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썼던 

https://arca.live/b/genshin/101060576?category=%EC%B0%BD%EC%9E%91&p=1


이 팬픽의 이후 이야기임


한 화당 평균 2만자 정도임. 

너무길긴 한데 이렇게라도 안하면 약 5000자로 분리해서 하루 한편 올리면  한달은 걸릴것같아서 이렇게 올려봄..


전체적인 내용은 루프물임. 간단하게 리제로 생각하면 편할듯.

-------------------------------------------------------------------------------------


폰타인 한천의 못 사건이 일단락되고 난 뒤였다.

 

천계의 노인은 한천의 못이 미지의 힘에 분해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피조물들이 신성한 ‘규율’의 힘을 전면으로 부정했다고?”

 

소식을 전해 들은 노인의 얼굴은 붉은 핏기가 서려 있었다.

그런 노인의 모습을 보고 있던 그는 곧 날아올 호통에 안절부절못하며 노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노인은 다급함을 느꼈다. 

이대로 가면 자신들의 세계가 송두리째 뒤집힐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스으읍-’

 

청년은 노인의 위협적인 숨소리를 들으며 그의 얼굴을 반사적으로 쳐다보았다.

 

노인은 이를 악물고 있었다.

 

그렇게 숨을 다 마신 노인은, 인상을 구기며 목구멍에 강하게 힘을 주고 자신이 들고 있던 지팡이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이 멍청한 것들, 빨리 손을 쓰지 않고 뭘 하는 것이냐! 

이대로 가다간 전부 죽는다. 어서 움직여!”

 

청년의 예상답게, 노인은 한동안 듣지 못했던 크기의 목소리로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그는 반사적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노인의 목소리가 코앞이라 고막이 찢어지는 듯 했다.

 

그렇게 노인이 호통을 끝냈을 때,

노인은 어느샌가 모여있던 사람들이 자신의 불호령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노인이 시선을 옮기자, 

그의 눈에 마지막으로 들어온 것은 붉은 머리의 청년이 귀를 틀어막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직도 안 갔나?”

 

노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조금 전에 소리 지른 사람과는 영 딴판의 부드러운 목소리.

청년은 그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어 노인을 바라보았다.

 

노인의 얼굴은 그 어떤 때보다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청년은 그런 그의 얼굴을 읽을 수는 없었지만, 근심 걱정이 가득한 표정이라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청년은 귀를 틀어막던 손을 바닥으로 내려놓았다. 

노인은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바닥에 떨어진 지팡이를 다시 주워 오른손으로 땅을 짚으며 어딘가로 천천히 걸어갔다.

 

청년은 노인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며 망설이고 있었다.

 

‘그를 따라가야 할까? 아니면,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아야 할까?’

라고 생각하며 노인의 반응을 기다리던 그때였다.

 

“뭘 하는 건가? 안 따라오고.”

 

노인의 호통에 고개를 숙이며 그의 뒤를 고분고분 따르던 그였다.

 

.

.

.

 

노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긴 청년은 ‘기록소’라는 건물을 발견하게 되었다.

 

사람 수십 명은 쌓아둔 듯한 길이의 기둥,

삼각형 모양의 지붕 아래엔 ‘천리’의 조각상이 양옆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기록소는 이 대륙의 역사가 기록되어있는 하나의 박물관 같은 개념의 공간이었다.

 

청년은 천계에 처음 도달했을 당시, 

수많은 영혼이 이 ‘기록소’를 거쳐 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나도 한때 이곳에서-’

 

청년은 과거를 회상했다. 

노인의 목적또한 궁금했지만 어렴풋이 떠오르는 과거의 파편들이 그의 향수를 자극했다.

 

노인은 시간이 없음을 느꼈다. 청년을 바라보며 조급함을 숨기지 못한 노인은 그에게 호통을 쳤다.

 

“한시가 급한데, 아직도 안 따라오고 뭐 하고 있나?”

 

“죄송합니다. 옛날 생각이 나서….”

 

노인의 호통에 청년은 고개를 숙이며 그에게 사과했고,

다시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기록 소에는 무슨 일이십니까?”

 

청년은 노인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갑작스럽게 방문하게 된 기록소는, 

평소라면 그 누구도 잘 찾지 않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청년은 노인에게 질문했다. 그의 계획에 점점 흥미가 생기고 있었다.

 

그러나 노인은 청년의 질문을 듣고 다시 한숨을 쉬며 청년의 머리 위로 지팡이를 휘둘렀다.

 

‘딱-!’

 

큰 소리와 함께 묵직한 고통이 자신의 머리에 스친 청년은 머리를 부여잡고 짧은 비명을 내었다.

 

“으악!”

 

그는 억울하다는 듯 노인을 올려다보았지만,

노인은 어느새 어딘가로 사라져 있었다.

 

청년은 시선을 옮겨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다,

노인이 기록소의 입구로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을 보며 허겁지겁 뛰어나갔다.

 

“어르신-!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그렇게 도착하게 된 기록소의 내부는 굉장히 넓었다.

 

아득히 높아 보이지 않는 천장,

티바트 공용어로 쓰인 수십 수백 개의 벽화.

