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피아에 올렸던거.

지금은 1부 완결.


다들 마음 복잡하고 울적할 텐데, 잔잔한 힐링물 하나 보고가요.

힐링채널이니까.



0.





숲의 중간을 가로지는 길을 두 사람이 걷고 있었다. 
두 사람은 꽤나 친근한 듯이, 서로 손을 마주잡고 있었다.

"여기에서 잠깐 쉴까요, 아이니?"

하얀색 로브를 입고, 지팡이를 짚은 사람은 길 옆에 있는 커다란 그루터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조금 낡기는 했지만 커다란 후드가 달린 로브였다. 
그리고 후드 아래에는 여기저기에 주머니를 많이 달았는지 상체 여러 부분이 불룩했다. 
평범한 여행자보다 짐이 많아서, 등에 커다란 등짐을 지고도 여기저기에 주머니를 달아야 했다.

"저 때문에 늦어져서 미안해요, 데렉씨."

키 차이가 굉장히 많이 나는 일행이었다. 
데렉의 옆에서 걷는 아이니는 간신히 가슴팍에 올 정도로 작았다. 
그래서 걸음의 보폭을 맞추기 위해 데렉은 평소보다 한참 느리게 걷는 중이었고, 대부분의 짐을 들고 있었다. 
그런데도 아이니는 때때로 숨을 몰아쉬며 걷기 힘들어 했다.

"그건 미안하다고 할 게 아니에요. 
상처가 아직 다 아물지도 않았잖아요."

아이니가 나무를 베고 난 그루터기에 앉자마자 데렉은 로브 안의 주머니에서 주먹만한 병을 꺼냈다. 
병의 마개를 열자마자 알싸한 향이 주변에 진동했다.

"그래도 데렉씨가 엄청 배려하는 게 보여서..."

약을 손에 덜어낸 데렉은 아이니의 하늘색 로브를 조금 옆으로 치우고,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아이니의 발목에 있는 상처에 약을 듬뿍 발랐다. 
아이니는 약이 닿는 감촉이 생소해 인상을 썼지만,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에 딱히 저항하지 않았다.

"괜찮아요, 정말로."

데렉은 정말 괜찮다는 표정으로, 아이니의 손목에 있는 상처에도 약을 덜어내 발라주었다.

아이니의 손목과 발목에 난 상처는 짓무르고 쇠독이 올라 흉측하게 변해 있었다. 
특히 발목의 상처는 복숭아뼈를 짓누르며 생긴 상처인지, 발목의 형태도 비틀어놓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니는 키도 데렉보다 작은데 빨리 걷기를 힘들어 했다. 
그렇다 보니 두 사람은 생각보다 느리게 길을 따라 여행하고 있었다.

"데렉씨의 손은 따뜻해서 좋아요."

앳된 얼굴의 아이니가 약을 다 바른 데렉의 오른손을 양 손으로 잡으면서 말했다. 
데렉은 그 모습이 귀여워서 피식 웃고 왼손으로 아이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 촉감도 마음에 드는지, 아이니는 과할 정도로 데렉의 손에 머리를 비비며 웃어보였다.

잠깐 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숲 사이를 지나는 바람은 꽤나 시원하고 청량했다. 
아마 소나무처럼 뾰족한 잎을 가진 나무가 많이 있기 때문이겠지. 
그리고 길이 희미하게 남아있을 정도로 사람의 흔적이 많지 않은 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조금만 기다려요. 조금 이르지만 저녁을 먹고... 
조금 더 걷다가 야영하기로 하죠."

"어디 가요?"

"물을 떠 와야죠. 
저쪽에 강이 있던 것 같으니까, 걸어갔다가 올게요."

그렇게 말한 데렉은 쓰다듬던 손을 멈추고 등짐을 잠깐 풀어놓으려고 했는데, 아이니의 반응이 조금 이상했다.

"... 알겠어요. 너무 오래 걸리면 안돼요...?"

한참을 머뭇거리던 아이니는 데렉의 손을 꼭 잡고 그렇게 말했다. 
그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마음이 울적해져서, 데렉은 난처한듯이 웃고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갔다가 올게요."

데렉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하고 등짐에서 작은 냄비와 가죽 수통을 꺼냈다. 
그 과정에서 지팡이를 손에서 놓았는데, 지팡이는 쓰러지지 않고 그 자세 그대로 서 있었다. 
아래로 갈 수록 뾰족한 지팡이인데, 공중에 떠 있는 것이 아무리 봐도 자연적인 현상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니도, 데렉도 그 지팡이를 당연하게 여기며 눈길도 주지 않았다. 
데렉은 조용히 몸에 두르고 있던 여러 개의 주머니와 장비를 풀어놓아 몸을 가볍게 했다.

"네. 무슨 일 있으면 부를게요."

아이니는 양 손을 어쩔 줄 모르면서 엮고 있었다. 
그리고 데렉을 올려다보며 부디 일찍 오기를 바랬다. 
데렉은 그 모습을 보고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교차해서 최대한 빨리 다녀와야겠다고 다짐했다.

