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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자 게시▉▉▉RRW▉-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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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게시판 생▉▉

좋은 아침, 좋은 점심, 좋은 오후 되시고, 새벽을 알릴 등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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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껍질이 깨지는 소리 같기도.

혹은 얄팍한 무언가가 파삭 하고, 그렇게 떨어져 나간 소리 같기도 했다.

축축했으며, 요란하지 않았고, 차분했으며.

그렇기에, 소름돋았다.


"..."

그것은, 기어오고 있었다.

링겔에 꽂힌 용액들의 대롱 바늘이 하나 둘, 지익지익 끌리다 이내 뽑혀나가는 것도 모른 채.

그녀가 깨고 나온 차가운 방 안에서, 그녀가 흘리던 피가 탁한 타르처럼 꾸덕하게 방 안에서 흘러나오는 것도 모른 채.


숨을 깊게 들이쉬다 이내, 무언가에 숨이 걸린 양 켁켁거렸다.

투사는 이 세상에서 숨쉬길 허락받지 못한 존재였으며.

그런 그녀는 지금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알껍질이 깨져.

"...흐으..."

조금이라도 더 자신의 육체가 버티길 소망하는 것 처럼, 길고 긴 숨을 들이키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지금 당장 어떻게든 시선을 돌려야 했다, 설령 그것이 어그로에 가까워서 내 배때지에 저 손이 쑤셔박히는 결과라 해도.


"...투사, 야. 내 말 들려?"

"..."

"할려고 하는 건 알겠는데 그렇게 하면 진짜 좆된다 너, 널 더 깊숙히 가두게 될 거고 옥죌 거야, 그러니 조금 심호흡 하고..."

"쉿."


테라피스트는 자신의 손가락을 내 입에 가져다 대었다.

그만한 물리력은 전혀 아니었음에도, 그 가녀린 행위만으로 악기의 음파는 더더욱 강해져 내 폐를 꽉 짓눌렀다.

매순간, 오로지 살기 위해 간신히 호흡만을 내뱉는 게 고작, 저 년의 성격상 딱 그 정도의 강도로 맞춰 놓았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 순간의 소음도, 그녀에게 있어선 잘 들리지 않는 것이었을까.


"...아."


투사, 아니.

그것은 짧게 단음을 뱉었다.

아기처럼 옹알이하듯 몇 번이고 내뱉은 말, 실감이 안 된다는 듯 몇 번이고 쥐어 보는 자신의 손.

그리고 곧, 자신의 뒤를 따라오던 수많은 그것들.


독, 약, 구분조차 되지 않게 수없이 꽂혀진 그러한 액체가 담긴 봉투들.

그것을 바라보던 그녀는 이내 아아, 다시금 소리를 내었다,  한층 성숙해진 목소리로.

아기가 아닌, 아이처럼.

그녀는 대롱 다발을 마치 인형 들듯이 들고는, 눈에 가까이 가져가며 입을 열었다.


"빠졌잖아..."


"다시 꼽아야 해, 꼽고 끼우고...피가 다시 흘러나오는지 확인..."


"없네...도와줄 사람이...그렇다면..."


"어떻게 꼽는 거였더라...어떻게...왜...왜 꼽는 거였지?"


"아프기만 하고..."


"결국 죽으면 안 꼽아도 되는 거잖아."


그녀는 그것을 관찰하고 있었다, 수없이 많은 대롱의 주삿바늘을.

탁하고 검은 눈은 그것을 어떻게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번에 목숨을 끊을 수 있는지 재고 있었다.


"밉지?"

그리고 그것은, 누군가가 용납하지 않는 것이었다.


"...테라피스트."

"알껍질을 깨고, 사슬을 풀고 세상을 거닐어 보니 어때? 네 마음이 원하는 아브락사스는 눈 앞에 보이나?"

"...너가 깨버린 거잖아, 난 원한 적 없어."

"난 없는 감정을 자아내지 못해, 너가 원한 거야. 난 나갈 수 있도록 균열만 내어 준 거고...아니면."


그녀는 투사의 멱살을 잡았다.

쥐어 들어올리는 이가 한순간 비틀거리는 아이러니한 순간이 스쳐지나갈 정도로 둘 사이의 체급은 명확했고.

투사 쪽이 누가 봐도 명확히 우위에 서 있는 상황이었으나.


"죽여줄까? 그게 네가 진짜 바라는 거야?"

"..."

목소리와 어투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자신의 크기를 순식간에 다시 키워 압도할 수 있었다.


 "쉬워, 코어를 잡아뽑는 것만으로도 대다수의 진화체는 죽으니까."

"..."

"SS급씩이나 되면 코어에 치명상이 가도 되살아나거나...때로는 주마등 한번 보고 각성하는 경우도 있지만...뭐."

"..."

"괜찮아, 몇 번이고 죽여줄께. 그동안 너가 저항한다 해도 괜찮아, 나 또한 죽을 각오는 되어 있는 걸."


그녀는 투사의 양 팔을 잡아다 자신의 목에 툭 가져다 대었다.

테라피스트와는 달리 제대로 관리되지 못해 길어진 손톱, 목을 가볍게 찌르고 흐르는 피는 그녀의 손톱을 물들였다.

"그리고 인간은 더 쉽지."

"..."

"떨어져서, 노숙하다가, 뭘 잘못 먹어서, 이걸로? 싶은 걸로 인간은 죽어, 특이한 사례만 모아서 상도 뽑는다니까?"


투사의 입에서 뿌득 소리가 울렸다, 이를 간 것인지 혹은 아랫입술을 깨물어 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지켜야만 해."

"그래서 아름다운 거지, 그들의 삶이 명멸해가며 피워내는 불꽃엔 가치가 있어. 너가 있건 없건 그 가치는 변하지 않아."

"무슨 소리야...아름답다면 너도 알 거 아냐, 그 아름다움을 지켜야 한다는 거."

"그래서? 네 아름다움은 어디 갔는데? 네가 저울추에 채워넣은 피에, 과연 간교한 상인들이 그만큼의 답례를 얹어 주었니?"


"..."

