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인 나와, 멋대로 들어와서 냉장고를 뒤지다 내 존재를 눈치채자마자 째지는 비명을 질렀던 이 이형의 반라는 잠시 눈싸움을 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이 외눈박이 괴인 녀석은 슬그머니 손을 내려서, 냉동식품의 양념과 내용물로 엉망이 되어버린 냉장고 바닥으로 손을 뻗어서 양념 조각 하나를 자기 입으로 가져갔다.


어이가 없어진 나는 한참만의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마."


"네?"


"그거 맛있나?"



내가 대화를 할 생각이 있다고 판단했는지, 잔뜩 경계하던 놈의 태도가 조금은 누그러졌다.


커다란 눈알을 뒤룩뒤룩 굴리면서 이리저리 눈치를 보더니, 턱을 괴고는 입을 우물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곧, 입가에 묻은 양념을 혓바닥으로 슥 훑더니, 쓸데없이 진지한 품평을 시작했다.



"그……저기 양념은 달달하고 뭔가 자극적이라 먹기는 불편해도 나쁘진 않은데요…….


근데 이거 너무 차갑고 질겨가지고 맛이 있다곤 할 수 없겠네요."



이 잡년이 맛도 없다면서 뭘 그렇게 열심히 쳐먹고 있노?


화가 난 나는 바로 양념 범벅인 냉동식품 봉지를 그 녀석의 손에서 뺏아버렸다.



"앗,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 년아, 맛없으면 치아라."



방심하고 있다 별안간에 양식을 빼앗긴 외안의 프리즌 서큐버스가 울부짖었다.


무심한 척 하면서 반응을 관찰해봤는데, 역시나 놈은 그저 먹던걸 뺏아간 것에 아쉬워 하고 있을 뿐, 공격적인 행동에 나설 기미는 없어보였다.


식욕이 있는 걸 보니 당장 정기를 필요로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였다.


나는 한숨을 쉬면서 난도질해서 양념으로 범벅이 된 냉동식품 봉지를 바라보았다.


내가 먹을걸 훔쳐먹는 주제에 어거지로 해동도 안한 걸 꾸역꾸역 먹어놓고 맛없다고 해서 순간 욱해버렸지만,


식욕이 있을때 뭔가를 먹여서 얌전하게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은 판단이었다.


애초에 저런 위험한 괴물을 굳이 자극해서 좋을것도 없고.


괴물이라고는 했지만, 실은 생물학적으로 따졌을때 서큐버스고, 굳이 따지자면 괴물보다는 병기에 가까운 존재다.


자기네가 만들어놓고도 스스로 두려워하는 존재니만큼, 일상 생활에서 튀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하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명령이 내려지지 않는다면 내가 이제껏 봐왔던 어떤 가축보다도 유순하고 무해하다.


그리고 애초에 명령이 내려진 상태였다면 자기 정체를 들키지 않도록 잘 싸매서 숨어있거나, 이미 인질을 붙잡아서 난동을 피우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확실히 신경 쓰이는 점은 있었다.


이 놈 부류는 근본이 병기이니 만큼 명령을 받고 나서야 움직이도록 철저하게 교육받을텐데, 어째서 이런 얼빠진 상태로 우리 동네를 돌아다니고 있었나?


무심결에 물어보긴 했지만, 철저하게 명령에 따르도록 조교받았을 병기가 자기 의견을 제대로 주장할 수 있다는 점도 신경쓰였다.


몇가지 신경쓰이는 점을 물어보기 전에 놈의 경계라도 풀어줄 겸, 조금 정도는 은혜를 베풀어 주기로 했다.



"마, 비키바라."


"넷!? 네, 네에……."



나는 냉장고에서 냉동 불닭을 하나 더 꺼내서, 놈이 반쯤 먹은것과 함께 그릇에 담았다.


그러다 다시 생각해봐도 어이가 없어서 놈을 흘겨보면서 물어보았다.



"마, 근데 니 전자렌지 쓸줄 아나?"


"전자렌지가 뭐에요?"


"……."



나는 한숨을 쉬면서 전자렌지가 놓인 다용도실로 향했다.


다용도실 문을 열자마자 휑~ 하고 찬바람이 불어왔다.


그리고 전자렌지, 적어도 전자렌지 였던게 분명한 물체가 작은 노새같은 생물의 발굽 모양으로 짓이겨진채 박살나있는 꼬라지를 발견했다.


그 주변에는 창문이었을게 분명한 유리 파편이 흩뿌려져 있었고, 참 알뜰살뜰하게도 창틀에는 방충망까지 완전히 갈기갈기 해먹어 놓았다.


나는 다시 한 번 놈을 째려보았다.



"죄, 죄송해요!"



잔뜩 기가 죽어있던 놈이 이제는 땅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납작 엎드렸다.


