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 https://arca.live/b/lovelove/101616301

2편 : https://arca.live/b/lovelove/101769411




[사장님. 회의 15분 전입니다.]

맞다. 회의 있었지. 
아버지는 반대했는데, 그래도 나는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몇 사람들을 호출해 회의실로 모았다. 
회계상 이상한 부분이 있으니 의견 정도는 들어볼 수 있는 거잖아. 
부서별로 2/4분기 계획도 물어봐야 하고.

회의실 앞에 도착하니 딱 3분 전이었다. 
일찍 들어가면 그건 그것대로 민폐일 테니, 앞에서 잠깐 기다리기로 했다. 
안에서 나 없이 무슨 뒷담이 오고 가는지도 알아볼 겸.

[와, 우리 사장님 진짜 로맨틱해요! 
어떻게 여자 친구 선물을 사원들에게 전체 공지로 물어볼 수 있지?!]

그건 로맨틱이 아니라 민폐... 
마케팅부 수석님은 좀 드라마를 줄여야 하지 않을까. 
왜 모든 걸 다 사랑으로 엮어가는 거지. 
애도 있으신 분이...

[아니, 아마 그쪽 비서실에서 동의 없이 올렸을 거예요. 
우리 사장님은 일이랑 사생활은 철저히 분리하시는 분이니까.]

그치. 역시 해외 유학 갔다 온 기술연구소 소장님이 날 잘 아네. 
같은 유학파라 그런가.

[원인이야 어찌되었던 공지글이... 
사장이랑 직원이 너무 가까워도 좋지 않을 텐데 말이죠.]

경영부 수석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응. 나도 반대다. 
적당한 거리감이라는 건 누구에게나 필요하니까.

[에이, 이 사람들이 감성을 모르네. 
그런 난관에도 불구하고 사랑 앞에서는 누구나 다 바보가 되는 거잖아요! 
그런 걸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선물해 주고 싶은 마음에 푹 빠져있는 거지!]

마케팅부 수석이 반쯤 뒤집어진 목소리로 소리 질렀다. 
이 사람 뭔가 연애나 로맨스 같은 것에 한이 맺힌 거 아냐? 
결혼도 한 것 같은데, 연애 때 해야 할 것을 많이 못 했나?

[그럴 수 있겠다 싶어요. 
우리 다 잊고 있는데, 사장님 나이가 혈기 왕성한 30대에요.]

머? 인사부 부장님... 그게 무슨 소리요.

[아, 그러네.]

[그래.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맞아... 30대면 저럴 수 있지. 
철... 은 무리고 돌도 씹어먹을 나이인데.]

거기서 다들 수긍하지 마라. 
그리고 내 이가 아무리 튼튼해도 돌을 씹어먹는 건 무리지 않을까.

[거 봐요! 아무리 강철같은 사람이라도 사랑 앞에서는 어린애라니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마케팅부 수석님은 치료가 필요한 거 같다. 
180 넘는 키의 어린애면 그 자체로 코스믹 호러 아닌가.

[그리고 우리 인사팀에서 확인했는데, 사장님이 올해 들어서 밀려있던 휴가를 다 쓰기 시작했어요? 
작년에는 10일도 안 되었는데.]

응? 내가 휴가가 따로 있었어? 
임원급은 근태 자체가 없는 거 아니었나?

[올해 1주, 2주 이런 식으로 휴가를 내셨더라고요. 
물론 지침이나 중요한 사항들은 다 전화로 받으시면서. 
회장님도! 그 철혈의 회장님께서도 오히려 쉬라고 하고 사장님이 하셔야 할 일을 본인이 직접 처리하시기도 하실 정도였어요! 

이게 무슨 소립니까!]

인사부... 아직도 내 근태 기록 체크하고 있었어? 
그때 회장님에게 깨지고도 정신 못 차렸구만.

[틈나는 대로 여행 갔다 오고, 사적으로는 딱 선을 긋는 사장님이 여자 친구분 선물을 준비한다!]

그게 뭔데. 무슨 뜻인데. 
그냥 치료받아야 했고, 여행은 간 적도 없는데. 
공지글 올린 건 내가 안 올린 건데... 
무슨 오해를 하려고.

[나 알겠어! 곧 결혼한다는 소리죠!]

