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2067년, 인간이 사라지고 몬무스들이 지구의 주인이 된 시대.

침대 곁에 놓인 오르간의 자동 알람이 발산하는 경쾌하고 약한 전기 자극에 에레무스는 눈을 떴다.

폭풍우가 하늘을 가려버린 이 바다 한가운대, 한 등대지기는 여느때처럼 아침인지 밤인지 모를 하루를 맞이한다.

그녀는 허기를 채우기 위해 방에서 나와 나선형 계단을 타고내려갔다, 늘 보던 풍경이었다.

찢어지는 바람소리가 등대에 부딪혀 부서지는 소리는 그녀에겐 친구와도 같았고, 하늘이 우는 듯한 빗소리는 그녀의 해리성 정체성 장애을 억누르는 유일한 장치였다.

그리고 그녀는 부엌의 냉장고를 열어 무엇이 있는지 살폈다.

그 초라한 냉장고에는 거의 다 먹어가는 간편식품들만이 들어있었다.

그녀는 그중에서 하나를 꺼내어 뚜껑을 따서 먹었다.

간편식품의 정체는 다진생선이었고, 맛을 미루어보아 시로어였다.

시로어, 방사능이 바다로 흘러들어가 만들어낸 돌연변이.

처음에는 방사능이 짙어 가까이 가지도 못했으나, 2040년에 이루어진 '바다 정화 프로젝트'에 의해 방사능이 존재하지 않게되어 식용이 가능해졌다.

그녀는 흰색 점박이가 있는 남색 상어 꼬리를 보며, 언젠가 보일 육지를 꿈꾸고있었다.

10년전, 에레무스는 버려지듯 이곳의 등대지기가 되어 홀로 자신의 외로움과 싸우다, 결국 정신질환을 얻은채 미친채로 살아가고있다.

그저 부엌의 어항속에 있는 안드로이드 물고기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자신도 언젠가 육지로 나가 이런 기계가 아닌 진짜 물고기를 키우겠다는 마음으로, 에레무스는 하루하루를 버티고있다.

이 세상에 물고기라곤 이제 거의 시로어뿐이라, 애완용 열대어나 참치같은 고급 생선은 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인맥이 없다면 한마리 구하기가 어려운 세상속에서.

그녀는 음식을 전부다 먹은체, 등대 밖으로 나가보았다.

찢어지는 바람소리, 해를 가린 먹구름, 모든걸 뚫을 기세로 내리는 비.

폭풍우가 치는 이 바다 한가운대에서, 그녀는 바다속으로 잠수했다.

바다속은 당연하게도 차가웠다.

하지만 그 차가움마저 그녀에겐 따뜻함이 될수있었다.

그 바다속에는 푸른색은 온대간대 없었고, 죽어버린 산호들과 따개비, 그리고 시로어들만이 가득했다.

바다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차가운 현실이었다.

하지만, 그건 육지를 꿈꾸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이제 이 지구에 살기좋은곳이란건 없으니.

과도한 과학의 발전을 몬무스가 따라가지 못하여, 서로를 기술의 재료로 쓰는 사람들이 수두룩하고, 정부는 '생물의 본질은 욕망이며, 생물은 그 욕망을 따라야한다' 는 신념아래에 모든일을 방치하고있다.

육지의 이들은 바다를 동경하며, 바다의 이들은 육지를 동경한다.

그런 모순 속에서 그녀는 칙칙한 바다를 돌아다니며, 늘 보던 난파선을 구경하러갔다.

난파선의 갑판 부분에는 '도망자호'라고 적혀있었다.

그 크기는 평범한 어선이었고, 녹이 슬고 비틀려서 갑판을 제외한 형체를 알아볼수없었다.

이 배는 2년전 등대바로 앞에서 폭풍우에 의해 침몰한 배로서, 그들의 말로를 지켜본건 에레무스만이 유일했다.

그렇게 심심할때마다 찾아가던 그 난파선조차 바닥을 그리고 있었기에, 에레무스는 다시한번 죽어가고있다.

그녀는 다시 바다를 나와서, 등대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거울을 하염없이 지켜보았다.

지느러미 같이 생긴, 끝이 말린 흰색 장발과 푸른끼가 맴도는 검정색 눈동자, 고래상어의 꼬리와 짖어서 속이 비치는 셔츠.

그것이 그녀의 전신이었다.


"그래, 이 모습을 대체 몇번째 보는건지."

"그렇지...?"


두 목소리가 번갈아 울린다.

하나는 시니컬하고 허스키한 목소리,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소심하고 어린 아이같은 목소리가.


"몇번째 질문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둘중 누가 '나'일까?"

"그건...."


그 질문은 그녀가 하루에도 수없이 한 질문이었다.

스스로인지 우리인지 모를 이에게 한 질문.


"궁금한게 있어."

"뭔...대..?"

"우린 상어잖아."

"응."

"그러면, 육지까지 헤엄쳐 갈수있지 않을까?"


10년간 한번도 나오지 못한, 나오지 않은 생각이었다.


"그치만 우리는..."

"등대지기지, 길을 헤매는 배를 인도하는 등대지기."

"비록 이곳에 버려졌어도, 우린 주어진 일을 해내야하는거 아닐까...?"


또다른 에레무스, '데솔라티오'는 망설였다.

'정말, 우리가 이곳을 떠나도 되는걸까?' 라는 걱정을 하며, 갈곳없는 마음을 이곳에 묻어두려한다.


"확실히, 이 등대는 우리가 없다면 1주일 내에 작동을 멈출거야."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걸까, 과연 수많은 어선들을 등진채 개인의 욕망을 위해 떠나도 되는걸까."


그 갈등속에서, 그녀는 해답을 찾을수있을까.

그리고 이 이후는, 순전히 그녀의 선택에 따라 결정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