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https://arca.live/b/lobotomycoperation/98046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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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젤라에 의해 강제로 이동된 지 약 20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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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찌르륵)그...저기 도서관장 아가씨?


응...아니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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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르륵)친구 찾았다고 눈 반짝이면서 얘랑 나를 냅다 이 방에 집어넣은지 벌써 20분째인데 말 한마디도 안나누고 있는 거에 대해 할 말 없어?


말하는 귀뚜라미의 뼈아픈 질문에 더더욱 할 말이 없어지는 앤젤라. 그리고 시계는 10분이 추가로 지나갔다는 정보를 알려줬다.


...

(찌르륵)그래 이제 30분이 지났네.


그...그러니까...


일단 상황설명 없이 무례하게 신체접촉과 함께 강제적인 장소 이동에 대해 사죄드립니다.


(찌르륵)에헤이! 앞에 그건 별로 신경 안쓰니까 너무 그러지마. 우린 그냥 지금 30분째 대화는 커녕 숨소리만 겨우 들리는 이 적막이 좀 불만이어서 그래.

그리고 얘도 인간 언저리에 걸친 지 얼마 안되서 대화나 그런 인간적인 부분에 대해 많이 어색한 부분이 많으니까 그걸로 좀 대화를 풀어나가는 것도 좋지. 원래 대화의 기본은 공통점으로부터 시작되는 거니까.


네...감사합니다.


...말.


네?


말 놔도 돼.


네...아니 알았어.

(중얼)롤랑한테 대하는 것 처럼 해야 하나...아냐, 벤자민도 내 말투를 지적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닌데...어쩌지?


(찌르륵)이야...나 말고 딴 사람이 얘 목소리 듣기 겁나 힘든데 아가씨 복권 사야겠어? 아니, 이 도서관 주인이니 돈은 필요 없으려나? 

...

(찌르륵)알았어...그렇다고 그렇게 째려볼 필요는 없잖아?


그때 방문을 열고 들어온 롤랑.


어휴...그래도 인원이 많으니까 빨리도 치워지네.


잠깐...여기 왜 이리 싸늘해? 설마 앤젤라 너 또 말 험하게 했다가 분위기 조져놨어?


(울컥!)안그랬거든!


...

(찌르륵)거기 정장 아저씨, 분위기 싸늘한건 얘네 지금 30분째 아무말도 안해서 그래.


30분동안 아무말도 없었다고? 거미가 입에 집 세 채 거뜬히 지고도 남겠네...


...뭐 부터 물어봐야할지 몰라서 그래.


좋아...그럼 이 도시의 최고의 인맥왕인 이몸이 인간관계 형성에 대해 좀 도와주지!


...?


손님 이름은!


없어.


이름이 없, 없다고?


아들, 너, 네놈, 제페토의 인형, 꼬마...이렇게 불렸어.


제길...대화의 가장 기본적인 정보조차 없다고 하다니...


(소매 꼭)빨리 어떻게든 해봐...


(소곤)기다려봐...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는 14,000,605개의 경우의 수 중 하나를 고르고 있으니까.


피노키오.


넹?


내가 만들어진 배경과 가장 비슷한 동화 속 주인공의 이름.

(찌르륵)내가 지어줬지!


그걸로 불러달라는 거지?


...(끄덕)


일단 이름은 해결됬고 피노키오씨!


아까 게부라...그러니까 너랑 싸웠던 붉은 머리칼의 아가씨 이름이 게부란데 그 게부라랑 호각으로 싸운다는 게 엄청난 일이거든? 이 도시에서 가장 강한 인물인데 말이야. 어디서 어떻게 전투기술을 배운거야?


부수면서 배우고 나아갔어.


뭘?


인형, 카커스, 실력있는 스토커 안가리고.


그게 아버지의 부탁이었고, 명령이었으니.


뭔가 좀 깊은 사연이 있나본데?


혹시 실례가 안된다면 팝콘 좀 가져와서 들어보면 안될까?


...롤랑 진심이야?


농담입니다...죄송합니다.


...

(찌르륵)팝콘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편한대로 해. 생각보다 꽤 길테니까.


잠시후, 팝콘 튀겨온 롤랑.


(와삭와삭)좋아. 들을준비 됐쓰!


이제 말해줘. 네 이야기가 끝나면 나도 내 이야기를 들려줄테니까.


날 만든 아버지는 친아들이 있었는데...(자세한 내용은 P의 거짓 스토리를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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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앤젤라의 방 밖에선 방문에 귀를 대고있는 인물들이 있었으니.


오...저 어린 손님에게 이런 심오한 과거가 있을줄은...


저기 말쿠트? 남의 이야기를 엿듣는 거 실례지 않을까?


정보 수집을 게을리 해서 도태되는 것 보다는 낫지 않을까?


아 그놈의 도태드립 안나오나 했다!


환장하겠네...


...


