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수리기사는 죽지않아.


—•—


“아저씨, 아저씨? 괜찮아요?”

“으윽–.”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신음소리가 기사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의 강철 갑옷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정신 좀 차려봐요! 무거워서 벗기지도 못하겠네.“

“끄응–”


기사는 끔뻑끔뻑 눈을 뜨고 감기만을 반복했다. 얇게 뜬 눈  앞에 보이는 건 처음 보는 백발의 소녀였다.


강렬한 햇빛이 그녀의 머리카락 한 가닥 한 가닥에 진득이 흘러 앉아 눈이 부셔왔다. 그녀의 보석처럼 푸른 동공이 흔들리고 있었다.


“잠시만 기다려봐요. 따끔할 수 있으니까 놀라지 마세요.”

“손대지 마..”


소녀는 기사의 말을 무시하고, 가녀린 손을 기사의 가슴 한 편의 환부에 가져다 댔다. 이내 손바닥에서 푸른 빛이 새어 나왔다.


그러자 흘러넘치던 피가 멎고 서서히 상처가 아물고 있었다.


“치유..마법..“

”…“

“응급기사인가.. 너는.“

“그런 거 아니거든요? 조용히 해봐요, 집중 좀 하게.“


소녀가 미간을 찌푸리며 답했다. 푸른 빛은 점점 어두워지더니 이내 배터리 나간 손전등처럼 껌뻑거렸다.


아직 다 아물지는 못했지만, 응급처치 정도는 된 모양이다.


기사는 한껏 가벼워진 몸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어설프군.“

”에엥?! 그게 지금 구해준 사람한테 할 소리예요?“


소녀는 어이가 없다는 듯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소리쳤다. 이제야 정신을 차린 기사는 그를 구해준 사람을 제대로 응시할 수 있었다.


그녀의 피부는 백발만큼이나 희고 투명했다. 코끝, 팔꿈치, 손가락 마디마다 붉게 물들어있었다.


아쿠아 색의 눈은 빛을 머금은 듯 구석구석 반짝이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그녀의 오른쪽 눈은 생기를 잃어 허옇게 떠 있는 느낌이었다.


기사에게는 어딘가 낯에 익는 얼굴인 듯했다.

‘꽤 아름다운 얼굴이다. 고생 좀 했겠는데.’


기사는 그렇게 한참을, 소녀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아니, 내가 널 구해줬던 걸로 기억하는데“


말이 끝나자마자 긴 한숨을 푸욱 내쉬는 소녀.


“멋대로 끼어들고서는!”


할 말이 많은 듯, 그녀는 자기 손을 바라보며 또 작게 속삭였다.


“나 혼자 충분히 이길 수 있었거든요..“

”.. 그러냐.”


소녀는 못마땅하다는 티를 팍팍 내며 무릎을 탁탁 털고 일어섰다. 이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기사의 어깨를 잡고 일으켜 세우려 안간힘을 썼다.


“끄응–. 다리에 힘 좀 줘봐요.”

”지금은 이게 최선이다. 내버려 두..“


조급해진 마음에 말을 뚝 끊는 소녀.


“아직 대행자들이 더 남아있을지도 모른다구요. 계속 여기 앉아서 죽기밖에 더 해요?”

“.. 마땅히 갈 곳도 없어.“

”갈 곳이 있어요. 어떻게든 힘 짜내서 걸어봐요.”


여기는 낙후된 제3서울시 내에서도 변두리에 속한다. 행정구역 경계를 위해 투입된 휴머노이드 기체만 해도 수백 기에 달할 터다.


이 소녀는 무엇을 믿고 어디로 도망친다고 하는 것일까—하는 궁금증이 기사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일단은 믿기로 해 본 기사, 소녀의 부축을 받으며 어떻게든 말을 듣지 않는 다리를 움직여갔다. 소녀는 썩은 기름 냄새가 불쾌한 듯 얼굴을 찌푸렸다.


— 프로토타입 폭스트롯 공 하나, 프로토타입 폭스트롯 공 하나 식별했습니다. 집행명령만 내려주시면 조속히 집행하겠습니다.


순간 그들의 등 뒤에서 소름 끼치는 음성이 들려왔다. 어딘가 인간 같으면서도 인간 같지 않은, 어떻게든 인간의 목소리를 따라 하려 노력한 휴머노이드의 음성이었다.


