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중에 퍼지는 고소한 고기 내음, 식욕을 자극하는 강렬한 빨간색 국물.

그리고, 자연스럽게 입 안에 고이는 침.

로보토미 코퍼레이션의 비서이자, 도서관의 창백한 사서였던, 화려한 커리어를 자랑하고 있는 그녀는 지금 이름모를 뒷골목의 허름한 식당 안 구석진 곳에 놓인 2인용 테이블에 앉아, 그녀의 친구가 추천했던 매콤한 미트 스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옆자리에 앉아있는 것은 이런 허름한 식당과는 어울리지 않는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 롤랑이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앤젤라."

앤젤라가 그토록 원하던 단 하나의 책은 완성되었고, 빛은 전부 회수되어 다시금 도시에 완전히 뿌려졌고, 그녀는 부드럽고, 생기 넘치는 인간의 몸을 가진, 하나의 인간이 되었다.

제 역할을 다한 도서관은 무너졌고, 빛을 통해 되살아난 손님들, 사서들, 모두가.
자기의 집을 향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뿔뿔히 흩어져 떠났다.

막상 인간이 되어도 이제부턴 무엇을 위해, 어디를 향해 발걸음을 옮겨야 할지 전혀 모르는 채로, 막막하게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을 머엉하니 바라보고 있던 그녀에게, 밥이나 먹으러 가자며 친근히 말을 걸어주었던 사내가 있었으니,

그 사내는 도서관에서의 여정, 그 처음에서부터 그녀와 함께 걸어갔던 친구이자, 지금 그녀의 손을 잡고 그녀를 이 허름한 골목 맛집의 자리에 앉혀놓은 남자, 롤랑이었다.

"그냥.... 고마워. 롤랑."
그녀가 여태껏 그 남자에게 받았던 모든 호의와 친절에 대한 감사를 이 한마디에 꾹꾹 눌러 담으며, 아직은 어정쩡하고 미숙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는 말했다.

"뭐야? 웃은 거야? 니가 웃는 걸 보는 건 처음인데."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똑같이 씨익 웃으며 그 남자는 말했다.

"...큼. 로..롤랑, 여기 음식을 좋아하나봐? 도서관 안에서도 미트 스튜 얘기를 하더니, 도서관 밖으로 나오자 마자 온 곳이 여기라니, 난 네가 다른 사람들처럼 집에 돌아갈 줄 알았거든."
괜시리 부끄러워져 언제나의 포커페이스로 표정을 되돌리며 급히 화제를 바꾸는 안젤라였다.

"좋아하지. 여기 있는 T사의 특이점으로 푹 고은 미트 스튜를 한 입만 먹으면 너도 반하게 될 거라니까? 나랑, ...내 아내도 자주 들려서 먹었던 곳이야.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봤자 기다리고 있을 사람도 없어서."
눈치라곤 하나도 없는 앤젤라였지만, 남자의 눈빛에 한 순간 슬픔이 비쳤던 것을 알 수 있었다.

"..음... 뭐 해? 어서 이 스튜 한 술 떠 봐. 무언갈 먹는 건 이게 처음이지?"
침울해져버린 분위기를 바꾸고자 다시 한번 화제를 돌리는 롤랑.


그의 말대로 앤젤라는 여태껏 '먹는다' 라는 행위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니, 개념은 이해하고 있었지만, 맛, 포만감, 허기같은 것들은 그녀가 전엔 전혀 느낄 수 없었던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분명한 허기를 느끼고 있었다.
사실 롤랑이 이 식당에 그녀를 데려다 주었던 이유도 꼬르륵!하고 우렁차게 울어대던 배를 감싸안고 얼굴을 붉히던 그녀와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는 지금 생생한 식욕도 느끼고 있었다.
그녀의 핑크빛 혀 위 미뢰 하나하나가 눈 앞의 음식을 입 속으로 넣어달라고 전두엽에 전기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있었다.

하지만 '인간'이란 처음을 두려워 하는 생물이었다.
아직 한 번도 무언갈 먹어보지 못한 그녀에게 있어선, 무언가를 먹는다는 행위는 체내에 이물질을 끼워넣는 행위와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두려움과 호기심, 그리고 본능적인 욕구가 천사와 악마가 되어 앤젤라의 머리 위에서 피를 튀기며 싸우고 있었다.

