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우주 노동자 몬붕과 오토마톤 루미의 모험

글 모음 : https://arca.live/b/monmusu/25564643

 

이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등은 실존하는 것과 일체 관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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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팀이 어둠을 밝히러 들어가기 전에 할 일이 하나 있었다. 켈프가 보낸 갤럭시 드릴 사의 과학선을 타고 온 연구원들을 만나는 거 말이다. 일단 쥐와 두더지 부족의 탈출은 끝났지만, 바이러스 감염이 얼마나 빠르게 퍼지고 있을지 모르니 서둘러야 했기에, 다양한 종족과 인간 남성 몇 명으로 구성된 연구원들은 중요한 것만 빠르게 전달하기로 했다. 시간이 촉박하지 않았다면 직접 개발한 장비와 약품 등에 대해 길게 설명해줬을 사람들이었다. 연구원들에 대한 편견이 아니고, 자기들이 만든 물건들에 의지해 목숨 걸고 지하로 내려갈 다른 사람들에 대한 경의를 표할 줄 아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단체였으니까.

 

그래서 테디베어의 지하 팀이 전달받은 것은 다음과 같다.

 

오염 중화제를 살포할 수 있는 약품 방사기. 분출 구멍의 넓이를 좁게 하는 것으로 사거리를 늘리거나 넓게 하는 것으로 사거리를 줄이고 방사 면적을 늘릴 수 있는 장비. 이런 물건들이 으레 그렇듯 탱크를 배낭처럼 메고 양손으로 조작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지만, 마물들의 연구팀 합류로 마도구와 마력을 더할 수 있게 되어 해당 단점은 개선됐다. 탱크는 물병 크기로 줄어들었고 마도구 중 하나인 마급의 수통이 물을 생성하는 원리로 내부 약품을 충전한다. 약품이 뿜어져 나오는 부분은 반중력 마법이 걸려있거나 신소재로 제작되어 기존 것과 비교하면 매우 가벼우므로 한 손으로도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마법사가 아닌 평범한 인간인 테디베어가 자기는 마급의 수통에 마력을 공급할 수 없으니 못 쓰는 거 아니냐고 질문했고, 연구팀은 ‘아, 주변에 다른 마물 분들과 함께 활동하시면 흘러나오는 마력만으로도 충분히 작동하니 괜찮을 겁니다. 마력 수집기의 기능도 포함되어 있거든요.’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비슷하게 오염이 중화된 표면을 빨아들이는 진공청소기. 이것도 빨아들인 물건을 다른 차원으로 보내는 식으로 작동해 아무리 많이 사용해도 무게가 늘어나지 않도록 처리되어 있었다. 소형화와 경량화는 당연했고, 일반 진공청소기와 비교하면 빨아들이는 힘이 훨씬 크다.

 

다음은 장비가 아닌 정보와 행동수칙이었다.

 

스크레치가 설명했고 부족의 병실에서 보았듯이, 감염된 생물에게는 무작위 위치에 노랗게 빛나는 혹이 생겨나는데 이것이 뇌나 심장과 같은 생명유지 기관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리고 나머지 부위는 물리적인 피해를 줄여주는 갑피가 자라나고, 만약 해당 갑피를 뚫는 무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생명 유지에 필요가 없는 부위가 되어버렸으므로 큰 피해를 줄 수 없다. 그러므로 혹을 사격해 터트리는 것이 효과가 증명된 효율적인 처치 방법이다.

 

해당 바이러스 운석은 연합이 위험 물질로 간주해 박멸해야 할 대상이지만, 이곳에 원래 살던 토착 생물들은 박멸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당장 운석을 파괴하는 것에 집중해야 하는 여러분에게 또 다른 임무를 줄 수 없으니, 감염되지 않은 생물 보호 및 표본 채집은 우리 팀이 맡겠다. 

 

이 바이러스는 마물들은 감염시킬 수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마치 그 자체로도 살아있는 생물처럼 행동해 몸에 여럿이 들러붙을 경우 죄여 드는 촉수처럼, 접착제를 온몸에 바른 것처럼 행동을 제약하므로 방호복에 너무 많이 쌓이기 전에 강하게 털어내는 것을 추천한다. 인간 실험은 마물들이 지구로 넘어오기 전에도 금지되어 있었으므로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우리도 모른다. 테디베어 씨는 방호복을 절대 벗지 말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

 

운석은 쉽게 말하면 바위지만, 굉장히 튼튼한 바위다. 우리 회사에서 섭외한 바위 파괴 전문가 골렘인 볼더 씨가 함께할 것이다. 볼더 씨를 운석까지 호위해주면, 볼더 씨가 파괴 작업을 개시할 것이다. 이때, 모든 감염된 생물들이 자신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운석의 심장을 지키러 귀환할 확률이 높다. 최소한 지금까지 갤럭시 드릴이 채광 중인 행성에서는 그랬다. 생명 반응 탐지를 대규모로 실행해두겠다. 파괴 작업과 동시에 방향을 운석 쪽으로 바꾸는 생명 반응의 위치를 표시해 두고, 그 위치까지는 감염이 퍼졌을 수 있으니 우리 팀이 처리하겠다. 여러분들은 볼더 씨를 운석까지 호위하고, 운석 파괴 작업이 시작되면 몰려오는 감염 생물을 상대로 방어전을 하시고, 파괴가 완료되면 운석의 심장에 약을 뿌리고 청소기에 담은 다음 남아있는 감염 생물을 전부 처치하시면 된다. 이 과정 중에 지나가시는 길에 감염이 퍼졌을 확률이 높고, 감염된 땅에서도 바이러스가 생성되니 가능하면 소독과 청소를 진행하시는 것을 추천한다.