"근본적으로 물어 보자, 행복해? 피를 뽑히면서 스스로를 달래기 위해 피학 성향이라도 개발하거나 했니?"

"나는..."


주변의 땅이 일렁였다.

검은색으로, 흑색으로, 탁한 남색 빛깔로.

그것들은 서서히 촉수처럼 꿈틀거리며 솟아오르다, 얇아지고, 형태를 갖추며-


"...11번 샘플, 거부반응 확인, 양성반응 있습니다."

목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거부반응을 더 높여, 35초 경과하면 예정했던 대로 오염 샘플도 함께 주입하고."

"혈압이 너무 단시간에 높아졌습니다, 손톱도 하나씩 빠지고 있어요."

"재생된다, 계속해."

"아아아...난...난..."


검은 옷의 누군가들로 형태가 바뀌었다.

검은 촉수가 대롱처럼 그녀의 몸을 꿰뚫고, 검은 옷의 인간이 그들을 검사하고.

산 채로 연구당하고, 피를 뽑히고, 실험당하는 박제된 신세.

이것이 그녀의 악몽인 듯 했다, 아무래도 내 악몽은 꽤 양반이었구나.


한순간 느낀 풍경에 멍해지는 순간조차 저 악기는 허용하지 않는 듯 했다, 내 별, 하다못해 내 별만 저 악기에 닿는다면.

그리고 그 순간에도 검은 공간에 침식되어 갈라지는 바닥의 한가운데에서 투사는.


"행복한 적 없어...한 번도...싫어...싫어...아파..."

마치 그 순간으로 돌아간 듯, 계속해 중얼거리고 있었다.

얼굴조차 탁한 빛으로 물들어가고, 마치 다시 세상에서 아예 자취를 감출 것처럼 그렇게 되물었다.



"아파요, 안 그럴게요...더 좋은 피를 만들어낼게요, 더 우수한 피를 만들어낼 게요..."


"...아파하면 안 돼, 더 아픈 게 다가와...마음을 가지면 안 돼, 아플 뿐이야, 희망을 가져선 안 돼...난 도구야...그럴 수는..."


그녀에게 테라피스트가 다가왔다.

별을 충전시키는 와중에도 그녀는 나를 흘깃 보더니 빙긋 미소짓고서는.

"...힘들었지?"

다만, 그녀를 안아줄 뿐이었다.


"억눌렀지? 분하지? 타인이 널 바라보는 시선과 틀에, 스스로를 얽매고서는 모두를 위한 거라며 달래고."


"...아니야, 아니야...나는..."


"난 소다를 마음껏 마시고 싶은데, 파스텔 톤의 옷도 입어보고 싶은데, 사랑이란 것도 해 보고 싶은데." 


"...난..."


"사과는...먹어보지 않는 사람보다 한 번이라도 먹은 자에게 더욱 달콤하지, 하지만 너는 그걸 입에 댄 적 있어."


"..."


"해 봤잖아, 탈출도 해 봤고, 이제 널 막는 사이의 불꽃도, 대롱도 더는 없어. 나도 더는 도와줄 수 없고."


"나는...난..."


"이제 너에게 필요한 건 한 걸음을 뗄 용기, 그것뿐이-"


별, 제 2형태.


"-응?"


"증식! 이 씨발새끼야!"


힘을 모은 별이 바닥을 향해 내리꽂혔다.

그리고 내 악 지르는 것에 가까운 구령에 맞춰, 별은 두 번째 형태로 변했다.

피를 머금어 성장하는 도끼, 전 극단장, 테라피스트, 내 것 일부 함유된.


그것은 수없이 머금은 피의 무게답게 거대했고, 살벌했으며...

동시에, 무거웠다.

"...오."

악기를 받치고 있던 바닥도, 기둥도.

투사의 침식으로 인해 자잘한 균열이 생겨 있었다면 한번에 깨부술 만큼.


테라피스트는 짧게 감탄하곤 빙긋 미소를 지으며,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지상으로 하나 둘 떨어질 준비를 마친 바위는 그녀의 연주에 의해 다시금 중력을 거스르고 위로 떠오르며.

다시금 서서히, 서서히 그 고도를 높여 가며 투사가 엎드려 있는 파편을 자신의 곁으로 가까이 데려왔다.


"악기가 바닥에 고정되어 있는 걸 간파하고 용캐도 깨부쉈네? 역시 습득력이 빠르구나? 방랑..."

"투사아아아아아앍...카학! 콜록...어우 목..."

"...다들 내 이야기 안 듣기로 미리 합이라도 맞춰 놓은 모양이구나...근데 조심해? 방금 너가 뱉은 피도 흡수되잖아?"

"알아..."


동시에 투사의 피도, 테라피스트의 피도 그렇겠지.

나는 재빨리 별을 1형태로 되돌려 복귀시킨 뒤, 합을 맞춰 허공을 향해 크게 도약했다.

별은 달려와 발판이 되었고, 또 반대쪽 발을 때는 순간 다음 발의 발판이 되고.


그렇게 한발, 한발 달려가며.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테라피스트는 날 놀란 듯이 바라보며, 곧-


"...봐 투사, 모두가 너가 깨어나길 바라고 있어, 너가 일어나 주길 원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그녀의 고개를 들어올려 날 응시하게 했다.

"..."

"네 피를 나눠 받은 워커들도 그렇고, 에딧의 칼날의 공포로부터...그리고 타인의 압력으로부터 해방되길 바래..."

"..."

"투사, 너는..."

"..."

"많이 힘들었지? 그도 그럴 게 누군가를 이토록 기다려왔잖아."


투사의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렸다.

한 방울 두 방울, 그토록 시체같이 차가웠던 그녀의 몸에서 계속.

흐르는 온기는 이윽고.


"...이제...싫어..."

고개를 휘저으며, 부정하는 것으로 그 형태를 바꾸었다.


"싫어...너 싫어...제약도 싫고 다 싫어...제발...제발...난 왜...아...아..."

"투사?"

"더 이상 그 누군가를 위해서...날...갈아넣고 싶지 않아...!"


지직, 한순간 풍경이 뒤집혔다.

