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도서관의 밤. 모두가 잠들 때다.


사실 사서들이야 빛덩이로 만들어진 존재니만큼, 안 자도 큰 문제야 없겠지만 누가 안 자고 싶겠는가.


최근에 잘 수 있게 되어 매우 행복해하는 엔젤라도, 그런 엔젤라에게 맞춰주느라 피곤한 롤랑도, 그 외에 모든 지정사서들도 보조사서들도 침대에서 하루의 피로를 푸는 밤.


그중 자연과학의 층. 보조사서들의 취향에 의해 병아리 모양 자수가 한땀 한땀 세심하게 박힌 노란 파자마를 입고 잠든 티페리트가 부스스 일어났다.


“으음… 화장실…”


잠에 취했는지 혼잣말을 하며, 부스럭부스럭 문을 열고 밖으로, 화장실로. 그리고 살짝 잠에서 깬 채 방으로 돌아가던 티페리트가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돌려,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모두가 잠들어 있을 밤이건만 방 하나는 불이 훤하다. 문이 닫혀 있긴 하지만, 문틈으로 빛이 새어나오는 것이 눈에 밟힌다.


도둑일 리는 없다. 애초에 도서관은 그런 구조가 아니니까. 문짝을 부수고 들어온다면 되가야 하겠지마는 그정도 힘이 있으면 도둑질따위 안 할 테지.


도서관이니만큼 딱히 전기세가 나간다거나 하는 일은 없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밤에 불 켜진 방이 있으면 신경쓰이니만큼 티페리트는 누가 있나 보고 없으면 불을 끄기 위해 방의 문을 벌컥 열었다.


그리고 방 안에서 뛰쳐나온 강렬한 라면 냄새가 티페리트의 코를 찔렀다.


“윽!”


그 냄새에 순간 눈을 찌푸린 티페리트가 다시 눈을 뜨자, 네 보조사서들이 마치 내장을 담다 츠바이에게 딱 걸린 쥐들 같은 표정을 짓고 티페리트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는 가스버너 위에 커다란 양은 냄비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냄새의 근원지가 어딘지는 누가 봐도 명확하다.


이게 무슨 일인가 멍하니 보던 티페리트가 대충 뭔 일인지 깨닫고, 평소 하던 대로, 허리에 손을 올렸다.


다음에 일어날 일을 짐작한 보조사서들이 슬쩍 귀를 막았고, 예상대로 티페리트의 목소리가 주방에 울렸다.


"너희들!"






잠깐 동안 티페리트는 야식이 얼마나 몸에 안 좋은지, 누구나 다 알지만 아무도 안 지키는 그런 잔소리를 혼내는 어조로 보조사서들에게 쏟아냈다.


얌전히 듣던 보조사서들 중 한 명이 몰래 냄비 뚜껑을 열어 면이 부는 건 아닌가 봤고, 그 바람에 냄비 뚜껑으로 가려져 있던 라면 냄새는 방 전체에 확 퍼져나갔다.


"아, 슬슬 계란 넣기 딱 좋은 때인데."


"거기! 내 말 안 들려? 야식으로 라면이라니 생각이 있는…"


그리고 그때, 티페리트의 배에서 작고 귀엽게 꼬르륵. 하는 소리가 울렸다.


티페리트의 말이 딱 끊기고 황급히 두 팔로 배를 감싸듯 가렸지만, 눈치없고 솔직한 배는 계속 꼬륵거리머 울렸다.


티페리트가 얼굴이 화아악 빨개진다. 언제 끝나나 반 아 다음부터는 안 들켜야지 반의 감정을 표정에 드러내며 말을 듣던 보조사서들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려는 차, 티페리트는 아까의 기세는 다 팔아먹고 횡설수설 변명하기 시작했다.


"아, 아니야! 이건 먹고 싶은게 아니라! 그냥 저녁이 부실해서!"


하지만 이미 주도권은 보조사서들에게 넘어간지 오래. 티페리트의 말을 반쯤 흘려들으며 맨 앞의 보조사서가 냄비를 봤다. 냄비에는 제법 충분해보이는 양의 면이 보글보글 맛있게 끓고 있었다.


