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흘러가듯 시간을 보낸 뒤의 어느 저녁. 나는 무의식적으로 담배 하나를 꺼내 물었다.


필터 속 멘톨 캡술을 이빨로 깨고서 굳게 물고 불똥을 튀기며 튀어나온 불꽃에 담배의 끝을 대고 태운 뒤 짧게 한모금, 두모금.


입 속에서 빠져나오는 하얀 연기를 가볍게 내뱉으며 불 붙은 담배를 손가락으로 집는다.


"후우."


나는 숨을 내뱉으며 들이마신 연기를 내뿜었다.


그러자 연기가 빠져나온 목구멍에서 익숙하고 오묘한 맛이 느껴졌다.


멘톨의 화한 느낌을 시작으로 새까맣게 탄 나무의 향과, 훈제로 만든 종이는 이런 맛이 나지 않을까 싶은 독특한 맛.


입을 감도는 맛의 뒤를 잇듯 니코틴의 화학적인 작용이 중독된 뇌를 짓주무르며 안정감을 불러일으켰다.


"…."


반쯤 입을 벌린 채 멍해져있던 난 충동적으로 움직여 다음 한모금을 머금었고, 내뱉었다.


문득 내가 입에 물고있는 것에 대한 생각이 떠오른다. 


백해무익. 건강도 버리고 돈도 버리고 주위의 미관도 버리는 것.


담배에 대한 세상의 평가는 대체적으로 이 네 글자로 정의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나는 담배가 맛있다. 뒤를 잇는 화학적인 안도감이 좋다. 아무 말 없이 홀로 서 있는 이 시간이 좋다. 선 채로 하는 이 몽상도 좋다.


즉, 나는 담배를 피며 느껴지는 것과 뒤따라오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나도 안다. 담배는 건강에 나쁘며, 솔찬히 들어가는 돈에 대한 거나 담배꽁초를 버리면 주위가 더러워지는것도 안다.


하지만 인간이란 늘 자기파멸적인 행위를 즐기는 생물이다. 


목숨을 걸고 하는 행위에 스릴을 느끼기에 도박을 하고, 술을 마시고, 마약을 하고, 위험천만한 지역에 발을 들이기를 즐긴다.


그것 뿐이랴.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건강해지자고 하는 운동에 빠져 되려 건강이 나빠지는 경우도 더러 있다.


즉, 인간이란건 하지 말라 하는 것을 하며 쾌락을 느끼는 생물이라는 거다.


그런 마당에 담배만을 악으로 규정해서 잡이죽이려 든다니. 


맞춰지지 않는 퍼즐조각을 억지로 끼워맞추는 것과 다름이 없다.


"후우."


잡다한 생각에 빠져 담배를 펴대길 수 분. 나는 짧아진 필터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희미하게 웃었다.


다른 사람이 듣는다면 흡연자의 되도않는 궤변이라며 불쾌해 할 것이다. 다른 것들을 잣대삼는다 해도 담배의 유해성이 사라지는건 아니니 말이다.


근데 뭐 어쩔건가. 내가 좋다는데. 내가 좋다고 하는걸 뜯어말릴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건 아니잖은가.


만약 그럴 권리가 있다손 치더라도 그건 부모님이거나, 형제, 자매, 더 나아가 연인이나 배우자, 아니면 절친 정도는 되야 할 것이다.


여기엔 그 권리에 해당하는 인물이 없다. 고로 날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니 마음가는대로 해도 된다.


…그렇다는 것은 즉, 여기서 한대를 더 태워도 내게 뭐라 할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거기서 뭐해?"


"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생각의 끝에서 들려온 여자의 목소리.


그 낮익은 목소리에 나는 흠칫 놀라버리고 말았다.


"이번엔 또 어디서 죽치고 앉아있나 했더니만."


천천히 뒤를 돌아 상대를 바라보니, 거기엔 허리에 손을 얹은 그녀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안녕 엘드리. 여기서 뭐해?"


나는 그녀를 향해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엘드리사.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 들어와 살아가는 유별난 집안의 유별난 리자드맨.


어릴적부터 함께해왔던 그녀는 나를 따라 도시로 왔고, '지켜줄 사람이 필요하다' 라는 엘드리사와 우리 부모님의 조언 하에 같은 집에 살고있다.


"뭘 아무렇지도 않게 웃고있어."

