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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자 게시▉▉▉RRW▉-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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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게시판 생▉▉

좋은 아침, 좋은 점심, 좋은 오후 되시고, 새벽을 알릴 등불▉▉▉▉▉▉


좋은...뭐?

이런 문구 없었잖아, 인터넷 서서히 끊겨가더니 이젠 게시판까지 터져나가는 거야?

아니면 또 다시 악몽을 꾸는 건가- 에딧의 긴 검날이 내 볼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존나 따갑네.

볼에 아릿한 고통을 느낄 틈도 없이 곧 귀기어린 그녀의 추격을 한층 더 살벌하게 할 검격이 한번 두번, 연이어 날아왔다.


도끼로 한 번 두 번, 튕겨내는 데 급급한 내 동작을 보조해 주는 것은 사거리가 긴 쪽, 엑스트라다.

끼기긱, 불꽃을 튀기며 서로 맞물리는 검날은 이윽고 에딧이 한 보 물러나며 우리에게 숨 쉴 시간을 벌어주었다.

아니 정확히는 나에게만, 엑스트라는 아무래도 그 순간조차 날 치료하는데 쓰려고 한 듯 싶었다.

그녀가 내 볼에 손을 짚자 따뜻한 감각과 함께 상처가 나아갔다, 상흔에 배겨든 액체조차도 깔끔하게.



"괜찮으시나이까, 그대여?"

"이 정도는 괜찮으니까 불꽃을 아껴! 걸어가는 동안 투사를 만나게 될 수도 있으니까!"

"투사와 연주자의 힘이 섞여든 검이니, 사소한 상처도 어떤 결과를 가져다 줄지 알수 없-"


다시 한번 검이 맞부딪혔다, 액체 방울이 허공에 흩날리면, 그녀의 불꽃 날개가 훑고 지나가 한 순간에 증발시켰다.

매캐한 연기는 우리들의 발걸음을 붙잡지 못했고, 한순간에 뒤쳐지며-

어우, 에딧 저년 얼굴 왜 저래.

테라피스트의 음악, 투사의 독에 저항하는 그녀의 표정은- 지금 솔직히 말해서 사람이라기보단 진화체에 가까웠다.


"...너희들은 항상 그렇게 싸우는구나, 가세하고, 회복하고, 한번에 퍼붓고...더럽게 추잡하네."

"꼭 먼저 뒤진 놈들이 다구리가 비겁하다고 까지."

"비겁하다고 한 적 없어, 효율이 떨어져서 문제니까...함께 싸우는 것들 따위, 부품처럼 갈아끼우면 그만이거든."


워커 하나가 이쪽으로 날아왔다, 두 대.

나는 별을 가동시킬 준비를 마쳤으나 한 순간 시야에 이전의 워커와는 이상한 차이가 비춰졌다.

"아으...아...에딧...비서님...도와야..."

"지켜...지켜야 해. 지켜...야해..."


탑승한 파일럿을 보호해주는 뚜껑이 열어젖혀진 채, 안에 탑승해 했던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하는 파일럿들.

그녀들의 강박적이고 기계적인 행위는 마치 그것을 탑승한다기보단, 조종당하고 있는 행위에 가까운-

탑승자들이, 스스로의 워커에서 뛰어내렸다.

어?


"그런 면에선 투사가 각성한 게 오히려 나았을지도 모르겠네, 내가 철저히 주입한 고문이 그녀들의 악몽이 되어 준 모양이니."

주인을 잃은 워커는 그대로 굴러떨어지-지 않고, 에딧이 입은 외골격에 달라붙어-

분리되고, 결합되어.

그대로 나에게 강철 팔을-


"...이게 뭔 씨!"

막았다! 덜 충전된 별이라 간당간당하지만 어떻게든!

주먹 하나가 내 몸뚱아리만 하네,  대체 이게 뭐가 어떻게 되먹은 구조야? 뭐 어린이 완구야? 과학적으로 말이 돼?

이 새끼들 그냥 내 별 노리고 초대장 보내거나 투사 피 뽑을 시간에 이거나 해서 팔았으면 더 이득인 거 아니-


아니, 다른 생각 잠깐했다고 금방 힘이 줄어드네 별아 버텨라, 버텨! 버텨어어억!

"...어디에도 없는 그 별 하나 완성해냈다고 꽤 기고만장해진 모양인데..."

"아으으으으극...뭔 기고만장이야, 이게 리스크가 얼마나 심한데..."

방금 전 힘주기는 장난이었다는 듯, 기계 팔에 힘을 실어 내 별에 압박을 가했다.

동시에 별에 전달되는 감각과 과열되며 발생하는 서서히 익어가는 내 척추가 이중고를 가했다.


"이걸 해내기 위해 내가 직접 손본 워커 슈트가 몇 개고, 외골격을 박아넣기 위해 스스로 구멍 뚫은 뼈마디가 몇 개 인줄 알아?"

"...야이 씨..."

"떼쓰기라고...? 천하다고? 너희들 중 누가 혼자 이걸 해낼수 있었을 것 같아?!"


서서히 감정이 달아오르는 에딧의 목소리 뒤로 날아오는 워커 세 기, 아 씨발 여기서 뭐라도 더 가세하면 곤란한데.

반대쪽 팔을 막아내는 엑스트라를 돌아보니, 그쪽은 그쪽대로 검과 날개를 전부 써 막아내고 있는 듯 했다.

아니.


"살려 줘! 너무 아파, 아파, 아파!"

"안쪽까지 끼어 들어와서 기어 들어와, 나가! 들어와! 나가! 반복해애애액!"


"...아무래도 그대들의 마음을 진정시키기엔 꽤 많은 힘이 필요할 듯 싶군요..."

더했다.

워커의 파일럿들은 워커에서 빠져나온 이후로 계속해 엑스트라 에게 달려들었고.

어떻게든 감싸안으려는 그녀의 날갯짓에도 아랑곳않고 달려들며, 냉병기를 꺼내들어 휘둘렀다.

그것은 인간이나 진화체라기보단 차라리 미친 듯 돌진하는, 싸구려 영화 속 좀비와 닮아 있었다.


그렇겠지, 엑스트라의 힘은 치유. 상냥한 힘.

그러나 그것을 이기는 감정, 그것을 이기는 공포가 있다면 그녀의 힘은 상쇄되어 버린다.

