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퍽, 투욱, 탁!’

   죽은 인간들을 땅에 묻는다. 내장을 쏟아낸 사채, 산산조각 난 사채, 초월기를 맞았는지 몸의 일부가 소실된 사채...

하나둘 묻다 보니 산더미 같은 고깃덩어리들도 어느새 모두 해치웠다.

‘달 한번 더럽게 밝네’

   집중 호우는 어느새 그쳤고, 밝디밝은 달이 밤하늘을 비춘다. 은은한 달빛이 데미안을 감싸지만 싫을 뿐이다. 달빛을 보고 있노라니 그날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 끔찍한 날, 자신이 인간에게 복수하기로 다짐했던 그 날.  

   그 악몽이 다시 포화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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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사냥꾼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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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915년 9월
(*작중 배경의 역법, D999년 이 후는 N0년이다.)

   미스틱 쇼어는 3개월 동안 줄창 퍼붓던 비로부터 해방되었다. 거리에는 사람으로 붐비며 매우 활기찬 도시임을 자랑한다. 폭우로 인해 결장됐던 선박들을 가루다 대륙으로 출항할 준비에 선원들은 매우 분주했다.

   그렇지만 이런 곳에도 으레 소동이 있기 마련이다. 갑판 위에서 작은 실랑이 벌어진다.


“그러니까, 왜 이번에는 제가 안 되는 건데요!”


   다소 왜소해 보이는 체구의 남자가 소리친다.


“자네는 저번 항해를 생각하고도 그런 말이 나오는가?”


   우락부락한 체구의 남자가 말한다. 이번 항해를 담당하는 선장인 것 같다.


“솔직하게 말씀하시죠! 저 빌어먹을 아난타 족 하프를 저 대신 채용한 거 아닙니까?”

“진정, 그렇게 생각한다면 두 번 다시는 내 눈앞에 띄지 말게! 안 그러면......”


   분한 듯 씩씩거리는 왜소한 남자는 선장의 말을 무시한 채 나가기 시작했다.


“염병할 하프 새끼”


   하프 곁을 지나가면서 나지막하게 내뱉는다. 선장은 얼굴이 붉어지며 고래고래 악을 지른다.


“배를 홀라당 전복시킬 뻔했던 새끼가 남 탓을 하고 있어!!”

“아바리, 그만해”


   흑갈색 비늘로 얼굴이 뒤덮인 남자가 말한다. 수많은 비늘, 인간이 아닌 외형, 이건 이 남자가 인간이 아닌 하프임을 증명한다.

   인간과 수라 사이에서 태어난 종족, 하프. 순혈 인간보다 4배 긴 삶을 사며, 수라로부터 물려받은 강한 힘을 누리는 종족이다.

   수라, 신을 공격하고 인간을 잡아먹으며 세상에 혼란을 가져오는 악마들, 파괴를 일삼으며 인간들은 수많은 소중한 것을 빼앗겼다. 그러기에 신을 숭배하고 수라를 배척하는 결과는 당연했고, 수라와 인간 사이의 종족인 하프들 역시 많은 차별을 받았으며 원인 모를 분노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모든 이들이 하프를 차별하는 것은 아니었다. 비록 수라의 피가 섞였지만 인간의 피 역시 섞였으며, 저들도 인간으로 보아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아바리라 불리는 선장 역시 그중 한 사람이었다. 바닷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온화한 성격을 지녔지만, 하프에 대한 차별은 그의 역린이었다.


“빌어먹을 새끼, 하프 차별주의자인 줄 알았다면 그 자리에서 브하바티 인드라 마법으로 통구이를 만들었는데. 미안하군, 다르멘”


   선장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사과를 한다. 아바리, 그는 마법사다. B 랭킹의 마법사로서 다르멘이라 불리는 아난타 족 하프를 보증 중이다.

“어쩌겠나, 이런 걸 감수하고도 내가 도시로 온 것인데”


   도시 밖에는 수많은 수라들이 서성거린다. 하급 수라라면 어떻게든 비벼보겠지만 상급 수라라면 말이 달라진다. 상급 수라, 그 중에서도 라크샤사 급 이상의 수라라도 만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내로라하는 마법사들이 한 트럭으로 덤벼도 생존을 보장할 수 없으며 오히려 모두의 목숨이 위험해지는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아무리 수라의 피가 흐른다고 하더라도 개체에 따라 하프를 인간으로 취급하고 학살을 하는 수라도 있기 마련,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도시 밖에서 지내기보다는, 가족을 위해 도시 안을 선택한 다르멘이었다.







