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폭신하고도 보드라운 것이 살랑거린다.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던 둘은 잠시간의 침묵을 가진다.

그러다 마침내, 흰 여인이 말문을 트였다.


"...이건, 파우스트도 생각하지 못한 문제에요."


그런 말을 한 것 치고는 흰 여인, 파우스트의 표정은 상당히 평온하고도 차분한 기색이었다. 파우스트는 눈 앞의 그이를 바라보았다. 제 자신과는 정 반대로 검은 색으로 뒤덮인, 그런 자였다.


그렇다. 그 말은 현재로서는 과거형이라 볼 수 있다. 지금의 파우스트가 바라 보았을 때 머리 위에는 복실한 갈색의 여우 귀가 불안하다는 기색을 비추며 퍽 뒤로 기운없이 젖혀져 있었고, 귀와 마찬가지로 갈색을 지닌 꼬리 또한 연신 살랑거리는 것이 지금 당장은 검은 색으로 뒤덮혔다고 말하기엔 이상적이지 않았다.


"어린 아해가 도저히 나가질 않소. 오랜만에 안긴 온정의 품이 퍽 따스했던 것인지 계속하여 도리질하는구료."


그리하여 부러 가장 가깝고도 친근한 그대에게 도움을 청하러 왔소. 이상은 그리 말했다.


"파우스트는 의문이에요. 오늘의 당신은 떠돌이 여우의 에고를 사용하지도 않았고, 지금은 업무 종료 이후의 시간이기에 딱히 에고가 연관될만한 사건이 없을텐데도 그런 모습이니까요."


파우스트의 목소리를 쫓아 쫑긋대며 이상의 귀가 움직였다. 그러더니 이내 이상은 자신의 어께에 얹혀놓은 외투를 양손으로 쥐고서 제 품으로 그러모았다.


"파우스트 양. 나는 어찌하면 좋소? 만약 평생을 이 모습으로 살아가야 한다면, 나는 괜찮다만 이 어린 아해가 함께하기엔 너무나 잔혹한 세상이거늘. 그것이 가장 걱정되는구료."


덤으로 로지온 양이 분명 귀찮게 굴 것이오. 제 복실한 꼬리가 얼마나 위협이 되겠다고 이상은 바닥에 팡하고 꼬리를 내리쳤다. 내리쳤다기엔 퍽 말랑한 소리가 났다. 파우스트는 그런 이상의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구태여 감출 필요도 없었고, 그 이의 그런 모습에 미소가 지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기에.


"우선, 거울 던전에서 우리가 그러하듯, 쓰다듬어보는 것이 좋다고 파우스트는 생각해요."


파우스트가 흥미롭다는 듯이 손가락이 꼼지락대는 것이 이상의 눈에 보였다. 이상의 털이 바짝 서는 것이 보였다. 파우스트는 잠시 의문을 가졌다. 그이는 이전부터 온정을 나누는 것을 좋아했으므로, 지금의 행동은 조금은 예상 외였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이내, 그 이유라 생각되는 가설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그이는 약 3초 뒤에 이렇게 말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아해는 조그마한 조각상이 되어 우리를 돕게 되잖소. 나 또한 그리 되어 작아지면 어찌하여야 한단 말이오?""


라는 것이죠? 이상 씨. 이상이 무슨 말을 할 지는 이미 진즉에 알고 있었다는 듯 이상과 함께 같은 말을 파우스트가 읊조렸다. "파우스트는 모든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이상 씨의 걱정 정도는 파악할 수 있어요." 파우스트가 눈을 감은 채 평온하게 말을 이어갔다. 알면서 그러시오. 이상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만큼 저는 이상 씨가 안기기를 바라는 것도 알고 있어요."


이상은 그 말을 부정하는 대신, 제 손을 빨갛게 열이 오른 귀를 감추려 하였다. 그러나 귀만을 가리기에는, 얼굴도 조금 상기된 것이. 어찌보면 퍽 우스운 얼굴이 되었다.


"걱정 말아요 이상 씨. 정 문제가 된다면 단테를 불러 도움을 청하면 될 거에요. 지금의 단테라면 저희를 걱정해주고도 남을테니까요."