그런 와중에 또 바닥에 묻은 양념을 슬쩍 햝아먹는 꼬라지를 보니 기도 차지 않았다.


나는 두 번째 한숨을 내쉬면서 다용도실 문을 닫는 것으로, 잠에서 깬지 얼마 안되는 사람은 감당할 수 없는 대참사를 외면하기로 했다.


대신 후라이팬을 꺼내서 팔자에도 없는 야식을 조리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슬슬 지글지글 소리와 함께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냄새가 주방에 퍼지자 주눅들어서 어정쩡하게 냉장고 앞에 주저앉아있던 녀석은 코를 킁킁거리더니, 곧 헤벌레한 표정이 되었다.


어차피 냉동이라 조리라고 해도 해동하고 뎁히는 정도일 뿐이다.


나는 적당히 뎁혀진 불닭을 다시 그릇에 담아서 가져왔다.


프리즌 서큐버스가 당연하다는 듯이 손을 내밀어서 그것을 가져가려 하자(그 와중에 손이라고 뻗은 게 칼날 쪽이었다), 나는 몸을 돌려서 그 손길을 막았다.


눈에 띄게 낙담한 외안의 눈동자가 조금 촉촉해졌다.



"에에……."


"야만인이가? 식탁에서 무라."



짐승쌔끼도 아니고 바닥에 쭈구려서 먹으면 기분 나쁘지도(-5) 않나?


나는 식탁 위에 그릇을 올려두고, 직접 식탁에 있는 의자를 빼서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새삼 말하는거지만 절대로 선의로 레이디 퍼스트하고 대접해주려 했던 건 아니고, 


괜히 놈이 의자를 만졌다간 망가질 거 같아서 미리 빼준거였다.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놈은 참 철딱서니 없게도, 희희낙낙하면서 조리된 냉동불닭을 집어먹기 시작했다.


수저 갖다주려 했는데…….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잠시 쉬었다가 놈이 어지른 주방의 뒷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

.

.


야밤에 팔자에도 없던 대청소를 하고 있으려니, 외안 놈이 그릇을 손에 들고 내게 다가왔다.



"저, 저기이……."


"뭐? 나보고 이거 치아라고?"



역시 아무리 감정에 민감한 서큐버스라고 해도 가정교육을 받지 않으면 아무 짝에도 소용이 없는 모양이다.


병기랍시고 밥상머리 교육같은건 시키지도 않았겠지.


나는 다음에 현장에서 서큐버스를 만나면 괜히 심술이라도 부려주자고 다짐하고는, 차오르는 분노를 꾹꾹 억누르면서 그릇을 받아 싱크대에 대충 던져놓았다.


그제서야 내가 기분이 상한 것을 눈치챈 외눈박이 놈이 쭈볏거리면서 물어보았다.



"호, 혹시 제가 닦아야 했나……요?"


"마, 됐다."


"제, 제가 닦을까요?"


"치아라. 다 돼았고 걍 저기 앉아서 가만 있어라."


"……."



나는 오늘 하루 몇번째인지도 모를 한숨을 내쉬면서 주방에서 쭈뼛거리느라 걸리적거리는 외눈박이 놈을 식탁쪽으로 밀었다.


생각해보니 이놈한테 설거지를 맡기면 안될 거 같긴 했다.


순간이나마 손이 저런 꼬라지인 년한테 설거지를 맡기려 했던 나는 머저리가 아니었을까?


나는 대충 꾸덕한 기름진 양념으로 범벅이 된 그릇에 세제를 좍 좍 붓고는 수세미로 거품을 내기 시작했다.


마침 기회다 싶어서, 뭘 해야 할지 몰라 뻘쭘하게 식탁에 앉아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던 놈에게 물어보았다.



"마."


"네, 네?"


"그래서 니 여기서 뭐하고 있나?"


"저, 그게, 쫒기는 와중에 배가 고파서……. 왠지 여기는 먹을게 있을거 같아서……."


"아니, 그기 아이고 니가 왜 여기서 싸돌아다니고 있는지 무본기다."


"넷!? 역시 저 방에서 나오면 안됐던건가요?"


"가출이가?"


"가출……이 뭔가요?"



놈은 정말 말 그대로 가출이라는게 무엇을 의미하는 말인지 몰라서 묻는다는 것처럼, 천진만난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점점 머리가 아파오는 것 같아서 얼굴을 한번 쓸어내렸다.



"……그러니까, 허락이라던가 받지 않고 집에서 몰래 나온긴가, 하는 얘기담마."


"에엑!? 역시 교육관 언니한테 허락이란걸 받고 나왔어야 했었나요!?"


"하아……. 기를 나한테 물어보는기가?"


"으음……. 어쩐지 이상할 정도로 험상궂은 표정으로 절 쫒아오는 사람들이 있다 했어요."


'니 도라이가?'



머릿속에 곧바로 떠오른 이 말을 간신히 참았다.


