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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흐흥~흐흥~역시 업무 이후의 간식타임이 최고지~"


업무시간 이후의 림버스 컴퍼니. 수감자들 대부분은 각자 방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였다.


단 한명, 로쟈는 빼고. 무슨 변덕인지 로쟈는 본인 방에 숨겨둔 간식 몇개를 가지고 흥얼대면서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읏챠, 가끔은 업무 끝나고도 몸을 풀어주고 싶단 말이지..."


그렇게 그녀가 버스 밖에가서 불침번 서는 오티스라도 좀 놀려볼까 생각하던 도중.


"음?"


"어..."


"어라? 꼬맹이? 지금은 네가 불침번 설 때가 아닐텐데? 부관 언니는 어디갔어?"


"아...그게..."


***

<아니, 오티스. 그냥 살짝 삐끗한 거 뿐이라니까...>


"무슨 소리를! 관리자님, 그러게 물자는 제가 나르겠다고 거듭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아니 뭐, 그냥 두개정도고...이건 나도 들 수 있다고?>


"그러니 이런 부상을 당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서, 치료를...아, 하지만 지금은 불침번이..."


"어...무슨 소란인가 했는데, 뭐죠 이게?"


<아, 싱클레어.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상자 몇개 나르다가 넘어졌는데->


"마침 잘됐군! 졸개! 내가 관리자님의 몸이 무사하신 걸 확인하는 동안 불침번을 대신 맡도록!"


"에?"


<아니, 오티스 무슨 소리야, 이런건 그냥...>


"갈! 그만 말하십시오! 금방 치료해 드리겠습니다!"


"어, 어어? 저기요?"


***


"그러고는 뭐라 말하기도 전에 단테 님을 데리고 쏜살같이..."


"...부관언니 답네, 정말..."


"괜찮아요. 어차피..."


싱클레어는 옅은 웃음과 함께 다시 시선을 밖으로 돌렸다.


"꼬맹이? 나랑 바꿀래?"


"아! 아뇨, 그러실 건..."


"어차피 난 지금 잘 생각 없단 말이야~다들 야식은 몸에 안좋다고 하지만, 솔직히 참을 수 없을때는 참지 말아야지, 흐흣."


로쟈는 과자봉지를 뜯고는 털썩 앉았다. 하지만 싱클레어는 움직이지 않았다.


"괜찮...아요. 저도 잠은 안오니..."


그건 아주 미세한 목소리의 떨림이었다. 하지만 로쟈는 이에 입으로 털어넣으려던 과자를 내리고는 싱클레어를 쳐다보았다.


달빛은 싱클레어의 얼굴을 은은히 비추고 있었다. 그 얼굴은 이상하리만큼 평온했다. 아니, 평온하다는 건 맞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기 보다는 마치 석고상처럼 보였다.


"꼬맹이, 무슨 일이야?"


"예? 아뇨, 그저 잡생각들이..."


"...그런가."


그제야 로쟈는 싱클레어의 시선이 어디를 향해있는지를 보았다.


아직 녹지 않은 눈이, 근처의 나무에 마치 도넛위의 설탕처럼 뿌려져 있었다. 마치 자연적으로 탄생한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꼬맹이."


"죄송해요, 로쟈 씨."


싱클레어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하지만 그건 로쟈를 향한 감정이 아니었다.


"계속...넣어두려고 했는데도, 생각나요."


"..."


"그날...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제 자신이. 그리고 이번에도."


"이번에도, 이번에야말로 극복해보려 했는데..."


"결국에는, 저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잖아요. 결국은 또 구해지고, 살아남기만 하고."


"미운거야?"


로쟈는 조용히 물어봤다. 그녀의 눈가에는 그늘이 져 있었다.


"...너무나도요."


싱클레어는 나지막히 벹었다.


"그저, 그날이 되면, 그날이 가까워지면...매년마다, 매년마다 사람들은 노래하고 춤추고..."


"그러는 사이에, 그 노래소리는 커지고 커져서 어느새 비명이 되죠."


"사람들의 춤은, 필사적인 몸부림이 되어버리고."


"밝게 펼쳐진 장식들은, 계속 타올라서 모든것을 삼켜버려요."


