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토눌라의 난 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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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트릴랑의 결심 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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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방진 제자와 답답한 스승 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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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자신들의 말다툼을 방해한 자를 보니, 희고 깨끗하며 발을 가릴 만큼 긴 옷을 입고 머리 뒤에는 둥그렇게 빛이 나며 등에는 청동빛 깃털로 덮인 독수리 날개가 달린 사람이 있었다. 산트릴랑은 그가 천사임을 알고 바닥에 납짝 엎드려 그를 보내신 하느님께 경배하였다. 토속신들도 예를 갖추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이오니, 말씀하시는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비나이다!"


그러나 못난 제자는 눈 앞에 선 이가 천사든 악마든 알 바 아니고, 그저 자기 일을 방해한 것이 불쾌해서 말대꾸를 했다.


"넌 뭐냐? 바쁜 사람 잡지 말고 갈 길..."


제자는 말을 마치지 못했다. 스승이 기도문을 외워 그를 제압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조용해진 것을 본 천사는 전언을 계속했다.


"들어라, 주님의 말씀이다! 너희의 말을 잡아먹은 드래곤은 포세이돈의 손녀, 트리톤의 셋째 적녀(嫡女)로서 죄를 짓고 주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였기에, 그 보속으로서 전능하신 천주의 구속사업에 참여할 것을 명 받은 자이다. 이제 트레슬린구아나, 즉 주님을 따라 그 사업을 주도하는 이가 왔으니 트리톤의 딸은 그를 보좌하여 순례를 떠나라!"


날개 달린 자는 전언을 마치자마자 사라졌다. 베르토눌라는 기가 막혀서 그 자리에 있지도 않은 이에게 쏘아붙였다.


"구속(redemption)사업이고 뭐고 잘나신 주님더러 내 머리의 구속(restriction)이나 풀라 그래라! 얌전히 따라간다고 했건만 믿지도 않고 이딴 거나 쓰게 만들고 말이야! 그리고 네놈이 방금 한 그 말은 우리가 아니라 저 괴물에게 해야 할 게 아니냐?"


이에 산트릴랑이 제자를 말렸다.


"아서라! 주님께서 주신 것은 의심할지라도 거부해선 안 되고, 받아들인 운명은 반성할지언정 저주해선 안 된다! 너는 이전에 그걸 쓰게 된 것을 받아들이겠다고 하지 않았니? 또, 천사님께서는 주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하느님 나라에서 이 지상까지 내려 오셨는데 또 물 속에 들어가라고 하면 고생을 시키는 격이 되지 않니? 네가 말씀을 기억했다가 그 드래곤에게 직접 전해 주렴. 넌 재주가 많으니 물고기나 물방울로 변해서 그걸 찾아내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잖아?"


스승의 꾸지람을 들은 죈노비스는 불쾌한 표정을 띠고는 머리털 한 가닥을 끊어 호수를 향해 불어 날렸다. 그러자 그 털이 조그만 올챙이 수천 마리가 되어 호수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베르토눌라는 "찾았다." 한 마디를 내뱉고는 스스로 물고기가 되어 호수 안으로 들어갔다. 스승인 산트릴랑은 그가 무얼 찾았는지 몰라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베르토눌라가 향한 곳은 드래곤이 숨은 굴이었다. 드래곤은 거기 숨어서 베르토눌라의 공격이 멈추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고, 울림이 멈추자 그가 질려서 떠나버렸음을 확신하고 나갈 준비를 했다. 호수 안에서는 처음 보는 모습을 한 물고기가 앞에서 알짱거리고 있었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그 물고기가 말을 걸기 전까지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이렇게 깊게 숨었으니 얕은 곳에서 난리를 쳐도 별 감흥이 없었겠지."