저쪽이 어떻게든 뚫고 들어가느냐, 엑스트라가 막아내느냐, 서로 회복하면서 벌이는 순수한 정신력 싸움이다.


마치 극단의 주역이 처음 보여줬던 그것처럼.

...잠깐만.


"포기해, 그녀들은 이미 내 수족이야! 음악과 악몽에 밀려 스스로의 자아마저 헌납해버린 나약한 부품들이라고!"

"...당연한 소리 아닙니까! 당신이 그런 일을 꾸미고 떠밀어 놓고선! 냉소적으로 그들을 비웃으면 당신이 뭐라도 되는 것 같습니까?"

"뭐라도 되지, 보시다시피 난 지금 그녀들의 피에 놀아나지 않고, 오히려 그걸 이용하고 있거든. 안 그래?"

"이용하고 있단 건 당신만의 착각입니다! 자신의 운명을 떨쳐내려 했던 맥베스가 그러했듯이!"


극단의 두 명의 주역, 발퀴레와 극작가.

극작가는 분명, 내가 악몽에서 아직 해어나오지 못 했을 때-


"엑스트라."

"예, 그대여."

"극작가가 분명 이 녀석들의 정신을 깨워줄 탄환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 않았어?"

"...! 그렇습니다, 그렇군요. 만일 써 버렸다고 해도 제가 옆에서 그녀에게 피를 나눠준다면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그럼 그쪽으로 가야겠네...시발 어떻게든 저걸 뿌리치고서 말이지!"


워커 두 기가 추가로 달라붙었다, 이제 정말 밀리는데 이거.

2형태는 무게로 압도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자칫하면 내가 한순간에 짜부될수 있을 거고...

무엇보다도 저기 워커 파일럿들의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는 걸 생각해보면, 자칫하다간 저 녀셕들까지 죽인다.

3형태? 뭘 어떻게 하지? 저 괴물에게 코어란 게 있어? 연료통을 찾아야 하...


왜 다 연료통에 구멍이 뚫려 있지? 난폭하게 구멍 뚫린 거 보니 겟탄의 드릴인데?

근데 저러고도 움직여? 에딧의 외골격에서 에너지를 보급받는 건가? 그게 아니면...


쿠구궁, 대지가 움직였다, 동시에 검은 균열이 생기더니 한순간 뒤집혀, 순식간에 갈라지고 뒤틀리며.

사방에 가시가, 촉수가, 정체를 알수 없는 실루엣이, 투사의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미리내 스승님의 힘으로도 이 대지에 악몽이 퍼지는 걸 완전히 막을 순 없었나 보군요, 시간이 없습니다 그대여."

"애초에 스승님 반 죽어가시는데 이때까지 막은 게 용하지...근데..."

"윽...!"

"이것들은 도대체 왜 안 떨어져!"


여전히 나를 찍어누른 채로, 그대로 바닥에 밀착시켜 압사시킬 기세로.

압도한다, 서서히.

마치 서서히 짜부라지는 내 표정을 감상하며 즐기기라도 하듯.


"섭하지, 이것들이라니. 난 인간인데."

"너 인간 아니야...! 그건 확실해!"

"아니 인간이야, 우리야말로 완전한 인간이지."

"야 너야말로 우리라고 하지 마, 너랑 엮일 바엔 인간 안 할란다 진짜, 테라피스트 콘서트 가서 진화체 되고 말지."

"..."


그녀의 입 안에서 뿌득, 하는 소리가 들리며, 이젠 내 몸에서 뿌드득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또 흉골인가? 아니면 손목? 손목인 듯 했다. 엑스트라도 회복력으로 버티고 있을 뿐.

실시간으로 상처입고 있는 건 매한가지였다.


"...그대여, 절 놓고 빨리 가십시오! 그대만이라도 탑에 도달해야...!"

"아니 차라리 뒤지고 만다, 애초에 너 없으면 성공할 작전도 아니고."

"그렇지만...!"

"그거 알아, 에딧?"


철의 틈 사이로 물끄러미 바라보는 에딧의 시선, 그것만은 시야에 확실히 잡혔다.

"인정할게, 뭐 빅픽쳐 세우고 이런 개쩌는 병기 만든 거, 너가 협회에 있었다면 S급 랭크 따윈 케이크 먹듯 쉬웠을 거야."

"..."

"선로도 그렇겠지? 그 잘나신 CEO의 직속부대가 되었을 수도 있었을 테고, 제약에선 새 회장이 되었을 수도 있겠지."

"...난 이미 제약의 회장이야."


아 미안, 근데 웃음이 나오는 건 별수 없잖아.


"근데 여기서 뭐 하고 있냐? 그런 기회를 차 버렸다면 인생을 즐기기라도 하던가 그러지도 못하네?"

"..."

"내가 여기서 너한테 짜부라지고 있는 이유는 내가 이곳에 오길 택했기 때문이야, 근데 넌?"

"..."

"애초에 모든 걸 걷어차버리고 악수의 악수만 두는데 행복하지도 못하면, 도대체 왜 사는 거냐?"


...팔에 가해지던 압박이 줄어들고, 내 몸이 그것에게 잡혀 떠올랐다.

뭐 설득됐나? ...는 당연히 아니었고, 다만 날 그냥 양손으로 잡아 다진 패티로 만들 생각인 듯 싶었다.

그런데 한 팔은 엑스트라가 막고 있...왜 팔이 두 쌍이야, 아 맞아. 워커 두 기가 새로 왔지.


"...그대여!!"

엑스트라도 두 배로 불어난 팔과 미친 듯 달려드느는 파일럿들을 뿌리치려고 애를 쓰는 듯 했다.

그때처럼 진심으로 분노하면서, 그 눈빛에 진노를 머금고.

안 되는데, 테라피스트 때는 쟤가 없었으니까 괜찮았는데 지금은 정말 화낼지도 몰라.


하지만, 왜일까.


"...죽기 전에 할 말은?"

"멋있어야 할 대사도 추하게 뱉는 너한테 해주고 싶은 말, 전혀 없어."

"..."

"나 하나 이렇게 한다고 바로 전의를 잃을 방붕이 새끼들도 아니고."


"죽여, 그 편이 마음 편하니."


