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이젠 용사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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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의 불이 꺼지고어둠이 짙게 깔린다.

 

에들레이드는 하품을 길게 내쉬며손님용 의자쪽을 향해 말했다.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200 금화 정도의 비싼 요금을 낸 이 리치 손님은 투숙객으로서는 생각외로 그렇게 까다롭지 않았다.

 

 

"식사난 그런거 안해."

 

"이부자리필요 없어데스크 근처 의자에서 명상하면 돼."

 

"필요하면 마법으로 밝히면 그만이야."

 

 

한 마디로 귀찮은 일이 생기는 일 없이 공간만 차지하면 된다는 뜻이니문제될 것도 없다 라는 뜻이다.

 

 

"그럼 저는 2층 복도 첫번째 방에서 자고 있을테니혹시 문제가 생기면 찾아와주세요."

 

 

그러니까적어도 그때까지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것을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저기일어나봐.”

 

으음누구...”

 

"그 사람 오늘 온다고 하지 않았어?"

 

"..."

 

 

그 때가 아마도 자정이 살짝 넘었을 때였다.

 

손님... 오늘이 되자마자 온 거에요?”

 

당신이 오늘 온다고 했으니까.”

 

“...”

 

그러니까정말로 오늘이 되자마자 찾아온 그녀를 보며에들레이드는 순간의 충동을 잘 참아냈다

 

아마도그녀의 머릿맡에 있는 20 금화짜리 주머니가 적절한 역할을 해 주었을 것이다.

 

 

"오늘해가뜨고그리고 나서한참이지나고나서야올거에요."

 

알겠죠??”

 

 

그 말에 조용히 리치는 그림자처럼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에들레이드가 겨우 다시 잠을 이루었을 때 쯤이었다.

 

 

"해가 뜬지 10분이나 지났어."

 

"..."

 

온다고 하지 않았어?”

 

 

이번만큼은 금화가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했다.

 

 

"나가요!!!!!!!"

 

 

...

 

 

"거짓말쟁이."

 

 

어젯 밤의 소란 덕분에 에들레이드는 많이 피곤해하는 모양이었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리치는 무감정하게 원망이 담긴 내용을 말했다.

 

 

하아암그러니까오고 가고는 제 의지가 아니라고 했잖아요.”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오지 않았어.”

 

올 거에요다른 건 몰라도 부지런한 건 확실한 사람이었으니까요.”

 

오늘도 오지 않으면 직접 찾아 나설거야협조해줘.”

 

제가요?”

 

.”

 

실례지만제가 왜 그럴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당신한테 준 돈이 숙박비로만 쓰기엔 많다는 사실을 나도 알고 있으니까.”

 

 

에들레이드는 그 주머니를 받은 것을 잠깐이나마 후회했다이러다가 값어치 대로 이 리치한테 부려먹히는 거 아냐싶을정도로

 

그러나그녀 역시도 한스의 집 위치를 알고 싶은 한 사람이었기에 그 사실을 애써 외면했다.

 

달리 할 일도 없는 관계로 그녀는 명상중인 리치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손님.”

 

.”

 

답을 얻어낼 확신이 있으신가요?”

 

직접 물어본다면 대답해 줄 거라고 믿어아니그게 아니더라도 관찰이 필요해확실한 답을 얻어낼 수 있을 만큼의.”

 

 

무슨 말을 하는지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리치가 한 다음 말에 대략적으로 에들레이드는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직접 볼 수 있다면어떤 대가든 치러도 좋아.”

 

 

방식은 특이하지만이 사람도 그에게 홀린 추종자중 한 명이 되었구나.

 

한스 그 사람그렇게 잘나지도 않은 외모에사교적이지도애교가 많지도 않은 남자인데 왜 이리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지

왜 이리 많은 사람이 끌리는지그녀는 궁금해했다.

그를 아끼고 보듬아줄 수 있는 것은 오직 나 뿐인걸.

 

그래서였을까이 갑자기 나타난 추종자에 대한 약간의 견제를 하려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에들레이드가 그런 말을 꺼낸 것은.

 

 

그치만 무엇보다직접 물어도 답을 얻기 힘들거에요.”

 

?”

 

그 사람은 마물을 싫어하니까요.”

 

 

보통은 그런 답을 얻은 이들은 그 이유에 대해서 궁금해했다그러나 이 리치는 그 이유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이다른 대답을 했다.

 

 

그래?”

 

그래서정보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제가 그 사람의 소식을 대신 전달하고 있어요.”

 

 

당신은 기겁하며 싫어하겠지경멸할 정도로

그렇지만나는 미움 받지 않으니까

그것이 당신과 나의 차이야.

 

리치는 그녀를 유심히 바라봤다그리고는 물었다.

 

 

왜지?”

 

?”

 

그는 마물을 싫어한다면서.”

 

그렇죠.”

 

그렇다면 왜 너는 특별 취급이야?”

 

 

에들레이드는 들고 있던 펜을 꼭 쥔 그대로 리치를 노려보았다

천둥이 지나간 자리의 조각상처럼그녀는 뻣뻣하게 굳어버린 것만 같았다.

 

 

“...”

 

 

그러나 금방 흥미를 잃은 듯 리치는 시선을 아래로 돌려서열중하던 작업에 돌입했다.

 

 

말하고 싶지 않다면 굳이 캐묻지는 않을게.”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오직 길드의 접객원 에들레이드 뿐이었다

 

그녀는 오늘따라 길드를 찾는 사람이 없다는 것에 감사했고또 한편으로는 누군가라도 와서 이 굳어버린 분위기를 해소해준다면 감사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곧 손님들이 몰려들어왔다.

 

그녀는 마음 한 켠에 그 철렁 내려앉은 불안의 덩어리를 내던져두고일에 몰입할 수 있었다.