드래곤은 경악해서 뒤로 나자빠졌다. 그는 바다의 신의 후예라서 물고기들이 소통하는 것을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그의 앞에 있는 것과 같이 말을 하는 물고기는 본 적이 없었다. 그걸 본 물고기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봐, 트리토나 트리티(Τρίτωνα Τρίτη, 트리톤의 셋째 딸). 신의 자식이 모양 빠지게시리 뭘 그렇게 놀라나? 나는 물 위에서 네가 먹어치운 말을 되찾으려고 공격했던 자이다."


드래곤이 두 번째로 놀라서 물었다.


"어떻게 나를 찾았고, 어떻게 모습을 바꾸었는가? 그리고 내 정체는 어떻게 알았는가?"


"그걸 알고 싶다면 내 말부터 들어라. 나자렛 예수가 보낸 자가 말하더라. 네가 천주의 일을 거드는 자를 보좌해서 이전에 지은 죄를 용서받을 때가 되었다고 말이야."


베르토눌라의 말을 들은 드래곤은 세 번째로 놀랐다. 그걸 본 물고기는 괴물의 한심한 모습을 보고 그에 대한 호승심이 사라져 목소리를 더욱 낮춘 채 말하였다.


"그만 좀 놀라라. 어쨌든 그 '천주의 일을 거드는 자'란 네가 잡아먹은 말의 주인이고 내 스승이다. 내 뒤에 있던 칙칙한 머릿수건과 옷을 걸친 자를 기억하느냐? 그가 바로 네가 보좌할 이다."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드래곤은 물고기를 지나쳐 순식간에 수면에 다다랐다. 베르토눌라는 기가 차서 자기도 물 밖으로 나갔다. 그 드래곤은 사람의 형태로 변해 산트릴랑의 앞에서 예를 갖추었다. 그 용모는 피부가 맑은 날의 바다처럼 푸르고, 어린갑으로 배를 보호하고 큰 조개껍데기 같은 철판으로 가슴을 가렸으며 머리에 물고기 모양 투구를 쓰고 발에는 지느러미 같은 군화를 신은 옛 그리스의 여장부와 같았다.



"오, 위대하신 현자여! 트리토나 트리티가 스승을 알아뵙지 못하고 결례를 범했습니다! 용서하시고, 이 못난 여인에게 당신과 동행하는 영광을 베풀어 주십시오!"


산트릴랑은 이를 보고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자 뒤따라나온 베르토눌라가 스승에게 그를 소개했다.


"이자가 아까 그 드래곤이오. 괴물 주제에 사람의 모습을 취할 줄도 알았나 보오."


스승은 그 설명을 듣고, 베르토눌라로 하여금 잠시 물러나게 했다. 그리고 나서 트리토나 트리티에게 말했다.


"주님께서 너를 우리의 순례길에 동행하도록 하신 것은, 너의 죄를 사하기 위함이야. 네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내게 직접 말해보렴. 그리고 그 죄를 다시 짓지 않겠다고 약속하자."


"예, 저는 할아버지의 허벅지에 용암을 묻혀 화상을 입게 만들고 도망치려 했습니다. 이는 공경해야 마땅한 분를 공경하지 않은 것이고, 다른 이를 함부로 해한 것이며, 또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그 책임을 멋대로 회피하였으니 행동 한 번으로 악행을 셋이나 지은 셈입니다. 스승님. 제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죄도 용서해 줄 것을 주님께 청하여 주십시오."


산트릴랑은 그가 진심으로 죄를 뉘우치고 있다고 환신하여, 다시 베르토눌라를 불러 트리토나 트리티를 자신들의 순례길에 데려갈 것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베르토눌라가 따지면서 반대하였다.


"저 자는 할아버지 허벅지에 화상 입히고 도망친 건 뉘우쳤지만, 우리의 말을 잡아먹은 건 뉘우치지 않았는데, 당신의 순례길을 함께 나아가도 되는 거요?"


이에 스승이 놀라서 물었다.


"나는 너에게 이 여인이 회개하는 바를 들려주지 않기 위해 소리가 안 들릴 곳까지 물러나도록 했는데, 너는 어떻게 그가 한 말을 알아냈니?"


