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지 않아도 살 수 있다. 자지 않아도 살 수 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살 수는 있다. 수라들은 그렇게 만들어졌으며 그 편이 더 현명하다. 하지만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까지 해서 살고 싶지는 않다.


수라는 해야 하는 일이 없다. 그 무엇도 하지 않아도 되고 그 무엇도 할 필요가 없다.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 사실을 입밖으로 내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도 쓸쓸하고 덧없다. 그래서 쓸모없는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재밌는 것. 보통은 그것을 위해 움직인다. 재미있는 것의 기준은 수라마다 다른데, 간다르바의 기준은 학살이었다. 자기보다 약한 생물을 죽이고 괴롭히는 것. 그것이 간다르바의 재미였다. 그리고 마카라의 재미는 간다르바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기보다 성격 더러운 놈을 봤는데, 멍청하기까지 하다. 뒷일 생각 안하고 저지르고 책임지지도 않고 웃길 수 밖에 없었다.


간다르바는 마카라를 마음에 들어했다. 이성적인 의미의 호감이나 사랑은 아니었어도 자기를 잘 돌봐주는 옆집 형 혹은 뭐 필요할 때마다 일을 대신 처리해주는 캔따개 정도로 여기는 듯하다. 마카라는 그 사실을 크게 개념치 않았다. 캔따개로 여기든 셔틀로 여기든 간다르바가 마카라에게 재미를 가져다 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 본 순간부터 눈을 뗄 수 없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재미있다.


손에 묻은 피,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 천친난만하게 웃고 있는 간다르바. 눈을 뗄 수가 없다. 사뿐사뿐 가볍게 내딛는 발걸음에서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카락에서 순수한 기쁨만을 머금고 미소짓는 얼굴에서 단 한 순간도 눈을 돌릴 수가 없다. 재밌어서 예뻐서 그리고 아름다워서.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기는 힘들다. 마카라와 간다르바는 특히 간다르바는 상위권 나스타카로서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해야만 했다. 마카라라는 그런 간다르바를 자주 도왔다. 하고싶지 않은 일들이었지만, 그런 일들을 하는게 간다르바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즐거웠다.


마카라가 대신 일을 처리할 때 간다르바는 그 옆에서 뒹굴거리다가 가끔 마카라의 허리춤을 건드리며 시시껄렁한 농담은 건넸다. 아니면 그냥 엎어져서 잘 때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싫지 않았다. 재미있는 일을 하는 것도 쓸모있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맛있지만, 영양소는 충분치 않은 음식들. 화려하지만 실용성은 없는 도구들 그 모든 것들은 쓸모가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영양분 가득한 음식들도 실용성 가득한 도구들도 사실은 쓸모가 없다. 나스타카들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도 살아갈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이 없으면 살아갈 이유가 없다.


재미없는 일을 하고 할 필요도 없는 식사를 한다. 가끔은 구역질 나는 채소를 씹어먹기도 한다. 언제부턴가 그런것들이 즐거워졌다. 그 무엇도 하지 않아도 됐지만, 그럼에도 하고 싶었다. 이건 스스로의 선택이었고 의지였다. 당연히 재미있는 일이 더 좋았지만, 재미없는 일도 싫지는 않았다. 아마도 그것은 옆에서 자고 있는 그리고 가끔은 고맙다며 웃는 간다르바가 아름답기 때문이리라.


이해할 수 없는 이 감정을 다른 누군가가 정의했다. 그런 말을 한 것이 인간이었는지 수라였는지 그것도 아니면 신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책에 나온 문장에 불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을 기억하고 있다. "사랑만큼 쓸모없고 즐거운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쓸모없고 즐거운 것. 그것은 마카라의 그리고 수많은 수라들의 삶의 이유였다.


수면을 취할 필요도 없고 식사를 할 필요도 없지만, 그들은 종종 음식을 먹고 잠을 잤다. 마치 사랑을 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