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노예로 엘프를 사다니! 자네 제정신인가!

라는 이야기를 나는 좋아한다.


누가봐도 성노예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죽어가던 메마른 엘프를 싼값에 사와서 씻겨주고 먹여주는 것이 좋다.

노예로 잡혀있다는 것에 이미 마음이 닫혀 죽은 눈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노예를 데리고 다니며 이것저것 시키는 이야기가 좋다.


노예로 잡힌 이후 노예로서의 자세를 배우기 위해 강압적으로 조교 되었고,

그 과정에서 노예들이 죽거나 버려지고 좋을대로 사용된다는 걸 봐왔다고 가정해본다.

노예들이 끔찍하게 고문받거나 팔려나가도 부려지는 그 모습에서 도망치지 못하고 소유물이 된다는 것은,

자유를 사랑하는 엘프들에게 있어선 죽음이나 다름없는 선고일테고, 자신의 무력함에 점점 마음이 닫혀간다.


애초에 인간 세상에 익숙하지 않은 그녀의 시점에서 인간이 늙어죽는 시간을 기다린다, 라는 선택지는 없다.

그들이 언제 어떻게 늙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저 주어진 당장의 미래만을 보며 절망할 뿐이다.

엘프에게 있어선 찰나에 불과할지 모를 시간이더라도, 인간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바로 앞의 어둠만을 바라본다.


그렇게 삶을 달관하며 죽어가던 엘프를 누군가가 사간다.

자신도 끌려가면서 보았던 노예들처럼 다루어질 것이다.

인간은 거짓말을 잘하는 생명체였다.

그 미소는 거짓이다, 그 상냥함은 거짓이다, 그 따스함은 거짓이다.


그렇게 스스로 마음을 닫고 모든 것을 의심한다.

일도 배울 의욕이 없어 서투르고 밥도 잘 먹지 않아 마른 몸은 점점 뼈와 가죽만 남아간다.

차라리 이대로 죽고 싶다는 생각이 스치지만, 죽고 싶지 않다는 생존 본능과 살아남아서 이 절망을 어떻게 돌파할까 하는 보이지 않는 미래에 부딪혀 생존 본능은 점차 어둠에 먹혀 들어간다.


내부부터 썩어가는 마음이 점차 시들어가고 있을 때, 의욕 없이 서투른 자신의 행동이 사고를 불러온다.

사소한 실수, 깨진 접시 조각을 주으려다가 손가락을 베인다.

조각에 베인 손가락에서는 일말의 어둠도 없는 붉은 피가 흘러내린다.


아아, 그런가. 이걸 사용하면...

조각으로 고통을 끝낼 생각을 한다.

단 한번도 화를 내지 않았던 주인이 자신의 실수에 행여 화라도 내지 않을까.

노예로서 받아온 끔찍한 고문이 다시금 섬뜩한 생각을 하도록 조여온다.


주인은 그녀의 다친 손가락을 보곤 그녀를 이끌고 의자에 앉힌다.

아, 어떤 끔찍한 고문을 하는 걸까.

눈을 질끈 감고 고통에 순응하려한다.


하지만 상처에 닿는 차가운 반죽과 같은 무언가와 푹신푹신한 천의 감촉이 손가락을 감싼다.

주인은 그녀의 몸을 걱정하고 있었다.

죽어있던 눈이 점차 생기를 가지기 시작한다.


어째서?

인간은 모두 이기적인 생물이 아니였나?

인간은 모두 욕망에 충실한 생물이 아닌가?

어째서 내가 한 잘못을 지적하지 않고 상처를 치료해주는거지?


남들이 보기에는 별 것 아닌 사소한 것일지라도,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에게는 새로이 반짝이는 별빛이다.

편협하게 닫혀버린 시선이 천천히 뜨여지자 복잡한 감정이라는 빛이 마음을 관통한다.

그 단순한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거짓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것이 닿는다.


하지만 의심한다.


인간은 자신을 이렇게 만든 원흉이다.

아무리 자신을 걱정하고 치료해주고 씻겨주고 재워주고 먹여주더라도...

그것이 그에게 어떠한 이유로 득이 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쉽게 빠지지 않는다.

순진하게 믿으면 자신은 결국 노예가 될 뿐이다.

...하지만, 노예가 되는 게 정말 나쁜걸까?


그녀의 마음속에는 두 갈래의 나뭇가지가 새로이 자라난다.

자유에 대한 갈망의 가지, 그리고 노예로서의 근성이 길러지는 새로운 가지.

절망이라는 어둡고 끈적한 촉수들을 떨쳐내고 희망의 별이 차오른다.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마음을 가져본 적 없는 종족은 엘프이다.

자신에게 돌아온 사소한 호의에 보답하고자 엘프는 주인을 위해 일을 배우기 시작한다.

호의에 보답하고 나면, 갚을 것이 없어지기 때문에. 라는 단순한 명목으로.


남자는 그저 죽어가던 노예를 살리고자 했을 뿐이지만, 어느샌가 내버려둘 수 없게 되었다.

자신의 몸을 좀 더 소중히 여겨라.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타인에게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은 쉽사리 할 수 없는 것.

남자는 엘프에게 많은 것을 베풀어주며 다시 건강해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진심은 언제나 닿는다.


자신을 버리지 않고 따스한 손길을 내밀었던 남자에게 엘프는 의지할 수 있는 호감을 품는다.

나날히 건강을 회복하고 그의 곁에 서서 그를 도와주고 싶어하게 된다.

남자는 건강해진 엘프의 얼굴에서 아름다움을 느낀다.


'아름답다.'


아무렇지 않게 튀어나온 한마디에 엘프는 고개를 돌린다.

줄곧 아름답다고 평가받아 온 인간들의 평가에 익숙해져서 칭찬으로는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호감을 가진 사람에게서 들려오는 진실된 한 마디는 그녀를 홀리기 충분하다.

뒤돌아선 그녀의 귀 끝이 빨갛게 달아오른 모습으로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자신의 귀를 부여잡는다.


자유에 대한 갈망은 시들고, 남자에 대한 욕망에 한 발짝, 또 한 발짝 다가선다.

자신조차도 인지하지 못한 욕망이 그녀에게 채워진다.


그렇게 호감도가 천천히 높아져서 자신이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넌지시 알린다.

사랑하는 사람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를 눈에 담는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려는 지, 무엇을 원하는 지.

사랑하는 사람의 호감을 사고자 천천히 접근한다.


그리고 서로가 호감을 확인하고, 선을 넘는 것을 보고 싶다.


나는 이 이야기를 아주 좋아한다. 왜냐면 누가 써줄거라고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