그녀의 주변에서 시작해 순식간에 번져나가듯, 세계가 덧칠해졌다.

진홍왕의 전 극단장이 보여줬던 피로 만든 가공의 세계도 아니며, 테라피스트가 음파로 깎아내 띄워올린 무대도 아닌.


"...어?"

마치 통째로 다른 세상으로 이동한 듯한, 비현실적인 풍경.

비현실적인 공간, 풍경.


주변을 뒤덮는 촉수, 먹구름, 번개, 진화체.

그녀의 주변을 덮는.

소름이 돋을 지경인, 한없이 탁한 안개.


가만히 보고 있으면 뇌가 뒤집힐 지경이라 길게 호흡을 고르고 생각을 고려했다.

처음 투사를 보았을 때와 똑같다, 그리고 악몽에서 보았던 풍경과 똑같다.

꿈 속의 세계에 살던 그녀가 현실에 나왔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 세계는 아마...


최악의 상황, 아마 그녀는 자신이 거하던 세계와 함께 이곳에 드러난 모양이었다.

"...이런 시발..."

아니지, 더 최악은 그 악몽에 '우리가' 휘말릴 수도 있단 거겠지.

그녀만의 악몽이라면 그나마, 그나마 낫겠지만 우리의 악몽까지 같이 드러나게 된다면?

돌파할 수 있을까? 돌파한다 해도 승산이 있을까?

저쪽은 이미 안개 속 장막에 스스로를 덮어 가리고, 한없이 폭주하는 SS 급인데?



"...그토록 화났었구나 넌."

"야 이 개년아...그 개짓거리를 벌려놓고도 넌 그런 감상이 나와?"

"나올 수밖에 없지, 하지만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선 우선 헤묵은 고름을 짜야 한다는 건 너도..."


테라피스트의 등 뒤에, 무언가 나타났다.

수없이 많은 검은 죽음을 두르고, 마치 대롱처럼 보이는 촉수를 수없이 몸에 꽂은 짐승이.

투사는 그 눈 깜빡이는 찰나 동안 그녀의 옆에 있었고.

"..."

한순간에, 그녀의 가슴팍을 꿰뚫어 버렸다.

꿰뚫은 손에 붙잡혀 있는 것은, 박자에 맞춰 박동하는 밝은 연보랏빛 코어.

그것을 그녀는, 마치 축축한 음식 쓰레기 봉투를 쥔 듯 바라보더니...


이내, 한번에 터트려 버렸다.

"...어이쿠, 이건..."

테라피스트의 입에선 직후, 그 코어의 색과 같은 빛깔의 피가 흘러나왔다.

몇 번이고 쏟아낸 그녀는 이내 하하, 하하하 소리를 내며 정말 곤란하다는 듯.


"아직 죽기엔 좀 이른데...? 나는 방랑자 너희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어."

"...투사가 너 때문에 선을 넘었는데, 그것에 관해선 아무 말도 않는구나."

"그게 그녀의 욕망이었다면 어쩔 수 없잖아? 게다가 이게 옳아, 제 마음 가는 대로 행해야 진화체지, 인간 진화의 끝, 종착점이야..."


축축히 젖은 기침을 몇 번이고 토하며, 테라피스트는 방긋 미소지었다.

"...하지만 음...희망은 놓지 말아야지, 극단장이 그랬고 그 친구가 그랬잖아?"

"뭘."

"죽기 직전의 상황에서 스스로 각성해낸 거, 자신의 한계를 규정해놓지 않았기에 가능한 거잖아?"

"걔네랑 너는 다르지."

"그렇네, 극단장은 가면을 얻었고...걔는 책을 얻었지? 난 이미 지휘봉을 손에 넣었고...응?"


그녀의 몸이 비틀거렸다, 손에 놓인 지휘봉을 그녀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것을 손에 쥐고 휘리릭 돌린 그녀는 뭔갈 깨달았다는 듯.


"...아하 그렇네, 그렇네...내 악보엔 이미 코다가 찍혀 있었구나."

깨달은 것이, 그렇게 충격이라는 듯 그녀는 그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곧,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도 슬프게.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너희들은 못 믿겠지만...진심으로 행운을 빌어."

"지랄."

"너희들은 인간이란 껍데기 안에 갇혀 있기엔 너무도 아름답고, 존귀한 존재들이니..."


툭, 털어냈다.

투사는 그것이 거슬렸다는 듯, 손등에 달라붙은 파리를 치우듯 그렇게 손에 달라붙은 것을 가볍게 털어냈다.

그것은 땅에 떨어지며, 허공에 떠오른 몇 개의 바위와 부딪히며 퉁 퉁 튕기곤, 그렇게 아래로 떨어졌다.


"..."

그리고 이제 그것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겁 먹은 짐승처럼, 자신이 저지른 것에 상대가 덤빌 것을 미리 예상했다는 것처럼.

그러다 그녀는 다시금 그 손, 연보랏빛 물감이 묻은 그 손을 바라보다가...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다시금 눈물을 흘리며.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양 주먹을 들어올려 땅을 향해 내려찍는 것이었다.

바닥은 다시 한번 더 갈라지고, 균열을 일으키며 설 공간조차 남겨두지 않고 산산히 박살났고.

그려먼서도 명백히 테라피스트의 힘도 사라져 버린 지금에서도 그 파편들은 떨어지지 않고, 여전히 하늘에 둥둥 떠올라 있었다.


하늘에선 천둥의 소리가 아닌 짐승의 소리가 울렸고, 탑의 주변의 건물들은 소리없이 무너져 내려갔다.

별을 작동시키며 그녀에게 어떻게든 한 걸음을 내딛기 위해, 부서져 가는 파편을 내딛고 뛰어올랐으나.

그녀의 주먹에서 사방에 퍼져 울리는 파편과 풍압을 맞아, 그마저도 힘을 잃고 아래로 떨어졌기에.


"어어...어어어어? 야 이 씹!"

결국 그녀에게 닿기 위해 쓰려 했던 별을 다시 한번 발에 붙이려 했으나.

어느새 그것보다 빨리 다가온 것은, 투사였다.