"...그렇게 할ㄱ"



"죽으면 안 되지!!"


퉁, 한순간 느껴지는 강한 압박, 정신을 차려보면 나는 허공을 날며 정신없이 회전하고 있었다.

방금 뭐에 맞아서 날아간 거야? 애초에 방금 그 무거웠던 금속 덩어리들을 뿌리칠 만한 물리력이 있어?

호 선생이 벌써 투사를 제압했나? 그건 아닐-


턱, 다시 한번 엉덩방아를 어딘가 크게 찧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뭔가 푹신한-

"...으으으..."

아 엑스트라구나, 미안.

아니 그것보다, 이건 분명 워커의 손인...


"...와, 방금 들이박은 거 정말! 엄청 아찔하고!"

삐걱이는 기체, 반쯤 떨어진 외부 장갑들.

거의 반파되어, 손잡이 몇 개나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헤진 조종간.

그러나 그것은 그닥 상관 없었다.


"개쩔었어!"

재버워크, 기계 날개에서 뻗어나온 케이블에 워커를 연결해 조종하는 소녀.

겟탄의...딸.

그녀는 이제 아예 워커의 조종이 몸에 익어버린 양, 가볍게 한바퀴 돌면서...우욱.


"몸은 괜찮아? 너는 내 오빠랑 아빠 상사잖아, 여기서 죽으면 내가 곤란해져."

"재버워크, 극작가한테 데려다 줘. 그리고 찾으면 그대로 탑까지 가자."

"탑?! 저기 이미 뭔가 시커먼 걸로 가득 찼는데? 용 누나랑 선글라스 남자랑 진화체랑 저기 안에 다 들어가 있어!"

"...저기 안에서 싸우나 보구만."

"위험하지 않을까?"


"근처에 데려다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아니면 도망가. 네 아빠였어도 그 말 할 거야."

"...정말?"

"어, 니 아빠랑 나랑은 족같...이일 저일 다 같이 겪어본 사이라 백은 몰라도 절반 정도는 서로 알 거야."

"싫어 그건."


살짝 놀라서 재버워크를 바라보니, 그곳에는 소녀가 있었다.

아까처럼 비행을 즐기는 표정이 아닌, 마치-

연말, 성탄절의 전야에 풀죽은, 산타의 선물보다도 아버지가 일찍 돌아오지 않아 걱정하는 아이의 표정과도 같이.


"...싫어, 버려지는 건 한번 만으로 충분해. 오빠도 아빠도 엄마도. 너도 모두. 더는 잃지 않아."

"..."

"나도 갈 거야, 가게 해 줘. 어쩌면 그 못된 수녀의 로봇도 내가 조종권을 훔쳐올지도 모르는 거잖아?"

"...그래 그러면."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한순간 고도가 낮춰진다.

한순간 몸에 힘이 풀려 주저앉자, 엑스트라가 나를 끌어안았다.

"...그대가 죽이라고 그렇게 적에게 고할 때, 전...어떠한 문학으로도 서술할 수 없는 비극을 느꼈나이다."

"미안, 근데 본심은 아니었어. 에딧한테 엿 좀 먹이고 싶었거든."

"신뢰하고 있나이다, 그대가 그 누구보다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는 것은...다만 그 안의 아픔 또한 사실이었겠지요."


그녀는 자신의 손을, 그곳에 새겨진 파일럿들의 상흔을 바라보았다.

"아픔, 두려움, 아무리 과격한 명령이라도 따르지 않으면 내일이 없을 거란 절망."

"...파일럿들과 싸우면서 느꼈구나."

"느꼈습니다, 공감했습니다, 다만 칼을 맞대지 않을 순 없는 노릇이니..."


그리고 주먹을 꽉 쥐자.

"...그때처럼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 하겠지요, 동부 때와는 사뭇 다르겠지만..."


극작가의 탄환, 엑스트라의 불꽃.

저 워커들의 정신을 깨워주고, 동시에 골칫거리들을 해결할 수 있는 카드들.

그리고 또 하나.

꿈 속에서 행한 일이라 잘 기억나질 않는 건지, 혹은 나조차도 제대로 다룰 새도 없이 깨어나서 모르는 건진 모르겠지만.

분명 하나 있었다, 악몽 속에서 깨어나기 위해서 내가 했던 것.

손을 뻗자 나는 꿈에서 깨어났고, 거미에게 오해받았고. 또...


그때처럼 손을 뻗어 손가락을 한번 꼼지락거리려 할 때, 재버워크가 입을 열었다.



"한 걸음씩 나아갈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곧 도착해! 아빠랑 저격수랑, 오빠 있는 곳으로!"

"벌써?"

"응! 그리고 착륙할 때 조심해! 벌써 뒤에 바짝 따라붙었으니까!"


뒤를 돌아보니 갸아아악 시발, 앞을 보자.

앞을 보니 저기 저, 육안으로 또렷히 잡히는 거리에 싸우는 이들이 보인다.

정면으로 맞부딪히는 바스티오와  근성의 권, 하늘에 뜬 적을 상대하는 프래자일과 수녀원장.

적들의 연료통과 틈을 노리는 겟탄과 멈멈미. 그 중 멈멈니는 한순간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아, 방금 입으로 욕했다.

미안하다 그래.

그래도 그거 아냐?

고맙다!


감사한 마음을 담아, 난 그대로 돌진했다.


=====신호가 불안정합니다, 인터넷이 원활한 환경을 탐색 중입니다...


"아 지랄 또 연결 끊겨? 아까 전에 땅 뒤집어지더니 그때 인터넷도 같이 끊겼냐?!"

"그 말 할 시간에 연료통 하나라도 더 뽀개!"

"누군가는 연락책이 되어야 할 거 아니... 콜록...어우 매캐해, 근처에서 뭐 불탔냐? 냄새가..."

"저기 저 하늘의 검은 안개가 점점 공기를 물들이는 것도 있고...."


근성의 권이 누군가를 들어올렸다, 군청색으로 변색된 눈동자에, 어느새 새하얗고 검게 변한 눈동자.

그것의 눈은 빛나는 것보다는 눈물 흘리고 있었고, 무너져 내려가고 있었다.

"...막아야 해, 막아야 해 막아야 해, 막지 않으면 채집실에 가고 말아...그건...싫어, 싫어...노랫소리가..."

