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이젠 용사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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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상단장 귀하

 

그간 안녕하셨는지요.

 

이번에는 모험가 길드를 통해 물품을 전달했더군요.

 

앞으로도 약재 전달은 이번에 고용했던 모험가 길드원에게 전담해주십시오

 

모험가 길드를 통하는데 드는 추가적인 수수료는 제 측에서 부담하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제가 말한 조건을 빠짐 없이 이행해주신다면 앞으로는 필요한 모든 약초를 귀하의 상회를 통해 구매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P.S. 지난번에 수령했던 푸른 장미와 일각수의 뿔은 나쁘지 않은 상태로 도착했습니다만 일각수의 뿔은 건조가 하루 정도 덜 된 것 같으니 그 부분을 잘 신경써서 보내줬으면 좋겠더군요.

 

0월 T, Lycoris radiata

 

 

그리고 거기에 그녀는 추가적으로 약재들을 주문하는 주문서를 동봉했다.

최대한 여러 번에 나누어서자주 배송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주문과 함께.

그래서 들고 올 사람이 무겁다고 느끼지 않도록 최대한 무게가 덜 나가는 것들로만.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녀는 공중에 떠있는 봉투를 집은 다음 몸을 돌려 한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 여기 수령 확인증에감사편지야혹여나 열어봐서는 안되니까간단한 마법을 걸어놓았어물론 당신이 마법에 소질이 있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그렇지만 그녀의 그 편지를 받아선 그는 그녀의 호의-를 빙자한 시간끌기-도 거절한 채도망쳐나가듯 저택을 빠져나갔다

 

방금 전 있던 소동은 신중히 숙고하고 생각해서 행동을 하는 그녀의 행동과는 거리가 있었다.

충동과 감정

그녀가 수백년을 살면서 그런 단어들을 체감하리라고 생각은 했을까

그러나 그녀는 지금 그것들을 느끼고 있었고그녀의 몸을 감싸는 정체 모를 낯선 느낌에 의문을 표할 뿐이었다.

 


'나는 죽었는데영혼에 이어 육체도 이미 죽었는데어째서 ?'

 

'모르겠어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가 없어.‘ 

 

‘...이번 한 번으로는 부족해.'

 

'무슨 수를 써서든 다시 봐야겠어어떻게든 보고 말거야.'

 

 

그렇기에 어느 순간부터인가 리코리스는 약재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그런 경험이 꽤나 낯설었다.

무언가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감정

오래 전 마법 회로로 대체해버린 심장이 되살아나기라도 한 것만 같았다

 

리코리스는 가슴에 손을 얹었다당연히도 두근거림을 느끼는 박동은 없었다.

그저 공허하고 차가운 살갗만이 느껴질 뿐

 

그녀에게 그런 감정은 정말로 처음 겪어보는 것처럼 낯설었다.

어린 날 한 번 지나쳐간 풍경마냥기억의 저편에서 부스러기처럼만 남아있는 것처럼.

 

그녀가 그 감정을 설렘이라는 것이라고 정의내리는 데까지는 아직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어느 날그녀가 최근 그랬던 것처럼 평소와 같이 그런 낯선 감정에 연구에 집중하지 못할 무렵 드디어 그녀의 저택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그를 볼 수 있어.’ 

 

그녀는 이 불가사의한 감정에 해답을 내릴 수 있는 열쇠가 도착했다고 생각했다.

 

만나서관찰하고 해석하고 결론내려야지.‘

 

그녀는 지난번처럼 패밀리어들을 내보내지 않고직접 두발로 나갔다.

대낮의 햇빛에 몸을 내맡긴 것도 그녀에겐 몇 년만의 일이었을까.

그러나 그 기다림은만남의 성사라는 결과를 이끌어내기엔 아직 부족했다

 

 

당신오랜간만이.....”

 

 

리코리스는 그녀가 마주한 사람을 보고 말을 잃어버렸다.

 

 

그렇죠오랜만이네요.”

 

 

그녀가 마주한 것은 그녀가 아는 얼굴이었으나기다리던 얼굴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약초 상회의 신참 , 비올라.

 

그녀는 리치란 원래 무감정한 생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의 믿음은 틀렸다그것을 깨달아버렸다.