테라피스트에게 그랬던 것처럼, 눈 한번 깜빡일 시간 동안 어느새 내 곁에 다가온 투사는.


그렇게 내 흉곽을 향해 주먹을 때려박고는.

대지를 향해 창을 던지듯, 날 그대로 치켜들어 대지를 향해 던졌다.

쾅, 쾅, 몇 번이고 허공에 떠올라 있던 파편들을 부수며 대지를 향해 추락했다.

별을 가동시키기 위해 한번 더 손을 뻗으면 극심한 뜨거움과 함께 내 등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척추에 가해지는 작열통, 별 제 1형태의 큰 리스크.

겉에 걸친 옷마저 살짝 검은 선이 생길 정도로, 난 이미 많은 리스크를 떠안고 있었던 듯 하다.

그래서 어쩌라고, 이대로 죽으라고? 나는 다시 한번 더 별을 가동시켰다, 떠오를 힘만 있어도 충분해. 날아오를 힘만 있다면.

한번 더 힘을 주었다, 한번 더, 한번-


어느 순간이었을까, 퍼져나가는 악몽보다 더 빨리 추락하고 있었던 건.

한순간 밤하늘의 시야가 트이고, 하늘 위에는 날 추격하는 악몽의 풍경이, 등 뒤에는 모래사장과 인공 바다의 풍경이 보였다.

바다, 그것이 내 등 뒤에 있는 것이었다, 그래 적어도 짜부가 되어 죽진 않겠네.

나는 그 순간에 한번 더 별을 충전하려 했고.


동시에 숨을 들이키지도 못한 채, 그렇게 바닷물에 몸을 내맡기고 말았다.

차갑다, 짜다, 눈에 염분이 들어간다는 건 이렇게 족같은 감각이었구나.

본능적으로 어떻게든 헤엄을 치려 노력하면 하늘에서 내려오는 파편들이 하나 둘 뻗은 내 손을 짓눌렀다.


고통에 입에 그나마 남은 산소가 흘러 나오며, 정신이 아득해 졌다.

갈수록 멀어져 가는 푸른 달빛, 어느새 고요히 잦아든 수면 위의 파문.

어느새 바짝 쫒아온 악몽이, 인공 바다를 탁하게 물들이고, 검게 물들여.

나를, 차분히 감싸안았다.



...



"그대여?"

짧은 호흡이 터졌다, 이윽고 헛기침을 뱉으며 연신 사레가 난 것을 진정시켰다.

반쯤 감긴 눈에 햇살에 비친 그림자와 풀벌레의 소리가 울린다.


풀벌레?

눈을 떠 보니 나는 벤치에 앉아 있었다.

햇살이 너무 더운 나머지 아지랑이를 일으키고, 벤치는 익다 못해 뜨거울 지경이었다.

일어나야 하나, 나는 손에 든 손도끼를 집어 자리에 일어섰다, 손도끼? 손도끼는 손에 없었다.


"...그대여? 뭔가 놓고 온 것이라도 떠올랐습니까?"

그녀의 주변에 별이 돈다, 눈을 감았다 뜨니- 별은 그 자리에 없었다.

있는 것은 그저 드높은 건물들과 조용한 공원, 그리고 평범하게 걸터 앉아 쉬는 몇몇 아저씨들.

뛰노는 아이들, 풀들.


오염원 하나 없이, 정화 장치나 방독면 없이, 진화체로 변할 필요 없이.

마음껏 거니고 뛰놀고,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 뿐.


"...오염원이..."

"크흡, 그대여...전염병이 퍼진 지 꽤 오래 되었으니 지금은 마스크를 할 필요는 없지 않겠나이까?"

"그러게..."

정신을 차리려 해도, 탁한 안개가 낀 기분이었다, 머리가 어지럽다.

뜨겁고 혼탁한 정신을 부여잡기 위해 몸을 일으키면 옆에 놓여 있던 자판기를 들이받고 말았고.


그것에서 떨어진 것이 곧 바닥까지 떨어져, 그 틈 사이로 투명한 액체를 흘려대며 웅덩이를 만들었다.

음료수, 저 음료.

음료.

분명 누군가, 이 음료는 엄청 오래되었다고 말한 적 있었어.

엑스트라였나? 엑스트라는 분명 연극의....아니야.


나는 엑스트라의 머릿결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쓰다듬었다.

"하핫 그대여...간지럽나이다, 오늘따라 갑자기 왜 이러는지 여쭈어도 괜찮겠나이까?"

"...엑스트라는."

"음?"

"엑스트라는 뿔이 있어, 지난번 서부에서 만났을 때 분명히 봤어."


나는 그녀를 응시했다, 그녀의 깊고 푸른 눈을 응시했다.

"...나의 악몽은 깊고 탁했지, 하지만 넌 그저 다 잊고, 너로 인해 자초된 것을 전부 잊고 도망가고 싶었구나."

"..."

"이 소망이, 나조차 겪어본 적 없는 소망이, 이 사소한 일상을 바란다는 것 자체가 너에게 있어선 악몽이었구나."

"..."

"그렇게나, 스스로를 옥죄고 있었구나."

"바래선 안 돼...나는, 봤잖아. 테라피스트의 음악 하나만으로도 난 이런 사태를 초래했어."

"편하게 자는 사람 얼굴에 후레시 비추면 누구라도 그렇게 날뛰어. 나라도 그런 사람 있으면 찾아가서 대가리 찍을 거고."


투사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

"테라피스트 그년, 꼭 널 해방시켜줄 것처럼 자신하다가 더 얽어매 버렸네. 역시 그년은 파도 파도 괴담이야 아주."

"...이젠 내 육체조차 내 말을 안 들어, 최악의 악몽이야."

"음."

"봐."


그녀가 손을 뻗어 주변의 풍경을 바꾸었다.

그녀의 피로 연결된 수많은 인물들이 한껏 절규하며, 고통받으며, 누군가는 미쳐 웃음을 터트리며.

익숙한 얼굴을 한 저 , 선명해지기 시작한 실루엣들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왜 쳐 기절시켜 놨더니 다시 일어나 시바아아아알!"