 

청년은 오랜만에 오게 된 기록소의 풍경이 익숙했지만 조금 낯설기도 했다.

 

노인은 기록소의 대문을 연 후 바닥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청년은 그의 시선을 신경 쓰지는 않았지만,

한참 동안 바닥을 바라보는 노인이 점점 거슬리기 시작했다.

 

“어르신, 이곳으로 오신 이유가-”

 

“‘그분’이 오시기 전에 예언을 다시 실행해야 한다.

자네라면 이곳이 어떤 곳인지는 잘 알고 있을 텐데?”

 

노인은 그의 대답에 답답해하며 언성을 점점 높이며 대답했다.

 

기록소의 지하.

청년은 셀레스티아에 오기 전, 

영혼의 통로에서 보았던 기록소의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나기 시작했다.

 

수많은 태엽, 거대한 시침.

청년은 이윽고 자신의 머릿속에서 거대한 기계장치 하나가 스치듯 떠올랐다.

 

“...설마, ‘그것’을 쓸 생각입니까?”

 

청년의 대답에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지하로 통하는 통로를 열었다.

 

[끼이익-]

 

청년은 바닥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망설임 없이 걸어 들어가는 노인의 뒷모습을 보며 

그가 무슨 이유로 ‘장치’를 건드리려 하는지 어렴풋이 깨달았다.

 

“어르신, 이건 안 됩니다. ‘그분’께서 운명을 함부로 건드리는 행위는-”

 

“자네는 지금이 상황이 정상이라고 보나?”

 

청년은 노인의 대답에 잠시 주춤했다.

그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세계를 기만하고 천계를 속인 ‘신좌의 파괴’는,

금기를 넘어 이 세계의 근간을 뒤흔들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청년은 다시 한번 생각하며 노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초조했다. 

감히 예상한다면 노인의 얼굴은 “공포”에 가까운 표정이었다.

 

청년은 노인의 심정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여차하면 일곱 원소의 균형이 무너져 다시 심연이 이 땅에 군림하게 될 수도 있었다.

 

삶의 터전, 선조가 일궈둔 모든 규칙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청년은 본질을 꿰뚫어 보려 노력했다.

 

청년은 한참을 생각했다.

한천의 못이 떨어지기 전부터,

노인이 기를 쓰며 기록소의 지하로 내려온 지금까지-

 

그는 간단한 결론에 도달했다.

문제의 원인은 다름 아닌 ‘천리의 부재’였다.

 

...하지만 청년은 천계의 사자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규율’을 의심해서는 안 되었다.

 

그랬기에 청년은 노인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지금 노인이 기록소 지하로 향한다는 사실 자체가,

세계의 운명을 바꾸는, 금기에 도전하는 행위란 사실이란 것을.

 

“...이걸 다시 쓰게 될 줄 몰랐는데 말이야.”

 

노인의 앞에 펼쳐진 것은 거대한 시계 형태의 건축물이었다.

 

양옆으로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기둥이 중심부의 축을 지지하며,

거대한 톱니와 시침은 천천히 돌아가며 현재 지상의 시각을 나타내었다.

 

양옆으론 조그마한 톱니바퀴들이 파리의 눈처럼 징그러울 정도로 촘촘히 나 있었다.

 

“...”

 

노인은 말없이 시계 바로 앞에 있는 여러 태엽 장치들을 능숙하게 조작하기 시작했다.

 

청년은 이 기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노인이 가동하려고 하는 기계는 단순한 한천의 못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도 훨씬 더 깊은, 세계의 근본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는 물건.

 

‘운명의 시계’였다.

 

“어르신,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입니까?”

 

“예언을 위해 군대를 보낼 수는 없다. 그분께서 깨어나시면 곤란해지니까.”

 

노인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러나 그의 두 눈동자는 광기에 사로잡혀있었다.

 

청년은 그런 노인의 눈동자가 너무나도 두려웠다.

 

그가 이 장치를 조작한다는 사실보다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미지에서 나온 공포감이 그의 두려움이었다.

 

운명의 시계는 심연의 시공간을 억제하고, 현재의 ‘시간을 고정’하는 역할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시간을 고정’하는 기능은,

얼마든지 세계의 시간을 바꿀 수 있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을 바꾼다는 건, 누군가의 ‘운명’에 관여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노인은 능숙하게 태엽의 조작을 시작했다.

 

“신을 속인 기만자의 최후를 목도해라.”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양손을 이용해 시계 장치의 아래에 배치된 여러 개의 태엽 장치를 천천히 작동했다.

 

왼쪽, 오른쪽으로 한 바퀴.

 

수많은 태엽 장치를 이리저리 만지는 노인의 모습은 마치 선율을 다듬는 노래꾼과도 같았다.

 

그리고 그 노래는 수많은 운명을 파멸로 이끌게 될 것이란 걸, 

청년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노인을 말려야 했다. 이 장치의 조작으로 시작된 결과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다.

 

“어르신, 그만두십시오. 신좌의 파괴 또한 저희가 구축한 ‘규칙’의 허용범위 아닙니까?”

 

노인은 청년의 말에 바삐 움직이던 양손의 속도를 조금 늦췄다.