”흐익!“


소녀는 숨죽이며 외마디의 비명을 질렀다. 기사는 소녀를 잡아끌며 재빨리 부서진 기둥 밑으로 몸을 숨겼다.


”폭스트롯 공 하나..?“

”.. 나 말하는 거에요. 아까 아저씨가 저것들 부숴댈 때도 들었잖아요.”

“너 뭐 시청에서 일한 적 있나?“

“아뇨, 저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요. 사람 잘못 봤다고도 말했는데.. 저것들은 듣는 둥 마는 둥 한다니까요. 진짜 짜증 나.“

”깡통이랑 대화하려 들지 마. 의미 없는 소통이다.“


— 집행명령 수신 양호합니다. 십이시 사십이분부, 제거명령 집행하겠습니다.


음성이 끝나기가 무섭게 휴머노이드, 아니 집행자는 등에 꽂아두었던 장검을 재빨리 꺼내 들었다.


검집이 긁히는 소리가 경쾌하게 사방을 울려댔다. 그 칼끝은 검사와 소녀를 향해 요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소녀가 어쩔 줄 몰라하는 사이, 기사는 서서히 다가오는 집행자의 검을 유심히 노려보며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너 아까 무리해서 치유하느라 남은 마력은 없을 테지.”

”그렇긴 한데요..“

“넌 여기 숨어있던가, 너가 간다는 곳으로 도망치던가 해.”

”그럼 아저씨는요? 그 몸으로는 죽어버릴 수도 있다구요.“


기사는 멋쩍은 웃음을 보이며 소녀를 바라보고 말했다.


”수리기사는 죽지않아. 아직 남은 의뢰가 많단다.“


그는 말이 끝나자마자 갑옷의 가슴에 부착된 원형 스위치를 돌려 잡아당겼다. 그러자 치익–하고 뜨거운 증기가 솟아나왔다. 열려있는 투구가 철컥– 닫히더니 푸른 눈빛이 강렬히 작렬하기 시작했다.


언제 다쳤냐는 듯, 기사는 검을 뽑아들며 집행자에게로 몸을 던졌다. 예기치못한 접근에 주춤하던 집행자는 이내 자세를 고쳐잡았다.


집행자는 곧바로 무심한 듯 검을 아래에서 위로 휘둘렀다. 기사는 칼날을 뒤집어 그 일격을 묵직하게 내려쳤다.


두 칼날이 맞부딪히는 소리와 스파크가 사방으로 튀어나갔다.


그러자 집행자는 검의 궤도를 바꾸어 사선으로 공기를 갈랐다. 기사는 아슬아슬하게 스치는 칼날을 놓치지 않으며 몸을 비틀어댔다.


지금이다, 궤도가 흔들리는 지금이 기회다. 기사는 있는 힘껏 발 뒷꿈치에 힘을 주어 집행자의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깡통 주제에—.“


그 순간 기사의 뾰족한 검 끝이 집행자의 가슴팍 코어를 파고들어갔다.


검과 코어의 자기장이 서로를 침식하며 괴상한 치찰음을 만들어냈다.


기사가 우위를 점한 듯 해보이던 찰나, 집행자는 개의치않고 왼손으로 기사의 투구를 콱 붙들었다.


— 분자구조 트레이스 성공, 전기장 전개합니다.


”뭐엇?“


투구가 점점 진동하더니 기사는 머리가 점점 뜨거워졌다. 집행자의 손 끝에서부터 서서히 투구는 붉은 빛으로 물들어갔다.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한 번 붙잡힌 투구는 벗겨지지도, 피할 수도 없었다. 이대로면 죽는 거야, 죽어버리는 거다—기사는 코어에 꽂힌 검만을 믿으며 그 무게만을 실어나갔다.


이대로면 그야말로 치킨게임, 1초가 급박한 상황 속에서 어떠한 결론이 날 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다.


“아저씨! 숙여요!“


소녀의 다급한 목소리에 기사는 반사적으로 몸을 숙였다. 곧장 푸른 빛의 탄환이 쭉 뻗은 궤적을 그리며 날아와 집행자의 코어를 뚫고 지나갔다.


삐이익—. 고막을 찢는 소리와 함께 투구를 붙잡고 있던 손이 추욱 늘어졌다.