"큽..."

"네 친구야?"

"어, 도우러 가고 싶은데."

"무리야, 널 끄집어올리고 싶어도 난 내 육체의 통제권을 잃었고...현실의 넌 가라앉아 죽어가고 있는 걸, 넌 여기 갇혔어."

"시발..."

"어, 시발이야...그래서 마지막 순간만큼은 이런 좋은 풍경을 보여 주고 싶었는데..."


그녀의 한숨과 함께 워커의 조종사들의 표정이 바뀌기 시작했다.

흰자는 뒤집혀 검은색으로 그 모습을 바꾸었고, 군청색이 된 동공은 이윽고 퍼런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아하...아하하...하하...날 위로해줄 사람은..아무 곳에도 없는 거네..."

"끼이에에에에에엑! 끼아아아아악! 재버워크 얼른 내 뒤로 숨어!"

"아 참 아빠! 나 챙길 틈 있으면 뭐라도 해서 싸워! 가라 트럼프 미니 병사들! 기절 시키게 쇠구슬 한번 먹여 줘!"

"...언제 그런 것까지 만들었니 딸?"

"시간 날 때!"


재버워크의 손바닥에서 카드와 잡동사니를 포개 만든 듯한 작은 장난감들이 일제히 쇠구슬을 발사해 이마에 적중시켰다.

기절시키진 못했지만 한 발자국 주춤하게 하는 덴 성공하자, 곧바로 그녀가 조종하는 워커가 그녀들을 붙들어 놓았다.


"이 틈에 빨리!"

재버워크의 워커의 등에 탑승해 있던 프래자일이 날아올랐다, 그런 그녀의 등 뒤엔 수녀원장이 있었다.

프래자일이 던진 싸구려 녹음기, 수녀원장이 사격하는 산탄.

한바퀴를 빙글 돌며 사방에 탄을 흩뿌린 그녀들은 바닥에 착지해 한 명은 장전을.

다른 한 명은 상황을 파악하고 달려드는 워커들을 비웃으며 스위치를 누를 뿐이었다.


녹음기에 저장된 괴성은 일제히 재생되었고, 한순간 실루엣마저 흐트려놓을 정도의 음파가 터지며 워커들은 땅에 쓰러졌다.

"...아마추어들."

"아직 자만하긴 일러! 저기에 또 오고 있어!"

"다 쓰러트렸는데 뭐가 또...하아, 하늘에서 또?"


프래자일의 한숨과 더불어, 그녀의 리더가 발을 내딛었다.

대검을 땅에 끌다가 한바퀴 빙 돌리고는 모래에 대검을 꽂아.

"아라무스."

뒤이어 그녀의 대검에 두 발을 올린 아라무스를 그대로, 워커를 향해 휘둘러-


"초영류 8식, 겨울나무 그림자!"

그대로 거창한 이름에 비해 간결한 한 번의 합으로, 워커들의 등 뒤에 있는 연료통을 깔끔하게 베어갈랐다.

"...받아줄 필요는 없네."

"그렇다면 이쪽도 사양 않고."


바스티오는 그 모습을 보고는 스스로도 뛰어올라 그 워커들을 양 손에 잡아챈 채-

"합!"

그대로 땅에 쳐박아, 그대로 안에 들어간 탑승자마저도 강한 충격을 주어 기절시키는 것이었다.


"...어때?"

미리내는.


"더 있어? 패가."

"..."

에딧에게 질문했다.

자신의 별로 이루어진 창을 에딧의 검날에 맞댄 채로.



"뒷방 늙은이보단 가진 패는 많지, 너가 예상 못할 패도 많고."

"지금 서로 가진 패는 다 까는게 이로울 것 같은데?"

"너도 감춘 게 더 있나 보지?"

"나? 없어! 사실 나 진즉에 체력은 방전됐거든, 지금은 그냥 독기로 하는 거야!"


챙, 서로 끝까지 밀린 검날과 창날은 한 보 서로 물러났다가.

검날이 휘둘리고, 창자루가 그녀의 몸과 같이 회전하며 이윽고 한 합 두 합 세 합, 여러 번 금속이 맞닿는 춤을 추었다.

먼저 검을 띈 쪽은 에딧, 자신의 눈을 부여잡고 지끈거려하고 있었지만 눈의 고통은 단연컨데 미리내가 더 위였다.

다만, 참고 견딜 뿐.


"내가 지금 너 하나 못 잡아서 이러고 있잖아...아이고 죽겠다, 호랑이 양반이랑 사이는 어디 가서 안 오는 거야?!"

"...그 말인 즉슨...나에게도 기회가...윽...있단 소리겠군."

"뭔 기회, 저승 티켓 선구매 찬스 같은 거? 그건 안 하는게 좋을 텐데...너 있지?"

"..."

"투사, 테라피스트...둘 다한테 잠식되어가고 있잖아. 안 그래?"


그녀는 스스로 붙잡고 있는 눈을 떼고, 검고 탁하게 변한 눈을 그녀에게 보였다.

검게 변한 흰자, 푸른 동공.

미리내는 딱하다는 듯 그것을 바라보다 이내 한숨을 푹 내뱉었다.


"광대고 투사고...강하다고 꼭 자아가 또렷하고 눈 앞에 길이 보이는 건 아니구나, 다들 딱해."

"...날 투사로 보지 마, 나의 눈앞에 보이는 길은 명확하니까. 가로막는다면 너도 벨 거야."

"무슨 길? 타인을 긍정하지 않는 길에 별빛이 비치니?"

"빛나는 길 따윈 바라지도 않아! 내가 원하는 건 단 하나! 신을 보는 거야!"

"어 알아, 가끔 직접 단속할 때 뒷골목에 그런 거 보여준다는 광고 꽤 많이 보긴 했어. 약이라던가 종교라던가..."


에딧은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지었다.

"신은 실재해, 그리고 답을 내려주지 않지. 단 한번도 나에게 그 염병할 대답을 내려준 적이 없어."

"...우리 아빠 말하는 건가? 좀 잘나가긴 하셨지."