싱클레어는 천천히 바닥에 앉고는,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잊으려고 했는데도, 그래도 일단락 되었을텐데도...여전히 제 자신이 미워요."


"그맘때만 되면, 계속 제 자신이 그때로 돌아가는 것 같아서..."


어느새 둘 사이에는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싱클레어의 얼굴은 여전히 조각상같이 차갑고 굳어 있었다.


"...하. 그러게 그 꼬맹이 녀석은 장식은 굳이 가져와서는..."


"네?"


"아, 아니. 너 말한거 아니야."


로쟈는 푹 한숨을 쉬고서는,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건네주었다.


"먹을래?"


"어...초콜릿인가요?"


"그래, 그것도 꽤 비싼거라고."


"이미 이는 닦았는데..."


"그럼 나중에 또 닦아~"


싱클레어는 그대로 초콜릿을 받고는, 우물쭈물거렸다. 그 사이에 로쟈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일각에서는, 그렇게 초콜릿을 주는 기념일이 있는 거 알아?"


"예?"


"어느 구역에서는, 이맘때쯤이면 여자가 남자들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풍습이 있어. 그때되면 여자들은 다들 비싼 거를 사거나 직접 만들어서 남자들에게 주지. 왜인지 알아?"


"왜인데요?"


로쟈는 갑자기 싱클레어에게 바싹 붙어서는 조용히 속삭였다.


"관심있는 남자에게 선물하는 거야~"


대략 5초간 완전히 정적이 흘렀다. 그러고는-


"예?! 예에?!?!!?? 그게 무슨 소리에요!!!"


"푸하하핫! 아, 미안미안~그치만 반응이 너무 귀엽네~?"


"아...아니...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왜..."


"아, 안심해. 나는 그런 의미 아니었으니까."


로쟈는 갑자기 손을 들었다.


"...예?"


"맹세하고는, 불순한 의도는 없었어. 그냥 너한테 초콜릿을 준거야."


"...아니! 무슨 장난이에요 그건!!! 그럼 왜 초콜릿을 준건데요?!"


"음~그냥 주고 싶었던 건데? 안되는 거야?"


"아니, 안되는 건 아니지만...아무 의미 없는거를..."


"그래, 의미없지."


로쟈의 웃음이 그쳤다.


"아무런 의미 없어. 유래가 어쨌든, 초콜릿 만드는 사람들이 어떻게 포장하든, 결국에는 그건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만들어낸 상징이니까."


"생각해봐, 이런 초콜릿 풍습을 밀어주어서는 초콜릿 만드는 제조사들이 제일 행복할 거 아니야? 정말 관심있는 사람에게 줄 거면, 그냥 아무 날이나 해도 특별해지는데 말이야."


"로쟈 씨...?"


"결국 어느 날이 특별한지, 어느 날이 기억에 남는지는, 사람 마음에 달린 거라고."


로쟈는 싱클레어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있잖아, 카지노에서 내 과거를 들었잖아."


"아...그, 그건..."


"내가 도끼를 든 날, 그게 언제라고 생각해?"


"어...언제인데요?"


"글쎄? 내가 어떻게 알아?"


"예?!"


"아니...하지만 딱히 기념일도 아니었고? 예전 일이라서,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잊은지 오래라는 거지~"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생긴 나무에서, 눈이 조금 떨어졌다.


"하지만...그럴 수 있는 거에요? 그때 일들을...아니, 분명 아직 기억하고 계시다고..."


"착각하면 안된다고, 꼬맹이?"


로쟈는 살짝 싱클레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언제였는지를 기억하지 않을 뿐. 무엇이 일어났는지는 기억하고 있지."


"그건...무슨 말인지..."


"잊으면 안되지. 내가 어떤 일을 초래했는데."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어느 날을 골라서 울적해져야 해? 왜 그래야 하는건데?"


"비극이 일어났다고 해서, 비극이 일어난 날이 중요한 게 아니야. 정말로 중요한 건 비극 그 자체지."


어느새 로쟈는 무의식 중에서인지, 본인의 도끼 손잡이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꼬맹이. 일은 이미 일어났어. 그건 바꿀 수 없어."