"야, 라면 몇개 넣었냐?"


"모자랄까봐 다섯개."


"딱 맞네."


"계란 넣는다."


아까부터 계란 넣을 각만 재던 보조사서가 바닥에서 데굴데굴 구르던 계란을 집어 톡 두드리자 계란이 쩍 갈라지면서 흰자와 노른자가 냄비로 스르르 흘러내렸다.


보글보글 끓는 물에 둥둥 뜬 계란 흰자가 점점 뿌얘지며 익어가고, 한 사서는 투덜거렸다.


“난 계란 안 넣는게 좋은데.”


“가위바위보 졌잖아.”


투덜거리는 사서 한 명을 뒤로 하고 젓가락을 든 보조사서가 냄비에 젓가락을 넣고 휘저었다.


살짝 익은 계란과 아직 꼬들꼬들한 면발이 뒤엉키고 풀어져, 국물이 스며든 채 익어가 맛있는 냄새가 퍼졌다.


냄새에 멍하니 침만 삼키고 서있던 티페리트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티페리트의 뒤로 돌아간 사서가 티페리트의 어깨를 잡고 아래로 눌렀다.


방심했던 탓에 티페리트의 다리가 저항 없이 구부러져 자연스럽게 털썩 앉는 모양새가 되었다. 뒤에서 누른 보조사서도 근처에 앉아 5명이 냄비에 둘러앉게 되었다.


"자, 잠시만! 난 안 먹어!"


그제서야 당황한 티페리트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지만, 양 옆의 두 보조사서들이 재빨리 티페리트의 팔을 하나씩 붙들었다.


"어딜 가십니까!"


"앉은 시점에서 공범이라구요!"


"뭐야 그게! 이거 놔!"


티페리트가 버둥거려 보지만 양쪽에서 붙잡고 늘어지는 보조사서들 때문에 한 걸음 이상 못 가고 도로 앉았다.


셋이서 콩트하는 와중에 라면은 거의 다 익었고, 젓가락을 든 보조사서가 면을 건져올렸다 내려 차가운 공기와 닿게 했다.


"다 익었네."


"그러고보니 그릇 4개뿐인데."


"난 뚜껑에 먹을게."


“앗! 나는…”


티페리트는 끝까지 안먹는다고 우겨댔지만, 보조사서들은 괜히 흐뭇하게 웃으며 그릇 하나에 면이랑 국물을 국자로 조금 덜어 티페리트 앞에 내밀었다.


“여기요~”


“...윽!”


안 먹는다고 외치려던 티페리트의 코에 자극적인 라면 냄새가 연기처럼 덮쳐오자, 티페리트가 콜록거리며 기침했다. 하지만 그 냄새는 코를 자극하는 동시에 티페리트의 위장에 깊게 스며들어 더욱 배고픔을 부채질했다.


자기 앞의 그릇을 흘긋 본 티페리트가 갈등하듯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스르르 자리에 앉아 괜히 큰 소리로 말했다.


“그, 그럼 조금만… 성의를 생각해서야!”


못 이기는 척 하며 젓가락을 집는 티페리트를 본 보조사서들이 웃겨 죽을 뻔했지만, 여기서 웃었다가는 바로 티페리트는 얼굴이 홍당무가 돼서는 한동안 삐질 게 뻔하니 4명 모두 웃음을 참아냈다.


각자 면을 조금씩 그릇과 냄비뚜껑에 나눠 담은 사서들이 서로를 기다리지도 않고 경쟁적으로 라면을 입에 털어넣었다.


"야. 나 아직!"


당연히 면을 마지막으로 덜던 사서가 늦어, 전혀 그럴 필요가 없건만 누가 훔쳐 먹으려 드는 것처럼 젓가락으로 면을 가득 집어 후루룩 빨아먹었다.


놀란 티페리트가 저도 모르게 재빨리 면을 집어 작은 입으로 후루룩 먹고, 눈을 크게 떴다.