 

이건 화를 내고 있다. 100% 화를 내고 있는 것이다.

 

점잖게무표정하게 가장하고 있지만 그 내용은 고약한 심술이니깐.

 

배달원은 불행히도 자기의 본업을 한 것 뿐이었다.

 

원래 이 구역 담당이었던 그녀는 몇 번인가 여기를 방문했었다

 

그리고 비올라의 잘못은 오직 다시 여기 왔다는 것 뿐이었다. 

 

다행히도 인내는 대부분의 상황에서의 해결책이 된다

 

20분간 끈기있게 기다린 끝에야 그녀는 사정을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말이에요... 저도 그 요구사항을 잘 숙지하고는 왔었는데...”

 

 

억울한 점 하나하나를 하소연하고 싶었지만이내 그녀는 그 생각을 접었다

변명을 시작하자마자 냉한 한기가 돌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대신에 요점만 간략히 말하기로 했다.

 

요청대로 길드에 접선했지만배달지를 확인하고 그 길드원이 거절했다는 것.

 

그것도 세 차례나.

 

“...그렇게 돼서 원래대로 제가 오게 되었다니깐요....”

 

아냐그럴 리가 없어.”

 

?”

 

 

리코리스는 어느새 자신의 손톱을 거세게 물어뜯고 있었다

 

누구라도 알 수 있듯이 이건 당황긴장이라는 감정이었다.

 

 

리치면서 감정표현이 보기보다 다양했었네.’하고 000은 생각했다.

 

 

그 길드원은 대체 왜 그러는 거야그저 전달만 해도 된다니깐.”

 

그걸 제게 물어보셔도...”

 

그러면그 이유도 못 들어온거야?”

 

 

비올라는 입을 다물었다그건 정말로 그녀의 실책이었다.

이유를 입에 물려주면 다무는건 그녀의 입이 아니라 이 진상 리치의 입이었을텐데.

 

그래도 그녀는 꽤 재치가 좋았다

 

적절한 거짓말로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생각해냈기 때문이다.

 

 

말을 해주지 않던걸요비밀이라면서.”

 

“...”

 

혹시 모르죠직접 찾아가서 묻는다면 들어줄지도?”

 

고객 서비스와 손님의 의뢰를 동시에 해결하는 법이었다

비록 썩 훌륭한 대응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일단은물건 수령했어어서 가.”

 

 

실망감에 기분이 상한 리치에게 축객령을 당하긴 했지만우선 항의에서는 풀려났으니 그럭저럭 나쁘지는 않았다고 평가할 수는 있겠다.

 

신참치고는 말이다

 

 

...

 

 

한스가 이런저런 일을 한지 벌써 몇 달째이지만

그럭저럭 먹고 살 돈은 벌면서도한번도 그는 풍요롭게 지내지 않았다.

길드의 온갖 자질구레한 일들은 다 도맡으면서도오히려 더 궁핍해지는 듯한 모습만 보였다.

 

그 이유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궁금해했다.

 

사실한스는 아직 눈치채지 못했을지 몰라도한스는 꽤나 마을에서 유명인이 되어있었다.

 

홀로 살아가는 검사.

 

의탁할 데 없이 험한 일들을 도맡아 하는 이.

 

내색하려 하지 않지만 깊은 상처를 품고 있는 듯한 독신 남성.

 

이 세 가지 조건 만으로 한스는 마을의 수많은 독신 몬무스들에게 요주의 인물로 낙인 찍혀 있었지만...

 

현재로서는 그에게 다가가려 하면 죽일 듯이 노려보는 살기어린 그의 시선에 말조차 걸어보지 못하는 형국이었다.

 

그나마길드 접객원 에들레이드양은 한스하고 이야기 정도는 할 수 있을 친분이 있었다.

 

첫날의 친절함에한스의 마음이 약간이나마 동한 것도 있겠지만 한스에게는 그녀가 마을의 거의 유일한 인간 여성이라는 점에서 가장 마음이 놓였을 것이다.

 

사실 그렇기에 그녀들이 얻는 한스의 정보의 대다수가 이 접객원에게서 나오는 형국이었다

 

언젠가 그녀가 용기내서 한스에게 물었다.

