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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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번에도 책 여기있어.”


롤랑의 가벼운 웃음 섞인듯한 목소리가 층에 울렸다. 어젯밤에 일어난 소동 때문인지 내심 아직도 웃음이 섞여나왔다.


“으흠... 고마워요, 롤랑씨.”


“롤랑씨는 무슨, 이제 편하게 말 놓고 롤랑이라고 불러도 될것같은데?”


매번 아가씨라고 불리는것도 이제 슬슬 어색한 기분이 들어 이참에 가까워질 기회다 싶던 호드는 그런 거리감을 줄이기 위해 용기내어 말을 꺼냈다.


“그럴까? 롤랑... 하하... 역시 말을 바로 편하게 하기엔 어색하네.”


거리감이 점점 줄어들어 마음엔 들었지만 호드는 점점 민망스러운 나머지 그만 헛웃음을 지을수밖에 없었다.


“훨씬 좋네. 그나저나 책 분류는 잘 되어가? 도시에 제대로 된 문학이라고 불릴 게 있나 싶은데.”


롤랑은 순간 이상한 장면을 떠올리곤 이내 손사래를 치듯 고개를 저었다.


“저마다의 삶이 마치 문학인 것 같아. 희극과 비극이 얽혀있는 자신만의 인생이 책에 쓰여져 가는거라 생각해.”


“마냥 나쁜 사람도 선한 사람도 다 개인적인 사정이란게 있다는게 눈에 들어오더라고.”


호드는 생각을 정리하곤 조금 목소리를 낮춰 침착하게 말했다.


“그래서 고민이야. 누군가를 무턱대로 미워할 순 없으니까. 


“하하, 이렇게 보니까 나도 자기변명만 늘어두게 되는 것 같아서.”


롤랑은 웃음기를 조금도 띄지 않은체, 말을 하고있는 호드를 직시했다.


“호드, 근데 또 그 개인적인 사정이란 거 하나하나 다 따져가다 보면 머리만 아파오잖아 그러니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해 보는건 어때?”


“음, 롤랑은 해결사로서의 조언을 하는거야?”


롤랑은 호드의 말을 듣곤 그리 어려운 답변도  아니라는 듯 가벼운 투로 말했다.


“뭐 그렇지, 내가 좋아하는 말이 하나 있어.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아무래도 모든 이들의 사정을 떠안을 수는 없잖아?”


마치 모든걸 내려놓은 듯한 말에 그녀는 떨떠름해하며 그에게 답했다.


“체념한 듯한 말이네. 조언은 고마워, 역시 나도 좀 더 생각해 봐야겠어. 하지만...”


“하지만?”


호드는 잠시 주저했으나 이내 슬픈 미소를 머금고 말을 열었다.


“롤랑,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라는 말은 잠시 위안만 될지언정, 구원되는 듯한 말은 확실히 아니야.”


“...뭐, 받아들이는 것도 각자의 방식이니까. 책은 여기 둘게, 앞으로도 잘 부탁해.”


조금의 기시감 때문이었을까 롤랑은 기분이 살작 더러워진것만 같았다.


하지만 한편으론 고독한 마음에 평온함이 깃들었다.


‘널 잘 안다고 할 수 없지만, 너와 썩 어울리는 말은 아닌 것 같군.’


예전에 누군가가 롤랑에게 일전에 했던 비슷한 말이 스쳐지나가듯 들려왔다. 사람의 본질을 꿰어보는 듯 한 붉은 시선은 여전히 위협적이게만 느껴졌다.


“아 그나저나 앤젤라와는 잘 지내고 있어?”


“뭐 그럭저럭? 가끔 무서울 때도 있는데 나름 할만 한것같아.”


호드는 롤랑이 나쁘지 않게 지내는가 싶어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앤젤라는 너와 이야기 할 때가 제일 편해 보이더라.”


방금까지 늘 다정했던 목소리였지만, 그녀의 목소리엔 다른 이가 보기에도 아쉬움이 묻어났다.


이상하게 호드는 다른 사람이 롤랑과 붙어있는 것을 볼 때 희안한 감정이 들었다.


“그런가? 하긴 지금까지 만난 사서들 모두 앤젤라를 싫어하는 것 같으니.”


시큰둥한 목소리가 무거운 분위기를 탓지만 가볍게 이어졌다.