"하하핫! 스승이여. 내가 바위산에 갇혔을 때 그 산맥에 있었던 모든 소리를 들었던 것을 잊었소?"


"아니, 그럼 전부 들었겠구나! 그러면 안 되지! 회개하는 이들은 자기 치부를 드러내는 수치를 애써 억누르면서 고백 기도를 할 줄 아는 이에게 죄를 고하는데, 그걸 엿들어서 뉘우치는 이의 용기를 짓밟는 것은 매우 비열하고 간악한 짓이야!"


"아까 천사가 다 말한 거 또 들었다고 나를 또 죄인 취급하는 거요? 스승이여, 당신도 참 답답한 사람이군그려!"


"너야말로 참 건방진 사람이구나! 주님의 섭리와 스승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만 행동하면서,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모르니 말이야!"


두 사람이 말싸움에 빠지자, 트리토나 트리티가 일어나 그들을 말리며 말했다.


"두 분께서는 싸움을 멈추십시오! 물론 말을 함부로 잡아먹은 것도 죄가 맞습니다. 그러니 제가 대신 말이 되어 스승님을 성지로 옮겨 드리겠습니다. 저는 말을 좋아하시는 할아버님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말 흉내에 능합니다!"


그는 말을 끝낸 즉시 온몸의 털이 희고 풍채가 아주 좋은 암말로 변했다. 하지만 베르토눌라는 여전히 꽁해서 역정이 서린 말을 쏘아붙였다.


"이봐, 안장이랑 고삐는 없냐? 저 비실비실한 스승이 안장 없이 말 타다 골반이 으스러지고, 고삐를 못 잡아서 굽은 길을 돌다 떨어져 목이 부러지겠다."


"내가 너보다 힘은 약해도 그 정도까지는 아니야! 그리고 일천 리그를 넘는 먼 길을 맨발로 걸어갈 뻔했는데, 말이 다시 생긴 것에 주님께 감사해야지. 그렇게 투덜대는 꼴이 순례자의 올바른 언행이니?"


또 말싸움이 시작되자, 보다 못한 토속신들이 나무를 깎고 풀과 덩굴을 엮어 눈 깜짝할 새 안장과 고삐를 만들어 주었다.


"이것들을 봉헌할 테니, 저희가 맡은 임무를 탈 없이 행하고 설령 이 땅과 물이 사라진다 해도 주님의 보호를 받이 이 몸들이 소멸하지 않도록 빌어 주십시오."


죈노비스는 그것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산트릴랑은 토속신들의 성의를 받아들였다. 그러자 그들은 강을 갈라 길을 터 주어 산트릴랑 일행으로 하여금 건너편으로 가게 하고는 그들이 무사히 건너자 물을 원래대로 한 뒤 곧 물러났고, 수녀는 제자를 시켜 모닥불을 피운 뒤 주님을 흠숭하며 당신이 명하신 순례를 도운 모든 이들을 축복할 것을 청하는 기도를 올렸다.


"주 하느님, 찬미하나이다. 찬양하나이다. 하늘과 세상의 권능 천사들이, 영광에 빛나는 사도들이, 그 보람 드러나는 예언자들이, 눈부신 순교자들의 무리가 아버지를 드높이 기리나이다. 땅에서는 어디서나 거룩한 교회가 그지없이 엄위하신 아버지를, 받들어야 할 외아드님을, 아울러 보호자 성령님을 찬양하나이다.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이의 앞길을 밝혀 주는 하늘의 천사와 땅의 의인들이, 하느님의 영광을 끊임없이 목소리를 높여 노래하나이다. 비오니, 보배로운 피로 구원받은 종들인 저희 모두를 보호하시어, 성인들과 한 무리에 들어 영원토록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 아멘."


기도를 마치고, 수녀는 말에 올라타 제자를 데리고 플로렌티아를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