"... 어후."

조용히 있으려고 했는데 작게 한숨이 나왔다.

마케팅 부서는 저게 원동력인가. 
저런 감성이 있어야 광고도 하고 문구도 제대로 나오는 건가? 
난 전혀 알 수 없는... 먼 세상의 일인 것 같네.

[정답! 제 예상으로는 내년 중으로 다 같이 국수 먹으러 갈 것 같습니다! 
제 뇌피셜이지만 이미 혼수로 아이 하나쯤 있을...]

"아냐! 아직 그럴 계획 없다고!"

아. 망했다. 
나도 모르게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는데, 다들 나를 바라보며 놀란 기색이었다.

"회의... 발표 시작하시죠..."

아마 내 얼굴 새빨개졌을 거야. 
그리고 마케팅부 수석님 눈에서 하트 지우세요. 
애도 있는 분이 뭐 하는 거야.

"어흠. 네. 기술연구소에서 발표 시작하겠습니다. 
이번 주제는..."

아... 그래서 선물은 뭐 해줘야 하지?







2.







퇴근 시간이 되자 정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하늘 씨에게 선물을 해주고 싶은데, 뭘 줘야 하지.

근데 생각해 보면 하늘 씨에게 카드를 주긴 했다. 
한도 1천만 원 되는 카드를 줬으니, 돈이 부족해서 힘들어할 것 같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화이트데이라고 사탕을 주기에는 하늘 씨가 단 것을 별로 안 좋아하지. 
팝콘은 평소에도 많이 먹고 있으니 오히려 싫어할지도 몰라.

"어렵네..."

아까 전에 홍아름 비서에게 물어봤다가 더 큰 일이 생겼는데, 내 주변에 여자가 별로 없다는 게 문제다. 
하은 씨가 있긴 한데, 하늘 씨랑 지금 같이 있을 테니 아닌 것 같고. 
윤나정 경호원에게 물어보는 것도 생각해 보긴 했는데, 요즘 바쁜지 연락을 잘 안 받는다.

"퇴근하십니까?"

"한동수 실장님... 네. 퇴근합니다. 
회장님이 1시간 일찍 가라고 하셔서요."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류 가방을 든 한동수 실장님과 만났다. 
실장님도 지금 퇴근하시나?

"고민이 많은 얼굴입니다."

"하하... 네, 좀 있죠."

나 그렇게 표정을 잘 못 숨기나... 
어? 근데 대외전략실은 전체 게시판을 아직 안 본 건가?

"흠. 받고 싶은 것이 뭔지 모르겠다면, 주고 싶은 것을 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 같습니다."

아니군. 역시 게시판 보고 선물이 뭔지 추천해 주는 것 같다.

"음. 주고 싶은 것이라... 고민해 보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지는 마시죠. 
송하늘 씨가 마음에 안 드는 선물을 줬다고 싫어할 사람도 아니지 않습니까."

"네. 감사합니다."

뭔가를 추천해 주실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네. 
그냥 충고만 해주시고.

원일이에게도 문자로 물어봤는데...

[전 이미 사탕을 보냈습니다. 메신저에서 선물하기 기능이 있더라고요.]

이런 답변이 왔다.

흠. 이것도 괜찮을지 몰라. 
상품권이라던가, 시판품 중에서 너무 싸구려가 아닌 것을 적당히 선물하는 것이 서로 부담되지 않을 것 같네. 
하늘 씨가 단 것은 별로 안 좋아하니, 빵이나 케이크 같은 걸로 선물하면 좋아할 것 같은데.

"음..."

차 타고 집에 들어가면서 다시 생각해 보니 별로 좋은 방법은 아닐 것 같다. 
하은 씨가 있으니 제빵과 관련된 것은 질리도록 먹었을 거야.
그런데 화이트데이까지 빵이면 실망스럽겠지.

"주고 싶은 건 따로 있긴 한데..."

사실 하늘 씨에게 주고 싶은 선물은 따로 있긴 했다. 
퇴원하고 얼마 안 되어서 바로 예약했었고, 저번 주에 받았다. 
아마 하늘 씨도 좋아하긴 하겠지. 
하지만 화이트데이랑은 좀 다른 문제이지 않을까.

"또 오세요."