 

작전은 대충 이러하며, 회사에서 근무할 때처럼 위성에서 보급을 낙하시킬 경우 농장에 큰 피해를 줄 수 있어 차량형 화물 드론이 여러분 바로 뒤를 따라갈 것이다. 아쉽게도, 지하 통로가 넓은 편이 아니라 화물 드론이 이동하기 위해서는 딱 전투에 필요한 물건만 실을 수 있어 화물 운송을 제외한 기능은 아무것도 탑재할 수 없다. 혹시 전에 회사에서 제공한 장비를 사용하실 거라면 호환되는 탄약과 의료 물자를 넣어 드릴 수 있다. 만약 다른 장비를 사용하실 거라면 그 장비와 호환되는 물자로 미리 화물 드론 내부를 채워두실 수 있도록 해 놓겠다.

 

설명을 다 들은 테디베어는 저번에 솔피 해적단 사건을 마무리한 보상으로 받은 새로운 에너지 무기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기에 돌하우스에 무기와 탄약을 배송해달라고 요청해, 운석 파괴에 동행할 화물 드론에 실었다. 테디베어는 탄약을 화물 드론에 넣고 새로운 무기를 살펴보다가 아로마와의 전투를 벌일 때 이것들을 사용했다면 우위를 점하고 싸울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다가, 만약 그렇게 싸우다 아로마에게 중상을 입혔다면 이렇게 넓은 지상 구역을 혼자서 맡을 수 있는 전력이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자, 모두 이야기 들으셨죠? 궁금한 거 있으신 분?”

“볼더라는 분께서 운석을 쪼개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요?”

 

물방울의 질문이었다. 테디베어 또한 좋은 질문이라고 답한 다음, 갤럭시 드릴의 연구원에게 시선을 돌리고 대답을 기다렸다.

 

“그건 운석의 크기에 따라 다를 겁니다. 저희가 아직 직접 본 게 아니라서 확실히 말씀드리기 어렵네요. 관측 장비로 그걸 찍어 주시면 분석해서 시간을 추정해낼 수 있겠지만, 볼더 씨가 도착하시면 직접 계산해서 알려주실 거예요.”

 

“그렇군요. 또 다른 질문 있나요?”

 

“저희가 부족 사람들의 지도를 찾아냈는데, 저한테 탑재된 음파 반사 지도 시스템과 연동해서 지형도를 만들어주실 수 있나요?”

루미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연구원들에게 홀로그램으로 지하에서 발견한 지도를 표시해주었다. 연구원 중 한 명은 뭔가 깨달은 듯 회사 로고가 그려진 상자로 뛰어갔다.

 

“네, 물론이죠. 그러고 보니 깜빡할 뻔했네요. 여러분 모두를 위해 회사에서 쓰던 음파 탐지 지형 지도 시스템이 장착된 단말기를 드릴게요. 작전 시작 전에 지도와 연동된 지형도를 만들어서 업로드할 수 있도록 서둘러 보겠습니다.”

 

사람 숫자에 맞게 단말기를 받은 루미는 회사에서 나올 때 이미 장비를 따로 받은 테디베어를 제외하고 모두에게 단말기를 나눠주었다. 물방울과 마찬가지로 ‘좋은 질문’이었다며 테디베어에게 칭찬도 받을 수 있었다. 주인님인 테디베어와 함께 죽음의 위기를 넘겨본 루미에게 있어서, 이런 일에는 철저함이 생명일 수밖에 없었으니까.

 

이제 테디베어는 ‘다른 질문은요?’ 하고 묻는 대신, 함께 위험한 일을 할 동료를 한 번 둘러보고 어깨만 으쓱해 보였다. 

 

“볼더 씨는 언제 도착하죠?”

 

나인의 질문이었다. 

 

“아, 벌써 도착해 계세요. 지하로 들어가는 입구 근처에서 기다리는 중이시라고 하네요.”

 

이후 짧은 침묵이 이어졌다.

 

“더 해야 하는 게 없으면 출발할까요?”

 

“네!”

 

테디베어의 팀은 갤럭시 드릴 연구원들과 짧은 인사를 나누고 지하 통로 입구 근처에 착륙해 있던 과학선에서 내렸다. 일행은 내리자마자 보호복을 입은 큰 덩치를 볼 수 있었고, ‘저 사람이 볼더겠구나.’ 라고 짐작했다.