"이것들도 보시다시피, 구멍이란 구멍에선 다 이런 게 흘러나오고 있어서."

"그럼 이거 시발...누군가의 체향이라는 거 아냐? 어쩐지 뭔가 익숙하게 족같더라...."


멈멈미가 겟탄을 툭툭 건드렸다, 칼등이라 묘하게 불쾌했지만.


"아씨, 같이 싸운 S급이라지만 이런 식으로 치는 게 맞냐? 나도 너 드릴 끝으로 건드려 볼까?"

"넌 보고 피해라."

"...뭐?"

"저거 꽤 크다."

"...어? 딸! 여기...어 씨발, 오지마! 오지 마!"


"그렇게 말해도 별 수는 없을 거다, 저쪽의 뒤를 쫒는 건 꽤 큰 워커니까, 비장의 수라도 되는 건가?"

"그걸 왜 이리로 끌고 오냐고!"

"이쪽으로 올 수 밖에 없던 이유가 있는 거겠지, 우리 중 하나가 필요하거나, 아니면 우리 전원이 필요하던...가!"


겟탄과 멈멈미가 무기를 치켜들고 합을 맞추지도 않고 동시에 우리를 받아쳤다.

어느새 뛰어온 바스티오가 양손으로 우리를 붙들고는, 그대로 한바퀴 빙글 돌아선 그대로 우리를...

"으그그그극..."

모래사장속에 던져 버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뒤, 뒤에 바짝 따라오는 상대는 그것조차 개의치 않는다는 듯, 에딧은 그대로 주먹을 들어올려.

앞을 가로막는 바스티오를 그대로 때리고, 난타하고, 네 팔로 그대로 주변에 모래바람이 일 때까지 후려쳐-


"..."

"하아...하아...하아..."

"..."

"피멍이 들고 뼈가 부러질 때까지 때렸는데...왜 안 죽는 거지?"


바스티오는 자신의 몸에 묻은 모래먼지를 스윽 털었다.

"단련된 육체기 때문이다, 기초적인 운동만 반복해도 몸에 새길 수 있지."

"...그깟 거, 나도 입에 피를 토할 만큼 했어."

"그래 보였다, 임무를 할 때도 넌 자주 운동을 했으니. 다만 이쪽은 꽤 혼혈치고는 운이 좋은 편이라서 말야."

"..."

"안타깝군, 그쪽에 한해선 내가 더 우월하니."


나처럼 비꼬거나, 상대를 깔 필요도 없는 순수한 악의.

그녀는 다만 솔직하게 말하고 상대를 동정할 뿐이었다, 그런데도 몇 마디 말에 저런 파괴력이라니.


"...이쪽이 우월한게 더 많은데, 어떡하지?"

"그런가, 부럽군."

"기술력도, 부품도. 심지어 시간도."


탁한 공기가 주변을 감쌌다, 흐린 안개가 끼듯 서서히. 탑도 이젠 잘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투사의 슬픔과 분노는 곧 남부 전역을 덮을 거야, 그렇게 되면 게임 끝이지."

"음?"

"봐, 아까 전에도 땅이 뒤집히고 현실이 일그러졌어, 완전히 악몽에 뒤덮이면 더 끔찍한 게 튀어나오겠지."

"예를 들어?"

"너희들이 가장 끔찍하게 여긴 악몽들이 말이야."


겟탄이 아, 하는 소리를 내뱉었다.

"...설마 아까 전부터 보였던 저 흐릿한 실루엣들이 저것들이야...?"

그가 가리킨 실루엣, 그것은 지목받았음을 느꼈는지 한순간 일렁이기 시작했다.


일렁이며, 형태를 잡고...거대해지더니.

아 이런.

겟탄도 똑같은 생각이었는지 욕을 한번 시원하게 뱉어주고는.


"난 또 악몽이라길래 메카 좀비 상어 군단이나 거대한 마시멜로맨 같은 게 나올 줄 알았는데..."


"너가 내 악몽이었구나? 하긴...처음 박살났을 때 진짜 울고 싶은 마음이긴 했지."


눈앞에 드러난, 열차 여러 대가 모여 겹쳐져. 헤드라이트는 눈처럼 빛나고, 밑부분은 입처럼 길게 벌어진.

강철로 된 짐승의 환영을 응시했다.

멈멈미는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겟탄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넌 그나마 양반이군."

"...야이 씨! 거대한 걸 상대해야 하는데?!"

겟탄은 그것이 내지른 거대한 팔을 피해, 그것에 올라타 빠르게 달려 그것의 머리로 다가갔다.

"우리 딸 한창 사춘기 때 미쳐있었을 때 쓰던 공격방식이라 비슷해서 다행이네!"

그리고선 드릴을 머리통에 집어던지자 파삭, 다 탄 연탄재를 걷어차듯 순식간에 없어져 버렸다.



"어쨌든 너가 드릴로 꿰뚫는데 망설임은 없잖나, 하지만 악몽은 사람마다 다르다. 예를 들어..."

"음..."

"자기가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사람을 다시 한번 잃었을 때의 감각은..."


멈멈미 쪽으로 실루엣이 다가왔다. 서서히 형태를 바꾸더니 어느 노인의 형태로 모습을 바꾸었다.

머리를 뒤로 넘겨 묶고, 술병을 찬 채로. 그와 똑같이 생긴 검을 찬 자.


"...말로 표현할 수 없겠죠. 안 그렇습니까? 제 마음 속의 스승님이여."

"야 너..."

"동정할 생각 마라, 아픔이라면 나보다 더한 자도 많아. 그리고 너가 대신 저걸 상대하는 게 나을 거다."

"...내가? 저거를? 딱 봐도 접근하는 순간 손 날아가는데?"

"한순간 내가 방심했다가 베여서 전력을 손실하는 것보다야 낫지 않나, 게다가 아직 워커들도 남아 있고..."


워커의 파일럿들이 터벅터벅 걸어간다, 눈앞에 펼쳐진 인외마경을 피해 도망치듯.

그러나 땅에서 피어나기 시작한 환영은 그녀들에게도 예외를 두지 않았으니, 서서히 걸어와 그녀들과 눈을 맞추며.

"아아...아...아..."

에딧의 모습으로, 그 환영을 바꾸었다.