청년은 마른 침을 삼켰다. 분명 평소라면 노인의 호통이 날아올 시간이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호통 대신 돌아온 건 노인의 대답이었다.

 

청년은 잔뜩 긴장한 채 두 눈을 감고 노인의 호통을 기다렸지만,

되돌아온 대답이 질문이라는 사실에 두 눈을 뜨며 의아해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정말 큰 문제가 된다면 ‘그분’께서 움직이실 거라고-”

 

“정말 그랬다면 ‘그분’이 이미 움직이셨어야 했다.”

 

노인은 청년의 대답을 가볍게 무시하며 다시 태엽의 조작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어르신, 그분을 의심하시는 겁니까?”

 

청년의 반론이었다. 그에게 남은 것은 노인의 신앙심을 긁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의 대답에 노인은 심기가 불편하다는 듯, 

다시금 양손의 조작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며 짜증을 냈다.

 

“나는 천리의 대리인이다. 그분이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아도 맡은 바를 수행해야 한다.

방금의 질문은 오히려 날 의심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는 건가?”

 

“그건-”

 

“미천한 종족 출신에, 길바닥에도 굴려졌던 너라면 모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세계를 관리한다는 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노인은 쉴 새 없이 독기어린 말들을 내뱉어대었다. 

청년의 기분은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청년은 말문이 막혔다. 그의 말이 사실이었다.

 

그렇게 반박할 생각도 없어진 청년은 노인에게 대답을 바꾸어 질문했다.

 

“...그럼, 지금 하고 계시는 건 무엇입니까?”

 

노인은 조작을 멈추며 그의 대답에 귀찮다는 듯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너무 작아 전부 듣지는 못했지만, 한 문장만큼은 확실히 들을 수 있었다.

 

“...운명을 지운다.”

 

.

.

.

 

밝은 태양이 비추는 폰타인성의 내부는 푸른빛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울려 퍼지는 거대한 시계의 똑딱거림, 부산스러운 사람들의 움직임에서 나오는 합창.

 

평소와 같은 평화로운 분위기의 폰타인이었다.

 

“페이몬, 여행자!”

 

모험가 길드의 캐서린은 아침 산책을 즐기던 여행자와 페이몬을 보며 반가운 듯 인사했다.

 

“캐서린! 안녕!”

 

페이몬은 캐서린의 살가운 인사를 씩씩한 말투로 받아쳤고,

캐서린도 페이몬에게 다시 눈웃음 지으며 여행자에게 ‘특이한’ 의뢰의 정보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여행자, 조금 특이한 의뢰가 들어왔는데, 한번 확인해볼래?”

 

“...특이한 의뢰요?”

 

여행자는 한천의 못 사건 이후,

급격히 한가해져 스팀버드사의 시시콜콜한 의뢰를 들어주고 있었다.

 

스팀버드사의 의뢰로는…. 귤 다섯 개 가져다주기, 백철 열 개 가져다주기 등등이 있었다.

 

그런 의뢰만 받다가 심심해진 여행자는, 

조금 더 도전적인 의뢰를 받고 싶어 몸이 근질거리던 참이었다.

 

“설명해 주세요!”

 

여행자는 두 눈을 반짝거리며 

모험가 길드의 접수처 책상을 “쾅!”하고 내리치며 활기차게 대답했다.

 

캐서린은 갑작스러운 여행자의 행동에 조금 놀란 눈치였지만,

이내 놀란 몸짓을 추스르고 의뢰의 내용을 간단하게 읽기 시작했다.

 

“마을 밖에 특별한 수계 늑대가 나돌아다닌다는 정보를 입수했는데, 관심 있어?”

 

“특별한 수계 늑대요?”

 

여행자는 흥미롭다는 눈빛을 반짝이며 자신의 얼굴을 캐서린에게 더 가까이 밀어붙였다.

 

“자, 잠깐. 여기 의뢰서가 있으니까 한번 읽어볼래…?”

 

캐서린의 당황하는 얼굴을 보며 아랑곳하지 않던 여행자는,

그녀가 건네준 의뢰서를 받고 나서야 겨우 진정하게 되었다.

 

여행자는 캐서린이 전해준 의뢰서를 꼼꼼히 읽었다.

 

그렇게 의뢰서를 옆으로도 뒤집어보고, 가로로도 읽어보며 두 눈빛을 굴리다-

 

“캐서린 씨, 고마워요!”

 

여행자는 캐서린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며 빠르게 그녀에게서 멀어졌고,

캐서린은 그런 여행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이 뭔가 잊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아 맞다.”

 

그녀는 여행자에게 미처 이야기 해주지 못한 사실을 깨달으며 중얼거렸다.

 

“그 수계 늑대, 원소가 안 통한다는 소리를 안 해줬는데….”

 

캐서린은 여행자에게 가장 중요한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다는 걸 자각했지만, 

이미 모습이 보이지 않는 여행자를 생각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여태 잘 해왔으니까. 별문제 없겠지…?”

 

.

.

.

 

여행자는 의뢰서에 그려진 지도를 따라 걷고 또 걸었다.

 

“...여행자, 얼마나 더 오래 가야 하는 거야?”

 

한참을 걷다 보니 페이몬이 칭얼대기 시작했다.

