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쾌지수의 한도를 시험하는 듯한 고온과 습기, 쨍쨍한 하늘을 마치 한 번이라도 본 적 없는 듯한 폭우, 현재 미스티쇼어는 여름마다 늘 겪는 우기에 흠뻑 젖어있다. 주구장창 내리는 빗줄기에 사람들의 활동은 줄어들어갔고 미스틱쇼오의 인근 마을과 울창한 숲에서도 거센 빗바람이 휘몰아쳐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그런 평범한 날이었다.

하지만 이런 날에도 대도시인 미스틱쇼어를 향해, 육로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오히려 거센 빗바람에 의해 소수라 무리들이 단체 활동에 제약이 걸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전해지는 점을 이용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숲에는 늘 거대한 위험이 도사린다. 이러한 위험성은 비단 수라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과 사냥꾼으로부터 도망쳐 숲으로 숨어든 하프들이 있기 마련이었고 걔 중에는 친구나 가족 그리고 자신의 어린 아이까지 사냥꾼의 손에 죽어간 이들도 있기 마련이다. 또 이들을 제외하고도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는 하프들도 있기 마련이고 비가 오는 날의 맹점을 잘 알고 있었다. 주체가 뒤바껴 피식자에서 포식자로 바뀌는 이 날을 학수고대 했을 지 모를 일이다.


"자 자 쫌만 더 힘내서 가자, 앞으로 1시간만 더 가면 중간 마을이 나타나는데 거기까지 도착하면 사실상 미스티쇼어에 도착한 거나 다름없어."


조금만 더 걸어가면 안전구역에 도착한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어져만 갔다. 그렇지만 질긴 빗방웃에 시야는 흐려져만 갔도 주위를 신경 쓸 수 여력이 없었다. 무엇보다 평범한 인간의 육감은 수라의 그것과 비교했을 때 형편없었기에 웅크린 위험을 인지 할 수도 없었다.

이는 곧, 멀찍한 곳에 떨어져 있고 억센 빗방울 속에서 있지만, 다년의 경험을 통해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하프무리에게는 최적의 타이밍이라 볼 수 있었다.

地+水+暗 속성의 정신계 초월기가 시전된다. 효과는 매우 간단하다. 자신의 주변에 수증기를 생성하고 이에 접촉한 인물이 지면과 접촉해 있다면 1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동안 오감을 차단한다. 얼핏보면 초단위로 싸우는 전투에서 승기를 확실하게 가져올 수 있는 매우 요긴해보이는 초월기 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생각보다 준비시간이 길며, 준비시간부터 초월기가 마무리 되는 동안 시전자의 행동에 제약이 걸리고, 수증기의 이동속도 역시 걷는것보다 살짝 빠른 정도이기에 전투도중에도 맞아주는 이 없는 쓰레기나 다름없는 초월기였다.

그렇지만 상대방이 초월기의 기척을 알아채지 못 하고 움직이는 속도도 느리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거친 빗방울은 수증기를 못 보게 하고 긴장이 풀린 인간 무리라면 손쉬운 먹잇감일 뿐이었다. 땅바닥에서 천천히 움직인 수증기가 전방부터 후미의 인간 모두를 덥쳤고 패닉에 빠져 움직이지 못하는 순간 하프 무리들의 사냥이 개시되었다.














열 명의 인간 무리들은 입을 봉인당하고 사지가 구속된채 구석에 내동댕이 쳐져있었다. 그 중에는 아난타족과 아수라족으로 비추어지는 하프가 4명이 있었다.


"읍읍"

"역시 데미안이야, 이번에도 아무런 피해없이 완벽하게 제압했네"

"조건부긴 하지만 완벽한 초월기라니까"

"읍...읍읍!"

"데미안은 복수가 목적이라면서 시전하는 초월기는 신사적이라니까? 나였으면 그 자리에서 화살을 머리에 박아버려서 죽였을 텐데."

"에이, 레디나! 그러면 나는 여기 안 왔지. 내가 왜 인간 사냥에 지원했는지 몰라?"

"읍읍"

"어휴, 뭐 저런 놈이 다 있냐? 가식적이어도 좋으니 데미안이나 나처럼 복수라는 숭고한 목적이라 말하는건 어때, 디마?"

"읍읍!!"