기사는 검을 빼어들곤 이제는 생기하나 없는 집행자를 길거리의 깡통을 차듯이 퍽하고 찼다.


깡–. 코어가 붕괴된 휴머노이드는 말그대로 텅빈 깡통의 소리가 났다.


털썩—.


맥없이 픽 쓰러지는 소녀, 기사는 투구를 벗어던지며 곧장 달려가 그녀를 부축했다.


“겁없이 무리하니까..”


한심하다는 듯, 걱정된다는 듯한 표정으로 기사는 소녀를 응시했다. 소녀의 눈꺼풀은 파들거렸고, 비쩍 마른 입술은 푸른 빛을 띄어갔다. 소녀는 목을 가다듬고 조심히 입을 열며 말했다.


“.. 아저씨.”

“왜? 물 갖다 줘?”

“… 꽤 미남형이네요.”

“…”


할 말을 잃은 기사. 서서히 표정이 굳어갔다.


“눈만 봤을 땐 험상궃게 생겼는데.. 봐줄 만도..”

”시덥잖은 소릴 하는 걸 보니 괜찮나보군. 어서 일어나.“

“칫–. 방금 마력 진짜 다 써서 못 움직이거든요.“


기사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소녀를 내려다보고는 힘껏 들쳐매었다.


“악! 살살요, 살살!”

“조용히 하고 너가 간다는 곳으로 안내해.”


소녀는 괜히 토라진 척 먼 곳을 응시하며 볼따구를 부풀렸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업힌 채 기사의 등을 어루만지며 꽤나 넓고 단단하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하여간 얼굴값 못하는 아저씨네. 일단 저기 보이는 터널로 가줘요.”


기사는 말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터널로 향하는 길은 황량하고 습한 기운이 넘쳐흘렀다. 곳곳에는 눅눅한 기름자국과 함께 잘려나간 휴머노이드들이 늘어져있었다.


“아저씨는 이름이 뭐에요?”

“알아서 뭐하게.”

“지금 우리집 가는 건데 서로 통성명 정도는 해둬야죠.”


겁도 없이 처음보는 기사, 그것도 험상궃은 아저씨를 집으로 데려가려하다니. 기사는 이 소녀의 무모함에 기가 차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


”집이라. 대담하구나, 넌.“

“뭐, 별거 아녜요. 온갖 일은 다 겪어봐서.”


원래였으면 곧장 자리를 떠나 원래 목적지로 발걸음을 옮겼을 기사였지만, 잠시 부상 치료를 위해 쉬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거기에, 어딘가 모르게 끌리는 이 소녀의 정체가 궁금하기도 했다.


“그러냐—. 나는 그냥 신 기사라고 부르면 돼.”

“신 기사… 그냥 아저씨라고 부를래요. 그게 더 발음하기 쉽네요.”

“네 이름은?”

“전 아람이요. 무슨 아람인지는 모르겠어요. 성씨는 못 듣고 자라와서.”

”아람.”

“네? 왜요?”

“고맙다.“

”오.. 그런 말도 할 줄 알아요? 감탄했어요.“

”됐다, 괜히 말했군.“

”아 왜요~“


아람이는 여전히 업힌 채 앞뒤로 다리를 흔들며 앙탈을 부렸다.


그러면서도 피식- 웃음을 지으며 ‘놀리기 쉬운 아저씨’라며 무언가 즐거워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터널로 들어가는 두 사람의 모습을 뒤로하고 방금 전까지 살벌한 집행의 현장이었던 터널 앞 국도는 점점 적막이 피어올랐다.


[ 제3서울시 행정구역 경계선입니다: 시민분들께서는 이곳으로부터 벗어나 지정된 행정구역으로 귀환하시길 바랍니다. ]


따위의 안내문구가 적힌 구부러진 표지판만이 끼익끼익 거리며 아우성을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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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가족 + 유사부부 클리셰의 액션 전기물 순애가 취향인지라, 이런 느낌의 소설을 가볍게 써보고 싶었음.

필력도 없으면서 설정도 구상도 직감적으로 짜나가서 그다지 재미없는 글이었겠지만.. 훑어보듯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주길 바람..!


* 표지는 AI로 대충 뽑았다. 딱 상상하던 이미지긴해.

* 중세기사의 기사가 아니라, 수리기사/산업기사의 그 기사 맞음

* 현대판타지 + 중세판타지 섞은 짬뽕 맞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