"니 애비는 내 알바 아냐, 왜냐면 그 신은! 제약의 본사 사장...!"


"...날 낳은 어머니니까!"


끝에 가서는 절규에 가까워진 목소리는, 곧 제어를 잃고 사방팔방에 흩뿌려지기 시작했다.

결국 말했다는 듯, 말한 이상 끝까지 전부 털어놓아야 직성이 풀리겠다는 듯.


"제약의 설립 이념이 뭔지 알아...? 무지를 몰아낼 별빛이야..."


"진화체라는 미지의 존재를 깨닫고 분석하고 극복해서! 이윽고 학문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탐구한다? 지랄!"


"그런 가짜 정보가 본사에서 내려왔으니 탐구가 진척될 리가, 선로는 꽉 막혔고 협회는 무능하듯, 제약도 멍청해!"


"진화체가 인간을 닮아, 인간의 생존방법을 배운 게 아니야..."


"인간에서 모든 게 시작된 거지, 인간이 오염물질에 적응하며 변해가기 시작한 게 진화체의 근본이야!"


"너희 머저리들은 진화체랑 몸을 섞으면 진화체처럼 변한다고 두려워하지만 아니...?"


"진짜 순수한 인간은 그것에서 유용함만을 건질 수 있거든! 너흰 전부 완전한 인간이 아니야!"


"처음부터 나랑 너희는 달랐어! 그런데 신은 날 제약에 버려둔 채, 답조차 주지 않고 떠나갔다고. 알아?"


"..."


"아냐고!"


"뭘 알긴 알아, 결국엔 네 떼쓰기구만."


미리내는 그렇게 대꾸하며 눈가의 피를 손수건으로 문질러 닦았다.

"그러니까 듣자하니 내 제자님도 진화체의 유용한 힘만을 그 별에 담아 사용하니.."


"..."


"내 제자님도 그 순수한 삼다ㅅ...뭐래, 암튼 그거에 속한단 거네, 그렇지?"


"...그래, 내가 그렇듯이 그 친구도 철저하게 혼ㅈ..."


"보자보자하니 어딜 감히 천한 것이 비교를 핑계로 내 제자를 깎아내려, 그 아인 내가 선택한 제자야."

미리내의 눈이 빛났다.

타오르는 별빛으로, 한순간의 분노를 머금은 채.


"...천하다고?"

"천함에 신분이나 태생이 얽매이진 않아, 말뽄새랑 하는 행동이 천함을 정할 뿐이지."

"..."

"내 제자님은 혼자서 그 연구를 완성한 뒤, 기어코 바깥으로 나와 세상과 마주하길 택한 사람이야."

"..."

"너는 어떻니?  너가 워커들에게 한 행동은 어떻니? 너가 너의 보호자였던 회장에게 한 행동은? 너가 투사에게 한 짓은?"

"..."

"천하게 말하고 천하게 행동하는데, 누가 그런 것에 대해 그렇구나, 딱하다라고 공감을 해 주니?"

"...신은, 날 버렸어."

"음 나도 알아, 그 신이란 참 나쁜 년이다 그치? 세상에 지 딸 버리는 부모가 어디 있어, 하지만 너도 참 못되먹은 년이다, 그치?"


뿌득.

투사의 손에 힘이 깃들었다.

그 스승님, 살짝 짜증나신 건 아는데 댁의 주특기인 사람 긁는 말투가 너무 강하게 먹힌 것 같습니다.


"...테라피스트의 음악도, 투사의 피도 지금 내 몸 안에 깃들어 있어."

"음?"

"네 제자였다던 방랑자처럼, 나도 쓰지 못할 것 같아?"

"그래서 카드 뭐시기 이야기했구나? 써 빨리 임마, 왜 다들 필살기를 초장부터 안 때려박나 몰라?"

"미리내."


어느새엔가 다가온 호 선생이 그녀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그의 등에는 얌전히 업혀 있는 거미, 그리고 푹 젖은...나?


"제자야? 아니 왜 또 쫄딱 젖어서 이러고 있어?"

"숨은 쉬네, 바다에 가라앉아가고 있던 차에 물거품의 소리가 일었던 게 천만다행이었어."

"이열 호랑이 양반~ 동부에서 만약 놀 일 있으면 최고급 호텔 잡아 줄게."

"그런 곳 싫어하는 것 알면서 그러나, 뒤."


호 선생의 다리가 에딧의 칼을 걷어찼다.

한껏 밀리면서도, 이내 뿌드득하곤 부러진 곳을 고친 뒤 그대로 한번 두번, 호 선생을 향해 휘둘렀다.


"미리내...그대는, 별비를 내려서 위에서 내려오는 저 안개를 씻어 주게!"

"저 악몽 안개? 그러다 투사를 못 막으면 어쩌려고?"

"저 안은 우리의 법칙이 적용받지 아니한 곳일세, 그 말인즉슨 자칫하다가 우리가 휘말리면..."

"...아 알겠다, 우리의 악몽이 튀어나올 수도 있단 소리지? 자칫하다간 그 안개 새끼 한번 더 볼수 있다고?"

'그랬다간 정말 전멸이지 않은가."

"인생사 새옹지마라고...설헌이 안 와준게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된 건 처음이네! 그럼 맡긴다?"


챙, 창끝을 휘둘러 에딧의 검을 튕겨낸 미리내는 물러나고 호 선생이 달려들었다.

미리내는 흠뻑 젖어 기절한 나를 측은한 듯 바라보다- 이내 중얼거렸다.


"...가능하면 깨어난 제자님이 제자님 여친이랑 있는 모습, 한번 더 눈에 담고 싶었는데."


...뭐?

잠깐만, 그러고 보니 스승님 눈의 부상이 분명-


"마지막 별, 순환의 별, 가장 마지막에 태어나 순환하여 이내 만사에 막힘 없어라!"


"일곱 별 중 일곱 번째! 요광 청산유수! 동시에!"


"첫 번째 별, 균형의 별! 가장 처음에 태어나 이내 물어뜯어 삼켜라!"


"천추, 요광! 청천벽력! 칠성 용오름!"