복수라는 단어에 지도자로 보이는 인간 한명이 강하게 저항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입의 봉인을 해제할 때는 성대를 확실하게 제거해라, 저번처럼 일을 벌리면 다음부터 너는 데려가지 않을꺼다. 그리고... 시끄럽다 가증스러운 인간놈들"


가벼운 욕지거리와 함께 바닥에서 솟구친 얼음기둥이 인간들을 공격했다. 초월기 '서리의 땅'이다. 약하게 시전했기에 살상효과는 커녕 일말의 타박상이나 찰과상도 주지 못 하였지만 저항하는 인간들의 사기를 떨어트리기에는 충분했다. 이내 잠잠해진 인간 무리를 향해...


"안녕 내 이름은 디마야~ 여기 이 험악하게 생긴 친구 두 명은 알 필요 없고 마지막 친구인 보리스만 알면 돼. 나랑 여기 보리스 친구랑 같이 갈 친구들의 구속을 풀어줄껀데 도망치거나 저항할 생각은 하지마 안 그러면 쫌 많이 아플지도 몰라~"

"혀가 길다. 야이 개새끼들아 이제부터 아가리 싸물고 얌전히 따르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머리통을 부수겠다"

"어이구 성인군자들 납셨네"


비꼬는 레디나를 뒤로 한 채, 디마는 잡혀온 인간들을 지긋이 보며 값비싼 도자기를 평가하듯 천천히 탐색하기 시작했다.


"너는... 눈매가 별로고... 너는... 어디보자... 와꾸는 통과인데... 검은색 빅파이는 감점사항인데..."

"얘는 어떠냐?"

"얘는 순진한게 생겼지만 비치의 끼가 보이네? 쫌만 가르치면 맛있을 것 같다. 역시 보리스야~ 보는 눈이 있어"

"그러면 이번에는 능욕이 아니라 조교로 가는건가?"

"무슨 소리야 당연히 @&₩+<%&"


디마와 보리스를 뒤로 한 채 데미안이 서서히 그룹의 리더로 보이는 사람한테 다가간다. 껄끄럽러운 녀석들이다. 마음 같아서는 목적이 상이한 레디나와 행동하고 싶다만 소수로 행동하기에는 위험부담이 있는 작전이기에 어쩔 수 없다.


"이 녀석으로 할 꺼야?"

"어"


단호하게 말을 내뱉고 인간을 든 후에 침묵의 감옥에 들어간다.


"대화를 하도록 하지"


가는 톤의 목소리, 그렇지만 위압감이 느껴진다. 뱀의 움직임과 같이 천천히 뻗친 손은 어느새 내 얼굴을 향하였다.

'쫘아악, 터업'

입의 봉인이 풀린다.


"네가 이 인간 무리의 대장인가?"

"그렇다."


이 자는 무엇을 원하는 것이지? 돈? 아니다 방금 여자 아난타족 하프의 말에 따르면 복수가 목적인 것 같았다. 그렇지면 복수가 목적이면 나를 침묵의 감옥에 가둘 이유가 전혀 없다. 이건 순전히 대화를 원하는 것이 확실하다.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다. 허나....

...눈 앞의 데미안이라 불리는 이 하프가 우리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이 4명의 하프들 중에서 대장격이 틀림없다.


"네 답변에 모순이 없거나 내가 네의 말에 설득된다면 네 일행을 돌려보내주겠다. 그게 아니라면 네 일행은 그 자리에서 죽이겠다. 알겠나?"


역시 목적은 우리를 죽이는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만 이 제안을 거절하면 그 즉시 우리 모두를 죽일 것이 확실하다. 그러면 내 선택은 필연적이다.


"수락하도록 하지"

"나의 부모님은 하프 차별주의자들에게 죽었다. 사냥꾼이 아니라 차별주의자들이다 왜냐하면 나는 도시 안에서 자랐거든. 하지만 내 부모님을 살해한 사람은 돈 몇푼 지불하고 풀려났다. 그리고 그 날 부모님과 같은 하무한 죽음을 피하기 위해 도시밖으로 도망쳤다."


사내는 숨을 고르고 이어 말한다.


"그렇다 인간은 인간을 죽이면 살해죄로 처벌을 받지만 하프를 죽이면 살인이 아니라 고작 벌금형에 쳐해질뿐이다. 그렇다면 하프가 너희 인간들을 죽이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알겠다. 이 자는 복수를 하고 싶지만 그럼에도 인간을 죽이는 것이 잘못됐다라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점을 최대한 이용해서 인도적인 결말을 맞이해야한다. 복수를 포기하게끔 만들어야겠다. 하프 인권주의자가 제격이겠군


"나는 하프 인권주의자다. 그렇기에 하프와 인간은 동등한 생명을 가졌다고 생각하고, 현재의 법은 잘못되었기에 개정되어야 한다 생각한다. 엘로스의 사하 온님과 더불어 강력히 어필해보지만 이게 쉽지만은 않더군"

"그런가? 잘 알겠다."