"너 또 앉아서 잔뜩 펴대려고 했지?"


"뭔 소리야. 이제 막 피려고---"


"거짓말 하지 마. 주변에서 냄새가 이렇게 나는데."


"아…."


엘드리사는 차가운 눈빛으로 쏘아보듯 말했다.


이에 나는 어줍잖은 변명을 늘어놓으려 했지만, 그녀는 내 말을 자르며 고개를 저었다.


"됐으니까 빨리 들어와. 밥 다 해놨어."


엘드리사는 콧김을 내쉬며 말했다.


눈빛이 심상치 않다. 시큰둥했던 표정이 싸늘하게 변모한 모양새가 마치 먹잇감을 발견한 뱀처럼 날카롭고 사나워졌다.


그 탓일까. 괜스레 등줄기가 섬짓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옙."


나는 냉큼 답하며 불 붙지 않은 담배를 도로 집어넣었다.


엘드리사의 눈빛이 날카로워진 것은 일종의 위협. 독을 품은 뱀이 사람을 향해 보내는 것과 결이 비슷한 것이다.


괜스레 한마디를 더 했다간 꼬리로 휘감아서 끌고갈 것이니 지금은 잠자코 말을 따르는 것이 맞다.


짧게 스친 결론 끝에 자리에서 일어난 뒤, 나는 차분히 움직이는 그녀를 따라 집으로 돌아갔다.


***


엘드리사의 위압적인 태도에 못이겨 집으로 돌아온 뒤. 우리는 차려진 저녁식사를 맛있게 먹고 소파에 앉아있었다.


"겐드리."


"엉."


"궁금한게 있는데."


"뭔데."


넌지시 건네온 엘드리사의 말에 멍하니 답하자 그녀는 말을 머뭇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녀와 눈을 맞췄다. 은근하고 조심스러운 눈빛. 천천히 움직이는 꼬리의 감촉.


뭘 말하려는 건지 은연중에 알 것만 같다.


"담배 끊으면 안돼?"

"요즘 기침도 잦고 혈색도 나빠져가는게 보여."


"…글쎄다. 그렇게 자주 하던가?"


엘드리사가 읽던 책을 덮으며 말했다.


걱정스럽게 변한 표정을 읽은 난 이내 시선을 돌렸고, 어물쩍 질문을 질문으로 답했다.


"그러다 병에 걸리면 어쩌려구. 많이 아플텐데."


"…으으음."


"끊었으면 좋겠어. 건강도 건강이지만 냄새난단 말야."




엘드리사는 거듭 말하며 눈빛을 보내왔다.




가볍게 손등을 쓸고 지나가는 꼬리의 감촉, 가볍게 내뱉어진 그녀의 한숨소리에 마음 한구석이 찔리는 느낌이 감돈다.


나는 괜스레 신음을 내뱉으며 말을 흐렸고, 엘드리사는 덮은 책을 테이블에 놓으며 조금씩 다가왔다.


"당장 내일부터 끊으라고는 안할게. 힘들거란거 아니까. 대신에 조금씩이라도 양을 줄여봐."


"으으으음…."


"힘들어도 내가 도와줄게. 여러 방면으로 찾아봤거든. 같이 힘내보면 될거야. 그러니까, 응?"


엘드리사가 연거푸 말을 이어갔다.


먹잇감을 물고 늘어지는 악어처럼 읽던 책마저 덮고 다가온 그녀는 소파 위 늘어진 내게 가까워지며 염려의 표정을 고스란히 드러내었다.


나는 말을 흐리며 그녀를 흘겼다. 지금껏 어물쩍 피해왔던 답변을 오늘에서야 듣고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보였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검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꾸 삐딱선 탈래?"


"아니, 그게 맘처럼 됐으면 담배는 이 세상에 없겠지. 그렇잖아."


나는 손목에 감긴 꼬리의 압박감에 신음만 내뱉던 입을 놀려 말했고, 


엘드리사의 염려에 실망이 섞이는 표정을 등지며 뒤를 이어 뜻을 밝혔다.


"…못살아, 정말."


엘드리사의 한숨과 함께 찌릿한 시선이 느껴졌다.


내 태도가 석연찮은 걸 표현하듯 휘감긴 손목의 결박이 조금 강해졌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내가 내뱉은 말은 명백한 거부의사였지만, 동시에 사실이기도 한 말이었다.