"와 씨발...세상 한번 뒤집혔다고 이젠 썅년을 하나 사면 하나 더 얹어 주네."

내가 욕지기를 내뱉자 멈멈미는 공감한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저래서 워커에 파일럿들을 대동했군, 우리가 베어버릴 수 없다는 걸 알아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전력이 될 수 있어서였어."

"...하아."

"하지만 결국 환영, 악몽. 깨어난다면 더는 해칠 수는 없다. 또렷한 수라도 있나?"

"극작가."


내가 그 이름을 부르자마자, 저 멀리서 달려오고 있던 누군가가 목소리를 냈다.

"음 극단장 남편, 불렀어?"

"그때 나한테 쏴줬던 거, 아직 남아 있어?"

"체호프를 말하는 거려나? 나쁜 소식은 총은 여기 있지만 총알은 없어. 만들 순 있긴 하지만 조금 오래 걸릴 테고."


뒤따라온 해골세개가 낭패라는 듯 총알 하나를 꺼내 들어 보였다.

"저도 총알이 한 발밖에 남아있질 않습니다."

"...저게 좋은 소식."

"응?"

"그 대용으로 써먹을 수 있는 총알이 남아있단 거지."


극작가는 해골세개가 보여준 총탄에 양손을 감싸쥐었다, 결과적으로 양손을 꼭 잡아준 모양새가 된 건 당연했다.

"...말했잖아? 뭐든 꿰뚫을 수 있는 마술 총탄, 인간의 마음도, 두려움도. 너가 원한다면 꿰뚫을 수 있어."

"하지만 그러면 총알이 한 발도 안 남게 되는데..."

"괜찮아, 계획은 나한테 있으니까...남은 건 동의일 뿐이야, 마지막 남은 한 발을 쓸 각오와 방향."


그녀는 슬쩍 고개를 돌리며 엑스트라를 바라보았다.

"극단장."

"예."



"거래하자, 당신의 피를 줘, 내 피를 줄게. 난 활력을 얻고 당신은 내 힘의 일부를 쓸수 있을 거야."


엑스트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저의 소임이라면...허나, 당신은 괜찮으십니까?"

"음?"

"그대의 악몽이 피어난다면, 그대 또한 상대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극작가는 그 말에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어떤 환영도 자신들에게 다가오지 않고, 형태를 바꾸지 않는 풍경을 보았다.


"우리 주변엔 환영이 없잖아 극단장...보니까, 어지간히 미친 놈들은 악몽이 끼어들 틈도 없는 거 아냐?"

"...아."

"그거 아냐? 상식적으로 그거지? 이야...하하하, 극단에 들어가길 정말 잘 했네."

"그렇다면."

"음, 부탁해...피도 좀 부탁하고."


엑스트라의 손끝에서 피 한방울이 흘러내렸다. 극작가는 손바닥에 그것을 받아 지체없이 흘려넣었다.

"...언제 마셔도 각별하단 말이야, 선대의 맛과는 다른 상냥하면서 강인한. 꺾이지 않는 활력..."

"..."

"키히히힛...하하하하...아하하하하하하! 이거야! 이거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겠어!"


"...!"

에딧은 그쪽으로 달려들려고 했지만, 여전히 붙들고 있는 이가 있었다.

바스티오, 그리고 근성의 권.

두 명의 완력과 거의 대등한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던 그녀는 이내 이빨을 갈며, 토해냈다.


"...저것들은 강한 진화체의 영향권 아래에 있을 뿐인 특별 케이스야, 너희들 같은 평범한 것들은 악몽의 영향을 받지."

"그렇겠지."

"..."

"과연 너희들의 가장 끔찍한 공포가 나타났을 때도 똑같이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그...악몽이 저기 저 재버워크란 애한테 존나 따먹히는 꿈일 게 확실해서."

"..."

"웃지 마, 그땐 진짜 반쯤 죽는 줄 알았으니까."

근성의 권이 진심으로 그렇게 답했다, 쾌락은 쾌락이지만 고통은 또 다르다는 듯이.


"이쪽은...음...좋다곤 할수 없는 꿈이다, 용병 동료들을 잃는 건 확실히 싫고 두렵고 괴롭지."

"그 교활한 것들이 짜내는 불사의 전술이야, 너 같은 힘으로 몰아붙이는 녀석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아니? 그건 그거고 내가 이긴다, 애초에 초커의 약효가 다 되어 폭주하는 동료들에게 안식을 준 게 나였으니까."

"..."

"하지만 그때 미안하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으니...지금에서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기회를 주어 고맙다."


환영으로 빚어진 에딧들이 긴 도검을 휘두르며 바스티오와 근성의 권을 노렸다.

두 명은 동시에 자신들이 붙들고 있던 강철 팔을 밀치고, 각자의 방식대로 동작을 취해 주먹을 꽂아 넣었다.

한 쪽은, 미끄러지듯 깔끔한 위빙 동작을 취한후 정확히 턱주가리에 훅을.

다른 한 쪽은 군더더기 없이 딱딱 떨어지는 동작으로 칼날을 잡아챈 후 복부에 연타를.


일렁이는 검은 안개로 빚어진 실루엣 뒤로, 서슬퍼런 검날이 한순간 번쩍였다.

"아라무스."

"이런 걸 베는 거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리고 멈멈미는 미끄러지며 칼을 집어넣었다, 뒤늦게 따라온 검격과 소리를 두고온 채.

짧게 호흡하는 아라무스에게 손을 내민 바스티오가 입을 열었다.


"너가 부럽군, 아무래도 난 환영이라 한들 스승의 얼굴이 아른거리면 망설이게 되어 버려."

"나야말로 너가 부럽다, 그만큼 애정이 있었으니 그렇게 된 것 아닌가?"

"그렇지...나중에 묘라도 한번 찾아가 봐야겠어."

"풀 위에 술을 뿌려줄 그 날까지 살아야겠군, 그렇지 않나? 그렇다면 너의 스승은 내가 맡지."

"저 년의 환영들은 내가 베겠다."


무수히 쏟아지는 환영들의 검무, 그것을 아라무스는 홀로 받아쳤다.

받아치는 족족 겟탄이 회전하는 드릴로 구멍을 뚫고, 근성이 머리를 강타하고.

그 사이사이의 환영 속에서 이성을 잃고 달려드는 파일럿과 주인을 잃은 워커들은.