툭, 대지에 작은 수정이 내려와 박힌다, 그토록 작은 파편이 순식간에 폭우처럼 내려 쏟아져 밤하늘을 맑게 틔운다.

그 끄트머리에 달라붙은 작은 악몽의 잔재마저 작게 사라지다 이내 소멸한다.

하나 둘, 쏟아지기 시작한 작은 별들의 파편이 만들어낸 폭우.


그리고 일제히.

땅에 떨어지던 파편들은 일제히 격발해, 뇌우와도 비견될수 없는 소리를 내렸다.

벽력에 가까운 하얀 섬광, 그것이 벌어진 직후, 밤하늘이 보였다.


하늘에 올라간 파편들, 그것에 아직 떠오르지 않고 멀쩡한, 거의 철골이 드러날 지경인 탑.

그 탑을 당혹한 듯 바라본 에딧은 호 선생을 뿌리치고 그 탑을 향해 달려가려 했으나.

"어딜!"

그녀의 칼날을 손끝으로 단단히 붙잡은 채 끌어당기는 호 선생으로 인해, 다시금 검끝을 맞댈 수밖에 없었다.


사거리가 긴 검, 돌고 돌고 돌다, 허공에 도약한 그녀가 검무를  휘두르다 일점을 노려 찔렀다.

그 일점을 정확히 받아쳐낸 그, 당황한 그녀가 내지르는 검격을 한번 두번 세 번, 연속으로 받아낸 후 손바닥을 펼쳐-

"--!"

그녀의 복부를 강타하곤, 여전히 붙잡고 있는 검을 휘둘러 그녀를 땅에 내팽겨치곤-


한번 더 내팽겨치곤- 한번 더- 한번 더-

...

그대로 땅에 쳐박고서는, 간신히 고개를 드니.


"...2대 0일세."

손으로 브이 표시를 해 보이는 것이었다.


"아참 실수, 일부 역에선 이 제스처가 욕으로 쓰일 수도 있단 걸 간과했군. 하지만 트렌디했지 않은가?"

"으아아아아악!"

"유행이 아닌가? 어이쿠...어찌되었건 미리내가 벌어준 천금같은 기회를 놓칠 순 없으니...방랑자를 깨워야..."


호 선생은 고개를 돌렸다.

투사는 그곳에 있었다.

차원을 찢고 나타나, 그저 본능에 의거해.

자신을 가장 아프게 할 가능성이 높은 자, 가장 강한 자를 미리 죽여놓는다는 본능에 따라.


그녀는 호 선생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그는 뒤로 물러나다- 공중에서 낙법을 해 그대로 착지했다.

"...으음, 몇 번인진 몰라도 뼈 확실히 나갔군..."

그는 다만 가슴을 추스를 따름이었다, 어차피 그보다 더 당황한 사람, 아니 진화체가 있었지만.


"어...어어...저...저 씨발..."

"진정하세요 거미, 댁까지 이성 잃으면 정말 저 곤란합니다."

"예..."

"여기에 내려놓아 드릴 테니 방랑자를 깨워 주시겠습니까? 저 자는 강한 자를 우선으로 노리는 듯 하니."

"당신은..."

"저 둘을 맡아야죠, 미리내는 지금 저 안개를 정화시키고, 워커들을 맡는 것만으로도 고작일 겁니다."



실제로 일부 워커들은 다시 힘을 회복하고 날아오르고 있었다.

에딧과 투사가 나타난 지금 확실히 승기를 꽂기 위해.

하지만 해골이 총을 들어올리기 전, 다시금 바스티오가 뛰어오르기 전.

더욱 빠른 것은 순식간에 연료통을 끊어내고 그 물리력으로 바닥에 그들을 쳐박는, 작은 별들의 조각이었다.


아직까진, 미리내가 버텨주고 있단 뜻이었다.

하지만 더는 늦어.

내가 일어나야만 해, 가라앉는 상황도 아니니 내가...


"안 돼." 투사는 맥없이 고개를 저었다.

"무리야, 미안해...나도 이곳을 벗어나고 싶지만...내가 원해서 벗어날 순 없더라고..."

"...테라피스트와 너가 스스로 빚어낸 사슬이다 이거지?"

"미안해...정말...나는 마지막까지 민폐구나."

"민폐라는 말 하지 마."


나는 숨을 고르며 그녀의 말을 부정했다.

동시에 테라피스트가 미소지으며 했던, 어떤 말을 떠올렸다.


"연주는 진동, 진동은 떨림, 떨림은 곧 마음의 울림."


그녀는 갇혀 있다, 스스로를 유폐시켰다.


우울하게 한없이 가라앉으며, 죽지도 못한 채 스스로를 부정했다.


결국 스스로 딛고 올라서야 할 일이지만.


그럼에도.


난 그녀를 자유롭게 해주고 싶었다, 제약도 협회도 관계없이 스스로 날개짓하길 바랬다.


그런 그녀가 들을, 그런 그녀의 심금을 달랠 음악, 공감하는 힘. 정신적 치료, 테라피.


...한참 잘못된 방식이지만, 그녀가 악기를 든 이유는 그런 이유에서겠지.


눈을 질끈 감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나니 진동이 느껴졌다, 이 공간을 감싸는 억센 감정들. 자책, 원망, 고통, 슬픔.

나는 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



"...우와아아악! 우왁! 어억..."

"..."

"설명 안 해줘도 괜찮아 셰프카, 방금 전까지 상황 다 봤어, 호 선생과 미리내가 막아주고 있지?"

"중간까지밖에 안 보신 것 같긴 하지만 예...그리고 방금 약간 좀 당황하긴 했어요."

"응?"

"손가락을 막 요래조래 움직이시면서 뭔가 타자 치시는 건지 만지시는 건지 모를 잠꼬대를 하셨는데..."

"...다 설명할수 있어."

"예 뭐, 당신의 애인의 흉부를 쪼물딱대는 꿈이 악몽보다야 나았겠죠, 근데 우선은 저기-"





화륵, 불타오른 섬광과 거미가 가리킨 방향이 일치했다.