 

이녀석, 평소에 잘만 날아다니면서 무슨소릴 하는건지.

 

여행자는 페이몬의 대답에 무심코 현재의 시간을 확인했다.

 

시계는 어느새 점심을 훌쩍 넘어 오후를 가리키고 있었다.

 

의뢰를 받은 지 거의 한 시간이 다 돼가던 시점이었다.

 

“음, 확실히 쉬는 시간이 없었긴 했네. 근데 거의 다 왔으니까 좀만 참자 페이몬.”

 

여행자는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오래 걸었는지 떠올렸다.

 

새로운 의뢰를 받은 나머지 너무 들떴던 걸까. 

아니면 싸우는 의뢰가 너무 오랜만이라 그런걸까.

 

여행자는 오랜만에 받은 의뢰의 설렘에 그만 페이몬을 까맣게 잊고있었다.

 

“으엑…. 맨날 절반쯤 왔을 때도 그 이야기 하더니!”

 

페이몬은 여행자의 대답에 진절머리난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힘든 티를 팍팍 내고 있었다.

 

물론 여행자가 그녀를 골탕 먹이려고 쉬는 시간 없이 쭉 걸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페이몬은 그런 여행자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느새 날고 있는 고도가 조금씩 내려가기 시작했다.

 

여행자는 삐진 페이몬을 진정시키려 그녀의 얼굴 앞에 의뢰서를 펼치고

그려진 지도를 보여주며 말했다.

 

“아니야, 이번엔 진짜라니까? 이근방인데..”

 

여행자는 지도에 그려진 목적지와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번갈아 비교하며 그녀에게 이야기했고,

그제야 페이몬은 지도의 위치와 자신이 서있는 이 위치가 똑같다는 사실을 믿었다.

 

“...진짜네. 이번에도 거짓말 하는줄 알았어.”

 

“우선 다 왔으니 잠깐 쉴까? 나는 주변을 좀 더 조사해볼게.”

 

여행자는 기진맥진해진 페이몬을 바라보며 그녀를 달랬고,

페이몬은 여행자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나무 그늘에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여행자는 그녀를 잠깐 내버려 두고 의뢰의 내용에 집중하며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평소 수계 늑대의 습성이라면, 무리 지어 다니거나 평지에 있을 텐데.”

 

여행자가 본 산 중턱의 목적지에는 ‘새로운 형태의 수계 늑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눈을 비비며 이곳저곳으로 시선을 옮겨도 수계 늑대는커녕 동물 한 마리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여행자는 수계 늑대를 찾으러 산 중턱을 한참 동안 돌아다녔다. 

바위 뒤편을 살펴보기도 하고, 풀숲을 자신의 검으로 잘라내 보기도 했다.

 

그러나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정말 ‘특이한’ 수계 늑대라 눈에 보이지 않는것인가 싶기도 했다.

 

“헉…. 헉…. 거짓말인가…?”

 

여행자는 결국 지쳐버리고 말았다.

 

혹시나 해서 산 아래부터 꼭대기까지 수어 번을 왕복했지만, 

단서가 될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뭔가에 감춰지기라도 하듯, 아무런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

 

“진짜 안보이는 마물인가? 아니야, 그렇다고 해도 습격받을만한 상황은 정말 많았었는데..”

 

여행자는 다시 산 중턱으로 돌아와 고개를 숙여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그나마 모아진 단서를 천천히 해독하고 있었다.

 

‘발자국이 있기는 해. 하지만 모습은 보이지 않아.’

 

‘정말 안 보이는 늑대인가? 그렇다면 큰일인데. 

정식 의뢰로 발탁되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양이-’

 

순식간에 머릿속이 복잡해진 여행자는,

새로운 의뢰에 들떠 캐서린의 대답을 전부 듣고 오지 못한 과거의 자신이 조금 원망스러워졌다.

 

그렇게 여행자가 머리를 부여잡으며 끙끙대고 있을 때, 

어느새 잠들었던 페이몬이 여행자의 주변을 둥둥 날아다니고 있었다.

 

“하암…. 여행자, 원소 시야는 써봤어? 몬드에서 주간 임무 받았을 때도 잘 썼었잖아.”

 

여행자는 페이몬의 질문에 손뼉을 탁 쳤다.

 

원소시야, 왜 그생각을 못했지?

 

분명 ‘특별한’수계 늑대라면, 원소시야에 잡힐텐데.

 

“페이몬, 이번만큼은 정말 도움이 됐어!”

 

여행자는 페이몬의 명쾌한 대답에 그만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칭찬했다.

 

“평소엔 도움이 안 됐다는 이야기야?!”

 

여행자는 씩씩대는 페이몬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조금 그녀에게 빈정대는 말투로 이야기하긴 했지만, 아무렴 어떤가.

 

물론 페이몬은 “우 씨, 짜증 나!”라고 말하며 삐져버렸고, 

여행자는 그런 페이몬의 모습을 보며 나중에 맛있는 거라도 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끔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를 내주니 안 귀여워 해줄 수가 없다니까.

 

“그럼 어디-”

 

여행자는 삐져있는 페이몬을 뒤로한 채, 

자신이 지나온 골목을 바라보며 원소시야를 키던 그때였다.