파우스트는 제 팔을 벌렸다. 사람 한 명 정도 들어가기엔 적당한 공간이었다. 이상은 꼬리를 살랑거리고 있었다. 여우도 개과라 하지 않는가. 제 친구를 바라보는 강아지마냥, 이상은 고개를 들어 파우스트를 마주보았다. 귀도 쫑긋 세워서는 파우스트에게 향하는 모습이 마치 허락을 구하며 기다리는 강아지 같이 귀여운 모습이 마음에 든다고 파우스트는 생각했다.


파우스트가 긍정의 의미로 슬며시 미소를 짓는다. 그녀의 눈꼬리 또한 부드럽게 휘었다. 이상은 파우스트를 보며 생각하였다. 아, 목련이 흐드러지게 피었구료. 춥디 춥고 기나길던 겨울을 지내온 이유는 당신이란 목련을 만나기 위해서 였음을.

이상은 파우스트에게 몸을 맡겼다. 그녀의 품 안에서 아스라이 느껴져 더욱 포근했던 온기와 자신을 바라보고서 평소보다도 더욱이 맥동하는 심장의 고동소리에 이상은 만족하였다.


파우스트가 한 손으로는 이상의 허리를 끌어안고서는 나머지 한 손으로 이상의 머릿결을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그러한 손길에 걸맞게 이상은 혹여나 거슬리진 아니할까 귀를 뒤로 넘기며 파우스트의 손길을 음미했다. 


"아직도 걱정되시나요?"


꽤나 긴 시간을 이상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에 투자했던 파우스트는 쓰다듬는 것을 그만두고서는 그저 양 손으로 이상을 꼬옥 끌어안고서는 이상의 머리에 자신의 얼굴을 기댄 채 나즈막히 말했다. 


"품 안이 퍽 따스하니, 마치 말갛게 날이 개일 적에 상판 위에 누워 내게 내리쬐던 볕을 있는 그대로 느끼던 기분이오. 

심지어 사랑하는 이의 품이거늘. 내 어찌 불만을 표할 수 있겠소."


이상은 눈을 감고서 파우스트의 가슴팍에 얼굴을 부볐다. 조금 더 가깝게 심장소리를 듣고 싶었던 것도 있었고, 파우스트의 향을 품고자 하던 이유도 있었다.


아래로 추욱 처져있던 이상의 두 팔이 파우스트를 감쌌다. 너무나도 사랑스러워 어찌해야할지 모르겠다는 듯이 혹여나 부서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그러면서도 제 것으로 삼고 싶다는 듯 세게 끌어안으려는 욕구를 참으려던 이상이었으나. 그로 인해 손이 계속 꼼지락대던 것을 파우스트는 느꼈다.


"이상 씨는 제 것이랍니다. 마찬가지로, 파우스트도 이상 씨의 것이죠. 그리 쉬이 부서지진 않으니 조금은 더 적극적으로 행동해도 된답니다."


꼼지락대던 모습의 이상이 꽤나 귀엽긴 하였으나, 조금은 안쓰러워 보였기에, 파우스트는 입을 열었다. 살짝 움찔거린 이상은 파우스트를 더 꽉 끌어안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이전은 부드럽고 세심하다는 느낌이라면 이제는 안정감있고도 소유당하는 기분인 것이 퍽 나쁘진 않았다. 아까 말했듯, 자신은 그이의 것이고 그이 또한 자신의 것이었기에.


"그래도, 이왕이면 그 모습은 저에게만 보여주셨으면 하네요. 이렇게 귀여운 모습은 파우스트만 바라 볼 수 있는 편이 좋으니까요."


내 노력해 보겠소. 품 안에서 이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말을 하기에는 양쪽 다 명료한 해답은 없었지만, 지금의 그들에겐 딱히 중요한 사실은 아니었다.

그 말을 마친 이상은 파우스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그러고서 둘은 잠시간 서로를 눈에 담았다.

이상은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그러고는 양 손으로 온실 속 화초를 만지듯, 부드럽게 파우스트의 뺨을 어루어 만졌다. 비단같이 부드럽고 거울같이 투명하니 참으로 아름답고 이상적이구료. 생각을 마친 이상은 파우스트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 때부터는 이미 이상이 처음 파우스트를 찾게된 이유가 되어줬던 문제는 어찌 되든 좋아졌다. 어느 순간인가부터, 받은 사랑의 무게에 만족한 작은 떠돌이 여우가 다시금 여행길에 올라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니. 이날 밤은 그 둘만이 기억할, 그리고 그저, 온전히 상대만을 사랑해 줄 수 있게 되어버린 날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