 

테디베어는 전에 인공지능 택시 기사와도 긴 대화를 나눴던 루미를 보며, ‘골렘한테도 물어보고 싶은 게 많으려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루미를 비롯한 ‘새로 제작된 오토마톤’들은 기존 오토마톤들과 마물 마법사와 기계공, 인간 마법사와 과학자들이 함께 연구를 거듭해 탄생했고, 그 과정에서 오토마톤과 비슷한 마법 생물인 골렘과 골렘 제작자들의 도움을 받아 골렘에 대한 정보를 기본적으로 학습한 상태이므로 루미는 딱히 볼더에게 질문할 생각은 없었다. 있었다고 해도, 감염이 퍼져 나가는 것을 막아야 하는 급한 상황인 만큼 사태가 종료되고 난 다음에야 궁금한 것들을 물어봤을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테디베어가 선두에서 볼더에게 접근하자, 상대가 먼저 손을 내밀며 인사를 건넸다. 테디베어는 그 손을 잡고 악수를 했다.

 

“안녕, 그쪽이 테디베어 씨? 저는 볼더라고 불러주세요.”

 

“아, 안녕하세요. 위험한 일인데도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일이니 어디든 가야죠. ‘위험한’ 부분은 여러분께서 ‘안전하게’ 만들어 주실 거라 믿어요.”

 

“물론이죠. 끝까지 지켜 드리겠습니다.”

 

‘딱딱한 말투를 사용하지 않으시는 걸 보면 감정이 풍부한 골렘이신가 보네. 그 말은 남편이 있다는 뜻이겠지. 그리고 흙이나 바위가 아니라 금속으로 만들어지신 거 같은데?’

 

“준비는 다 해 오신 거 같은데, 출발할까요?”

 

볼더의 말에 뒤를 돌아본 테디베어의 눈에 보급품이 든 차량형 드론과 자신이 아끼는 선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모두 고개를 두 번 끄덕이며 동의의 표시를 하고 있었다.

 

“네, 저희가 앞장서죠.”

 

지하에서 괴물들과 싸워봤던 경험이 있는 테디베어와 루미가 선두를 맡았고, 바로 뒤에 물방울과 나인이 자리했다. 그 뒤로는 볼더, 꼬리는 그리스와 그리스의 포탑들이 경계하기로 정한 다음, 각자가 가진 조명 장비의 전원을 켰다. 그리고 바위와 흙, 나뭇조각 몇 개로 막힌 곳에 도착했다. 쥐와 두더지 부족이 운석을 격리하기 위해 설치한 벽이었다.

 

“루미, 저 벽 좀 치워줄래?”

 

“네! 주-”

 

루미가 말을 잇기 전에, 볼더가 앞으로 나서더니 보호 장갑을 벗고는 양손으로 벽을 후려쳤다. 그러자 순식간에 벽이 무너졌고, 볼더는 장갑을 다시 끼더니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주인님께 봉사할 기회를 없애버리다니! 그렇지만 감염의 근원을 제거하는 게 급한 일이기도 하고, 나보다 빠르게 정리한 것도 맞으니까 화내진 말아야지.’

 

루미는 전에 장착해뒀던 굴삭 장비로 무너진 잔해를 치우기 시작했다. 테디베어는 이제부터 전투가 기다리고 있을 것을 알았기에 권총집에 대구경 리볼버를 집어넣고 드론에서 에너지 소총을 꺼내 들고 볼더에게 한마디 했다.

 

“저희가 볼더 씨를 지켜야 하는 상황인 만큼, 그런 돌발 행동은 자제해주세요. 최소한 말이라도 먼저 해 주셔야 합니다.”

 

“어머나, 미안해요. 습관이 되어버려서 말이죠. 다음부턴 조심할게요.”

 

“모두 전투 준비! 여기서부터는 적대 구역입니다!”

 

그 말과 동시에 모두가 무기를 준비했다. 총기를 들지 않은 나인은 마도구를 손에 꽉 쥐었다. 또, 마치 환영이라도 하듯 무언가가 테디베어에게 날아들었지만 루미의 깔끔한 사격으로 격추되었다.

 

“주인님, 조심하세요!”

 

“고마워, 루미!”

 

방금 루미의 격발음이 신호탄이 되었는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노란색으로 발광하는 혹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에 루미는 주변의 벽과 천장에 조명탄을 발사했다. 각자가 가진 조명이 아주 밝기는 했지만, 한쪽만 비출 수 있었으므로 시야 확보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었다. 나인도 그에 맞춰 자신을 따라다니는 파란 불꽃을 머리 위에 소환했다. 

 

“접근하는 모든 감염 생물에게 사격 개시! 노란 혹을 노리세요!”

 

“네!”

 

어두웠던 공간이 밝아져 시야가 넓어지자 뒤틀린 거대 곤충처럼 생긴 감염 생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크게 떨리고 있는 노란빛 혹과 원래의 껍질 위에 자라난 검은색 갑각, 이리저리 뻗어나온 촉수가 인상적이었다. 또 시선을 먼 곳으로 옮기면 감염 생물들의 갑각과 비슷하게 검은색이며 뾰족뾰족하고 큰 구덩이 가운데 있는 큰 바위를 볼 수 있었다. 이번 테디베어 팀의 임무 목표인 운석임이 분명했다. 발밑을 보면 기분 나쁜 검은 바닥 사이사이에 크기가 서로 다른 노란 혹들이 불규칙하게 솟아나 있었다. 선두인 테디베어가 검은 바닥을 밟자마자 느리지만 확실하게 살점과 같은 질감의 실 같은 것이 보호용 신발을 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스 씨, 포탑을 전진 배치하세요! 방금 지나온 통로로는 적들이 몰려오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저희가 적을 막는 동안 바닥을 청소해주세요!”
 