“빌어먹을 하프 자식들”

   아바리 선장에게 퇴짜를 맞은 왜소한 남자가 중얼거리며 술을 마신다.

   생각해보면 하프들이 제일 문제이다. 저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자신이 일할 곳은 번번이 하프들에게 뺏기기 일 쑤였다.


“그러니까 이 친구야! 내가 하프들이 서성거리는 일자리는 재수가 없으니까 보지도 가지도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왜소한 남자의 친구, 브뤼멘이 그를 위로해주며 호탕하게 말한다.

“이번에는 내가 술 값을 낼 테니 싹 다 털어버리시게!”









“늦었지만 잠깐 집에 가서 아들 얼굴이라도 보고 오게나”

   아바리가 말한다.

“아닐세, 못 나가는 이들이 많은데 어찌 나만 갈 수 있겠나,”

   다르멘은 혼자 빠질 수 없다면 손사래 치지만

“에이 다르멘 형님은 우리랑 다르게 자식이 있잖아요. 출항하기 전에 눈도장이라고 찍고 오세요. 이번 항해는 조금 길어질 것 같은데요.”

“형님이 두 사람 몫 이상의 일을 했는데 나머지는 우리가 정리해도 되요. 후딱 갔다 오세요.”


   선장뿐만 아니라 다른 선원들 역시 다르멘을 다독인다. 사실이다. 원래대로라면 새벽에 끝났을 일이 다르멘의 노고 덕분에 밤 9시에 끝났다. 이는 하프의 강인한 힘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들 고맙네.”








“뭐야, 이런 ㅅㅂ 저거 내 일자리를 뺏어간 하프 새끼잖아. 뻔뻔하게 얼굴 들고 다니네. 역겨운 뱀 새끼.”


   왜소한 남자의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한다. 


“이 친구야, 보고만 있을 꺼야? 저런 개념 없는 하프 자식은 확실하게 교육을 해줘야 한다고.”

“브뤼멘, 그게 무슨 소리야?”

“보고만 있어봐”


   브뤼멘은 음흉하게 웃으며 자신의 친구를 끌고 다르멘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








‘덜컹’

   문이 열리고 다르멘이 들어간다.


“여보! 데미안! 아빠 왔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어린 데미안이 뛰쳐나간다.


“와아~~ 아빠!”

“그래 데미안, 엄마 말 잘 듣고 있었어?”

“근데, 여보 뒤에 저 남자는 누구예요?”


   부자의 뒤에서 다르멘의 아내가 의아한 듯이 쳐다본다.


“호티 쿠베라.”


   호티 쿠베라, 신체를 강화하는 마법이다. 꼬마 하프라도 성인 남성을 힘으로 가볍게 찍어누르는 종족 간의 힘의 차이를 메울 수 있는 수단이다.

   금색 빛의 선이 황홀하게 빛나며 브뤼멘의 온몸을 감싸며 강화하기 시작했다. 온몸에 들끓는 힘을 느끼는 브뤼멘의 움직임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퍼억!’

“꺄아아악!”


   다르멘이 미처 대처하기도 전에 브뤼멘의 주먹이 쏜살같이 튀어나갔다. 단순한 싸움이었다면 멍이 들고 끝났겠건만, ‘호티 쿠베라’ 마법을 시전 중이기에 이야기가 달라졌다. 다르멘의 머리는 산산조각이 나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고 데미안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역겨운 하프들이 여기에서 생활하고 있었군.”

“브뤼멘! 뭐 하는 거야?”

“뱀새끼들을 청소하고 있는 중이잖아. 기다려봐.”


   다르멘 아내의 팔이 붉은색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초월기를 시전중인 것 같지만 이내 낌새를 눈치챈 브뤼멘이 재빠르게 외친다.


“호티 마루트”


   호티 마루트, 지정된 목표물을 찢는 마법. 단순하고 파괴력이 떨어지지만, 방어력이 낮은 이들에게는 매우 절륜한 결과를 일으키며, 마법 살인에 있어 단골 손님이다.

   눈 깜짝할 새에 다르멘 아내의 몸이 반으로 찟어졌다.


“아빠? 엄마? 아빠!!! 엄마!!!”


   데미안은 눈앞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오히려 현실감각이 사라져서 눈물마저도 나오지 않는 것 같다.

‘이게 무슨 일이지? 아빠가 오고 저 사람들이 부모님을...’