"하지만 그렇다고, 계속 매년마다 같은 일이, 그 날에 일어나는 건 아니야."


"그저...담아두는 거야. 무슨 일을 겪었는지. 담아두고, 간직하는 거지. 특정한 날 꺼내서 무너지는 게 아니라, 그냥 계속 곁에 두는 장식으로."


"...그렇게 되면."


싱클레어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다.


"그렇게 되면, 매일 그걸 보면서 살아가야 하는 건가요?"


"그렇지."


"그러면..."


"하지만 꼬맹이."


로쟈는 손을 도끼에서 떼고는 싱클레어의 어깨에 얹었다.


"단테는, 거의 매일같이 거울 던전을 돌지."


"그, 그러게요..."


잠깐 둘은 매우 공감이 간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그치만 같은 거울 던전이어도, 단테의 반응을 봐. 어떤때는 무심하게 넘어가지만 어떤때는 아주 환호를 지르잖아?" 


"어제는 이상 씨가 침잠쇄도 뽑아내는 걸 보고는 정말로 흥분하셨죠..."


"하핫, 나도 한몫했다고?"


로쟈는 잠시 우쭐한 표정으로 머리를 넘기더니, 이내 다시 진지해졌다. 


"매일매일이, 아프고 특별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매일매일이 그냥 평범할 수도 있는거잖아?"


"똑같은 하루를 보내도, 똑같은 광경을 봐도, 그게 특별한지, 어느 부분이 특별한지 결정하는 건 결국 네 몫이야."


"네가 네 과거를 벽에 걸어두고, 매일 본다고 해도, 그것을 특별한 것으로 여길지, 아니면 그것 말고 다른 것을 특별하게 여길지는..."


"그건 온전히, 네 몫이라고."


나무에서는 어느새 눈이 완전히 다 떨어져 있었다.


"뭐, 이렇게 말하는 나도, 여전히 매일 조금씩 추워하고는 있지...그러니까 내가 이런말을 할 입장은 안될지는 몰라."


"하지만...언젠가는, 더는 추워하지 않을 날이 될지도 모르잖아?"


"적어도...매년, 그 추위를 다시 끄집어내서 얼어죽는 것 보다는 나을테니."  


다시, 둘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싱클레어의 얼굴은, 어느새 혈색이 조금 돌아와 있었다. 그는 조용히 로쟈가 준 초콜릿을 까서는 한입 깨물었다.


"미안. 다른 사람들이라면, 뭔가 확 해결해줄 조언이 있을지는 몰라도..."


"맛있네요."


"응?"


"역시 비싼건 이유가 있나봐요."


"그래? 다행이네~그거 주인장도 귀한 거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걸?"


로쟈는 싱클레어의 머리를 잠시 쓰다듬었다.


"아, 그거 알아 꼬맹이? 또 일각에서는, 여자가 초콜릿을 주면, 얼마 후 남자가 더 크게 보답을 주는 풍습이 있다는거~"


"예...?"


"뭐, 너무 부담갖지는 마! 그치만 기대할께~!"


"아니 결국에는 부담 주는 거잖아요! 그것보다 그런거는 특별한 거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에이~나한테 간식이 특별하지 않을리 없잖아? 꼬맹이, 얼마나 대단한 걸 선물하는지 지켜보겠어!"


"아니 잠시만요..."


"그나저나 부관 언니는 왤케 안오는 거야! 분명 단테 핑계로 불침번 땡땡이 치려는 거겠지...가만있어 꼬맹이! 내가 끌고올테니까!"


"아니 잠시만요!!! 보답을 제가 어떻게 하냐고요!!!"


싱클레어는 황당해하며 소리쳤지만, 로쟈는 호탕하게 웃으며 재빨리 복도쪽으로 사라졌다.


"하아, 로쟈 씨, 정말..."


싱클레어는 한숨을 쉬고는, 손에 든 초콜릿을 바라보았다.


"...뭐."


아작.


그는 남은 초콜릿을 입에 머금었다.


"이거는, 제게 특별한 것으로 기억해도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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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어떤 수감자 케미를 써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