“그렇게 할게요!”

 

그리스가 단말기를 조작하자 후방을 경계하던 이동형 포탑들이 테디베어 옆으로 나란히 서서 사격 대열에 합류했다. 그리스는 그런 다음 한 손에는 약품 방사기를, 다른 손에는 청소기를 쥐고 본인에게도 불안감을 심던 테디베어의 신발 부근에 약을 뿌린 다음 청소기로 빨아들였다. 그러자 테디베어의 신발을 타고 올라오던 바이러스와 감염된 땅이 깔끔하게 사라졌는데, 청소 행위에서 기쁨을 얻는 봉사 종족이나 자연을 중시하는 종족이 봤다면 신나서 춤을 출 정도로 효과가 좋았다. 물론 그리스는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기계와 장난의 종족인 그렘린이었지만 테디베어의 발을 구해냈다는 안도감과 임무 달성에 이바지했다는 사실에서 안도감과 보람을 느꼈다.

 

다행히도 감염 생물의 숫자는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운석이자 목표가 위치한 장소치고는 많지 않았기에 그리스의 포탑이 발포를 시작하자 전선을 조금씩 밀어낼 수 있었다. 그리스가 약점만 사격하도록 

포탑을 조정해 둔 덕분이기도 했다. 총기를 들고 있지 않은 나인은 테디베어를 처음 만났을 때 보여줬던 파란 불꽃을 집어던지고 있었는데, 불꽃을 맞은 감염 생물의 행동이 매우 느려지는 효과가 있었다. 테디베어는 불꽃과 동시에 방 온도가 내려갔던 것을 회상하며 질문했다.

 

“나인 씨, 저 파란 화염은 뭐죠?”

 

“차가운 불이에요! 체온을 빼앗아 버리죠!”

 

테디베어는 어떻게 작동하는지 등 더 궁금한 게 많았지만, 지금은 전투 중이었고 나인의 지금 바쁘니까 조용히 해 달라는 듯 긴장과 짜증이 섞인 듯한 목소리에 그만두기로 했다. 

 

“아무렇게나 변신할 수 있는 제가 봐도 변이 상태가 아주 끔찍하네요.”

 

물방울이 재장전하며 말했다. 물방울이 사용하는 무기는 솔피 해적들과의 전투 당시 물방울을 관통했던 플라스마를 발사하는 총기였는데, 슬라임 특유의 형체 변환과 신체 부위 조정 기능으로 뛰어난 조준과 반동을 완전히 받아내며 감염 생물들의 고통을 끝내주는 실력을 보였다.

 

“그런데 전선을 밀어내는 속도보다 청소 속도가 느려진 거 같네요. 제 분신이 모두의 청소 도구를 가지고 그리스 씨와 함께 청소해도 괜찮을까요?”

 

“분신들이 착용할 정도로 작은 보호복은 없는데,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해주시는 건 감사해요. 하지만 저는 물린다고 다치지 않으니까 이게 제일 효율적일 거 같아서요, 오라버니.”

 

테디베어는 잠시 상황을 분석한 다음, 사수 한 명이 빠지는 것으로 전선이 후퇴할 것 같지 않았기에 물방울의 제안을 승낙했다. 사실 처음엔 팀이 진입한 굴 말고도 다른 뚫린 굴들을 보며 불안함을 느꼈기에 거절했을 테지만 총성이 울리는 와중에도 그 굴들에서 새로운 괴물이 튀어나오지 않고 있었기에 허락해 준 것이다. 

 

그랬더니 물방울이 정말 작은 조각들을 떼어내 테디베어, 루미, 나인의 청소 도구를 챙겨 청소를 시작했다. 본체의 크기가 많이 줄어들지 않았기에 여전히 사격에는 문제가 없었고, 그래서 화력이 줄어드는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정리 끝이야!”

 

“네, 주인님!”

루미는 적의 숫자가 줄어듦에 따라 발사 방식을 연사에서 3점사로 변경했다. 이 굴에 들어올 때만 해도 멀어 보였던 운석은 가까워졌고, 감염 생물들도 한눈에 담을 수 있을 정도로 숫자가 줄어들며 팀의 긴장이 좀 풀리는 순간이었다. 그때, 

 

“미니 물방울 씨 조심하세요!”

 

“네?”

 

그리스의 외침과 동시에 청소 작업 중이던 ‘미니 그리스’ 중 하나의 바로 아래에서 온몸이 노란 혹으로 변해버린 괴물이 땅을 파고 올라오더니 폭발했다.

 

“모두 전방에 화력 집중! 무슨 일인지는 제가 확인하고 올게요!”

 

“알겠어요!”

 

테디베어는 폭발음과 그리스의 다급한 목소리에 전열이 흔들릴까 봐 모두에게 명령을 내린 후 그리스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무슨 일이죠, 그리스 씨?”

 

“저, 그게, 물방울 씨 분신 중 하나가 땅속에서 올라온 자폭 괴물한테 당했어요!”

 

“제가 한 번 볼게요!”