"...스읍-"

프래자일이 성대가 찢어져라 내뱉는 음파에 밀려, 장갑이 찌그러져 밀려나 버렸고.

"미안하지만 가게 둘 순 없어, 극단장님이 연극을 준비하고 계시거든. 그러니 나와 악수하는 걸로 참지 않을래?"

"...아으."

"슬픔, 비애. 다 알아. 하지만 그건 제 3자의 시선으로 비춰 보게 되었을 때 비로소 제 색이 살아나는 법이거든."

"..."

"그러니 그 때까진 마음껏 싸우면서 한을 풀자, 여긴 그 악역도 없고 악몽도 없어...오로지 너희들도 품을 마음으로 있는 나뿐이지."


파일럿들은 한순간 피로 빚어진 공간 안에 가둬져, 끊임없이 회복하며 되살아나는 발퀴레에게 날붙이를 내질렀다.

피로 빚어진 창을 휘두르고, 방패로 막고. 날개를 펼쳐 도약하고. 아름다운 광경을 보여주는 주역은.

베이는 상처에도, 뚫리는 상처에도 개의치 않고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


"아, 옛날 생각나네...그렇지? 남편."


"생각은 나는데...왜 나까지 여기 가둔 거야?"


"남편 상처 봐, 팔뚝. 처음엔 살짝 났었는데 들고 있는 무게 때문에 계속 벌어지고 있었어."


"그랬었어 시발?! 고맙다, 그런데 그 총알은 어떻게 잘 완성 되가?"

"극작가? 음...아, 들리진 않는 모양이네, 아마 공간 탓도 있겠지만 걔 원래..."



"...집중하면 남의 말 잘 안 듣거든."



"극작가! 아직 멀었나?! 젠장! 끝도 없이 밀려오는군, 워커의 파일럿들이 이렇게 많았나?"

"아니, 악몽이 계속해서 재생성되는 거야! 끝도 없이! 정말 현실이 뒤집혀진 게 맞는 모양이긴 하네."

"캐투스 신문은 이거 보면 뭐라고 기사 내려나? 애초에 현실성 없어서 낼수 있긴 한가? 하하!"

"지랄은 거기까지! 실성은 나중에 해라 겟탄! 엎드려!" 


사방에 원형으로 빚어진 검격을 날린 멈멈미는 한번 더 칼을 휘둘러 주위에 밀려닥치는 검은 재들을 털어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또다시 다가오고, 다가오고, 다가온다.

멈멈미는 다만 한숨을 내뱉으며, 다시 한번 박차고 대지를 도약-


"..."

그의 눈 근처에, 붉은 궤적이 스쳐지나갔다.

피보다도 더 붉고, 빛나는 선명한 선홍색의 궤적은- 곧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스스로 방향을 꺾더니.

방향을 꺾어, 파일럿들이 갇혀 있는 공간을 향해 뚫고 들어갔다.


바늘에 걸린 실을 꿰듯 하나 둘, 순식간에 수십 명의 가슴팍을 뚫고 지나가는 탄환.

그러나 아무런 상처도 없이, 피 한방울도 없이 지나갈 뿐이었다.

지나간 흔적에는, 텅 비어버린 흔적만이 가득했고.


곧 그것을 채우는 것은 한순간 스쳐지나간 불꽃.

온기, 따스함, 안도감.


"...아."

눈물 한 방울이었다.

맑아진 파일럿들의 눈망울이 자신의 손과 다리를 바라보더니 이내 너나 할것 없이 축 늘어져 쓰러졌다.

기력을 전부 써 버린 여파를 이제서야 받듯이.

기절해버린 대상의 악몽은, 꿈조차 꾸지 않는 깊은 수면에 영향을 받듯 일그러지다가 한순간 자취를 감춰 버린 것이었다.


"...고작 총알 한 발 쏘려고 그 시간을 끌었구나, 아직 나한텐 더 많은 부품이 있단 거 알지?"

말대로, 아직 악몽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파일럿들이 아직 많...

타다다다다다.

이윽고 퍼지는 연발의 소리가 있고, 사방에 붉은색 궤적을 그린 총탄이 비산했다.


각자 목표한 심장에 날아와 꽂혀 그 사람에게서 태어난 악몽을 없애고, 적을 기절시키고.

그것이 박힌 아군에게. 생명력과 고양감을 선물했다.

이것은 극작가만의 힘이 아니었다, 이건...


"흥미있을진 모르겠지만...옛날엔 타자기란 말에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고 해."


"대서특필될 신문과 대소설의 주제가 될 사건을 만들어내는 총의 이름과, 그것을 기록하는 기계의 이름."


"소잿거리를 만들어낸단 점에서, 손가락을 통해서 박자감 있는 소리를 만들어낸단 점에서 그것들은 꽤 유사하지."


"내 직업과도, 꽤 밀접하지 않아?"


극작가의 복장이 바뀌었다.

저격총에서 거대한 드럼 탄창을 장착한 구식 기관총으로, 수수한 복장에서 중절모를 쓰고 재킷을 걸친 복장으로.

피를 이용한 복장은, 마치 보스를 지키는 히트맨과도 같은 그녀의 직책을 한층 부각시켰다.


그리고 그녀의 비호를 받으며 걸어나오는 여인은 손을 뻗어-

피로 빚어진 가시 덩굴을 뻗어 순식간에 에딧을 휘감았다.

한순간의 저항할 새도 없이 휘감겨 버린 그녀를 몇 번이고 덩굴째로 흔들더니 이내 수 차례 내려찍었다.

워커의 파편이 떨어져 나갈 때까지 몇 번이고.

뒤이어 달려오던 하늘의 다른 워커들도 한번에 꿰뚫고 꽃이 피어나 일격에 흔적도 없이 분해해 버리면.


극작가의 수많은 총알들이 각각의 파일럿들에게 날아가 꽂혀, 한순간에 기절시켜 버렸다.

곧 덩굴이 들썩이며, 에딧이 그 안에서 워커의 슈트들을 잃은 채로 기어나와 외골격의 도움을 받아 그녀에게 달려들면.


"...너...너!"


그녀의 손끝에선 피로 이루어진 레이피어가 여러 개 생겨나, 화염의 호를 그리며 돌아 그녀를 튕겨내는 것이었다.