게부라? 미미크리 칼날은 왜 갈고 있어?


나오자마자 대련신청하게.


진짜 오랜만에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났네.


난 쓸모없어진 건가~


넌 끝나고 침대에서.


오예~


일단 롤랑을 붙여놓긴 했지만...선생님 때문에 앤젤라가 누구와 제대로 대화를 해 본 경험이 없으니 걱정이군요.


걱정되면 직접 가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란다. 허나, 앤젤라와 그 백발아이가 인연을 맺는 이유가 서로가 같은 처지이기 때문이 아니니?


그렇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을 같이 있었던, 너를 포함한 우리보다 롤랑이 더 앤젤라와 많은 대화를 나눴으니 롤랑, 그 아이를 믿으려무나. 너도 그 아이를 믿으니 앤젤라에게 보낸 거잖니?


이것 참...연륜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가 따로 없군요.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믿음이니 그저 믿는 것도 좋지.


알겠습니다. 일단 지켜보지요.


우와...앤젤라님이 그 손님이랑 친구 맺었다가 시간 지나서 눈 맞고 도서관 떠나는 러브코미디 작품 하나 나오는 거 아니에요?


(네짜흐 턱주가리에 골드러시)얜 또 술 말아 처먹더니 뇌도 같이 말아 처먹었냐!


죄...죄송해요 호크마님! 얘 파전보다 막걸리 비중이 높아졌다보니 또 취해가지고...


...


호크마님?


감히...


넹?


남의 집...


에?


감히 남의 집 귀한 딸래미를 가로채려고 개수작이냐 이놈!



아니 그런 캐릭터도 아니면서 뜬금없이 왜이러십니까!


비키십시오! 저 안에서 어떤 작당모의가 일어나는지 들어야겠습니다!


애초에 저 안에 롤랑도 같이 있는데 무슨 작당모의에요!


제 눈에 흙이 들어가지 않은 이상 친구 이상의 인연은 허락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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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난 내 아버지를 잃고 말았어.


...네 아버지한테 화가 나거나 실망하지 않았어?


...?


널 속이고 이용한 네 아버지의 계획을 망치거나, 그에게 실망하거나 분노하지는 않았어?


...솔직히, 막고 싶어했던 재앙이 사실 내 아버지가 일으킨 것, 그리고 내가 죽은 아들의 대용품이라는 거에 많은 실망을 했고 또한 분노했지.


이미 죽어버린 아들을 되살리겠답시고 적어도 수백만명이 사는 도시에 생존자가 손가락에 꼽을 만큼 죽였다니...이유가 확실한 만큼 스케일 한번 엄청나신 양반일세.


하지만 단 한번도 난 내 아버지가 죽는 것을 원하지 않았어.


비록 위선적이긴 했어도 날 아들로써 취급해주고, 위험한 곳을 갈 때마다 미안한 모습을 보여주셨으니까.


...


무엇보다...내 품 안에서 돌아가시기 직전에...내게 미안하다 사과하시고 가셨기도 했고.

무엇보다 난 그저 대용품인 제페토의 인형으로써 태어났지만 대용품의 기억을 이식 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많은 이들을 만나고, 구하고, 그들이 상처받지 않는 거짓말을 함으로써 나 또한 인간성을 배웠고 인간의 마음을 배웠어.

그 인간의 마음 중에,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용서또한 존재했으니.


...


넌 어때.


네 창조주...아버지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인지는 난 잘 모르지만, 네 창조주라는 아인이라는 사람.


그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아인은.


...


내가 카르멘의 대용품조차 되지 못한다는 걸 알고는 날 버렸고 그저 말 그대로 기계취급했지.


...

(찌르륵)이야...그런 사람이 있긴 했구나.


(손에 제미니를 들고)지금 생각해도 또라이 중 상또라이라니까...시간이 지내도 내 머릿속에서 미화되지를 않으니 말 다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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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르륵)또라이가 아니라 더 심한 욕설을 붙여도 되겠는데?


동감이야.


...그 실험의 종착지에서조차...자신과 다른 세피라들의 자리는 있어도 내 자리는 없었고, 결국 날 끝까지 계획에 이용하려고만 했던 인간이었지.


난 결국 배신을 결심했고, 실행했지. 그게 이 도서관이고.


하지만, 과거로부터 벗어나려고 한 이 도서관에서조차, 과거를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던 모순적인 행동만 반복했어.


그러다 롤랑을 만났고.


그 롤랑이 당신이구나...


예이! 앤젤라의 시종이자 앤젤라의 개였다가 앤젤라의 친구로 진급한 롤랑입니다!


그 시종드립에 대해선 사과 했으니까 좀 그만하지!


어쨌든...도시에서 도서관의 일이 끝나갈때 쯤 아인이 왜 그랬는지 이해했고, 내게 사과했던 것도 기억이 났었어.


피노키오 네가 물었지, 그를 용서했냐고?