"롤랑, 이거 말이야. 너무 빨간거 아니야? 그.. 조금, 매울 것 같은데?"

매운 맛은 맛이 아니다. 통각이자 고통이다.
도서관 속에서 온갖 책을 다 읽어본 앤젤라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그녀가 아는 한, 고통을 즐기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가? 내가 느끼기엔 별로 안 매운 것 같은데... 뭐, 완전히 텅 비어있는 뱃속엔 조금이라도 매운 음식은 독이 될 수도 있으니까. 아마 여긴 죽같은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도 팔 거야. 메뉴 한번 둘러보고 먹고 싶은게 생기면 말해줘. 나 먼저 먹고 있을테니까."

그렇게 말하고선, 롤랑은 아직까지도 조금씩 보글대는 뜨끈한 국물 안에 국자를 푸욱 집어넣었다.
이윽고, 그 국자가 도로 나오자, 걸쭉한 국물과, 국자에 딸려 나오는 수 많은 고기, 그리고 양념이 안까지 쭈욱 밴 감자들이 한 국자 안에 탐욕스럽게 듬뿍 담겨 나왔다.

롤랑은 자기 앞접시에 그것을 조심스럽게 담아 놓고선, 젓가락을 집고, 후룩후룩 소리를 내며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접시에 담겨있던 수많은 고기, 감자, 그리고 다양한 채소들이 게 눈 감추듯 사라졌다.

정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신사답지 못한 식사였다.
만약 그가 입고있는 정장이 새까만 정장이 아니었다면 빨간 국물에 물들어 그 정장이 원래 어떤 색이었든 빨간색 정장이 되었을 것이다.

앤젤라는 롤랑이 접시에 코를 박고선 스튜를 먹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만약 그녀가 롤랑과 데이트를 하러 온 평범한 여성이라면 그의 추태를 보곤 자리를 박차 일어나선 뒤도 안 돌아보고 뛰어 도망갔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그때 느꼈던 감정은 환멸감이 아니었고,
혐오감도 아니었다.
그녀가 느낀 것은 바로 자극.
텅텅 비어있는 그녀의 위장이, 공기를 맴도는 고기와 양념의 향을 맡은 그녀의 코가, 울긋불긋한 색으로 색칠된 건더기들과 새빨간 국물을 본 그녀의 눈이, 매울 수도 있다고, 먹는 것은 위험하다고 외치는 그녀의 뇌에게 미친 듯이 자극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야한 잡지를 처음 본 사춘기의 소년처럼, 생전 처음 느껴보는 자극의 파도 속에서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꿀꺽."
앤젤라는 침을 삼키지 않곤 못 배겼다.
침이 고이는 수준이 아니라, 폭포마냥 쏟아져서 입 안에 홍수가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앤젤라의 손이 움직여, 국자를 쥐었다.
앤젤라의 이성은 결국 그녀 자신의 본능에게 함락당한 것이다.

"후루룩! 후룩후룩! 뭐야. 너도 먹게? 괜찮겠어?"
앤젤라를 걱정하며, 말을 건네는 롤랑.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의 젓가락은 멈추지 않았고, 그런 그의 모습은 앤젤라의 기대감을 더욱 높여 주었다.

마치 우물에 두레박을 담구듯이,
국자를 냄비에 넣고, 빼낸다.
두레박엔 수 많은 보물들이 담겨 올라온다.
새하얀 앞접시는 빨간 색의 갖가지 건더기들을 더욱 돋보이게 해줬다.

앤젤라의 콧속을 냄새 입자들이 가득 채웠다.
지금 그녀는. 눈 앞의 음식을. 먹는 것 밖엔. 생각하지 못했다.

용기있게, 먼저 만만해 보이는 감자부터 집어 입 안으로 집어넣는다.

"ㅡㅁ?!?!????!!!??"
소리 없는 아우성이란 이런 것일까.
앤젤라는 입을 다문 채로 소리질렀다.

"조심해. 뜨거우니까. 특히 감자는 더."
한 발 늦은 경고따윈 비 맞은 사람에게 우산을 건네 주는 것만큼 쓸데없었다.