 

길드에서 주는 돈이 많이 부족하냐면서

 

 

돈을 정기적으로 쓸 데가 있어서요.”

 

 

한스가 약한 모습을 보이길 바랬던 그녀는 두루뭉술한 답만을 얻고는 아쉬워했다.

 

 

조금이라도 도움을 바란다면... 아니그럴 것도 없이 약간의 여지만 생긴다면...’

 

에들레이드는 그렇게 생각했다

사실 그녀가 그에게 품는 감정도 마을의 여러 몬무스들하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한스는 무덤덤하게아니 약간 어두운 표정을 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할 뿐이었다.


오늘은 정말로 날이 좋지 않았다이번엔 그가 수행할 만한 일이 없었다.

 

 

죄송해요오늘은 일이 없네요.”

 

괜찮습니다제게 죄송할 필요 없습니다.”

 

 

그러면서 곧바로 나가려는 그를 에들레이드가 붙잡았다.

 

잠시만요!”

 

“?”

 

한 가지 일이 있기는 한데...”

 

 

한스는 그 다음의 말을 기다렸다재촉하는 일 없이 그녀가 말을 마무리짓도록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한스씨 당신도 알 거에요지난 번 그 저택에서... 있죠...?”

 

 

한스는 그 다음 말을 짐작한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일이 없다는 말씀이군요그럼다음에 찾아올게요.”

 

 

역시나 그 이야기다.

 

약초점에서는 무슨 일인지갑작스레 저택으로 향하는 정기 배달원을 고용하려 했다

 

길드에서 적당히 가려달라고는 했지만사실상 그를 지목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예전에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처럼 이번에도 한스는 단칼에 거절했다.

 

 

잠깐만요!”

 

무슨 일이죠?”

 

이번에 따로 연락이 왔어요저택쪽에선지약초상에서인지.”

 

 

에들레이드는한스가 혹시나 무시하고 가 버릴까 싶어서 다급하게 말했다.

 

적임자가 있는 듯 한데거절하게 된다면 이유라도 말해달라고... 그렇게 연락이...”

 

 

그러나 그녀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한스가 아랫입술을 깨물며주먹을 꽉 쥐었기 때문이었다.

 

얼핏 분노인가 싶었지만아니 그것보다는 무언가 다른 감정 같았다.

 

어찌됐건 감정이 터지기 일촉즉발의 전으로 보였기 때문에 에들레이드는 그저 멍하니굳은 채로 그 자리에 서 있게 되었다.

 

아직은 표정을 풀지 않은 채로한스는 말했다.

 

 

에들레이드씨.”

 

..네엣!”

 

적당한 이유로 둘러대 줄 수는 없을까요?”

 

...”

 

부탁할게요.”

 

 

그리고는 그는 몸을 돌려 거리로 사라졌다끔찍하고도 어색한 시간이 조금 더 흘러가고 나서야 에들레이드는 겨우 굳은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녀로서는 되는 대로 추측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마물에 대한 혐오?’

 

일리가 있었다그는 이 마을 내에서 사는 것도 불쾌해하는 모양이었으니까그가 사는 곳이 어디인지는 몰라도최소한 마을 내 어딘가의 여관이나 주택은 아니라는 것은 확실했다.

그가 여러 임무를 마치먹기 싫은 음식을 억지로 삼켜야한다는 표정으로 해내는 것은 분명 그가 품은 혐오의 표출이 맞았지만...

그의 그러한 여러 표출을 본 그녀의 직감으로는 방금 전 그의 행동이 그런 혐오에 더불어 무언가가 더 얹혀있다는 것을 느꼈다

 

대체 무엇때문에...?’

 

다만 그것은 한스가 답하지 않았다그러니 그녀가 그 이유를 알게 되는 것은 한동안은 요원해보였다.

 

우선 무엇보다도 어떤 방식으로든 그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걸렸다그것이 그녀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곧 그녀에게 불편한 손님이 하나 더 찾아올 예정임을 길드로 터덜터덜 돌아가는 그녀는 아직 몰랐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각기 다른 3개 장편을 쓰겠다고 했을까... 하나만 집중할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