연기를 풍기며 떨어진 에딧에게 그녀는 걸어나왔다.

한순간 전 극단장을 떠올리게 한 채로 살벌한 눈을 한순간 보이면서도.

그 속에 있는 아련한 감정을 바라보면 그 안엔 여전히 그녀가 그대로 있음을 알수 있었다.


"...극작가가 집필을 시작한 동안 저 또한 힘을 보충해야 했으니...일시적이지만 두 주역분들의 힘을 저 또한 다룰 수 있나이다."

"그깟 걸로 승기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투사는 그런 불꽃도 얼마 안가 적응해 버릴 걸?"

"그대여."


그녀는 손을 튕겨, 땅에서 붉게 타오르는 가시 덩굴을 솟아오르게 했다. 솔직히 꽤나 살벌한 모양새였다.

"같이 가려 했으나, 이곳이 제가 있어야 할 곳인것 같나이다. 투사를 막기 위해서 그대는, 탑에 올라가 주셔야 합니다."

"알았어."

"이것에 휘감겨 계시면 제가 그곳까지 바래다 드리겠나이다, 이것은 당신을 지키는 요람이요, 등불이요, 창이 될 터이니."

"...저거에 말이지."


나는 엑스트라를 믿고 휘감겼다, 조금 두렵긴 했다만.

한순간에 나를 휘감은 이 가시덩굴은 따뜻하고...포근했고...생각보다 바깥이 잘 보였다.,

"...우왁!"

바깥이 흔들려도, 땅에 균열이 가도. 마치 물침대에 올라온 것 마냥 편안하게 보호해주는 이것.

그것에 저 멀리서 눈치를 보다, 빠르게 뛰어오는 이가 있었다.


"극단장 언니."

"...왜 그러십니까, 재버워크?"

"나도 같이 가야 해 저기, 나도 태워 줘."

"딸?!"


어느새 함께 싸우고 있던 주역과 겟탄은 화들짝 놀라 그녀에게 달려갔다.

"저긴 진짜 위험해! 저 이상한 환각 괴물 만드는 안개가 저긴 더 짙고 독하다고."

"뭐야, 뭔 일인데? 어딜 간다고?"

"저기 간다잖아! 딱 봐도 무너지고 있는데! 지하는 괜찮다지만 거기 있어도 위험한 건 매한가지야!"

"저기에 내가 필요한 곳이 있어! 내가...그리고..."


재버워크는 손에 무언가를 들어 보였다, 녹색으로 빛나는, 어디서도 본적 없는 기묘한 형태의 엔진.

그것을 노려보던 재버워크는 곧 그것을 꼭 안아들며 말했다.


"이 엔진이, 저기에 쓰이길 바란다고 외치고 있어, 저 탑이 무너진 지금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고."

"외친다고 다 가니? 야 임마, 지난번에도 말하지만 물가에 애가 뛰노는데 그냥 가리?"

"그 걱정해주는 사람을 잃고 싶지 않아서 이러는 거야!"


재버워크는 한순간 고함을 쳤다, 그녀의 등에 빳빳이 일어난 작은 날개는 그녀의 감정상태를 대변해 주는 것 같았다.

"그 진화체를 얽어매고 있는 속박은 생각 이상으로 많아...꿈속에서의 일은 내가 어떻게 할 수도 없고 하더라도 방해만 되겠지만..."

"..."

"현실의 기계들을 풀어내어 원래의 역할로 되돌리는 거라면 내가 할 수 있어."

"..."

"부탁해 엄마, 아빠...나는...옛날의 부모처럼 대해주지 않는 가족을 잃고 싶지 않아..."


주역은 물끄러미 흠, 하고 턱을 짚더니 피로 만든 창과 방패를 거두고는 말했다.

"...다 같이 가면 되는 거 아닌가? 극단장, 저기 자리 남아."

"많습니다, 가실 생각이십니까?"

"응."

"...! 제정신이야 엄마?! 위험하다니까?! 게다가 이 일은 나만이..."


스윽, 그녀의 머릿결을 쓰다듬은 주역이 이윽고 꿇어 앉아 그녀와 눈높이를 맞췄다.

"...다음에도 또 그런 말 하면 혼내줄 거야? 나도 너랑 똑같이 그거에선 물러설 수가 없어."

"왜!"

"너는 내 딸이니까."

"..."

"말이 더 필요하니? 있지, 때로는 대배우는 말 한마디로 많은 감정을 담아야 할 때도 있는 거란다."


그러자 재버워크는 땅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손으로 눈을 쓰윽 닦아내고는.

"...둘다 나보다 먼저 죽으면...죽여버릴 줄 알아!"

그렇게 젖은 목소리로 외치는 것이었다.

"엄마를 부관참시할 셈이니?"

"그건 걱정 마라, 느네 엄마가 나 그런 꼴은 못 볼 거야, 근데 빠르게 움직일래? 또 저기서 뭔 짓 할지 두렵다."


맞아 에딧.

겟탄 패밀리가 빠르게 이 불꽃 덩굴에 함께 휘감기는 사이, 나는 고개를 돌려 에딧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왜?

아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다만, 눈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파란색, 보라색. 이따금 투명한 색도 있었지만 그것은 곧 다른 색조에 섞여 사라졌다.

그녀의 몸을 뚫고, 비집고 나오려고 하는 음표들과 나비들, 피에 젖은 꼬리들.

그녀는 그것들에 괴로워하며, 괴성을 섞다가 곧.


"아니...아니아니 아니! 너희들 따위가 내 몸을 통제하게 두지 않아!"

그렇게 비명지르며, 검을 역수로 집고는, 스스로의 배를 겨냥해서 그대로-



"..."

뭐 하나 쟤?!



"내가 바라보는 세계야, 내가 판단하고 내가 검을 휘둘러! 진화체 따위에게 내 마음이 허락할 공간은! 없어!"

그녀의 몸이 꿈틀거렸다, 뻗쳐나온 것들이 다시금 그녀의 안으로 말려들었다.

그것들은 외골격 안으로 들어가, 그녀가 찌른 곳에서 싹을 트면서-


"아아아아아악!"


그 변화가 위험하단 걸 직감한 듯, 엑스트라가 덩굴을 뻗고 수많은 레이피어와 함께 돌진했다.