 

“....!”

 

“왜 그래 여행자, 뭔가 찾은 거라도 있어?”

 

여행자의 눈앞엔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묘한 광경이 펼쳐졌다.

 

사방에 튀어있는 혈흔 같은 자국, 

혈흔의 중간마다 섞여 있는 미약한 금빛의 액체.

 

혈흔 비슷한 흔적들은 산 중턱뿐만 아니라 바닥으로, 꼭대기로도 잔뜩 흩뿌려져 있었다.

 

“이게…. 대체….”

 

원소 시야는 본디 원소만을 추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들은 ‘원소’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혈흔 같은 표식은 불 원소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짙은 색이었고,

금빛으로 빛나는 액체 같은 표식은 바위 원소라 하기엔 너무나도 빛이 났다.

 

“...페이몬, 사방이 붉은색이야. 마치 피가 튄듯한….”

 

“뭐, 뭐라고? 여행자! 나 겁주는 거 아니지?”

 

페이몬은 여행자의 대답에 깜짝 놀라 움츠러들며 여행자의 대답을 부정했지만,

이내 의심을 풀고 현재 상황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녀의 눈에 비친 여행자는,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얼굴이었기 때문이었다.

 

여행자는 페이몬의 몸짓에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금 눈 앞에 놓인 상황의 단서를 천천히 맞춰가기 시작했다.

 

사방에 튄 혈흔 같은 원소.

금빛으로 빛나지만, 확실히 바위 원소는 아닌 무언가.

 

여행자는 자연스레 꼭대기로 이어진 붉은 혈흔 같은 표식을 두 눈으로 훑었다.

바닥에 뿌려진 표식은 자신에게 다가오라며 속삭이는 듯했다.

 

‘...산꼭대기까지 이어져 있어. 아까 위쪽으로 갔을 땐 몰랐었는데….’

 

여행자는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선택지가 없었다.

자신이 수집한 단서는 터무니없이 적었고, 

그렇기에 이 혈흔을 따라간다는 선택지 말고는 남는 것이 없었다.

 

“어? 여행자! 여행자아아! 어디 가는 거야아아!”

 

페이몬은 갑작스레 발걸음을 옮기는 여행자가 이상하다고 느껴 여행자에게 바짝 따라붙으며 소리쳤다.

 

여행자는 그런 페이몬이 뒤를 따라오던 말던,

무언가에 홀린 듯 천천히 표식을 따라 표식이 끊긴 지점에 멈춰 섰다.

 

“여행자, 뭘 본 거길래-”

 

“탕-!”

 

갑작스럽게 총성이 여행자와 페이몬의 귓가를 스쳤다. 어느정도 거리가 있었지만 꽤 가까웠다.

 

여행자와 페이몬은 총성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능선이 이어진 반대편 산의 중턱에서 총소리가 들려왔다.

 

“사람, 사람 살려! 누구 없어요?”

 

총성의 주인은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살려달라 외치고 있었고,

맞은편의 바위 뒤편에서 붉은색의 탄흔이 이리저리 공중으로 튀어 다니고 있었다.

 

“페이몬, 저쪽인 것 같아, 한번 가보자!”

 

여행자와 페이몬은 사람의 목소리에 생각할 틈도 없이 재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여러 발의 총성, 다급한 목소리.

 

분명 자신이 맡게 된 의뢰의 내용에 나온 수계 늑대를 상대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 여행자는,

발걸음을 더 빠르게 움직여 달리고 있었다.

 

“으아악-!”

 

방금 그 사람의 비명이었다. 

평소의 위기에 처한 사람의 비명보다, ‘죽음’에 가까운 비명이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이런…!”

 

여행자는 더 빨리, 더 힘차게 달렸다.

점점 가빠오는 숨을 나누어 쉬어가며, 비명의 근원에 점점 가까워졌을 때였다.

 

“저기, 괜찮-!”

 

여행자가 보게 된 광경은 끔찍함 그 자체였다.

 

비정상적으로 거대하고, 하얀색과 금색이 뒤섞인 수계 늑대가,

방금 막 사냥을 끝낸 ‘먹이’의 하반신을 잘근잘근 씹어먹고 있었다.

 

“페이몬, 오지마!”

 

“알, 알겠어!”

 

여행자는 늑대를 보자마자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페이몬이 생각이 났다.

 

만약 그녀가 이 광경을 보게된다면.. 틀림없이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도 남을 것이다.

 

고맙게도 페이몬은 여행자의 말을 들어주었다. 

페이몬은 바위 뒤편에서 흰색 머리털만 빼꼼 내민 채 여행자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여행자의 바로 앞에서 만찬을 즐기던 수계 늑대는 그렇지 않았다.

 

불청객의 소음에 수계 늑대는 심기가 불편한 듯, 

먹던 먹이를 집어 던지고 맹렬하게 여행자에게 돌진했다.

 

“윽!”

 

갑작스럽게 날아온 수계 늑대의 박치기는 차원이 다른 무게감의 공격이었다. 

여행자는 순식간에 중심을 잃고 나무에 몸을 부닥쳤다.