 

테디베어가 폭발로 패인 땅 근처에 가만히 있는 물방울의 분신에게 다가가서 확인해보니, 아까 자신의 신발에 기어 올라오던 꿈틀대는 바이러스로 덮인 채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분명 손으로 뜯어내던가 강한 힘으로 털어낼 수 있다고 한 거 같았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보호장갑을 낀 손으로 분신에게 달라붙은 바이러스를 전부 떼어냈지만, 여전히 청소 장비를 양쪽에 하나씩 쥐고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스 씨, 청소는 그만두고 전열에 합류해주세요. 그리고 방울이한테 제 쪽으로 오라고 해 주세요.”

 

“아, 네!”

 

테디베어가 무기를 들고 주변 경계를 시작했고, 그리스는 철갑 슬러그탄이 장전된 자신의 산탄총을 들고 물방울에게 뛰어갔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물방울의 본체가 테디베어의 위치에 도착했다.

 

“무슨 일이죠, 오라버니?”

 

“방울아, 네 분신이 바이러스에 뒤덮여서 내가 그걸 떼어냈는데, 바이러스에 뒤덮인 순간부터 꼼짝도 못 하고 있어.”

 

설명을 들은 물방울은 테디베어와 굳어버린 본인의 분신을 번갈아 보더니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니, 분신처럼 경화되었다는 게 아니고 어떤 감정이 폭발할 듯 밀려와 세포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됐다는 말이다. 그 표정은 공포에 질린 것 같았다.

 

“방울아, 방울아? 물방울!”

 

오빠가 자신의 이름을 세 번 부를 때까지도 물방울은 대답이나 어떤 행동을 취하지 못했다. 이 정도면 무기를 떨어뜨리지 않은 것을 칭찬해 줘야 할 수준이었다. 분명 괴물의 숫자는 줄어들고 있었지만 어쨌든 이곳은 죽느냐 사느냐가 갈리는 전장. 테디베어는 물방울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그래도 반응이 없었다. 

 

‘이 방법만큼은 안 쓰고 싶었는데.’

 

테디베어는 주먹을 꽉 쥐고는 물방울의 코어가 있는 쪽으로 내질렀다. 그렇게 손을 물방울의 몸속에 집어넣은 다음에는 주먹을 펴고 물방울의 코어를 아주 약한 힘으로 감싸 쥐었다. 그러자 물방울은 온몸을 부르르 떨더니 정신을 차린 듯 대답했다.

 

“아, 아....... 네, 네? 오라버니!”

 

“괜찮아?”

 

“죄송해요. 저렇게 변해버린 조각을 보니 옛날에 실험을 당하던 때가 떠올라버려서....... 이러면 안 되는데.”

 

“무서운 게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자, 먼저 마음을 좀 가라앉히자.”

 

테디베어는 두 팔을 벌렸고, 물방울도 그에 따라 자신의 팔을 벌리고는 서로의 손이 등에 가도록 꽉 껴안았다. 물방울은 서로의 보호장갑과 보호복 때문에 오빠의 피부와 자신의 점액이 맞닿지 못하는 부분이 좀 아쉽긴 했지만, 어쨌든 공포에 질린 마음을 평정하는 것에는 성공했다.

 

“고마워요, 오라버니. 아무튼, 이 외계 바이러스가 제 세포에 닿으면 빠르게 굳어버리고, 모든 기능을 상실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한테 분신이 당했다는 정보가 전달되지 않은 거죠.”

 

“그럼 이 분신은 어떻게, 두고 가야 하나?”

 

“밖에 있는 연구원분들께 분석을 의뢰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어쨌든 제가 다시 흡수하기에는 위험해 보이네요.”

 

“미안해, 위험할 줄 알았으면 허락해주지 말걸. 나 때문에 몸을 잃어버렸네.”
 
“아니에요, 제가 원해서 부탁한 일이었으니까요. 주변을 보면 청소도 잘 됐잖아요. 일단 나머지 분신들은 계속 청소하게 두고, 그리스 씨랑 포탑을 이쪽으로 다시 데려오는 게 좋겠어요. 자폭하는 괴물을 포탑이 처리해주면 분신들도 안전하겠죠. 또, 지하에서 기습하는 적들이 있다는 사실을 어서 가서 알려주러 가요.”

 

“그래, 방금 방울이가 한 말은 이 시계로 루미한테 전달해뒀어. 그럼 어서 가서 그리스 씨랑 다시 자리를 바꾸자.”

 

“네, 오라버니!”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달받은 루미는 그리스에게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서, 가능하다면 포탑에 진동 탐지 기능을 넣어 지하에서의 습격을 대비한 상태로 청소를 계속해달라고 이야기했다. 그리스는 ‘한번 해 볼게요!’ 하며 산탄총을 등에 메고 공구를 꺼내 들고 달려가면서 원래의 대열로 합류하는 테디베어와 물방울과 자리를 바꿨다. 그렘린 종족의 특성상 키가 작아 허둥지둥 움직이는 게 귀여워 보이기도 하지만 총과 예비 탄약, 정비용 공구함에 각종 단말기, 보호복까지 입은 상태로도 아무 탈 없이 뛰어다니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확실히 마물은 마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두 사람이 다시 무기를 꺼내고 돌아와 보니, 상황은 거의 다 정리된 상태였다. 실전 상황에서 마법을 처음 써 보는 나인이 능력 사용에 익숙해지면서 결계를 통해 파란 화염이 번져나갈 경로를 유리하게 조절하거나, 사격으로 찢어진 혹에서 나온 체액을 얼려서 괴물들이 미끄러져 넘어지게 하는 등 새로운 기술들을 사용한 덕분에 팀원과 볼더를 안전하게 지켜낸 덕분이었다. 