과학적으로 야식이 맛있는 이유는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한다. 수면을 유도하는 호르몬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나오는 호르몬에 눌려 제대로 나오지 않아 잠이 안 오고, 그 탓에 열량 소모가 생겨 배가 고파지는데 이때 당분을 섭취하면 나오는 세로토닌이 스트레스 호르몬을…


그딴거 다 됐고, 그냥 맛있으니까 맛있는 거다.


티페리트는 면을 허겁지겁 먹었고, 다른 사서들은 한참 전부터 빨리 먹기 시합이라도 하듯 그러고 있었다.








한 보조사서가 다시 국자를 집으려다가, 손을 물려 입을 막고 작게 트림했다.


그러고는 다시 국자를 집으려 했지만, 그새를 못참고 벌써 국자는 동료의 손으로 넘어가 얼마 안 남은 면을 휘적거리고 있다. 결국 빈 손은 멋쩍은 머리통을 긁적이는데 쓰였다.


"너무 급하게 먹었나~"


맞은편 사서가 킥킥거리더니 그릇을 들어 국물을 마시려 했다. 그때 제정신으로 돌아온 티페리트가 끼어들었다.


"잠깐! 국물 먹지 마!"


"네? 왜요?"


그릇을 든 채, 하지만 티페리트의 말대로 멈춘 보조사서가 티페리트를 쳐다보며 묻자, 티페리트가 성을 냈다.


"라면은 나트륨 중 반 이상이 국물에 들어있다고! 라면 국물은 특히 몸에…"


"에이, 전 또 뭐라고."


"아앗!"


티페리트의 말을 끊어버리듯 사서가 그릇째로 국물을 벌컥 들이켰다. 얼큰하고 감칠맛 가득한 국물을 두 모금 정도 넘긴 사서는 몸을 살짝 떨며 캬아 하는 누구에게 배운 적도 없건만 모두가 할 줄 아는 감탄사를 뱉은 후에야 입을 열었다.


"야 국물 맛있다. 뭐 넣었냐?"


"다시마랑 후추랑 파."


"후추?"


"맛있더라고."


"내 말 안 들려?"


티페리트가 씩씩거리자 국물을 들이킨 사서는 티페리트를 돌아보더니 약간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국물 안 먹을 거면 라면 왜 끓여요?"


"그게 아냐! 방금 말했잖아! 국물에는!"


그러거나 말거나, 그 사서를 필두로 모든 보조사서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국물을 마셨다. 홀짝홀짝 입술을 적시며 마시든, 호쾌하게 목구멍에 때려붓든, 후후 불어 삼키든 간에 모두의 입 안에 얼큰한 감칠맛이 맴돌고, 셋은 동시에 감탄사와 함께 얼큰함을 뱉었다.


그쯤 되니 티페리트도 슬슬 자기 앞의 그릇이 보였다. 그릇 안에서 빨갛고 맛있어 보이는 국물이 보였다.


침을 꿀꺽 삼키는 티페리트 옆에, 천사와 악마가 쪼르르 내려와 각자 한마디 했다.


“자아, 티페리트님! 이왕 면 드신거, 계속 드셔야죠!”


악마가 유혹하듯이 속삭였고, 그 옆에서 천사도 거들었다.


“맞아요 티페리트님! 음식을 남기면 안 돼요!”


난데없이 상황극을 하며 끼어든 천사와 악마 아니 두 보조사서들을 둘 다 손으로 밀어버리며 유혹하는 목소리에 저항하는 티페리트였지만 제일 큰 유혹인 라면 국물은 먹음직스러운 붉은빛을 뽐내며 번들거렸다.


멋진 실은 안 나올 것 같아요? 하지만 아주 맛있어보여요. 누군가의 말투와 목소리가 티페리트의 곁에서, 성대모사하는 보조사서의 입에서 빠져나왔다.


약간 화가 났다는 걸 어필하듯이 그 보조사서를 두 손으로 밀쳐버린 티페리트였지만, 3번이나 속마음을 들킨 건 눈치 못 챈 듯 하다. 으악 하고 과장된 움직임으로 쓰러져주는 보조사서들을 보며 킥킥거리던, 혼자 장난 안 치고 있던 보조사서가 말했다.