 

‘캐서린씨의 말이 맞았어. 일반적인 늑대보다는 훨씬 큰걸-’

 

여행자는 갑작스러운 충격에 잠깐 어지러워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팔을 움직여 수계 늑대의 공격에 반격하려 할 때였다.

 

큰 충격을 받은 왼팔이 굳어있었다. 

여행자는 안간힘을 쓰며 왼팔을 움직이려 했지만, 꿈쩍도 않는 왼팔에 점점 고통이 몰려들고 있었다.

 

“...어?”

 

여행자는 욱신거리는 통증을 참으며 시야를 자신의 왼팔로 돌렸다.

 

시야 끝으로 보이는 여행자의 왼 어깨는 

잔가지에 관통된 채 상처 사이로 피가 멈출 줄 모르고 왈칵 쏟아지고 있었다.

 

“이런-!”

 

잔가지에 찔려 움직이지 못하는 왼팔, 나무줄기에 부닥쳐 욱신거리는 허리.

 

여행자는 잔뜩 긴장한 채 왼 어깨에 관통된 잔가지를 빼내려 했다. 

그러나 뒤쪽부터 뚫고 나온 잔가지는 아무리 힘을 주어도 빠지지 않았다.

 

“쿠오오-!”

 

수계 늑대는 여행자의 상태를 바라보며 공중을 향해 울부짖었다.

끔찍한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오는 늑대의 모습은 죽음 그 자체와도 같았다.

 

여행자는 다시 돌진해오는 수계 늑대를 바라보며 주마등을 느꼈다.

 

‘이대로 가다간 진짜 죽을지도 몰라. 뭐라도 해야…!’

 

초조함을 느끼고 과거의 기억 속을 되짚던 여행자는 어느새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러나 당황한 여행자의 바람과는 다르게, 수계 늑대는 이미 코앞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여행자는 오른팔에 힘을 집중해 바위 원소로 기둥을 세워 공격을 막으려 했다.

 

‘이 정도 크기라면 분명 잠깐의 시간 정도는-!’

 

하지만 여행자의 예상과는 다르게

수계 늑대는 자신의 몸만큼이나 거대한 바위 구조물을 가볍게 부숴버렸다.

 

‘원소가 안 통한다고…?’

 

여행자는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에 그만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나마 힘을 쥐어짜 반격한 게 고작 이 정도라니, 

분명 바위 원소라면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원소 중에 가장 무겁고 단단했을 터인데.

 

여행자는 점점 빠르게 다가오는 수계 늑대의 이빨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늑대의 이빨에선 조금 전 희생당한 남성의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바닥으로 천천히 떨어지는 피는 여행자에게 있어 곧 절망과도 같았다.

 

아마도 수어분, 아니 수초 뒤에는 내 피도 저 이빨에 섞여 있겠지.

 

이젠 정말 늦었다고 생각했다. 

원소가 안 통하는 데다 완력까지 강하다니, 

이보다 더 ‘법칙’에 자유로운 생물이 있을 리가 있겠는가.

 

 

...잠깐, ‘법칙’?

 

 

여행자는 한천의 못 사건 때, 고서에서 읽었던 하나의 구절이 떠올랐다.

 

[가장 밝은 빛도 눈을 떠 볼 수 없다면, 어둠과 본질에서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본질’이야 말로, 세계의 ‘법칙’.

 

눈 앞에 있는 늑대는 일곱 원소의 ‘법칙’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생물이다.

 

그렇다면 이 세계의 ‘법칙’이 아닌, 다른 ‘본질’로 이루어진 생물이라면?

 

여행자는 빠르게 주마등 속에서 해답을 조립하며,

어느새 자신의 머릿속이 하나의 답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원소가 안 통한다면, 원소가 아닌 힘을 쓰면 통하지 않을까?’

 

그렇게 한가지의 결론에 도달한 여행자는, 어느새 자신의 팔이 붉게 빛나고 있음을 알아챘다.

 

그때의 그 감각.

 

한천의 못을 막아내었던 바로 그 힘이었다.

 

여행자는 팔 끝에 힘을 집중해 자신의 ‘힘’을 하나의 검으로 만들어내어 수계 늑대에게 던졌다.

 

‘제발 닿아라, 제발-!’

 

여행자의 다급함이 담긴 붉은빛의 검은 순식간에 공중에서 형체가 조립되어 빠르게 날아갔다. 

 

그러나 수계 늑대는 여행자가 던진 검이 우습기라도 한 듯,

고개를 뒤로 젖혀 한 끗 차이로 검날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수계 늑대는 피한 검을 잠깐 뒤돌아보다,

눈앞에 나무의 잔가시에 찔린 ‘먹이’를 바라보며 자신의 크고 날카로운 손톱을 휘둘렀다.

 

‘서걱-’

 

섬뜩한 소리.

 

여행자는 오른팔을 들어 수계 늑대의 공격을 반사적으로 막으려 했으나,

이내 들려온 섬뜩한 소리에 두 눈을 질끈 감은 그 순간이었다.

 

여행자가 던진 검은 순식간에 여행자의 손으로 다시 돌아왔다.

붉은빛의 검이 허공에 궤도를 그리며 날카로운 칼날로 수계 늑대를 스쳤고,

서걱하며 무언가 잘리는 섬뜩한 소리는 여행자가 아니라 수계 늑대의 목이었다.

