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보기보다 무겁구나.."


간만의 나홀로 던전 탐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갈 땐 혼자였지만 올 땐 일행과 함께였다.

인어. 아름다운 노래로 인간을 유혹해 익사시키는 마물이다.


"당분간은 여기서 지내는 거야."


초보 모험가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지만, 귀만 막으면 된다는 다소 쉬운 대처법과 인어 고기가 만병통치약이라는 속설로 이제는 종종 사냥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상처투성이에 꼬리에는 작살이 스친 이 인어도 그런 연유일 것이다.


매고 있던 자루를 풀자 집 뒷편의 연못에 미끄러지듯 인어가 들어갔다. 시원한 물의 감촉에 정신을 차린 그녀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너희는 회복력이 좋으니까. 이대로 있으면 금방 낫겠지."


꼬리를 포함해 심한 상처에는 임의로 치유 포션을 발라두었다. 괜히 이런저런 약을 써봤자 물에 씻겨나가고 말 것이다.

지금은 시간에 맡기는 것이 최선이었다.

오후에 생선을 몇 마리 사주자 잔뜩 경계하면서도 받아먹었다. 


그녀를 데려온 이유는 별 볼 일 없었다. 인어라는 비교적 흔한 마물의 생태를 알아두면 던전 탐험에도 유용하고, 무엇보다 인간과 외형이 흡사한지라 물가에서 죽게 내버려두긴 좀 뭣했다.


고맙게도 작은 연못 속에서 그녀는 하루가 다르게 좋아져 갔다.


"역시 빵은 안 좋아하고. 과일은... 잘 먹네."


"일어나는 시각은 우리랑 비슷하구나.


인기척이 들리면 수련 사이로 얼굴만 빼꼼 내밀다가도 나를 알아보고 헤엄쳐온다. 밤이 되면 연못 바닥에서 몸을 웅크리고 잠에 든다.


멀리서만 보던 그 음침하면서 수려한 미모를 구경하는 것도 색다른 재미였다.


몸도 거의 다 나았고 슬슬 친해졌다고 생각할 즈음, 그날따라 가까이 온다 싶던 인어가 문득 뺌에 손을 가져갔다.

물갈퀴 달린 손의 감촉은 조금 미끄러우면서 인간처럼 따뜻했다.


안전상 늘 착용하던 귀마개를 벗겨냈다고 깨달은 순간 아름다운 선율이 들려왔다. 간드러지는 듯한 목소리와 인간의 것이 아닌 언어. 그대로 몸과 영혼을 맡기고 싶은 노래였다.


어차피 허리께가 채 안 되는 깊이었지만, 그녀를 따라 연못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충동은 들지 않았다. 

아마 노래로 직접 유혹하고 말고는 인어의 의지에 달린 것 같았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그녀들의 노래를 감상해본 인간이 있을까?


마침내 특별한 공연을 마친 인어가 이번에는 양 손을 꼭 붙잡았다. 


"조. 아. 해."


서툴지만 또박또박 잘 들리는 세 마디. 잠시 어찌할 바를 모르다 양팔을 둘러 안아주었다.

빨갛게 상기되어있던 뺨이 후끈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나도 좋아해. 노래는 잘 들었어."


나는 그대로 코끝을 스치는 맑고 깨끗한 물 내음에 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