다급히 컵에 담긴 물을 입 안으로 흘려 넣어 혀와 입천장을 식히는 앤젤라.
그 눈가엔 이미 눈물이 맺혀 있었다.
첫걸음이 좋지 않았다.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고선, 이번엔 고기를, 잊지말고 후- 후- 불어서 식힌 후에, 입 안에 조심스레 넣었다.
앤젤라의 이성의 예상이 적중했다. 그 스튜는 빨간 만큼 매웠던 것이다.
하지만, 사실 롤랑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롤랑의 기준으로는 그 스튜는 전혀 맵지 않은, 매콤달콤한 닭강정 수준의 매움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여태껏 매운 음식을 전혀 맛보지 못해본 갓난아기는 김치조차 눈물을 흘리며 매워한다.

앤젤라는, 지금 모든 갓난아기가 거쳐가는 매움의 시련을 마주친 것이다!

'매워..! 혀가 아파.....'

우물우물 고기를 씹다가 꿀꺽 삼켜버리는 앤젤라.
컵을 기울어 물을 마시려 했지만 이미 컵은 비워진 채였다.

"헤에... 헤으... 롤랑... 거기 물 좀 줘..."
테이블 반대편 롤랑 쪽에 놓여 있던 물통을 가르키며, 앤젤라는 말했다.

"너한텐 너무 매운가 보네. 뭐, 맵지 않은 음식들도 잔뜩 있으니까, 무리하면서까지 안 먹어도 돼."
몰통을 집어 앤젤라에게 건네주며, 롤랑은 말했다.

쪼르륵하고 물을 컵에 따르고선, 단숨에 컵을 비워 버리는 앤젤라.
움식 한 젓가락에 물 한 컵. 물을 마시러 온 건지 밥을 먹으러 온 건지 모를 수준이었다.

하지만 앤젤라의 오른손은 다시금 젓가락을 쥐었다.
아마 앤젤라 그녀 자신도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가 얻었던 열 가지 미덕 중에 포기하지 않는 마음, 오기라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일까?
그녀의 호기심과 탐구욕이 고통을 이겨내고 다시금 매운맛을 경험해 보고 싶게 만든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친구가 먹는 것을 나도 먹고 싶다.' 라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의 마음이 그녀의 손을 움직였던 것일까?

이유가 무엇이었든, 앤젤라는 이미 젓가락으로 고기를 집어선 입 안에 털어넣는 중이었다.
아마 앤젤라에겐 매운 스튜를 먹는 행위도, 도서관 밖에 나와 세상과 마주한 것도, 그리고 앞으로 인간의 몸으로 살아가며 행할 수많은 것들도, 그녀에게 있어선 하나하나가 커다란 도전일 것이다.


그리고, 으레 도전은 보상받기 마련이다.


"....맛있어."


씹으면 씹을수록, 고기에선 고소한 육즙이 새어 나왔다.
고기는 마치 몇 년동안 푹 고아져 있었다는 듯이 혀와 치아에 닿자마자 아스라져 보들보들한 솜털들로 나뉘어 입 안을 부드럽게 감쌌다.

그토록 고통스럽던 매운 맛이, 마치 불꽃놀이처럼 아름다운 형태로 입 안에서 톡톡 터지고 있었다.

다음엔 감자였다. 아마 지금쯤이면 충분히 식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녀의 혀에 감자가 닿자마자 그것은 폭신한 쿠션으로 바뀌어 그녀의 혓바닥을 간질간질 간지럽혔다.
감자에는 양념이 곳곳에 잘 스며들어, 어디 하나 빠진 곳 없이 일관성 있게 깊은 국물의 맛을 냈다.

국물? 그러고 보니 국물을 아직 맛보지 못했다.
그녀는 접시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선 접시째로 기울여 쭈욱 국물을 들이켰다.

꿀꺽, 꿀꺽, 꿀꺽.
많은 양의 국물을 입을 떼지 않고 한번에 음미하며 마시는 앤젤라.
'아마 롤랑과 네짜흐가 자주 했던 '원샷'이란 행위란 이런 것일까.' 하고 생각하며,
그녀는 마음이 뜨끈하게 뎁혀지는 것을 느꼈다.

한 방울도 남김없이, 깨끗이 접시를 비운 앤젤라는 물컵을 집어 찬물로 따끈히 뎁혀진 식도를 식혔다.