결국 화이트데이 선물 세트를 사버렸다. 
사탕, 초콜릿, 과자가 다 들어가 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이 중에 하나 정도는 하늘 씨가 원하는 게 있을 거야.

"어서오세요, 도련님. 
송하늘 양은 저녁을 먹고 온다고 합니다."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집에 왔더니 하늘 씨는 아직 집에 없었다. 
오늘 가게 휴무라고 해서 일찍 와 있을 줄 알았는데, 하은 씨랑 저녁 먹고 오는 거겠지. 
가끔 이러는 것도 필요할 거다.

"네. 그럼 퇴근하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한정희 아주머니도 퇴근하시고, 덩그러니 거실에 혼자 남았다. 
비어있는 집에 혼자 있는 것이 간만이라 굉장히 어색하고 쓸쓸하네. 
이 집에서 거의 유일하게 알록달록한 하늘 씨의 방문을 열면 왠지 하늘 씨가 나올 것 같다.

밥을 먹으면서도 혼자 먹는 게 오랜만이라 어색했다. 
나도 모르게 물컵을 두 개 가져다 뒀네. 
그래도 한정희 아주머니가 해준 밥은 맛있다. 
하늘 씨가 같이 먹을 거로 생각하셨는지 좀 양이 많았지만.

밥을 다 먹고, 선물 세트를 바라보았다. 
이런 선물 세트로 괜찮을까? 
좀 성의 없어보이지 않나? 
싫어하면 어쩌지? 
'실망이에요!' 하면서 나한테 집어던지는...

'아니, 그럴 리는 없겠지...'

하늘 씨가 그렇게 못돼먹은 성격은 아니다. 
아는데, 그래도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비관적인 전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본능 같은 건가.

[덜컹]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서재에서 간만에 글을 쓰고 있었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하늘 씨?! 이게 뭔 일이에요?!"

청바지에 편한 티셔츠와 외투를 입고 갔는데, 티셔츠와 청바지가 검은색으로 얼룩져 있었다. 
그 위에 외투를 정말 걸치기만 하고 걸어온 것 같았다. 

뭔 일이래. 기계라도 만지다 온 건가? 
기계 윤활유나 그런 게 튀어서 옷이 더러워진 것 같은데.

"아하하..."

어색하게 웃는 하늘 씨는 손을 등 뒤로 돌리고 있었다. 
뒤에 뭘 들고 있는 거지?

"서프라이즈..."

지친 표정으로 간신히 웃는 하늘 씨가 등 뒤에서 손을 꺼내 나에게 보여주었다. 
리본이 달린 작은 종이 상자가 있었다.

"주는 거예요?"

"네! 우진 씨 거예요!"

"어... 잘 받았는데, 일단 여기로 와요."

양 손으로 내민 상자를 고맙게 받고, 그대로 손목을 잡고 거실로 향했다. 
중간에 외투가 떨어지려고 해서 남은 손으로 받아주었고.

"오옹. 역시 선물! 우진 씨에게 용기가 생겼어요!"

"? 무슨 용기요?"

도자기나 플라스틱 그릇을 말하는 건가? 
왜 저렇게 좋아하지?

"근데 저는 씻어야 하는데... 우진씨는 안 씻어도 돼요?"

하늘씨가 굉장히 상기된 얼굴을 하고, 반짝반짝한 눈으로 바라보며 나에게 물어보았다.

"아. 그치. 씻는 건 중요..."

"조금만 기다려요. 빨리 씻고 올게요."

"아니 근데 왜 거기서 옷을 벗어요?!"

머리끈을 푼 하늘 씨는 바로 화장실 앞에서 청바지부터 벗으려고 했다.

"샤워를 하니까요?"

"그냥 손만 씻고 와요!"

"??? 많이 급해요?"

"급한 건 아닌데... 
아니, 됐어요. 그냥 이리 와요."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잠깐만 가만히 앉아있어 줄래요?"

"어... 그래도 처음은 침대가 낫지 않을까요? 
그리고 좀 밝은데..."

"불 끄지 말고요. 침대보다는 소파가 나을 거예요."

"잡지에서는 익숙한 곳이 좋다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조금만 기다려요. 
손은 되도록 움직이지 말고!"





총 4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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