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카스는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암흑의 동굴 속에선 낮밤도 알 수 없고, 주변에는 각종의 미약한 전기신호가 난무하고 있었다.

“바사고”는 진작부터 긴장을 유지하면서 주변의 모든 소음을 접수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베카스가 잠들지 못하는 이유가 아니었다.

그는 단지 눈을 뜨고서, 무언가가 일어나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몇 시간 전――.



·

·

·





베카스

…….



베카스는 압축 비스킷을 뜨거운 물에 타서 만든 죽 같은 것을 다 마시고,

찌푸린 얼굴로 콕피트에 타서 바사고의 레이더를 켰다.



베카스

(왠지 모르게 상황이 이해가 가는 것 같아. 이 묘에는 두 종류의 힘이 있어.

그 아이는 인간을 내쫓으려고 하는 그 녀석들하고는 달라. 하지만…….)





나나

용병 님?


베카스

!?



이렇게 놀란 건 오랜만이었다. 소녀는 소리도 없이, 마치 유령처럼 콕피트 바깥에 서 있었다.

베카스는 잠시 호흡을 고르고, 바사고의 콕피트에서 밖으로 나왔다.



베카스

이건…….



그러자 몇 장의 종이조각이 베카스의 얼굴에 닿았다.

조명의 불빛에 의지해서 흐릿하게 보이는 것은, 종이 위에 빽빽하게 쓰여진 점과 선―― 그것은 지도였다.



나나

아까 시간을 들여서 그렸어.


베카스

그렸다고?


나나

어떤 상황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언제라도 종이지도를 준비해두는 게 우리의 기본이야.

전자기기를 못 쓰게 되면, 이런 오래된 지혜에 의지해서 길을 찾을 수 밖에 없거든.


베카스

저기, 빛이 없는 장소에선, 이거도 안 보이지 않을까?


나나

광원의 문제 정도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잖아? 트집을 잡는 건 좋지 않아, 용병 님.

용병 님이라면 이 지도를 읽을 수 있지? 봐봐, BM의 표시맵과 큰 차이 없잖아.

우선 스케일을 확인해서…….



베카스는 나나를 보고 웃었다.



베카스

우리한테는 이미 네가 있잖아.


나나

…….


베카스

아, 이 지도를 꼭 나한테 줘야겠다면, 좋은 가격으로 사는 것도 괜찮겠는데.

유명한 심연의 안내인이 그린 수제 지도잖아. 지상이면 분명 나쁘지 않은 가격이 붙겠지.


나나

용병 님 진짜로 분위기 못 읽네.



소녀는 야유를 무시하고 지도를 주물러대는 베카스에게 미소를 보였다.



나나

심연의 안내인을 얕보면 곤란해. 누구라도 알 수 있도록 그린 지도를 남한테 그렇게 쉽게 넘길 리 없잖아!

하지만…….



소녀는 주먹을 쥐었다.



나나

나, 용병 님에게 전하고 싶은 게 있어…….


베카스

나는 그저, 방아쇠를 당기는 것 밖에 못 하는 용병이야.

나한테 지도 읽는 법을 가르쳐서 가이드를 하라니 무리지 무리.



베카스는 들고 있던 종이를 지면에 내던졌다.



나나

아아아아! 간신히 그린 건데…….


베카스

나와 내 고용주는 둘 다 싸우는 것 밖에 못하는 인간이야.

여기서 우리 모두를 데리고 곤란을 뛰어넘어서, 안전하게 원하는 것을 손에 넣고,

게다가 다치지 않고 나가게 해 줄 수 있는 건…… 너 뿐이야. 심연의 안내인.


나나

용병 님…….


베카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 너는 지친 거야.

오늘 밤은 저 두 명이 불침번을 설 거니까. 너는 천천히 쉬어.


나나

…….

그럼…… 그 말대로 쉬어볼까.

……조심해, 용병 님.


베카스

…….

그래, 너도.



·

·

·





그리고 현재――.



나나(?)

…….


베카스

…….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가 베카스의 귀에 닿았다.

그는 한숨을 쉬고서, 총을 허리의 홀스터에 꽂아넣고 바사고의 해치를 열었다.


베카스는 지면에 뿌려진 지도를 줍고 추가로 라이트도 줍고서, 칠흑빛의 갱도 안쪽으로 향했다.


갱도의 안――.



나나(?)

…….


베카스

찾았어, 나나.



칠흑빛의 갱도 속에선 심연의 안내인이 베카스에게 등을 보이고, 갱도의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나나(?)

응? 용병 님? 나한테 무슨 용무?


베카스

너…… 울고 있어?


나나(?)

아아, 용병 님. 이 아이, 계속 이런 스트레스 반응을 반복하고 있어.

이건 나도 멈출 수가 없어.


베카스

……너, 누구냐.



베카스는 정이 들기 시작했을 그녀에게 총을 겨눴다.



나나(?)

나?



작은 심연의 안내인은 천천히 일어서서 뒤돌아봤다.





나나(?)

나는 아직…… 나나일 걸?



소녀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입가에 온화한 미소를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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