 

“우와, 나인 씨가 우리 편이라서 다행이네요.”

 

“학원에서 기초를 잘 가르쳐 준 덕분이죠. 전 그걸 잘 응용했고요. 또, 촉수를 이쪽으로 휘둘러대는 걸 보고 난 이후부터는 생명을 앗아간다는 데서 오는 죄책감도 없어지더군요.”

 

“네, 제가 절대 이 행성의 토착 생물들을 대표할 수는 없겠지만, 평온을 맞이했을 거 같아요.”

그렇게 말한 나인은 쌓인 시체들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조용해졌다. 테디베어는 잠시 그런 나인을 혼자 두기로 했다.

 

“루미, 지금 상황을 분석해 줄래?”

 

“제 생물 탐지기로 확인해 본 결과, 목표인 운석 주변의 괴물들은 전부 쓰러졌어요.”

 

“고마워, 루미. 작전 계획에서 운석을 파괴하려고 하는 순간부터 지하 곳곳에 퍼진 괴물들이 여기로 돌아온다고 했었지?”

 

“네, 주인님.”

 

“그럼 방어 계획을 세워야지. 모두, 이쪽으로 모여주세요!”

 

그 말에 따라 청소 중인 물방울의 분신들을 제외하고 모두가 운석 근처에 모였다. 

 

“좋아요. 지도를 보면서 작전을 짜 봅시다. 다들 아까 받은 지도 단말기을 꺼내서 정보 갱신 버튼을 눌러 주세요.”

 

갱신 버튼을 누르자, 이전에는 봉쇄 구역으로 표시되던 운석이 위치한 굴로 통하는 통로가 여러 개 나타났다. 

 

“여러분이 직접 두 눈으로도 보셨고, 지도로도 보실 수 있듯이 이곳으로 통하는 길은 저희가 들어온 통로만 있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높은 확률로 운석 파괴가 시작되면 저희가 지나다닌 적 없는 통로로 적들이 몰려오겠죠.”

 

“하지만 땅을 파고 이동하는 괴물들도 있으니, 그 통로만 막는다고 안전이 보장되지는 않을 거예요.”

 

“볼더 씨의 말도 맞아요. 혹시 작업 중에 큰 진동이나 소음이 발생하나요?”

 

“아니요. 제 방식은 바위의 취약점을 찾아낸 다음 후려치는 거라서 때리는 부분을 제외하면 딱히 큰 소리는 안 나죠.”

 

“그럼 저희가 격발음으로 관심을 집중시키고, 또 루미의 생명체 탐지기로 지하에서부터 볼더 씨에게 접근하는 괴물을 먼저 찾아내서 처리할게요.”

 

“오, 네. 그럼 이 녀석의 어디를 때려야 부서질지 조사를 시작할게요. 끝나면 파괴까지 걸리는 시간을 1분 정도의 오차로 계산해서 알려 드리죠.”

 

“그렇게 해 주세요. 그럼 다음은 방어 작전. 일단 그리스 씨의 포탑을 포함해서 모두 소비한 탄약은 드론에서 장전하세요.”

 

“네!”

 

루미의 경우에는 무기 시스템이 갤럭시 드릴과 호환되므로 단순히 외부 탄약통만 교환하면 됐지만, 그리스는 4대의 포탑까지 장전해야 했기에 장전을 마친 물방울이 분신을 만들어 장전을 도와주었다. 테디베어도 자신의 무기를 장전하고 탄창을 추가로 챙겼다. 나인은 탄을 챙길 필요는 없었지만, 드론의 의료품 칸에 들어 있던 마력 물약을 눈을 찡그린 채로 들이켰다. 평범한 인간인 테디베어는 마실 일이 없었기에 얼마나 맛이 없는지는 나인의 표정을 보며 상상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테디베어의 지휘 아래 그리스는 4대의 포탑을 운석과 볼더에서 조금 떨어진 위치에 동서남북으로 각자 90도 범위를 맡을 수 있게 배치했다. 루미는 볼더 근처인 운석 위로 올라가 지정사수 소총으로 무기를 전환해 볼더에게 접근하는 적, 그리고 위험한 적 우선 저격을 맡았다. 

 

“오라버니, 저는 그럼 어디에 자리를 잡아야 하죠?”

 

“음, 그거 말이지. 혹시 이 구역 청소는 끝났니?”

 

“네, 새로 발견된 통로를 제외하면 끝났답니다.”
 
“잘했어! 방울아.”

 

테디베어는 인간 모습을 취하고 있는 물방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물방울은 평소처럼 공 모양으로 변해서 그 손길을 느끼고 싶었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언어와 신체적 칭찬을 함께 받는 걸로도 충분한 만족감을 느꼈고, 몸의 색깔이 밝은 노란색으로 변했다.