진짜 이놈 프리즌 서큐버스 족속들이 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 놈은 특히나 특별할 정도로 세상 물정에 어두워 보이는 느낌이었다.



"집에서 니보고 뭐라 안했나?"


"그, 그러고보니 짚이는게……."


"하모?"


"확실히 마음대로 나다니지 말라고 했던거 같아요……."


"……하모?"


"그런데……. 그런데, 평소에 지리를 익힌다고 자주 다녀본적이 있어서 그냥 나와도 괜찮은 줄 알았어요."


"하아……."



듣기만 해도 머리가 아파지는 말이었다.


국제 규약으로 존재 자체를 규제하고 있는 프리즌 서큐버스가 거리 한복판에서 발견된 것만 해도 골치가 아픈데, 


지리를 알려주겠다고 거리를 싸돌아다녔다니, 진짜로――



"도라이가?"


"네?"



도대체 이 놈의 애미란 년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던걸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테러 사주라던가 하는 불온한 가능성 밖에 떠오르지가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테러라던지 정치라던지 그런 골치 아픈 것과는 영영 연루되지 않을거라 다짐했건만, 이런식으로 빅-정치-똥-폭탄이랑 마주할 거라곤 조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리고――



"괜찮은 줄 알았다?


니가 그런 판단을 해도 되는기가?"


"네, 네?"



놈은 정말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내가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뻘쭘해 있었다.



"니가 그런 판단을 해도 될 짬이가?"


"아, 아아~. 그런 얘기였나요?


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교육관 언니가 저는 앞으로 현장에서 스스로 판단해서 행동해야 할거라면서, 주어진 명령에만 얽매이지 말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행동하라고 가르쳐 주셨거든요."


"……."


"아, 그래도 괜찮아요. 전 한 번 주어진 명령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따르도록 교육받았으니까요."


"……."



놈의 어처구니 없는 발언으로 확실해진 점이 있었다.


저 외안의 프리즌 서큐버스는 존재 자체로 명실상부한 빅-정치-똥-폭탄이라고.


관련되는 순간 무슨 위험한 일을 겪게 될 지 모를, 살아있는 테러리즘의 징조라고.


서큐버스란 족속들은 겁이 많아서 통제할 수 없는 존재는 절대로 자신의 영역에 존재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즉, 이런 말이다.


자신들이 그리도 두려워 하는 프리즌 서큐버스를 통제하기 어렵게 될 위험을 무릅쓰고 스스로 사고하도록 내버려뒀다는 것은, 


'저 것'을 두 번 다시 회수하지 않을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병기라고는 하나 동족은 모두 한 뿌리에서 나온 자매라고 주장하는 서큐버스 놈들이 자신들의 혈족이고 자매인 존재를 다시는 회수할 수 없는 내던지겠다는 것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재앙을 상정하고 있던건지 상상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거라 믿는다.


그래서 나는, 



"마, 심심하지 않나?"


"네? 딱히 그렇지는……."


"이게 뭔지 아나?"


"이, 이건!? 게임기, 게임기 잖아요! ……맞죠? 다른 언니들이 하는걸 종종 봤어요."


"하고싶나?"


"!? 해도 되나요? 제가요?"



내가 발견한 이 모든 문제를 필사적으로 모르는 척 하기로 했다.


나는 그저 우연히 거리를 배회하던 위험 생물과 집에서 마주해야 했을 뿐인 불운한 시민이었을 뿐이라고.


이 존재와 연관된 어떤 것도 알지 못하고, 이 놈이 수배중이라는 사실 따윈 들은 적도 없고, 



"――문을 잠그고 실내에 대기――.혹시나 마주치게 된다면――"



뉴스에서 쓸데없는 소리를 내뱉기 시작했기에, 놈이 듣고 눈치채기 전에 바로 꺼버렸다.


아무튼 나는 단지 이 괴물의 요구에 따라 스스로의 신변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요구를 들어주고 있을 뿐인 평범한 시민일 뿐이고, 


서큐버스 협회쪽이든, 정부 쪽이든, 이 폭탄을 회수하러 올 요원들이 올때까지 시간을 끌고 있었을 뿐이라고.



"와, 와아! 이거 엘든 거짓 이잖아요! 맞죠? 이거 진짜로 제가 해봐도 되는거죠? 끼얏호우~"



타들어가는 내 속도 모르고, 능숙하게 게임기를 세팅해서 내 게임 라이브러리를 둘러보던 독안 서큐버스가 반짝반짝 빛나는 거대한 눈알을 뒤룩뒤룩 굴리며 탄성을 내질렀다.


외눈박이 놈의 척 봐도 억세보이는 손아귀에 쥐인 게임 컨트롤러가, 마치 내 앞에는 얼머부린다고 피해갈 수 없는 파멸적인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양, 흥분으로 우악스러워진 놈의 손 안에서 불길하게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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