바스티오는 검을 창을 던지듯 집어던졌고 멈멈미는 발도를 마쳤다.

나는-나는,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엑스트라를 저렇게 놔둬선 안 된다, 그런 본능이 치밀었다.


그러나 먼저 움직인 것은 덩굴이었다.

한순간에 탑을 향해 돌진하는 불꽃의 줄기, 순식간에 멀어지는 풍경.

그곳에서 마지막으로 본 것은.

에딧이 뭔가 다른 것으로 변질되기 전, 엑스트라가 나를 돌아보며 지은.


처연하고도 애써 밝아지려 하는, 그런 불꽃같은 미소였다.


"...야 방금 그거 위험한 거 아냐? 돌아가야 하지 않겠어?"

"괜찮아, 극단장님은 무사해. 애초에 이것처럼 힘든 일도 꽤 많이 겪었고."

"..."

"그러니까 극단장 남편님도 진정해, 알잖아? 당신의 반려는 강해, 상상 이상으로."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깥의 풍경이 검은 안개로 뒤덮였다.

먹구름을 뚫고 들어가듯 무섭게, 아니 잠깐만...실제로 방금 번개가 친 같은데.

아니..아니었다, 저 멀리 보이는 푸른 번개는, 자연현상이 아니라...


미리내가 내지르는 별의 에너지, 번개를 연상케 하는 힘이었다.

그것이 맞다는 듯 곧 불꽃의 방벽 너머로 안개를 조금씩 씻어내리는 푸른 비가 떨어졌다.

정화해서 이 정도라는 것인가, 어느 쪽에 더 전율해야할지 알수 없는 상황에서, 미리내가 이쪽을 알아채고.




"어? 제자ㄴ-"

걷어차였다.

촉수보다는 이제 무언가의 꼬리에 가까워진 것을 여러 개 단 채로. 짐승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그녀를 향해 달려든 투사에게.


그 어마무시한 힘에 날아가던 미리내는 이내 허공에서 자세를 다잡고서는 날아올라.

순식간에 각도와 속도를 바꿔가며 별의 창을 휘둘렀고, 동시에 뒤따르는 나머지 별들을 쏟아부었다.

투사는 그런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한순간 그것이 뒤틀리며, 투사의 손은 그녀의 꿈에서의 그것처럼 날카롭게 바뀌었다.


"꿈 다룬다는 친구였단 건 들었는데, 정말 프레디라도 되니 너?"

"그렇다면 해법도 명확하겠지."


호 선생은, 그런 그녀에게 주먹을 매다꽂았다.

순식간에 바뀐 그녀의 표적, 그녀는 허공에서 호 선생을 향해 주먹질을 했으나, 그는 다만 피해나갈 뿐이었다.

공기를 걷어찬다는 미친 방식을 통해, 미리내만큼 정교하진 못하지만 호랑이가 날뛰듯 그렇게 격렬하게.

다만 다치지 않은 건 아닌 듯 했다, 실제로 두 명의 몸에 드러난 상처는 깊었고, 많았으며, 심각해 보였다.


다만 그럼에도, 싸움의 판도는 여전히 두 명에게 우위인 듯 싶었다.

두 명의 미소에는 그것을 확신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리고 나도, 알려줘야만 하리라, 그 승기를 잡기 위해.


"...두 사람 다 조심해요! 여러분의 악몽을 반영한 환영이 저 아래에선 나오고 있으니까!"

"엑, 진짜? 그러면 꽤 곤란한데?!"

"안개 사건의 그것이라도 튀어나올까봐 곤란한가?"

"당연하지! 그럼 남부만 박살나고 끝이면 다행이잖아!"


호 선생은 고개를 끄덕인 뒤 입을 열었다.

"그랬다면 큰일이겠지만...악몽은 실질적인 물리력과 정신만을 갉아먹을 뿐, 독성이 있는 것 같아 보이진 않은데, 아닌가?"

"콜록...호흡은 꽤 괴롭긴 하지만!"

"그렇다면...쓰러트릴 수 있네!"


두 명이 다시 투사에게 뛰어들기 직전.

"두 사람 다!"


예상 외의.

재버워크가 입을 열었다.

미리내도, 호 선생도, 심지어 투사도 한순간 이쪽을 돌아본 듯 했다.

뭐 저쪽은 당혹감 이라기보다는 그냥 새 표적을 발견했다는듯이이쪽오잖아 씹-


투사가 돌진하는 속도를 가볍게 따라잡은 호 선생이 그녀의 꼬리를 한 손에 묶어 휘어잡았다.

그리고서는 그녀의 꼬리를 끌어와 일격을 먹이고, 팔을 휘두르는 상대의 팔을 받아치고, 계속-


"...투사는 잠시 내가 맡고 있을 테니 담소라도 나누시게!"

"고마워! 몇초 안 걸려! 그래서...우리 자기소개를 안 했구나? 넌 누구니?"

"난 재버워크, 이쪽의 딸이야."

"우와!...좋은 부모를 뒀구나! 아무튼 그래서? 우리 둘한테 뭔가 부탁할 게 있니?"



"저 탑을 박살내 줘."



음?

나는 고개를 돌렸고, 미리내는 눈을 부볐다.

겟탄은 얼빠진 소리를 내었고, 주역은 꽤 흥미있는 이야기를 듣는 양 딸의 정수리에 볼을 포개고 있을 뿐이었다.


다만 그 중에서 먼저 반응한 것은. 미리내의 바짓 주머니에서 꿈틀거리다.

익숙하다는 듯, 나무를 타는 것처럼 뽈뽈뽈 기어올라와서는...


"그 말이 맞네."


라면서 동의하는, 수백번 죽어 없어진 새.

남부의 과학자, 총잡이, 정화의 불꽃.

현재는 깡통로봇.

사이.



...솔직히 저 양반이 동의한 시점에서 나는 또 얼마나 길게 이야기를 풀어나갈지 막막하기만 했지만.

그리고 그 동안 호 선생 저 양반이 버틸 수 있을지도.

나는 짧게 한숨을 토하며, 그의 입이 열리길 기다렸다.



"일단은 시간이 없으니 요약부터 하고 가지."



"저 쌍둥이 탑은 엄밀히 말하면 탑은 아닐세."





열차의 레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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