 

“그럼 일단 청소기부터 여기로 가져와서 분신들을 다시 본체에 합쳐 줄래?”

 

“그렇게 할게요.”

 

물방울의 분신들은 테디베어의 말에 따라 네 발 달린 모습으로 변해서는 등에 약품 살포기와 청소기를 매단 채로 쏜살같이 물방울의 본체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운석이 깨지면 바로 사용해야 할 도구들이었으므로 볼더 근처에 청소 세트를 내려놓은 분신들은 다시 물방울의 본체에 흡수되며 본체의 크기가 지하에 들어오기 전 수준으로 다시 회복되었다. 그러니까 몸집이 도로 커졌다.

 

“사실, 회사에서 파워 슈트를 입은 인원이 운용하는 대형 기관총도 몇 정 챙겨달라고 부탁해뒀거든.”

 

“하지만 저희 중엔 파워 슈트를 입은 사람이....... 아!”

 

“맞아. 방울이가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챙겨달라고 했거든. 그, 자세히는 모르지만 아까 사격할 때처럼 반동을 잘 받아내는 몸 형태로 변신한다거나, 근육을 만들어서 무거운 기관총을 들 수 있지 않을까?”

 

“네, 그런 거라면 문제없죠. 하지만 무기가 여럿이라면 지금 제 크기를 나누면 많이 부족하지 않을까요?”

 

“그럴 줄 알고 압축식량도 준비해뒀어. 마물 연구원분들이랑 인간 영양사분들이 같이 개발한 거라서 맛도 나름 괜찮다고 하더라고.”

 

“아....... 그렇군요.”

 

‘오라버니의 정을 받는 게 에너지 효율이나 맛에서 제일 좋겠지만, 작전 중이니 참아야겠죠.’

 

물방울은 잠시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훌훌 털어버리고는 압축 식량을 꺼내 물을 부은 다음 전부 몸에 쏟아부었다. 다른 인원들이 먹을 전투 식량은 충분히 남아있었기에 식량을 바닥내버렸다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리고는 몸속에 들어온 식량을 빠르게 소화하고는 몸집을 크게 불렸다. 

 

“좋아, 방울아. 여기 무기랑 탄약이 있으니까 그리스씨가 맡은 네 방향의 남는 공간에 들어가서 팔각형 진지가 세워지도록 해 줘.”

 

“네, 오라버니. 가서 준비할 테니 오라버니도 다치지 않게 조심하세요.”

 

“그럼, 최대한 노력할게.”

 

물방울‘들’이 정해진 위치로 이동했고, 테디베어는 포탑 배치를 끝내고 쉬고 있는 그리스와 아직 따로 역할을 부여받지 않은 나인을 불러모았다.

 

“아, 네!”
“제 역할은 뭐죠?”

 

“나인 씨, 저희가 사용한 통로를 제외하면 지도에 보이는 통로는 5개쯤 되는 거 같은데, 혹시 저것들을 한꺼번에 막아두실 수도 있나요?”

 

“할 수 있죠. 불꽃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저 정도 크기의 결계를 2분 정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군요. 그러면 그리스 씨, 혹시 이런 좁은 통로를 폭탄으로 무너뜨린다고 했을 때, 어디에 폭탄을 설치해야 가장 효과적인지도 알아내실 수 있을까요?”

 

“음, 어, 그런 계산은 해 본 적 없지만, 직접 가서 보면 감이 잡힐 거 같아요. 아, 그래서 보급품 중에 굴삭용 폭탄이 있었던 거네요. 저는 운석을 터트리려고 하는 줄 알았어요.”

 

“연구원들이 그 방법은 별로 효과가 없다고 했거든요.”

 

“음, 하지만 굴삭용 폭탄은 파편을 흩뿌리지 않아서 괴물들의 혹을 터트리는 데에는 큰 쓸모가 없지 않을까요?”

 

“시간을 벌려는 거죠. 이따 저 굴을 통해서 괴물들이 기어나오면 나인 씨의 결계로 길을 차단해서 최대한 많은 괴물이 모이도록 한 다음, 굴을 통째로 무너트리려고요. 그렇게 진입을 막아두면 볼더 씨가 작업하기 편해질 거고, 혹시 이 과정 중에서 괴물들이 죽으면 수비하기도 좋겠죠.”

 

“아, 그러네요. 그럼 나인 씨랑 같이 가서 폭탄을 설치하고 올게요!”

 

“아니, 폭탄은 제가 들고-”

 

“그러실 필요 없어요. 가장 높은 사람이 상황을 전부 지켜보고 있어야죠. 폭탄은 제가 챙겨 가면 되니까 여기서 방어에 필요한 다른 점을 찾아주시겠어요?”

 

나인이 테디베어의 말도 끊고 적극적으로 나서자 테디베어도 딱히 반대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터지는 걸 무서워하시는 줄 알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네. 총처럼 생기지는 않았으니까요.”

 

“그럼 부탁할게요.”

 

나인은 굴삭용 폭탄이 잔뜩 든 배낭을 메고 그리스와 이동했다. 가는 길에, 나인이 그리스에게 말을 걸었다.

 

“저, 그리스 씨.”

 

“네, 나인 씨.”

