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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링은 해리포터 1권쓸 시점부터 시야가 넓은 서술을 하는 작가는 아니었음.


마법사의 돌은 상당히 서술이 편협한 이야기거든.

더즐리 가족에 대해서 그들의 사악하고 추한 면모를 부각하기 위해 '돼지같은' 같은 모멸적인 수식어를 서슴없이 사용함. 굳이 그렇게까지 안써줘도 더즐리 가족이 해리포터에게 나쁜 사람이라는 건 충분히 추측할 수 있는데도 조앤 롤링은 더즐리를 묘사하는 모든 문장을 모멸적인 표현으로 가득 채움. 반면 해리와 친구들에 대해서는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묘사만을 가하지. 


해리포터의 인기요인은 바로 이 파격적이고 편협한 서술에 있었다고 생각함.

어린이 동화에서 이렇게까지 날선 문장을 쓰는 작가는 해리포터 시기에 많지 않았음. (지금은 더 심하게 쓰는 작가도 많아짐)


이 편협한 서술의 강점은 '알기 쉽다'는데 있었지. 더즐리 가족은 영원한 돼지새끼들일거고 말포이 새끼는 인성파탄자이고 스네이프는 ㅈㄴ 개새끼같은 선생님이라는걸 누구라도 알 수 있어. 맥고나걸은 스네이프만큼 나쁘게 묘사되지 않고  엄하고 훌륭한 선생님 수준으로 서술되어서 같은 편이란걸 알 수 있음.


 그리고 이 편협한 서술 덕분에 볼드모트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를 알 수 있지.

 악당을 모멸찬 어조로 비난하는 노빠꾸 서술 한가운데서 볼드모트에 대해서는 '그건 말하지마!'하면서 서술금지령이 떨어지잖아. 항상 분노에 차 있던 서술이 볼드모트의 이름만 나오면 분노조절잘해가 되어버림. 여기서 볼드모트가 얼마나 압도적인 힘을 지닌 존재인지 느껴지지.


 그리고 이 편협한 서술로 인해 마지막 반전에서 오는 충격도 극대화되었지.

 스네이프가 악당이 아니라 퀴럴이 악당이었다니. 항상 말더듬이에 소심하고 무해하게 묘사되던 선생님이 볼드모트의 부하였다니! 편협한 서술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굳게 믿고 있던 독자에게는 충격이 크지.


 해리포터의 이 편협한 서술은 단순히 묘사를 통해서만 드러나는게 아니다.

 이야기 구조에서도 드러나지.


 해리포터의 마법학교는 모든 학생들을 위해 있는게 아니라, 마치 해리와 친구들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처럼 느껴짐. 제임스가 남긴 비밀의 지도. 투명망토. 그런 보물들을 통해 해리와 친구들은 학교의 배후에서 암약하는 어둠의 실력자가 될 수 있었음. 여기까지라면 뭐 그래도 부모님의 유산 덕분에 그게 되는거지 하고 개연성을 느낄 수 있긴 함.


 하지만 기숙사 우승 결정전에서 편협한 서술의 끝판을 찍지.

 해리포터에게 최면세뇌라도 당한 양 덤블도어가 온갖 논리로 그리핀도르에 점수를 추가시켜서 우승시켜버림. 아니 이게 뭐야. 퀴디치야 뭐 해리가 실력이 뛰어나다 이렇게 커버라도 됐지, 기숙사 점수 무제한 추가는 그냥 커버가 안됨. 하지만 조앤 롤링은 망설임없이 오직 해리포터에게 유리하게 적용되는 이 결말을 밀어붙였고 결과적으로 이 장면은 독자의 쾌감을 극대화시켜 해리포터를 성공시켰지.


 해리포터의 편협한 서술이 낳은 세계관.

 그건 오로지 해리의 승리, 그리고 악역들을 매도하기 위해 존재하는 마법의 세계를 만들어냈음. 당연히 이후에 세계관의 모순이 나올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게 모순을 일일이 신경쓰면서 읽는 소설은 아님. 그냥 해리포터는 그런 서술로 진행되는 그런 이야기구나 하면서 받아들이면 될 뿐이지.


 다만 조앤 롤링의 이후 설정 추가는 좀 웃긴거긴함.

 해리포터의 서술은 편협하지만 인간의 성품을 묘사하는 서술에 있어서 상당히 정직한 편임. 덤블도어가 게이였다면 게이였다는 사실을 숨겼을 리가 없단 얘기다. 그래서 독자가 덤블도어가 게이라는 롤링의 말을 신경쓰면서 소설을 읽을 필요는 없다. 어차피 독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건 작가 본인이 아니라, 작품 속에서 드러나는 서술자이기 때문에.


 마법사의 돌의 '편협한 서술자A'와, 조앤 롤링은 별개의 존재라는 얘기임.

 이 둘이 어떻게 다른건지 이해가 안된다면 롤리타 떠올리면 됨. 롤리타는 페도필리아 서술자가 이끌어가는 얘기지만 작가인 나보코프가 페도는 아님. 서술자와 작가는 별개의 존재임.


 하지만 롤링은 자신이 서술자A인척 할 수 있는 존재라는걸 너무 잘 알고 있음.

 그렇다면 서술자A가 할 법한 생각이나 말을 옮겼다면 독자들은 모두 환호했을거임 (나스 기노코가 이걸 참 잘함 그래서 달빠는 덕질을 즐겁게 함)


 하지만 롤링은 서술자A가 만들어온 이야기를 부정하는 새로운 서술자B, C, D를 계속 창조해내고 작품의 분위기를 통일성없게 만들고 있지. 이걸 신작으로 한다면 그것도 나름 흥미로울거임. 스즈미야 하루히 작가가 (주인공은 같지만) 매권 다른 성향의 서술을 시도하며 매권 다른 작품성을 보여줬지. 이렇게 했다면 굉장히 훌륭함.


 하지만 롤링은 그걸 펜으로 시도하는게 아니라 그냥 입으로 해버려서...

 원래부터 서술 자체가 시야가 좁고 불공정한 타입이었는데 그런 서술로 너무 떠버려서...
 원래 이런 작품이 세계적으로 문학성을 인정받긴 힘든데 시기가 매우 좋았음. 안그래도 어린이 동화의 서술이 너무 틀에 박혀있고 어린이를 순종적으로 만드는데 집착한다는 비판이 많이 나오던 시기였음. 그런 시기에 해리포터의 거칠고 품위없는 서술은 피카레스크적인 충격을 줬을테니까. 애초에 해리포터가 왜 12번이나 출간거절을 당했겠냐. 서술이 저래서 그런거지...

 하지만 롤링은 결국 떴고 남들이 이런건 안된다고 하더라도 자기 생각이 결국은 옳은 것이라 믿게 되어서 오만해진거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곤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