숲의 밤은 일찍 찾아온다. 
평지를 걸었던 어제와는 달리 하늘이 조금 노랗다 싶더니 해가 거의 넘어갈 때가 되었다. 
아무래도 나무가 하늘을 많이 가려서 그런 거겠지. 

서리가 내린 후의 늦가을 날씨는 쌀쌀하지만, 아이니가 덮고 있는 로브와 옷은 충분히 따뜻했다. 
그리고 무리하지 않고 여행길을 나아가고 있으니 땀이 많이 나지도 않았고, 체온이 많이 떨어질 일도 없어서 꽤 안락했다.

[부스럭]

뒤쪽의 수풀에서 뭔가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이니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는데...

"다람쥐?"

아마 겨울을 나기 위해 도토리를 옮기던 중이겠지. 
처음 보는 작은 동물에 눈을 빛내는 아이니를 바라보는, 도토리를 꼭 쥔 다람쥐가 있었다. 
서로 신기한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마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람쥐는 잠깐 도토리를 입 안에 집어넣었다.

"아."

다람쥐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눈으로 쫓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다람쥐는 곧 아이니가 앉아 있는 그루터기 끄트머리에 도착했다. 
아이니는 이제 가려나 싶어서 아쉬움에 소리를 냈는데, 오히려 가까이 다가오니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곧 다람쥐는 입 안에 있던 도토리를 꺼내 갉아먹기 시작했다. 
양 손으로 도토리의 양 옆을 잡더니 앞발로 껍질을 능숙하게 벗기고, 아이니를 빤히 쳐다보았다. 

하얀 속살만 남은 도토리를 먹으려다가 사람을 바라보는 이유는 뭘까. 
처음 보는 다람쥐의 식사를 보고 아이니는 몇 번이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관찰했다.

"응? 왜?"

한참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던 다람쥐는 껍질이 모두 없어진 도토리를 그루터기 위에 가만히 두고 내려갔다. 
아이니는 갑자기 먹지도 않고 도망친 다람쥐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멍해져 있었는데, 다람쥐는 다시 수풀 아래쪽에서 새 도토리를 가져와 껍질을 벗겼다.

"...?"

이번에도 옆으로 돌려가며 맹렬히 껍질을 벗겨낸 다람쥐는 아이니와 도토리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번에는 쳐다볼 대상이 하나 더 늘었다. 
방금 깐 도토리, 손에 든 도토리, 그리고 아이니. 

아이니는 다람쥐가 귀여워서 만지고 싶었지만, 충분히 무서워하고 경계하는 것 같아서 가만히 두었다. 
그리고 최대한 경계심을 높이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처음에 껍질을 벗긴 도토리를 들고, 쭈뼛거리며 아이니의 옆에 다가온 다람쥐는 아이니의 손 옆에 도토리를 놓아 주었다. 
그리고 자신은 원래 위치로 돌아가 다른 도토리를 집었다. 
그리고 입을 바쁘게 움직이며 도토리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도토리를 준 건지, 아니면 우연히 거기에 두는 건지 판단할 수가 없어서 아이니는 그냥 다람쥐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그래도 분주하게 갉아먹는 다람쥐는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보는 것 만으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툭...]

먹고 있던 도토리를 떨어뜨린 다람쥐는 한참을 그루터기 아래로 내려가 떨어뜨린 도토리를 찾았지만... 
결국 발견하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아이니와 도토리를 번갈아 보기 시작했다. 
도토리, 아이니, 도토리, 아이니, 도토리... 
그리고 다람쥐의 눈망울이 커다랗고 그렁그렁해지며, 약간의 눈물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먹을래?"

아이니는 작고 떨리는 손으로 도토리를 조심스럽게 잡고 앞으로 내밀었다. 
다시 몇 번 번갈아보던 다람쥐는 조심스럽게 다가와서 아이니가 내민 도토리를 받고 그루터기 끝 부분에서 다시 갉아먹기 시작했다.

"뭐해요?"

"으악!"

뒤에서 부른 데렉의 목소리에 놀라 아이니가 제자리에서 몸을 딱 경직시켰다. 
갑자기 큰 소리가 나자 다람쥐도 도토리를 먹다가 입에 통째로 집어넣고 데렉을 경계하고 있었다.

"오... 다람쥐네요."

데렉의 손에는 물이 가득 든 냄비와 가죽 수통이 들려있었다. 
물을 떠오기 위해 강에 집어넣었던 터라, 아직 물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꽤 달린 건지 데렉은 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동물 관련된 마법도 쓸 줄 알았나요?"

"그냥 얘가 왔어요."

그리고 이제 갈 것 같아서 아이니는 아쉬워졌다. 
다람쥐는 지금 당장이라도 그루터기 밑으로 내려갈 것 처럼 자세를 잡고 있었으니까.

"데렉씨가 놀래켜서 가려는 것 같아요."

"아... 미안해요. 
그런데 저 다람쥐 다친 것 같은데요?"

"네?"

데렉의 오른쪽 눈이 잠깐 파란색으로 빛났다. 
그리고 잠깐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을 정리한 데렉은 아이니에게 냄비를 넘겨주고, 가방에 수통을 집어넣었다. 