“전에 말했었지?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라고말이야. 아무래도 난 그러지 못 하겠어.”


도서관장 앤젤라, 그녀를 호드는 롤랑과 헤어지고 난 뒤에 개인적으로 찾아가보았다.


이후에는 하층의 지정사서들, 즉 호드를 포함한 네명을 불러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다들 썩  좋지는 않았다.


롤랑이 그때 옥신각신 다투는 그들을 진정시키려 애를 썼지만 자리는 파토날 정도로 안좋아져 그대로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역시 앤젤라도 나름의 아픔이 있기 때문이지?”


“맞아. 누구나 저마다의 사정이 분명 있잖아. 당장에 나쁜 짓을 저질렀다해도 그 행동만 보고 판단하고 싶진 않은걸...”


“그래서 난 이해해보려고 해.”


롤랑은 순간적으로 푸념했다. 예소드나 네짜흐도 좀 이렇게 선량했으면 어땠을까 하면서 말이다.


“롤랑은 내가 좋은 사람 같아?”


“그건 모르겠네, 상냥한 사람과 좋은 사람인건 별개니까 말이야.”


“그렇지? 역시 난 좋은 사람은 아니었어.”


일순간에 침울해진 그 모습은 마음이 편해지던 좋은 향기와 고즈넉한 문학의 층의 풍경도 잊어버릴 만큼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아 말쿠트가 예전에 말하던 첫번째 두번째 삶에 대한 이야기 말하는거야?”


“말쿠트는 그렇게 말했구나. 맞아, 내 첫번째 인생은 비극적이었어.”


그녀가 그동안 마음에 걸려있던 그 문제를 어느덧 이야기 하기 시작하자 그는 귀담아 듣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일이 벌어졌던걸까...? 롤랑에겐 그간 궁금했던 질문의 대한 답을 듣게 되는 날이었다.


롤랑과 호드는 급히 의자에 않아. 귀를 기울인체 서로를 바라봤다.


“내가 머리에 밀고했어. 우리가 외곽에서 어떤 실험을 하고 있고, 동시에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 있다고.”


용기내어 잘못을 고할 준비를 마치긴 했으나 호드의 조금씩 손이 떨려왔다.


언젠가는 말해야하는 것인데도 왜 이러는 것일까, 호드는 그렇게 여기며 말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머리에서 파견된 조율자가 들이닥쳐 많은 동료들이 죽었지...”


“...조율자?”


롤랑은 지금의 의문을 참은채로 우선 그녀의 말을 가만히 들었다.


“난 그 사실을 알게되자 차마 견딜 수 없어...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상당히 축쳐진 채로 아까 고였던 눈물 한 방울이 고운 뺨을 타고 흘렀다. 


그러곤 이내 조금씩 터져흐르기 시작했다. 나 자신이 대체 무슨 일을 저질렀던 걸까 하면서 말이다.


“사람들에게 약물을 투여하고, 그 변화를 기록하기도 했어. 그리고 나는... 말쿠트, 예소드, 네짜흐가 연구실에서 죽는 모습을 지켜볼수밖에 없었고...”


그는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녀에게 사람의 온기란 따스하고 편안했다.


롤랑은 침묵을 유지하며 생각했다. 지금의 사서들을 그저 활발한 인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비극적인 일을 다 한번씩 겪어봤다는 것이 의외였다.


“도시 안에서?”


“아니, 연구실은 머리의 눈을 피하려고 외곽에 있었어.”


롤랑은 그렇게 인상을 찌푸린채로 뒤틀림의 원흉을 찾아내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 기묘한 기색을 알아차리지 못한 호드는 그런 롤랑을 보고 호드는 웃으며 물었다.


“...역시 롤랑 네가 생각해도 난 전혀 좋은 사람은 아니지?”


롤랑의 인상이 조금 찌푸려져 있어 호드는 조심스레 그가 화가 난건지 급히 확인했다.


“아니, 내가 지금 인상 찌푸린 건 이해가 안 가서야.”


호드를 보던 롤랑의 눈빛은 경멸을 담아낸건 아니었다.


“머리의 조율자가 직접 행차했다고? 그것도 도시 내부가 아니라 외곽에 말이야? 이 부분이 말이 안 되는데...”


호드도 롤랑의 말을 듣고는 이내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하였다. 