브뤼멘은 천천히 데미안에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 살인자들!!! 너희는 이제 바루나 님한테 엄격하게 처벌당할 거야!”

‘흠칫’

“꼬마야 재밌는 말을 하는구나. ‘바루나’님이 우리를 처벌한다고?”

   현재 도시에는 오선급 물의 신 바루나가 소환돼있다. 바루나,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을 관망하고 다스리는 오선급 신. 일개 변방 행성의 도시에 오기에는 압도적인 존재이고 감히 꿈꾸기도 힘든 존재. 그런 신이 미스티쇼어에 왔다는 사실 만으로도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브뤼멘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마법사들 모두 우러러 받드는 존재를 하프가 언급했다. 하프, 수라의 자손 그리고 수라를 배척하고 신을 숭배하는 마법사들에게 매우 눈에 거슬리는 존재. 그런 하프가 감히 신을 들먹거리며 처벌을 운운한다. 브뤼멘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가 이내 사악하게 웃는다.

“내가 처벌을 받는다고?”

“그래 너희들은 이제 큰 벌을 받을 거야! 감옥에 살든 아니면 마법 살인죄로 사형을 당하든 할 거라고!”

“푸하하. 웃기는 꼬마구나. 네 혀가 너를 살렸디. 어디 내가 처벌을 받는지 두고 보자고.”










“살인죄 혐의없음, 재물손괴죄”

‘땅! 땅! 땅!’


   미스티 쇼어의 마법재판관이 선고를 외친다.


“피고 브뤼멘은 하프를 죽였고 이에 기소당했다. 하지만 하프는 인간이 아니라 재물에 해당하므로 살인죄가 아닌 재물손괴죄를 선고한다. 고로 하프의 보증인에게는 성인 남성과 여성 하프의 시가에 맞는 금액을 배상토록 한다.”

“말도 안 돼!!”

“꼬마야, 너희 하프들은 인간이 아니란 말이야 수라의 찌끄레기들이 어디서 신을 들먹이며 협박이나 하고 세상이 말세야 말세”


   데미안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소리쳤다. 브뤼멘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비웃는다. 데미안은 쏜살같이 튀어 나가 마법 재판관한테 다가갔다.


“재판관님, 말이 안 됩니다. 저 살인범이 어찌하여 무죄입니까!”

“저 자는 무죄가 아니라 재물손괴죄다. 비키거라.”

“다시 한 번 생각해주세요“


   데미안이 계속하여 재판관에 매달리자 재판관의 다리가 금색 빛으로 돌더니 걷어차인 데미안은 구석에 처박혔다. 단순히 데미안을 떼어내려고 신체 강화를 약하게 한 탓에 그렇게 큰 상처는 입지 않은 것 같다.


“그럼 꼬마야...”


   브뤼멘이 데미안에게 쓱 다가가더니 입을 열었다.


“오늘 밤에 다시 보자꾸나.”









   부모님의 묘지 앞에 데미안이 망연자실하게 서 있다. 보증인, 아바리는 이미 도시를 떠나 항해 중이었고, 그 누구도 곁에 있는 이 없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다.

   브뤼멘이라는 자는 찾아오지 않았다. 아마도 아무 술집에나 들어가서 자신의 행동을 수라를 잡은 것처럼 포장해서 떠들고 있겠지. 자신이 얼마나 영웅적인지를...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이지?’

‘우리 역시 인간이고 신을 믿는데 왜 수라라고 생각하는 거지?’

‘신은 왜 저 살인자를 방관하는 것이지?’

‘부모님은 왜 죽어야 했던 거지?’

   이곳은 잘못됐다. 잘못된 곳에 왔기 때문에 이런 참사가 벌어진 거다. 인간은 믿을 수 없다. 나도 허무하게 죽을 수 있다. 부모님이 보여주지 않았는가? 이곳은 나를 지켜주지 못한다. 여기에 더 있으면 안 된다. 이곳을 빠져나가고 살아남아야 한다. 빠져나가고...

   ...강해져서 인간들에게 복수해야 한다. 평상시에는 인권을 운운하지만, 하프를 개미 목숨보다도 못 하게 보고 그저 재물로 취급하는 저 모순적이고 위선적인 인간들을 죽여야 한다.


   맹세컨대 이 날을 잊지 않겠다.
  

   밝은 닭이 데미안을 감쌌고 부모님의 묘를 뒤로 한 채 도시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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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마와 보리스 이야기는 외전으로 언젠가 나올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