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가 시작되자, 시야는 360도로 확대한 것처럼 느껴졌고,

전장에 있는 모든 적의 동작을 손에 잡힐 듯이 파악할 수 있었다.


이윽고, 눈에는 자신에게 가장 위협적인 적 밖에 비치지 않게 되었고,

그 이외는 전부 애매해져 갔다.


더욱이 그후, 적 본체마저도 보이지 않게 되었고, 

그저 날아오는 탄환, 덮치는 칼날, 그리고 공격할 수 있는 타이밍에 몸이 자연스럽게 반응하기만 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모든 것은 순백이 되었다.


전투, 진격, 자신이 해야 할 일――.

모든 것을 맡긴 「파트너」와, 계속 싸우고 있는 「나」만 있으면 된다.

지금은 그저, 눈앞의 목표를 향해서…….


한 걸음.

또 한 걸음…….


……

……





식인기관

……이것은……【종언의 주인】의…….


베카스

…….



순백의 막이 올라가자, 바사고 주변에는 기계의 잔해가 쌓여 있었다.

십수 대의 대파한 BM이 전력으로 바사고의 손발에 매달렸지만, 

『바사고』가 『식인기관』의 몸 속에 검을 꽂는 것을 저지할 수는 없었다.



식인기관

이 감각…… 이것은 고통…… 하지만…….

역시 이번은…… 나의 승리다, 벗이여.


베카스

…………한계인가. ……윽!



바사고의 출력이 급격히 내려갔고, 전개하고 있던 장갑판이 닫혀갔다.

콕피트 속에서는 격통이 베카스의 온몸을 덮쳤고 눈앞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저도 모르게 눈을 비빈 베카스는 손 전체를 물들인 붉은 색을 깨달았다.



베카스

이건…… 내 피…….



『바사고』는 밀어닥친 기체에 붙들렸고,

손에 쥔 검도 『식인기관』의 몸에서 뽑혔다.





콘스탄스

미안하다…… 베카스 님…… 도움이…… 되지 못해…….



콘스탄스의 기체는 모든 손발이 절단되었고, 한 자루의 검으로 지면에 못박혀 있었다.

해치가 열리자, 콘스탄스는 힘없이 시트에 앉아있었고, 부서진 몸 여기저기서 불꽃을 튀겼다.



베카스

……아니, 당신 탓이 아니야.



베카스는 뒤돌아서 등뒤의 안드레아를 봤다.



베카스

제길…… 앞으로 조금이었는데…….





식인기관

끊임없는 학습으로 획득한 전투기술.

더해서, 시종일관 분석을 계속해서 만들어진 진정한 인격…….

나는…… “본체”보다도 더욱 “어머니”의 기대에 가까운 존재가 되었다…….


베카스

……무슨 소릴……하는 거지…….


식인기관

나는 진심으로 네게 감사한다, 나의 벗이여.



『식인기관』이 바사고에게 다가갔다. 

주위의 폐재가 솟구쳤고, 마치 생물처럼 거대한 입을 형성해서 바사고를 삼키려 했다.



베카스

큭…… 쿨럭!



베카스는 다시 정신을 집중하려고 했지만, 바로 입에서 피를 토했다.



베카스

제길…….


식인기관

너와 이 기체의 모든 것은, 하나도 남김 없이 내가 여기서 나가기 위한 「몸」의 재료로 해주마.

내가 “어머니”와 나눈 약속을 이루고, 모든 것을 없앤 다음이 되더라도,

나는 이 일을 잊지 않을 것이다…….





???

잠꼬대는 자면서 하는 게 어떻습니까? 교단의 적.


식인기관

!!!


???

현상금 사냥꾼의 대원칙 그 1! 

전투 중, 적이 오래 떠들 때는, 그 녀석이 초특급의 바보거나 너를 두려워하거나. 입니다!



어딘가에서 목소리가 울렸고, 거대한 돌기둥 하나 위에 환상적인 빛이 모이기 시작했으며,

손에 거대한 전투용 닻을 쥔 그림자가 나타났다.



식인기관

너는…… 이전의 실패작!



긴장감이 다시 식인기관의 메모리를 점거했다.

무수한 탄환을 눈앞의 환영을 향해 쏘았지만, 그것은 전부 상대의 몸을 통과했다.

마치 거기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식인기관

단순한 염동력의 투영인가…… 이제와서 뭘 하러 왔지.