""….""


계속되는 제의와 거듭하는 거절의 끝에 찾아온 것은 침묵이었다.


그녀와 나는 입을 다문 채 서로를 바라보았고, 사로 양보할 수 없다는 듯 표정을 살폈다.


"…금연하겠다 하면 뭐든 원하는거 한가지 들어줄게."


"뭐든지?"


"뭐든지. 아무거나. 딱 하나만."


"만약 성공하면 하나 더 추가해줄게. 어때?"




그때. 엘드리사가 한숨을 내뱉으며 살짝 물러났다.


체념이라도 한 모양인걸까 싶어 곁눈질로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포기의 기색 없이 조건을 덧붙였다.


그 발언에 혹한 내가 되묻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뿐일까. 그녀 특유의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파격적인 조건을 하나 더 내걸어보였다.




금연하겠다 말하면 뭐든 원하는 거 한가지라.


"그렇다면."


확!


"…아?! 아니, 아니, 아니! 야! 너 뭐해?!"


나는 엘드리사를 향해 다가가 손을 뻗었다.




거침없이 나아간 내 손은 적당히 걸쳐입은 평상복의 끝단을 잡아 들어올렸고, 부드럽고 말랑한 그것을 고스란히 드러내게 만들었다.


당황한 목소리, 달아오른 얼굴, 하얀 피부 위를 두른 하얀 속옷이 망막에 새겨지자 마음 속이 깊고 진한 충족감으로 채워지는게 느껴진다.


"뭐든지라며. 금연하는 대신 아무거나 하나 들어주는 소원권. 아냐?"


"그렇다고 옷을 벗기는건 무슨 미친 짓이냐고!"


"담배를 못빨면 다른거라도 빨아야지."


"담배 대신 빨라고는 말 안했거든!?"


내가 못내 아쉽다는듯 혀를 차며 옷을 놓자 엘드리사가 멀어졌다.


홍당무처럼 상기된 그녀는 씩씩대며 몸을 웅크렸고, 화풀이를 하듯 내 손등을 찰싹 때렸다.


"…변태."


"하하하하핫."


엘드리사는 나를 째리며 단답을 내뱉었다.


내게서 몸을 보호하듯 둥글게 몸을 만 그녀는 그대로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나는 푹 머릴 묻은 그녈 보며 씩 웃었다.


엘드리사는 짖궂은 장난을 싫어한다. 그게 뭐가 됐든 상관없이 말이다.


그런 그녀에게 성희롱에 가까운 장난를 쳤으니 분명 금연이니 뭐니 하는 소리 따위 다신 하지 않을 것이다. 또 금연 소릴 내뱉었다간 이런 장난을 더 당할테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의기양양 웃고 있었다.


"…정 힘들면…던가."


"뭐?"


"정 힘들면, 하라고."


그때. 얼굴을 묻고있던 엘드리사가 웅얼거렸다.


귓바퀴에 둘러진 비늘 아래 드러난 하얀 귀를 빨갛게 물들인 채로.


헤실거리고 있던 나는 고개를 돌린 그녀와 눈이 마주쳤고, 그녀가 내뱉은 말을 되물었다.


그러자 엘드리사는 나를 바라보며 거듭 말하며 몸을 비비 꼬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나는 침묵했다. 침묵을 유지한 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녀가 한 발언의 맥락을 이해한 순간이 찰나처럼 찾아왔고, 설마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 그니까아! 정 힘들면…! 하라고!"

"담배 대신, 가…가슴, 빨아도 된다고!"


엘드리사가 대뜸 둥글게 만 몸을 펼쳤다.


그녀는 묻어뒀던 얼굴을 쳐들며 외쳤다. 셔츠 하나로는 숨길 수 없는 두 존재를 당당히 드러내면서.


"뭣…?!"


그렇게 내 금연은 시작되었다.


화학적인 안도감. 홀로 있는 시간. 그 시간동안 하게 되는 몽상.


그 모든 것이 향불의 연기처럼 허망히 사라져버렸고, 오직 부드러운 촉감만이 남게 되었다.


담배는 백해무익이다.


돈과 건강을 앗아가는 중독물질이며, 명을 재촉하는 느긋한 자살이다.


그러니 끊자. 끊을 수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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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보니 갑자기 마려워져서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