차가운 검날, 테라피스트와 투사의 잠식이 진행되어 검날에조차 정체모를 액체가 뚝뚝 흘러내리기 시작한.

두 명에게 오염되어 침식되어가, 점점 형태조차 일그러지고 있는 에딧.

그녀는 자신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것을 애써 닦아낸 뒤, 입을 열었다.


"...그 퇴물이 믿고 맡겼다길래 기대했더니만, 실력이 형편없네."

"하아...하아.."

"그 불꽃, 오롯이 널 위해 쓰지 않으면 결국 밀려서 쓰러질 건 너일 거 뻔히 알지 않아?"


엑스트라, 불꽃의 날개를 펼친 채, 광대의 가면과 털코트를 두른 소녀.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어울리지 않으나, 그것들 모두가 불꽃이기에 기묘한 통일감을 주었다.

그런 그녀는 지금 떨리는 손으로 검을 겨누다 이내, 한순간 힘이 풀어진 듯 가볍게 숨을 토했다.


"하아..."


"결국 이념만 다를 뿐 테라피스트와 똑같이 약해 빠졌어! 너흰 모두 차라리 순수한 인간을 위해 부품으로 쓰여야 했어!"


"그건 내가 안 바라는데."


나는 몸을 일으켰다.

엑스트라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다 이내 한 방울, 눈물을 흐르게 둔 채 애써 날 위해 웃어 주었다.

그녀가 날 사랑한다 고백했을 때, 그때의 관람차에서 보여줬던 그 순간과 조금의 다를 바도 없이.


거미는 내 등을 두들겨 준 뒤, 귀에 사무적으로 빠르게 정보를 전달했다.


"...당신은 결국 탑 위로 올라가야 해요."

"음."

"그 악몽 속에서 깨어나신 것도, 그 안에서 투사를 본 것도 결국 당신이니까, 그녀를 꺼낼 답도 결국 꿈 안에 있고..."

"그 꿈이 세상 바깥으로 나왔다면...그녀의 꿈속 세계로 가야만 하겠지, 차라리 나아. 잘 필요는 없으니."

"적당히 상대해 주세요, 지난번 테라피스트 때처럼 도발만 잔뜩 하면 제가...아시죠?"


설명할 필요도 없단 건가, 조금 곤란하긴 했지만 대충 이해했다.

톡, 그녀의 가벼운 밀침과 함께 나는 손도끼를 들고...어우 얘 검이 이렇게 길었던가?

아니, 그냥 저 에딧이 내지르는 팔이 길어졌던 거였네, 슬슬 인간조차 그만두고 있는 그녀가 퍽 살벌했다.


"너..."

"꿈에서 듣자하니 너 뭐시가 나랑, 인간이었네?"

"그래, 평생 그 누구에게도 동족 취급받지 못한채 살아가게 될 기분은 어때?"

"그건 묻고 싶더라."

"뭐가..."

"너 나랑 가족이니?"


에딧의 눈이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아니 그게 그렇게 충격받을 일인가.

나도 물론 진지하게 고민하긴 했지만, 그래도 저건 너무 심하잖아.


"...아니."

"다행이네, 그럼 미련없이 니 머리 깬다?"

"말 돌리지 마, 내 말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했군,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한단 말이다, 네 생각도, 네 행동도, 모든 ㄱ-"

"아 거-"


손도끼의 날을 꺾어 그녀가 잡은 손목을 비틀고 그대로 쭈욱, 손도끼의 가가각 소리를 들으며 거리를 좁혔다.

지척까지 다가오자 난 그대로 주먹을 쳐들어 그녀에게 내질렀고, 반대쪽 그녀의 손에 막혔다.

공격이 막혔나? 절대 안 먹히나? 짜잔, 손 안에는 충전된 별이 있었답니다.


"뒤지게 말 많네!"


안면을 향해 격발한 별과 함께 그대로 날아오른 에딧, 나는 지체없이 형태를 바꾸었다.

2형태. 곧 엄청난 무게의 도끼로 변한 별은 서서히 가라앉으며, 그녀를 깔고 모래사장 위를 사정없이 긁으며 지나갔다.

한번 구르고 두번, 이내 에딧의 손에는 인간 이상의 완력으로 들린 도끼가 이쪽을 향해 집어던져질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1형태.


그럼 다시 바꿔 줘야지.

포르르 날아오는 익숙한 형태의 작은 별, 꼬우세요? 메롱이다.


"...탑으로 가게 두지 않아, 그 탑을 손에 넣기 위해서 내가 얼마나 손에 많은 피를 묻혔는지 알아?"

"탑에 뭐 있구나?"

"아직 내가 찾지 못했는데 너희가 찾게 둘 순 없어! 내 거야! 너희 것이 아니야!"


절규한다.

자신의 것을 찾지 못한 수녀는 그렇게 울부짖었다.

나는.


"엑스트라."

"예."

"저렇게 말하니 더더욱 올라가고 싶어진다."



솔직히 알바 아니었다.

저렇게 반응이 찰지니 한번 뭐가 있나 엿보고도 싶어졌고.


"따라와 줄수 있어?"

"기꺼이."


솔직히 무엇보다.

저 새끼가 하란 대로 하기 싫었다.

그리도 단순한 감정 때문에, 발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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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남부중앙터미널 상호송신 왕복 레일 관리 시스템🪐

   -현재 작동중...


-이물질의 제거에 따라, 재탐색을 시작합니다.

...본사의 위치를 특정하였습니다.

  위치 변동 없음, 좌표 수정없이 계산식을 유지합니다.  

  밀려 있던 정보의 자동 송신, 개시합니다.


0%...40%...80%...


오류 2개 보고.

비콘을 덮는 이물질이 존재합니다, 레일을 깨끗이 유지해 주세요.

레일의 청소가 완료된 후에 패널을 한번 더 터치 후 검사 바랍니다.

시스템의 동력이 부족합니다, 부품을 끼워 주시길 바라며, 이미 설치되어 있다면 한번 꾹 눌러 주시길 바랍니다.

항상 포디움 레일을 이용해 주시는 여러분들께 감사드리며.


즐거운 방랑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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