콘스탄스

……기계신이시여. ……저분은…… 종말의 기사 엘레나 님…….





엘레나

현상금 사냥꾼의 대원칙 그 2! 자신의 동료를 믿어라. 입니다!





안드레아

욱!!!! 콜록콜록콜록!!!!!!



가슴에 뚫린 구멍에서 붉은 불꽃을 튀기면서, 콕피트의 안드레아가 심한 기침을 시작했고,

이윽고 소녀는 숨을 몰아쉬면서 눈을 떴다.



베카스

겨우 깨어났나?


안드레아

예비 배터리의 파워로는 보수 모드를 써도 최소한의 감지능력 밖에 유지할 수 없어.

미안해, 계획은 실패했어…….

하지만…… 『기계혼』…… 정말로 존재했다니…….

베카스 씨, 저분이 주는 찬스를 놓치지 마.

플랜B를 개시하자.





엘레나

저는, 당신에게 삼켜진 어느 기사의 잔해에 불과합니다.



발밑이 완전히 무너졌지만, 기사의 환영은 공중에 감돌았고,

육안으로도 보일 정도의 에너지가 거기에 모이고 있었다.



엘레나

이 일격은, 저와 같은 경우에 처한 동료들을 위한 일격입니다!

참회해라! 이 악마!



엘레나는 오른손을 드높이 치켜들었고 손안의 무기가 점차 형상을 바꾸어,

이윽고 거대한 검을 쥔 칠흑빛의 오른손으로 변화했다.



식인기관

염동투영의 구현화……. 

자스민, 의사 염동력 실드를 전개!


엘레나

현상금 사냥꾼의 대원칙 그 3…… 동료들의 목숨은 전부 짊어져라.

기신의 표식! La forma di apocalisse!!!



쾅!!!



엘레나

얼굴도 모르는 전우들이여……. 원수는 갚았습니다…….

샤로 님, 알트 님…….



모든 에너지를 다 쓴 환영은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져갔다.

남겨진 것은 엘레나의 공격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구덩이와, 

마침내 폐허의 산 속에서 파내어진 『식인기관』의 본체 뿐이었다.





식인기관

나는…… 아직…… 살아있다…….



거대한 압력에 뭉개진 것처럼, 대파한 그 기계는 인간처럼 땅에 무릎을 꿇고 헐떡였다.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폐에서는 어떤 기체도 배출되지 않았다.



식인기관

재생……을 해야…….



쿵! 말뚝 하나가 『식인기관』이 뻗은 손을 뚫었고, 거기로 흘러들려고 했던 잔해의 움직임도 멈췄다.





콘스탄스

교단의 전사가……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 수는 없다.

가라! 용병…… 아니, 베카스 님!


식인기관

!!!



먼 방향에서 기체를 붙들고 있던 주박을 끊은 『바사고』가 거세게 일어나자,

그 몸으로부터 막대한 에너지가 솟구쳤다.


기계의 잔해가 밀물과도 같이 식인기관의 주위로 밀어닥쳤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이미 둘 사이를 가로막는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식인기관

너희들…… 너희들…….

이 끈질긴 인간들이!!!!!!!!!!!!!!!


안드레아

베카스 씨!


베카스

알고 있어. 이게 라스트 찬스다.

몇 분, 아니 몇 초라도 좋아. 간다, 파트너!

………………바사고!!!!






(찰나의 공방)





모든 것은 한순간의 사건이었다.

안드레아가 의수를 『식인기관』의 망가진 보디에 찌른 것과 동시에 강렬한 EMP가 상대의 몸에서 방출되었고,

소녀는 실이 끊어진 연처럼 『식인기관』의 어깨에서 낙하했다.

하지만 즉시 베카스가 받아냈다.



안드레아

설마 마지막 수를 남겼을 줄이야…… 정말로 신중한 놈이었어…….



한편 『식인기관』은 전원이 끊어진 것처럼 그 자리에 우뚝 서서 모든 동작을 멈췄다.



베카스

……해치웠나?


안드레아

놈은 자신의 방어 프로그램을 강화했고, 추가로 접촉된 순간에 EMP 공격을 걸었어…….

내가 장악할 수 있었던 건 10바이트 정도의 용량이었어…….

하지만…… 만약 네 추측이 옳다면, 놈을 쓰러뜨리는 데는 10바이트도 필요없을 거야.


베카스

뭘 입력한 거지?


안드레아

뭐냐고?