“티페리트님, 드시고 싶으시면 드세요.”


“...그치만.”


“몸에 안 좋은게 어때서요! 티페리트님. 다 큰 사람이라면 당연히 알아야 할 진리를 알려드릴게요~”


보조사서가 손가락을 척 세워보였고, 티페리트는 다 큰 사람이라는 키워드에 솔깃해서 뭐냐고 표정으로 물으며 보조사서를 바라봤다. 덤으로 보조사서들까지 해서 총 4명의 시선을 받은 그 보조사서는 단호하게 선언했다.


“뭐든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입니다!”


“그럴 리가 없잖아!”


그렇지 않냐는 눈으로 티페리트가 나머지 3명의 보조사서를 돌아봤지만, 3명의 보조사서들은 이미 빵 터져서 전부 다 바닥에 엎어져 있어 티페리트의 시선을 눈치 못 챘다.


그러거나 말거나, 혀에 시동이 걸린 듯 보조사서는 티페리트에게 말했다.


“그렇다구요. 심지어 영양적으로도 완벽한 음식이 되는 겁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진짜라니깐요? 하지만, 몸이 아니라 마음의 영양분이 되는 겁니, 커헉!”


라면서 궤변과 헛소리의 중간쯤 되는 말을 하려 하는 사서였지만 이미 헛소리에 익숙해진 티페리트는 대신 보조사서의 배에 주먹을 날려 말을 끊어버렸다.


방금 먹었던 라면이 역류하는 감각을 느끼며 배를 부여잡은 보조사서를 무시하고, 티페리트는 라면 그릇을 들여다보았다.


살짝 식어가고 있긴 했지만, 그래서 더 마시기 좋아 보이는 라면 국물이 티페리트를 유혹했다. 티페리트는 자리에 앉아, 조용히 그릇을 보더니…


“이건 몸에 나빠!”


“아!”


그대로 티페리트는 달려서 부엌에서 도망쳤다. 그 뒷모습을 잡으려다가 말고, 세 보조사서들은 혀를 찼다.


“약간 아쉽네…”


“뭐, 맞는 말이긴 하잖아.”


티페리트가 남기고 간 라면 국물을 다시 냄비에 부어 넣은 보조사서는 냄비와 수저, 그리고 그릇을 모아 싱크대에 때려넣고 물을 틀었다. 설거지는 먹고 바로 해야 내일 안 귀찮으니까.








한편 티페리트는 방에 돌아와 이불을 폭 뒤집어썼다.


그러다가 다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도도도 달려나가더니 우유 팩이랑 컵을 가져왔다. 컵에 하얀 우유를 따른 티페리트는 마치 그것이 면죄부라도 되는 양 꼴깍꼴깍 마시고, 치약과 칫솔을 들고 화장실로 후다닥 뛰어들어갔다.


잠시 후, 물소리가 멎은 뒤 티페리트는 다시 침대로 뛰어들어가 이불을 폭 뒤집어썼다.







며칠 뒤, 오늘따라 손님이 청소부냐 싶을 정도로 몰려온 어느 날, 고생하며 접대를 마친 보조사서들은 피로감이 담긴 표정을 한 채 무대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그날 밤 마법소녀들이 뭔가를 기도하며 모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부엌에 모였다.


가위바위보 져서 라면을 끓이게 된 보조사서가 냄비에 물을 받으며 라면을 주섬주섬, 4개 꺼내려다가 한개 더 꺼내 바닥에 깔았다.


그리고 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동안 보조사서들은 라면을 부욱 북 뜯으며 잡담했다.


“오실려나?”


“글쎼.”


그러는 사이 물이 끓고, 냄비에 퍼부은 스프가 물에 스며들며 부엌과 문틈으로 라면 냄새가 사아악 퍼져나갔다. 솔솔 퍼지는 냄새를 맡고 있자니 끼익, 하고 작게 방문이 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네 보조사서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씨익 미소지었다. 그리고 마지막 라면도 뜯었다.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입니다.




쓴거 모음


https://gall.dcinside.com/m/lobotomycorporation/452419


알바 개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