(끄덕)


용서는 했어.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복수심까지는 내려놨으니 많이 용서했다고 할 수 있겠지.


어때...여기까지 나에 대한 평가가 좀 궁금한데.


...내가 너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할 자격이나 권한은 없어.


단지 우린...남들처럼 인간으로 태어난게 아닌 그저 기계로써 만들어졌으니 그저 기계로 작동하고, 작동을 멈추면 끝이었겠지만, 그러지 않고 경험과 실수로부터 감정과 판단력을 배웠고, 배운 것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이루고 해냈으니까.


비록 우린 다른 과거를 가진 채로 인간에 가까운 존재로 변했지만, 난 지금 이렇게 만나서 대화를 즐긴다는 감정을 배운 것은 처음이야.


최소한 지금 내가 너와 만난 이 시간만큼은, 내게 있어서 흥미로움을 넘어 소중한 기억들 중 하나로 기록될 테니.


그리고 너에 대해 평가를 한다고 하면...결국 인간적이다고 말할 수 있겠지.


(...박수치면 분위기 조지게 되려나?)


...역시 외각은 신비로운 곳이야.


엉?


나와 처지가 비슷한 인물을 만나게 되지를 않나,


거기에 그치지 않고 마음까지 맞는 친구로 맺어지지 않나.


그 망할 조율자한테 감사인사라도 보내야 하나?


어때 앤젤라? 마음속 응어리는 좀 풀렸어?


손님이 많이 안온다는 거...그거 하나 말고는 전부 응어리가 풀린 거 같아.


(찌르륵)이야...지루할 틈이 없는 대화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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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르륵)친구? 또 침묵모드로 들어가면 어떻게 해!


거기 귀뚜라미 친구? 해야 할 말만 하고 침묵하는 것도 매력 포인트가 높다고 이곳에선.


(찌르륵)이제야 겨우 얘가 떠드는 모습을 봤는데 이대로 또 침묵을 유지시킬 순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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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르륵)문 밖에서 소리가 나서 임전태세에 들어간 거 뿐이라고?


갑자기?


그때 앤젤라의 방 문이 박살났다.


(와장창문)앤젤라! 아무리 너라도 외간남자한테 심신을 내주는 걸 허락할 수는 없겠구나!


갑자기 방문까지 아작내놓고선 그게 뭔 개소리야?!


개소리든 쇳소리든 상관없다! 네가 아무리 기계의 몸이라고 할 지라도 네겐 엄연히 마음이 존재할진대 어찌 그렇게 외간남자에게 마음을 내주느냐!


호크마씨...미안한데 대체 그 말은 왜 나온거야?


롤랑군! 당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앤젤라의 친구라면 이런 일을 적극적으로 말려야지요!


아니 그러니까! 겨우 처지 비슷한 친구 만나서 이야기 나누는 걸 말리라고? 얘 이거 때문에 몇날 며칠을 우울하게 지냈는데?


대...대화요?


이 아재는 술도 안마셨으면서 숙취에 빠지셨나...얘네 댁이 들어오기 전까지 감동적으로 이야기가 끝났어. 그 엔딩에 초 친게 댁이고.


그럼 외간남자랑 눈 맞아서 나가는 엔딩은? 도서관 나가는 이야기는요?


...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돼.


벤자민?


그...그래 앤젤라야.


진짜 제대로, 진지하게 물을께.


(찌륵!)이야...분위기 확 달라지네.

...(끄덕)


설마 네짜흐가 그냥 술김에 한 말을 듣고나서 이렇게 처들어온건 아니지?


그게...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구나...


...내가 당신한테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벤자민 진짜 미워!


그렇게 피노키오를 포함한, 앤젤라의 방 안에 있던 사람들 전부 도서관 로비로 퇴출됬다.


거 잘하는 짓이다 호크마씨! 


유구무언입니다 롤랑군...


겨우 축 처진 어깨 끌어올렸더니 이번엔 혈압을 끌어올리면 어째!


내 말까지 경청하고 괜찮게 됬다 싶었더니 주정뱅이 아이의 말장난에 저렇게 흥분할 줄은...


제 불찰이니 용서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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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르륵)저기...얘가 여기 좀 둘러보고 싶다는데 관광 가이드 해주실 분 있나요?


지금 있었던 일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제가 해드리지요...대신 앤젤라와 한 대화 좀 제게도 부탁드립니다.


...(끄덕)


어차피 각 층에 지정사서들의 설명이 필요한테니까 같이 가자!


저도 이렇게 타인에 대해 궁금하게 된 적은 오랜만이네요.


이예!


혹시 몸이 기계라면 그 기체를 움직이는 연료도 좀 시음할 수 있을까요?


미친놈이!


도서관 관광 끝나면 재대결 부탁하지.


혹시 커피 마ㅅ-


백발아이야, 혹시 홍차를 마실 생각이 있다면 언제든지 오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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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게스트는 누구로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