 

수계 늑대는 있는 힘껏 자신의 발톱을 여행자에게 휘둘렀지만,

근소한 차이로 여행자의 목을 빗겨나갔다.

 

늑대의 발톱 공격을 겨우 피한 여행자는 

흔들림 없는 눈동자로 수계 늑대의 최후를 바라보고 있었다.

 

“죽다 살았네….”

 

수계 늑대는 기괴한 소리를 내며 몸통과 분리된 자신의 머리를 찾으려 애쓰고 있었다.

 

여행자는 그런 수계 늑대의 행동을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잔가지에 관통된 자신의 어깨를 힘겹게 뽑아내었다.

 

“이 힘, 꽤 편리하구나.”

 

여행자는 오른손으로 공중에 던져진 칼을 가볍게 받아내며,

고개를 돌려 수계 늑대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수계 늑대의 힘이 빠져있었다. 확실한 승리였다.

 

여행자는 그제야 자신의 몸에 가득 찬 공포가 서서히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여행자? 여행자! 괜찮은 거 맞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페이몬의 애타는 대답이 뒤편에서 들려왔다.

 

“페이몬, 괜찮아. 의뢰도 완료- 윽!”

 

여행자는 애써 괜찮은 척 하려고 했다. 페이몬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행자의 바람과는 다르게, 강렬한 고통이 여행자를 신음하게 했다.

 

“여행자, 괜찮-…. 여행자?”

 

여행자의 고통어린 목소리에 단숨에 날아온 페이몬은, 

왼 어깨부터 피가 철철 흐르는 여행자를 바라보며 경악했다.

 

“여행자…?”

 

페이몬은 여행자의 어깨에서 시선을 돌려 주변의 상황을 천천히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눈앞에 놓인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괴상한 소음을 내며 금빛으로 녹아내리는 수계 늑대.

온몸이 갈가리 찢겨 상반신만 남은 남성의 시신.

왼팔에 피를 철철 흘리며 애써 웃음 짓는 여행자.

 

순식간에 페이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여행자는 그런 페이몬의 반응이 당연하다고 느꼈다.

 

이런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데.

 

여행자는 고개를 들어 페이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그녀의 얼굴엔 두려움과 절망, 그리고 공포가 비치고 있었다.

 

“여행자, 피가…!”

 

페이몬은 어느새 수풀을 꺾어 피가 멈추지 않는 여행자의 왼 어깨에 올려주었다.

 

지혈용으로 쓰이는 풀이 아닌 잡초였지만, 생김새가 엇비슷했다.

여행자는 이전에 가르쳐준 약초 지식을 어렴풋이라도 기억하는 것 같은 페이몬을 바라보며

그녀를 걱정시키는 건 아닌지, 조금 미안한 감정을 느꼈다.

 

“괜찮아. 폰타인까지 거리가 얼마 안 머니까, 지혈만 잘하면 될 거야.”

 

여행자는 페이몬을 안심시키며 그녀가 건네준 수풀 더미를 꺾어 피가 새어 나오는 구멍을 임시로 틀어막았다.

 

쓰라린 고통이 온 피부에 전해졌다. 

생각보다 강한 통증은 어느새 피부에 닭살을 돋게 할 정도였다.

 

“으- 따가워. 페이몬, 빨리 돌아가자.”

 

“알겠어! 여행자. 그나저나…. 저 괴물은 대체 뭐야?”

 

페이몬은 자신의 시선을 여행자의 어깨에서 괴물의 시체로 돌려 여행자에게 질문했다.

 

여행자는 페이몬의 눈짓에 고개를 돌려 다시 한번 ‘괴물’이 쓰러진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일반적인 수계 늑대와 차원이 다른 힘,

기분 나쁘게 끈적거리는 검붉은 피가 아닌 금빛의 찬란한 혈액.

 

여행자는 이때까지만 해도 이 ‘괴물’의 등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누군가의 ‘운명’으로부터 시작된 세계의 뒤틀림은, 

어느새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어긋나기 시작했고-

 

또 다른 비극을, 피할 수 없는 파멸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

.

.

 

 

“어르신, 제정신입니까? 어르신은 그분의 ‘대행’이지, 직접 세계를 관리할 권한은-”

 

“닥쳐라, 그럼 자네가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건가? 

세계가 불타고, 우리의 터전이 파괴된다면 모든 게 끝장이야!”

 

노인은 청년의 대답이 귓가에 윙윙거리는 모깃소리처럼 들렸다.

 

짜증 나고, 듣기 싫은 잔소리같았다.

 

무엇보다 노인의 무의식 속에 그는 그저 한낱 말단에 불과한 자신의 부하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노인은 자신의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오히려 더 나아가려 했다.

 

하지만 청년은 노인을 막지 못하면 자신도 처벌받을 것이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았다.

 

‘그분’께서 언제 깨어나실진 모르지만, 이 처벌이란 것을 받게 된다면-

 

...다시는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없을지 모른다.

 

“어르신, 어째서 운명에 그렇게 집착하시는 겁니까?”

