어나서 이 긴거를 야생에서 만났다면 누구나도 으아아악 비명을 질러야만 했을거다. 호랑이와 같이 범이라고 불렀던 표범 또한 민가로 종종 내려와 사람을 해쳤던 걸 보면 늑대는 한반도 맹수 중에서 가장 인지도가 적은 존재였던 것이다.



그리고 늑대는 문화적 측면에서도 입지가 애매한 편이다.


곰과 호랑이는 두말할 필요도 없고, 여우 역시 고대 한중일에서 설화나 민담에서 다양하게 등장했다. 최치원의 시 고의의 첫 구절 "여우는 능히 미녀로 둔갑한다."는 말처럼 한국에서 여우는 예전부터 둔갑술에 능하고 사람을 홀리는 존재로 보았다. 


표범 또한 조선에서는 무늬가 잡귀를 쫓아내는 효력이 있다고 여겼으며, 만기요람에 따르면 호피보다 표피를 더 고급으로 여겼다고 한다.


반면 늑대는 한국에서 해모수 설화에서 하백과 대결했을 때 해모수가 승냥이로 변화했다는 부분 말고는 설화나 민담에서 거의 등장하지 않고, 중국에서도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다. 일본은 늑대를 신성하게 보긴 했지만 이는 섬이라는 특수성과 일본의 최상위 포식자가 늑대였음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한국에서는 늑대에 대한 용어로 승냥이, 이리를 혼용해서 썼는데 이에 따라 승냥이에 관한 설화가 실제로는 늑대에 관한 설화였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승냥이는 한반도 북부에서만 주로 서식했다고 하니 아마 한반도 이남의 승냥이에 대한 설화는 늑대였을 가능성이 꽤 있다. 피래미가 실제 어종의 하나이기도 하지만 잡어의 대명사로 쓰이는 것처럼 말이다.



정선읍에 전해지는 늑대와 관련된 전설을 마지막으로 이 글을 마친다. 

이조말기 불교사 쇠퇴할 때 고한읍 고한리(古汗里) 갈래사(현 정암사)에 한 노승이 혼자서 절을 지키고 있었는데 어느날 하루 저녁때 부엌에서 저녁밥을 짓고 있던 중 전방 약 100보 정도 거리에 큰 개만한 산짐승이 이 노승을 한참 바라보고 갔다.
노승은 저녁밥을 지으며 가만히 혼자 생각해 보니 분명히 오늘밤에는 저 이리 놈들한테 변을 당할 것 같아 피신하려고 마음먹었지만 이미 때가 늦어 이웃 동네까지는 거리가 멀어 갈 수 없자 노승은 별 수 없이 저녁을 지어먹고 도끼와 낫 그리고 잿파리 등을 준비하고 승방 아랫목에 장삼(長衫)을 단정히 입고 앉아 마음속으로 불경을 외우며 다가오는 운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정이 되자 뒷산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다 쓰러져 가는 고찰이라 문도 제대로 닫히지 않는 집이여서 문을 잠그지도 못하고 있자니 잠시 후 이리떼들이 몰려 와 방안으로 들어 갈 곳을 찾던 중 한 놈이 앞발을 걸고 문을 당겨 문이 열리자 10여마리가 방으로 들어오니 문은 저절로 닫혀지고 방안에 들어온 이리떼는 일렬로 나란히 앉았다.
노승은 아랫목에서 죽은 듯이 앉아 동정만 살피고 있자 어느 놈인지 한 놈이 꾹 하고 신호를 하니 일제히 꾹하고 한 발짝 앞으로 나오기를 수번이 되자 노승과 이리와의 거리는 불과 한발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노승은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갑자기 벌떡 일어서며 벼락같은 소리를 지르고 잿파리를 두드리면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닥치는 대로 발로 차니 이리떼는 혼비백산하여 노승과 함께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난장판이 되었다.
얼마 동안을 노승은 사력을 다하여 치고 박고 하는 동안 한 놈이 잘못하여 문에 넘어지는 바람에 문이 열리자 이리들은 살았다고 우루루 꽁지가 빠져라고 도망을 치고,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노승은 다음날 이리 똥을 치는데 하루해가 다갔다고 전한다.

출처: https://www.jeongseon.go.kr/portal/jeongseongun/generalsituation/legend/le-gohaneup


3줄 요약

1. 한반도에서도 늑대는 역사가 짧은 편이지만 개체수는 어느 정도는 있는 편이었다.

2. 다만 인지도 측면이나 문화적 측면에서는 입지가 애매했다.

3. 



그래서 님들은 어떤 동물을 제일 좋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