의외로 그녀의 귀에 들려온 말은 예상을 아늑히 벋어났다 연구소의 모두가 의문을 품지 않았던 상황이었으니까.


“난 그렇다고 들었는걸... 실제로 로보토미사에서 일하며 알게 된 사실로도 그렇고.”


“롤랑은 역시 이상한 곳에서 고민하는구나, 나를 배신자라 매도할 줄 알았거든...”


조금 독특해진 분위기에 아까까지 진지하게 눈물 흘리며 털어놓던 호드는 그만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그거야 뭐, 내가 살던 곳에서 배신은 워낙 비일비제 했으니까.”


시큰둥하고 무신경한 답이었다.


“호드 넌 둥지 출신이었던 거야?”


“응. 둥지에서 태어나고 기숙학교를 다녔어. 지정사서 대부분이 그래, 뒷골목과 외곽 출신이 있긴 하지만 딱 두 명 정도고.”


“다들 엘리트였네. 어쩌다 이렇게 기구한 삶을 살게 된걸까...”


호드의 입장에선 조금은 짓궂은 듯 한 말이지만, 롤랑의 입장에선 이것이 당연시 되었다.


“근데 또 둥지에서 사는걸 관두고, 외곽의 연구실에 가서 일할 배짱 정도면 마냥 샌님들이라 하기도 뭣하네.”


“열의도 가득했었지, 그리고 ...난 그들의 열정을 배신한거고...”


지나칠 정도로 부정적인 생각이 주변을 가득 매웠다. 


그렇게 그녀의 부정적인 생각 도무지 사라지지 않아, 롤랑은 호드의 이마를 살작 쳤다.


약하게 해서 그런지 아프진 않았지만 롤랑이 칠줄은 몰랐기에 방금까지 몰려오던 감정들이 뒤로 물러났다.


“그래서 지금은 어때? 너무 많이 부정적인 생각하면 몸만 피곤할거야.”


“나도 한 때 큰 잘못을 했지만... 지금은 더 나아지고 싶어, 누구나 그럴 수 있을거라 생각해.”


“하지만 동시에 앤젤라를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이 있어.”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롤랑이 보기에도 다들 반대하는 것 같았기에, 그래서 저마다 분노하거나 싫어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을 보았다.


“그때도 나와 말쿠트, 예소드, 네짜흐, 그리고 호크마님은 반대했어.”


“...나머지 네명은 찬성을 한거야? 완전히 앤젤라 편이 없는 것도 아니었네.”


“적극적인 찬성은 아니었어... 보류라고 생각하는 게 맞을 거야.”


조금은 서글퍼 보이는 미소를 머금고 호드는 이어 말했다.


“근데 너는 앤젤라가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잖아 왜 반대를 한 거야?”


“있잖아... 나는 그 와중에도 내가 죽어서 모든 걸 내려놓고 속죄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


아직도 호드의 슬픈 표정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잠깐만! 그 앤젤라가 망쳤다는 계획이 완료되면 설마 다들 죽는거였어?”


“응. 우린 모두 숙원을 이루고 영원히 잠에 듦으로서 끝나는게 목적이었어.”


말을 들은 순간 롤랑은 깜짝 놀라 커진 눈으로 호드를 보고 있었다. 자신이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것을 알리는 모습이었다.


“다들... 섬뜩한 생각을 너무 태연히 하고 있던거 아니야?”


롤랑의 입에서부터 쓴맛이 차오르는 듯 눈이 갈피를 잡지 못했다. 마음속을 되뇌이며 저 말을 받아들이는 것에 집중했다.


“하하, 롤랑 넌 늘 이상한 곳에서 놀라네. 마지막까지 도망치려했던 날 이번엔 비난할 줄 알았는데 말야.”


“나에게는 꽤 무겁고 이야기가 되었는데 들어준 덕분에 나도 정리되었어, 고마워 롤랑.”


“...괜찮아, 이것도 내 일이잖아.”


천연덕스러운 호드의 웃음기가 문학의 층을 통해 들려왔고 옅은 부끄러움으로 볼이 붉어지면서도 웃음기는 여전히 얼굴에 남아있다.


그리고 누군가가 붉어진 채로 상기된 호드를 끌어당기자 롤랑은 눈치챈듯 선불리 자리를 떠났고 기다리던 독서토론이 열릴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