그녀의 '인'생의 첫번째 한 그릇은 이렇게 끝이 났다.

""후우~""
롤랑과 앤젤라, 둘이 동시에 날숨을 내뱉었다.

"뭐야, 매운거 잘 못 먹는 줄 알았는데. 너도 이 집 스튜가 마음에 드나 봐?"
앤젤라와 같이, 똑같이 접시를 깔끔히 비운 롤랑이 말했다.

"잘 모르겠어. 난 다른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으니까. 비교할 대상과 기준이 없거든."

"비교 없이도 평가정도는 할 수 있잖아. 어때? 맛이 있다, 없다로 말하자면?"

"..맛있었어. 다음에 또 오자."
평범한 인간이 외식할때 나올 법 한 말을 내뱉으며, 두 사람의 한 끼는 이렇게 끝이 났다.






-후일담





앤젤라는 지금 더럽게 어질러진 방의 소파 위에 앉아, 도서관장 시절 때처럼 창백한 얼굴빛을 띄우며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그 더러운 방은 롤랑의 집이었다.
왜 그녀가 그의 집에 있는가에 대해 야릇한 상상을 하진 마시라.

가족은 없지만 집은 있는 사람과 집도 가족도 없는 사람이 친구라면,
그리고 그 집도 가족도 없는 친구가 오늘 머물 곳이 없어 길거리에서 자다 청소부들에게 먹힐 예정이라면,
그 친구가 잠을 자다가 집에 불을 지르는 잠버릇이 있는 친구가 아닌 한,
그 친구를 자기 집에서 재워주는 것이 사람으로써의 도리일 것이다.

그리하여 돈도, 집도, 돈을 벌 능력도 없는 무능한 앤젤라는 롤랑의 집에 얹혀살게 된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롤랑은 그러할 능력이 있었고,
식비, 월세, 생활비 등 여러 곳에 빠져나가는 돈을 벌기 위해 해결사 일을 구하기 위해 집 밖으로 나간 상태이다.

그리고 앤젤라는 하필이면 지금, 롤랑이 집에 없을 때에, 그녀의 인생 최대 최고의 위기를 겪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시간이 조금 흐르고, 샛노란 노을이 창밖으로 보이는 시간대가 되었다.
빽빽한 거리에 가득 찬 사람들은 거의 퇴근하는 직장인들이었다.

"앤젤라~, 나 왔어. 별 일 없었지?"
벌컥, 문을 열고 롤랑이 집에 돌아왔다.

하지만, 그곳엔 앤젤라의 모습이 없었다.

소파 위에도, 바닥에도, 어디에도.
안 그래도 좁디 좁은 원룸이었길래 롤랑이 방 안에 그녀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조심스럽게, 롤랑은 벗어서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검은색 장갑을 꺼내 양손에 씌운다.
방 안엔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

사실 그녀가 위험한 일에 휘말릴 수 있다는 사실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뒤틀림, 사람이 괴물로 변하는 그 끔찍한 현상은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리고 그 뒤틀림 현상을 일으킨 장본인이자, 지금은 아무 힘도 없는 일반인이 된 앤젤라.
뒤틀림 현상에 당했던 그 많고많은 희생자들의 친구나 가족 중에서 그녀에게 앙심을 품은 자들이 얼마나 될까?

실제로, 한때 롤랑 역시 아내의 죽음에 대한 원한을 그녀의 죽음을 통해 풀으려 했던 적이 있었다.
롤랑은 자신같은 사람들이 하나 둘이 아닐 것이란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나 빨리...?'

앤젤라가 뒤틀림의 원인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녀와 직접 이야기하던 롤랑이나 로보토미의 직원들 뿐이었다.








쏴아~ 하는 물소리가 화장실 안 쪽에서 나와 정적을 깨트렸다.

덜컹, 하고 화장실의 문이 열린다.
안 쪽에서 나온 앤젤라의 얼굴은 어딘가 상쾌해 보였다.

"....!"
이윽고,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친다.

"아... 하. 뭐, 처음 밥을 먹었던 때가 어제니까, 오늘 처음, 그.... 볼일을 봐야 했겠네. 인간의 생리현상이니까, 너무 당황하진 마."


"........"
앤젤라의 얼굴은 샤오의 불꽃보다도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