"뭐 하려고요?"

"배 근처를 다친 것 같아서요. 
먹을 걸로 유인하는 동안 배에 연고라도 발라주면... 
좀 낫지 않을까 해요."

"어떻게 알았어요?"

"간단한 마법이죠. 
이래보여도 한 때는 떠돌이 의사로 돌아다니기도 했어요."

데렉은 커다란 등짐의 바닥까지 긁어서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아이니는 서운함과 아쉬움을 접고 고개를 끄덕였다.

"음... 잠깐 배를 보여주게 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아이니는 일단 들고 있던 냄비를 잠깐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잠깐이 지난 후 눈을 떴다. 
오른손 검지 부분이 약간 밝은 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주머니의 약을 찾던 데렉도 무슨 일을 하려는 건지 신기해서 곁눈질로 살펴보았다.

"아하하..."

다람쥐는 아이니의 검지가 마음에 들었는지, 얼굴을 잠깐 비비고 손가락 부분을 핥으며 애정을 표했다. 
깨물거나 할퀴지 않고, 아이니의 검지 손가락에 코를 가져다대고 향을 맡으며 온 몸을 비비적거렸다. 
그리고 곧 아이니가 천천히 검지손가락을 한 바퀴 돌리자...

"신기하..."

배를 뒤집은 다람쥐는 그 상태로 아이니의 검지를 잡고 핥기 시작했다. 
그런데 막 기뻐하기에는 다람쥐의 가슴에서 아랫배까지 긴 상처가 있었다.

"아."

마법을 쓰던 아이니도 끔찍한 상처에 놀라 잠깐 흐트러질 정도였다. 
하지만 다람쥐는 그래도 아이니가 마음에 드는지, 계속 누운 채로 아이니의 검지를 끌어 안고 있었다.

"연고 발라도 도망가지 않겠죠?"

설치류의 행동은 빠르고 날쌔다. 
손가락에 연고를 덜어놓은 데렉이 연고를 발라주는 사이 도망가면 잡기 힘들겠지.

"조심스럽게 해봐요."

아이니는 웃음기 없는 얼굴로 말했다. 
아직 검지손가락은 미약하게 빛이 나는 상태였다.

"자... 다 됐다."

사람에게 쓰는 소독약으로 상처를 씻고 연고를 얇게 바른 것이 전부이지만, 그래도 없는 것 보다는 낫겠지. 
데렉도 아이니도 가진 것이 많지 않은 여행자였으니 이 정도가 한계였다.

"고생했어요. 괜찮아졌으면 좋겠네요."

곧 아이니의 검지에서 빛이 사라졌지만, 다람쥐는 여전히 아이니의 검지를 핥고 있었다. 
처음에는 경계했었는데, 아예 손목, 팔꿈치까지 왔다갔다하며 달라붙고 있었다.

"하지만... 이 다람쥐도 언젠가 죽겠죠?"

서글픈 웃음을 짓는 아이니가 그렇게 말했다. 
다람쥐는 다시 도토리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떨어졌던 도토리도 아이니가 찾아서 옆에 놓아주었다.

"그렇겠죠."

모든 생명체가 그렇듯, 영원히 살 수 있는 건 없었으니까. 
데렉은 현실을 알려주며 약간의 불편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럼... 우리는 괜히 구한 걸까요?"

아이니의 머뭇거리는 말에 데렉은 한숨을 쉬었다. 
되지 않게 미화하는 것 보다는 현실을 말해주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아이니는 겉보기에는 10대 초반으로 보이지만, 영양실조로 발육부진이 왔을 뿐 실제 나이는 좀 더 있었으니까. 
아마 몇 년만 있으면 성년일 것이다.

"아뇨. 중요한 건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의미를 두는지겠죠. 
우리의 인생처럼."

"사람의 인생이요?"

다람쥐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라는 표정으로 아이니가 데렉을 올려다 보았다. 
데렉은 그런 아이니가 귀엽고, 뒤에서 도토리를 갉아 먹는 다람쥐도 귀여워서 그나마 웃을 수 있었다.

"우리도 언젠가는 죽을 거에요. 
아무도 영원히 살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그 안에서, 어떤 기억과 추억을 간직하고 집중하며... 
어떤 사람과 같이 살아갈지는 우리의 선택이에요."
아이니는 어려운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서 옆의 다람쥐를 바라보았다.

"음... 다람쥐를 구한 우리가 뿌듯하게 느끼는 것 처럼요?"

데렉은 그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르지만, 그 치료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보람을 느끼고 즐거워했잖아요. 
그걸 얻은 것 만으로 충분히 의미는 있었다고 생각해요."

아이니도 간신히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데렉의 손을 잡았다.

"그래서 당신은 저를 구하신 건가요?"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이유는 아니지만요. 
그래도 아이니시스, 당신을 구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서로 맞잡은 손은 단단하게 맺어져 있었다.




기네... 읽는 사람 있으려나.

이후 본편은 여기에서.

https://novelpia.com/novel/143128


좀 힐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