 

“혹시 어떤 이유로 돌하우스의 선원이 되기로 마음먹으셨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으으음....... 아니요. 나인 씨가 먼저 왜 인간을 싫어하셨는지 이야기해주시면 그때 이야기해 드릴게요.”

 

“한 방 먹었네요. 그럼 다른 질문을 해 볼게요. 돌하우스의 모두는 서로 높임말을 쓰나요? 그러니까, 물방울 씨와 테디베어 씨 같은 사이가 아니라면요.”

 

“아, 맞아요. 처음 만날 때부터 그래왔던 관계에, 서로 그런 말투에 불편해하지도 않아서 계속 이렇게 지내고 있어요. 그러고 보니 로켓 씨는 나름 예의 바르게 행동하시지만 ‘선장님’ 이라는 단어 외에는 높임말을 안 쓰셨지만 아무도 불쾌해하지는 않았었죠.”

 

‘서로 합의하면 문제없다는 거구나.’

 

“고마워요.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혹시 테디베어 씨가 귀를 청소해 주신 적 있나요?”

 

“있어요! 쓰다듬어주시거나 안아주실 때면 엄마아빠의 품과 같은 느낌이에요. 귀 청소를 해 주셨을 때는 처음 만든 제 포탑이 작동하는 걸 보던 것처럼 개운했어요. 아, 로켓 씨는 꼬리 마사지도 받으셨다고 했었는데, 나인 씨도 선원이 되면 꼬리 관리를 받으실 수 있을걸요? 테디베어 씨는 선원들의 행복 관리에도 힘을 많이 쓰시니까요!”

 

‘그 근육 덩어리인 고래 꼬리도 마사지할 수 있다고? 정말 평범한 인간 맞아?’

 

“그, 그렇군요. 답변 고마워요. 마침 굴에 도착했네요. 폭탄 설치가 끝나면 어느 위치에 결계를 만드는 게 가장 큰 피해를 줄 수 있는지도 알려주세요. 거기에 조명탄을 피울게요.”

 

“좋은 생각이네요! 남은 굴이 많으니까 서두르죠!”

 

갑자기 열성적으로 선장님 특제 선원 관리 마사지에 대해 설명을 시작한 그리스를 보고 나인은 잠시 당황했다. 말문이 막힐 뻔했지만 딱 맞게 목표 지점에 도착했으므로 나인은 일 이야기를 꺼내 대화를 이어갔다. 그렇게 둘이 폭탄을 설치하는 일을 하던 중, 운석을 이리저리 더듬어 보던 볼더는 무언가를 알아냈다는 듯 손뼉을 ‘쾅’ 쳤다. 그리고는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던 테디베어와 루미 쪽을 보고는 입을 열었다. 

 

“3장으로 2겹. 그러니까 파괴 작업 6번을 수행해야 하고, 각 작업에 약 2분이 걸릴 것 같네요. 그러니까 최종 시간은 12분에서 오차가 3분 있을 수 있겠죠?”

 

“방금 오차가 1분 정도 있을 거라고 하시지 않았나요?”

 

“맞아요, 오토마톤 아가씨. 그런데 그건 파괴 작업 2번 기준이었어요. 미안해요. 지금까지 이렇게 오랫동안 때려야 하는 바위는 저도 본 적이 없어서 말이죠.”

 

“그렇군요. 다른 분들께도 이 정보를 전달할게요, 주인님.”

 

“응. 그럼 그리스 씨와 나인 씨가 돌아오는 대로 작업 시작하자. 아, 위에 있는 연구원분들한테도 곧 작업 시작한다고 전해 줘. 그래야 땅이 어디까지 감염됐는지 확인할 수 있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한편 그 시각, 사람들이 전부 대피한 농장에 아직 남아 있던 아로마와 플러피는 은빛 쉼터의 직원들이 제공한 맛있는 간식을 먹으며 잠시 쉬고 있었다. 아로마의 주변에는 9개의 화면이 농장 위를 떠다니는 카메라가 촬영하는 영상을 출력하고 있었는데, 괴물의 흔적 같은 건 전혀 확인할 수 없었다.

 

“아로마, 선장님은 괜찮을까?”

 

“다른 분들이 지켜주고 있으니까 괜찮으겠죠. 오히려 나쁜 놈들이 도망가야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하. 나쁜 놈들이 땅속 대신에, 땅 바깥으로 나오면, 우리가 처리하는 거, 맞지?”

 

“그렇죠.”

 

“그럼 아로마도 총 쏴야 해?”

 

“음, 보통이라면 네. 라고 대답했겠지만, 저쪽을 한 번 봐 줄래요?”

 

“응. 보고 있어.”

 

곧 플러피의 눈에는 자동차만 한 식물 줄기가 땅속에서 튀어나와 뱀처럼 기어 다니는 모습이 들어왔다. 동시에, 마치 지진이 난 듯 땅이 흔들렸다. 플러피는 신기한 것을 본 아이처럼 빛나는 눈을 하고는 아로마 쪽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오오, 아로마 대단해! 바닥이 막 흔들렸어!”

 

“어, 방금 그건 제가 한 게 아닌데요.”

 

“응?”

 

“그, 그러니까....... 지하에서 선장님이 한바탕 하고 계신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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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나 오류 지적 받습니다. 이번 화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