아름다운 기억을 떠올리는 것처럼, 소녀의 얼굴에 진심어린 미소가 떠올랐다.



안드레아

대사제가 첫 수업에서 가르쳐줬던, 컴퓨터의 첫 번째 커맨드.

DIR(모든 서브 디렉토리 파일을 출력)이야.





식인기관

아……아아…….

아아아아아아ㅇㅏㅇㅏㅇㅏㅇㅏㅇㅏㅇㅏㅇㅏㅇㅏㅇㅏㅇㅏAAAAAAAAAAaaaaaaaa!!!!



『식인기관』은 지면에서 뛰어올랐고, 온몸으로부터 고통의 절규를 지르면서 놔뒹굴었다.

기계의 잔해로 만들어진 거인은 자신의 머리를 미친듯이 긁었고, 

그로 인해 파괴된 파츠는 나노머신으로 분해되고, 수복되고, 다시 곧바로 파괴되었다.



베카스

저 녀석은 잡아먹은 BM의 블랙박스로부터 필요에 따라 정보를 끌어냈고, 

인간과 닮은 사고의 틀을 구축했어.



베카스는 미친 『식인기관』을 차갑게 응시하면서, 품에서 감고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베카스

BM의 블랙박스에는 파일럿의 “삶”의 정보만이 아니라, “죽음”의 정보도 담겨 있지.

녀석은 죽음을 앞둔 인간의 강한 집념을 이용하기 위해서,

「죽음」의 정보를 부활시키고 싶은 기체에 인스톨했고, 그 기체의 힘을 최대한 이끌어내면서 뜻대로 조종했어.


안드레아

녀석은 분명…… 지금까지 한 번도 그 「죽음」을 스스로 체험한 적이 없었을 거야.


베카스

기억과 감각은 깊이 이어져 있어. 다른 기체에 인스톨시킨 지금까지의 모든 「죽음」의 체험경력을 녀석 안에 출력시켰어. 

즉, 녀석은 지금 죽기 직전의 기분, 감각, 목숨이 몸에서 멀어져 가는 허무감을 철저하게 스스로 더듬어 가는 중이겠지.





식인기관

나는…… 나는…… 당기는…….


베카스

너는 내 손에서 직접 무언가를 빼앗은 것은 아니야.

내게 너는, 임무 목표의 앞을 가로막은 장애의 하나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이 묘지에 묻힌 죽은 자. 그리고 너의 데이터 수집을 위해, 속아서 여기로 이끌려 와서 살해당한 녀석들에게는…….

이렇게 목숨을 빼앗기고, 자신의 집착, 존엄, 희망, 그리고 죽음까지도 농락당한 녀석들의 입장에서는…….

너를 한 번 죽인 정도로는 모자랄 테지.



베카스는 얼굴을 찡그리고, 입안의 감고를 지면에 내뱉었다.



베카스

자기 몸속에 있는 수천수만의 “죽음” 속에서 차근차근 후회하시지. 불쌍한 자식.


식인기관

!!!!!!!!!!!!!!!!!!!!!!!!!!!



『제길! 제길! 이럴 리가 없었는데!』

『다들 서둘러! 여긴 나한테 맡겨!!』

『아파! 아파!! 왜, 왜 내가!!!』


무수한 「슬픔」이 머릿속으로 뛰어 들어왔다.


『미안해, 여보…….』

『괴물! 괴물! 싫어어어어어어!!!!』

『교단기사여! 나와 함께――――.』


더해서 무수한 절규가 격류처럼 흘러들었다.


「큭…… 아직 하고 싶은 게 잔뜩 있었는데…….」

「다들…… 살아남았을까…….」

「아마도……이제 두 번 다시 못 만나겠지…….」


무수한 「죽음」이 뇌 속에 새겨진다.


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그만둬그만둬그만둬그만둬그만둬그만둬그만둬그만둬그만둬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살려줘살려줘살려줘살려줘살려줘살려줘


죽음죽음죽음죽음죽음죽음죽음죽음죽음


「왜! 왜 당기가 이런 것을 짊어지는 것이냐!」

「만약…… 당기가 당기가 아니라면…… 만약 당기가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하지만 그 아이는…… 그 아이만은…….」





콘스탄스

아니…… 어떻게 된 거지?



조용한 동굴 속에서 『식인기관』이 둥글게 오그라들었다.

그 몸은 아직 파손과 수복을 반복하고 있었다.

