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멸자 - 공허


"모든 것을 숫돌 삼아 스스로의 가치를 갈고닦았지만, 어느새 그것들은 그저 흘러가고, 나는 투명하게, 물 속으로 사라져가는 물방울과 같이 희미해져간다."


 - 연꽃을 향해 기도하고 공허를 바라본 후 비탄에 빠진 연기자가 써내린 가사 - 



우주의 모든 것은 의미가 없고, 사람들은 신의 눈엔 그저 미천하게 보일 뿐이다. 만일 신이 진정으로 모든 것 위에 서있다면, 그들이 왜 하찮은 필멸자들의 감정과 생각에 관심을 갖겠는가? "자멸자" 들은 우연히 "공허" IX의 그림자에 발을 들여버려 존재의 의미를 상실하고 있는 자들이다.



"공허" 의 그림자는 뭇별들 사이의 하늘을 공평히 덮고 있다. "자멸자" 는 어느 세계에서나 발생할 수 있지만, 그들을 "집단" 이라 표현하기에는 그들에겐 사회적 교류가 결핍되어있다. 하지만 그들을 "현상" 이라 한다면 이 가엾은 자들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여러가지 가치, 이를테면 육신이나 기억, 인지... 이러한 것들이 자멸자의 길을 걸으며 사라져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자연의 법칙으로는 설명하기가 힘들다. 혼돈의 의사들의 기록에 의하면, 몇몇 사람들의 피부가 흉터와 구멍들로 뒤덮인 일종의 마르고 썩어가는 나무처럼 변했다고 한다. 또한 몇몇 내분비계가 이상을 일으켜 고통과 쾌락을 구별할 수 없게 되며, 모든 것에 무감각해진다. 누군가는 기억을 잃었고, 누군가는 감각들을 잃었다... 마치 그들의 존재 속 무언가가 그들의 삶의 의미를 빼앗아간 것처럼. 그리고는 그들은 자신의 육신이 꿈과 환상의 땅에서 블랙홀의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가는 것만을 지켜보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몇몇 자멸자들은 이러한 운명을 거부하고, "혼돈의 의사" 에 합류하여 그들에게 허락된 모든 시간을 쏟아부어서라도 스스로의 구원과 맞바꾸어 다른 이들의 공허함을 치유하겠노라 맹세한다. 또한 그들은 굳센 믿음을 기둥 삼아 깊은 심연 속에 잠들어 있는 에이언즈를 죽임으로써 '공허' 저주의 원천을 없애려 하고 있다.



지니어스 클럽 #64, "원시 박사" 는 행적을 감추기 전, 한 때 이러한 의문을 가졌다: 만일 IX가 정말 이 우주에 관심이 없다면 어떻게 '공허' 운명의 길이 아직까지 존재할 수 있는가? 어쩌면 별들의 바다를 헤매고 있는 자멸자들은 그들 스스로도 IX의 어두운 그림자를 세상 여러곳에 드리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아가, '공허' 의 충격을 견뎌낼 수 있을 정도의 존재를 가진 자가 걷는 자멸자의 길은 무한히 확장되어 IX가 세상에 남기는 기나긴 그림자와 비슷한 흔적을 새기게 될지도 모른다고. 




출처가 애매해서 찌라시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