 

 

어떤 임무를 찾으시나요그게 아니면 임무를 의뢰하러?”

 

 

그런 그녀를리치는 무심히 내버려두고 길드 한켠의 의자에 앉아 자신만의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결국 오늘도 안 왔어.”

 

아하하... 이상하네요.”

 

밤이 되어이제 길드의 불을 소등할 시간이 찾아왔다.

 

한스는길드를 찾은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결국 보이지 않았다.

 

매일 마다 빠지지 않고 찾아오던 그가 오지 않았다는 것은 꽤나 이변이었다.

 

 

어쩔 수 없지오늘까지만 여기 머물거야.”

 

그런가요?”

 

나도 무작정 기다릴 수만은 없는 노릇이니까.”

 

 

리치는 어젯밤부터 줄곧 앉아있던 의자에서 마침내 일어나 데스크 쪽으로 향했다마치 무언가를 요구하려는 듯.

 

 

협조해줘.”

 

?”

 

아까 말했잖아찾는 데에 협조해달라고.”

 

 

빈말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떡하면 이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리치를 설득할 수 있을까?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던 중에리코리스는 그녀의 생각과는 다른특이한 질문을 했다.

 

 

혹시 길드가 그의 물건을 보관하고 있는 게 있을까?”

 

같이 밖에서 구역을 나눠서 순찰하자느니 하는 것을 생각했던 에들레이드는 예상외의 요청에 당황해했다

 

무언가 마법적인 방식을 사용하려는 모양이었다.

 

역시썩어도 마법사는 마법사라는 것이구나마법사에게는 그들만의 방식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길드의 직원으로서 그런 문제는 신용과 연관되는 문제였다.

 

 

보관하는 물건이 있다 한들본인 허락 없이는 꺼낼 수 없어요.”

 

그럼 확인이라도 해줘.”

 

안 됩니다이건 제 재량과는 관련없는 길드 전체의 문제니까요.”

 

 

혹여나리치가 또 뇌물을 꺼낼까 싶어 그녀는 한마디 더 덧붙였다.

 

 

이번엔 돈을 아무리 줘도 소용없어요무엇보다도 저 스스로도 이런 일을 들키기라도 해서 그한테 미움받고 싶지 않아요.”

 

 

역시나 리치는 안주머니에 손을 넣으려다 다시 뺐다숨김이라고는 없는 당당한 동작이라 에들레이드는 더욱 어이가 없었다

 

다행히도 막무가내로 따질 줄 알았던 리치는 그런가 하는 표정으로 곰곰이 다른 방식을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럼그가 만졌던 물건이라든지 있어?”

 

 

의뢰 서류가 있긴 하다그가 수행한 여러 의뢰서들.

 

만지기는 확실히 만졌을 것이다확인 도장에 무조건 지장을 찍게 했으니까.

 

그러나 그 의뢰 서류는 마찬가지로 당사자들 이외에는 보여줄 수 없는 것이다.

 

 

있긴 하지만당사자를 제외하고는 보여줄 수 없는 서류들입니다.”

 

그거라면 하나 있잖아.”

 

무슨 말이신가요?”

 

내가 의뢰했던 그 임무. 그가 처음 내 저택으로 왔던 그 임무 말이야. 그거라면 괜찮은 거지?” 

 

 

그건 정답이었다그리고 그녀도 굳이 그것을 반대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찾을 이유도 없었고.

 

서류 더미를 뒤지는 게 귀찮기는 했지만적어도 이번에는 합법적인 방법으로 손님이 요구를 한 것이다그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것이니까.

한참을 뒤진 후에야 그녀가 며칠 전 의뢰한 서류를 찾을 수 있었다.

역시나 붉은 인주 위에 그의 지문이 새겨져있었다.

 

그것을 내주고 에들레이드는 변명하듯 덧붙였다.

 

그가 지장을 찍긴 했지만...”

 

흐음...”

 

확실히 시료가 좀 적긴 하네.”

 

아하하...”

 

그렇지만 이 정도면 안 될 것도 없지.”

 

그녀는 펜과 잉크를 그대로 의뢰서에 가져갔다

 

에들레이드가 훼손이라며 말릴 틈도 없이신속하게 그리고 너무나 익숙한 듯이 주변에 빼곡하게 마법진을 그렸다

 

가운데에 그의 지장이 있었고그 중심을 바탕으로 다섯 동심원이 그려졌다.

 

동심원과 동심원 사이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자들이 그려졌다.

 

말리려던 에들레이드는 그 형태적인 아름다움에 자신도 모르게 감탄을 표했다.

 

 

 

...“

 

 

리코리스는 관객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그녀의 일에 집중했다.

 

 

이 정도 양이라면쓸 수 있는 건 카르갈의 일흔 눈동자’ 정도려나.”

 

 

의미를 알 수 없는 그녀의 중얼거림이었지만그녀가 탐지 마법을 사용하려는 것은 눈치챌 수 있었다

 

에들레이드는 그 이해하지 못하는 광경들을 멍하니 홀린 듯이 보고 있었다.

 

종이가 잠시 빛나는 듯 하더니동심원을 바탕으로 빛의 고리가 뻗어나갔다

 

그리고눈이 부실 만큼의 섬광이 일었다.

 

섬광 속에서 얼핏 눈동자들을 본 것 같았다빛으로 만들어진 주먹만 하고 무수한 눈동자들을.

 

이 모든 것은 한순간에 다 끝났다

 

그 상태로마치 잠들어버린 사람인 것처럼 리코리스는 눈감은 채로 서있었다.

 

말을 걸려고 해도 이 마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몰라 에들레이드는 이도저도 못한 상태로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그녀가 조용히 눈을 떴을 때한 말은 간단하고 명료했다.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