『식인기관』은 이미 자기 이외의 사항에 관해서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안드레아

끊임없는 죽음의 고통에 견딜 수 없게 된 그는, 모든 의사인격을 삭제하고 평범한 컴퓨터가 되었어.


콘스탄스

즉…….


베카스

……괴로움을 멈추기 위해서, 그는 그라는 존재를 죽였다는 거지.





자스민

여기는…… 어디…….



『식인기관』의 콕피트가 열리고, 기계의 몸을 가진 소녀가 바깥으로 기어 나왔다.



자스민

나는…… 누구…….


베카스

너…….


자스민

오지 마!



소녀는 짐승처럼 뛰어서 물라났고, 벽에 몸을 기대고 손가락을 권총 모양으로 만들어,

베카스 일행에게 「사격」을 했다.



자스민

왜 죽지 않아! 왜 쓰러지지 않아! 이 괴물들!


콘스탄스

그녀는…… 설마…….


자스민

리키, 어디에 있어? 빌어먹을, 여기는 새까매서 아무것도 안 보여!



아무것도 없는 공간 속에서, 소녀가 보이지 않는 「벽」을 계속 뒤졌다.



안드레아

「식인기관」은 나노머신이므로 이 묘지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었어.

아마도 이 아이는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그 녀석이 만든 「그릇」이었을지도 몰라.


베카스

…….


안드레아

아무래도 막바지에 「식인기관」과 그녀의 연결이 끊어진 것 같아.

「죽음」은 그녀와 기억까지 동기하지는 않았어.

하지만――.

그녀는 자기 주인님과는 달리 독립한 인격이 없으니까,

백업 데이터에 보존되어 있던 인격이, 한꺼번에 이 아이의 메인 컨트롤 프로그램에 흘러들어 왔어……. 

아마도…….


자스민

얘들아! 짝꿍! 지금…… 어디에 있어?


안드레아

인격은 커녕, 이 아이는 이미 사물에 대해 정상적인 인식조차 못하고 있겠지.


베카스

…….



베카스는 말없이 앞으로 걸어가서, 품에서 권총을 꺼냈다.



베카스

……너를 해방해주지.


자스민

용……용병님…….


베카스

!!!



소녀는 차가운 양손으로 권총을 쥔 베카스의 손을 부드럽게 감쌌다.



자스민

와…… 예쁜 꽃이네. 

나…… 이렇게 멋진 선물 지금까지 한 번도 받은 적 없어……. 

정말로…… 고마워…….



소녀는 총구를 뺨에 눌렀다.



자스민

이 꽃…… 나한테 달아주지 않을래? ……용병님?


베카스

…………….


자스민

!!!! 너! 누구야!!!!



꿈에서 깬 것처럼 소녀는 재빨리 베카스의 손을 쳐내고 뒤로 뛰었다.



자스민

이 마녀! 내가 속을 줄 알아! 네 입발림에는 안 넘어가!

다들! 지금 어디에 있어? 빨리 와! 나는 여기에 있어!!!



소녀는 소리를 지르면서 끝없는 암흑 속으로 사라져 갔다.





베카스

…….


콘스탄스

이대로 보내도 괜찮을까요?


안드레아

이 건에 관해서는 미션을 달성한 베카스 씨에게 결정할 권리가 있어.


베카스

당신들, 이제부터는 어쩔 생각이지?


안드레아

나도 콘스탄스도 이미 만신창이야.

지금은 분묘에 놓여진 예비전지와 부품을 찾는 게 최우선이지…….


베카스

즉, 「본래」의 미션으로 돌아간단 건가.


안드레아

여기서 나가면, 당분간은 유럽에서 벗어나 줘.

그동안, 우리는 네 문제를 중재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게.


베카스

그 전에, 여기서 나가는 게 먼저지.



베카스는 콕피트의 보관함을 열고, 그들을 여기까지 이끌어 준 수제 지도를 꺼냈다.



베카스

돌아가는 길도 잘 부탁해.





바사고

………….



갑자기 바사고가 무언가를 눈치채고, 무한한 어둠이 계속되는 천장을 올려보았다.



베카스

왜 그래? 파트너…….



격렬한 굉음이 베카스의 목소리를 지웠다. 천둥벼락에 대량의 바위와 파편이 말려들어서,

아득한 머리 위의 공동으로부터 돌사태가 쏟아졌다.



===================



38지 끝.

생각해보면 이 겜 번역 시작하고 바사고 각성까지 오는 데 진짜 오래 걸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