먹힌건가? 살아갈 확률이 얼마나 되지? 풀려날 수 있나? 하프의 말투가 무미건조해서 아직 알 수 없다. 하프 인권주의자들은 보통 무슨 말을 하면서 차별주의자들을 설득했었지? 기억해내야 한다.


"그 전 마법사들은 하프는 수라랑 동일하다고 주장하기에 수라로서 상대해줬는데 너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 같군"


불길하다. 이 하프는 대화를 통해 자신이 복수를 포기하고 싶어하지만 한 번이라도 자신의 복수가 정당하다고 생각이 든다면 그 자리에서 우리 모두를 죽일 것이다.


"그렇다면 너는 신을 따르는가?"


의중을 알 수 없다. 이럴땐 솔직하게 가는 것이 낫다


"당연한 질문을 하는 군, 그렇다."

"그렇다면 신은 전지전능한가?"


질문이 점점 이상해진다. 수라는 신과 적대시하는 점을 이용하는 건가? 그 전 마법사 이야기를 꺼낸 것을 보니 확실시 되는 군. 하프는 수라의 피가 더 짙기에 나는 수라인가 인간인가 라는 질문이 들어올 수도 있단 말이지? 그렇다면 하프는 수라가 아니라는 점을 어필하면 되겠어.

....아니다. 차라리 수라와 신이 대척점이라는 결론을 미리 이끌어내서 재빠르게 반박해서 허를 찌르는게 나을 수도 있겠다. 위험부담이 있긴 하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흥분시킬 필요가 있겠군.


"질문의 의도를 알 수 없군. 질문 자체가 신성모독이다."


'슈악- 팍'

은색 단검이 사내의 손에서 발사되 이내 구석에 있던  인간 중 한명의 허벅지에 꽂혔다.


"읍읍!!!!"

"묻는 말에 제대로 대답하지 않으면 머리에 날릴 것 이다. 저들은 인질이라는 점을 상기하고 내 질문에 성실히 대답해줬으면 좋겠군"

"알겠다. 신은 그저 파괴만 일삼는 수라와 달리 전지전능하다고 생각한다."


녀석이 흥분했다. 방금의 발언을 통해 수라라는 단어를 꺼냈으니 이제 반응을 볼까?


"그렇군, 그렇다면 자네는 신은 정의롭다고 생각하겠군"


생각보다 반응이 미지근하다. 언질이 약한건가? 지금부터는 쎄게 나가기엔 일행 중 한 명이 죽을 수도 있는데 큰일이군.


"그렇다, 신은 정의롭다고 생각한다. 우주의 파괴와 인간을 학살하는 수라들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제발 걸려라, 라는 심정으로 물어보았지만 눈 앞의 남자는 되려 침착해져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에 빠진다. 오히려 내가 초조해진다.

짧은 사색 후 사내가 입을 열었다.


"나의 부모님은 물류 창고에서 일을 하다 하프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겼다 주장하는 인간에게 마루트 마법으로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그 당시 미스티쇼어에는 오선급 물의 신 바루나님이 계셨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신은 하프의 죽음을 방관한 것이지?"

"신이라 해서 모든 걸 알 수는 없..."


'아, 맞다. 모순...'

'퍼억!'

데미안의 주먹이 이제껏 자신과 대화하던 남자의 관자놀이를 가격하였고, 남자의 머리는 형체를 알아볼수 없는 고깃덩이가 되었다.


"데미안 끝났어?"

"맘대로 처리해라, 오늘도 이유를 찾지 못 했다. 우리의 복수는 정당하다"

"오케이. 자 거기들! 요 누나랑 같이 찐하게 놀아볼까?"


유쾌한 말투와는 다르게 레디나의 손은 붉은색 빛이 감싸기 시작하였고 이내 살기가 봇물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그렇지만 데미안의 주목을 끌 수는 없었다.


자신의 복수는 정당한가? 만약 정당하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지만 그 누구도 명쾌한 대답을 들려주지 못 하였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대답을 들을 수 없는 난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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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은 디마와 보리스 이야기마저 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