 

“우리가 왜 정처 없이 떠돌다 이곳으로 왔는지 잊었나?”

 

청년의 질문에 노인이 역으로 그를 떠보았다.

청년은 노인의 대답에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았지만, 이질적인 광기가 눈빛에 서려 있었다.

 

청년은 노인의 질문을 곱씹었다. 

 

‘정처 없이 떠돌다.’

 

셀레스티아의 시민들은 본래 티바트 세계에 속한 존재들이 아니었다.

 

일곱신의 체제가 완성되기 이전, 까마득한 옛날.

 

천리가 전대 신, ‘파네스’가 만들어낸 일곱 세계의 힘을 찬탈하였고,

찬탈한 힘을 다시금 그녀가 끌고 온 존재들에게 나누어 지금의 티바트를 구축했다.

 

...그럼 왜 그들은 이 세계를 선택한 것인가?

 

세계의 전설엔 이런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거대한 우주를 관통하는 큰 나무가, 주기적으로 가지를 잘라내며 성장한다는 이야기.

 

하나의 잔가지는 하나의 우주를, 하나의 줄기는 하나의 공간을 의미했다.

 

각각의 ‘우주’는 문명이 발전하면서 점점 더 켜졌다.

 

나무에 있어 ‘점점 더 커지는’ 의미는 성장과도 같은 것이었다.

만약 울창한 숲속의 나무라면, 성장의 끝에 열매를 맺어 자손을 번창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문명의 나무’는, 자신의 목이 무거워져 가는 사실에 두려워하는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무결한 존재가 되려 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무는 발전한 문명을 스스로 쳐내어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의 바다로 내쳐버렸다.

 

모든 일에는 결과가 따라야 했다. 나무라면 열매라는 결과가 나와야 했다.

 

그러나 ‘운명의 나무’는 결과를 없앴다. 오로지 ‘과정’만 남기고 모든 것을 배제하기 시작했다.

 

나무의 선택을 받지 못한 문명들은 몰락했다.

괴물이 탄생하거나, 세계가 붕괴하거나.

아니면 더 끔찍한 무언가에 의해 존재 자체가 소멸하여버렸다.

 

천리가 이전에 속해있던 세계도 몰락해가던 하나의 문명 중 하나였다.

 

그녀는 자신의 백성들을 너무나도 사랑했다. 단 한 명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방주를 만들었다. 문명을 보존했다. 운명을 기만했다.

 

“우리는 기만자요, 운명을 부정하는 자-”

 

노인은 부산스럽게 작동시키던 태엽 장치를 멈추고 허공을 바라보며 기억을 더듬는 듯,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눈을 깜빡였다.

 

“....신께서 가호하사, 빛의 왕국은 영원하리라. 입니까?”

 

청년은 노인이 뒤에 말할 대답을 자신이 이어 말했다. 

노인은 그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태엽 장치를 다시 작동시키기 시작했다.

 

청년은 그가 왜 운명에 집착하는지에 대해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노인은 다시 자신의 세상이 파괴되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었다.

 

그러나 청년이 관측한 세계의 흐름은 아무런 일이 없는 것처럼, 너무나도 평화로웠다.

 

그렇기에 그는 노인의 행동에 의문을 가졌다.

 

‘...어르신이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것은 아닌가?’

 

만약 균열이 생겼다고 해도, 

그것이 세계 내의 운명에 속해있다면 문제가 될 일이 없을 것 아닌가.

 

일곱 체제의 힘이 무너진다면, 

‘균열’ 속으로 심연이든 무엇이든 알 수 없는 힘들이 물밀 듯 들어오는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아무 이상이 없다는 건,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나 이상했다.

 

마치, “모두를 속인” 것처럼, 

아니면 정말….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세계의 흐름은 비정상적으로 평화로웠다.

 

그렇기에 그는 의문을 가졌다.

 

물론 노인의 행동은 이해할 수 있었다. 

신좌가 파괴된 것은 일곱 체제의 균형이 깨짐을 의미했기에, 그가 초조해할 만 했다.

 

하지만 청년은 ‘포칼로스’라는 집정관의 결정을 존중했다.

 

‘자신의 목숨과 맞바꿔 예언을 막고, 신좌가 공석인데도 세계의 흐름을 유지했다... 라.’

 

그녀만의 방식이 세계를 지켜낸 것이었다. 

그렇기에 청년은 ‘굳이’이 이상으로 세계의 흐름을 건드리는 행위는 불필요하다고 느꼈다.

 

그것이 그가 노인을 막아야 하겠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였다.

청년에게 있어 노인의 모습이, 그저 호들갑에 불과하다고 느꼈기 때문인 것도 있었다.

 

그에겐 이 모든 것을 되돌릴 준비물이 필요했다.

노인을 설득할 시간, 그리고 그에게 보여줄 세계가 아직 온전하다는 증거.

 

하지만 노인은 이미 누군가의 ‘운명’을 지우고 난 후였다.

 

그리고 청년은,

운명의 시계로 누군가의 ‘운명’을 새로 짜는 것이 불가능하단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운명을 되돌리는 건?

 

시간과 운명은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시간은 엎질러진 물과도 같다.

되돌릴 수 없고, 흘러가는 대로 운명을 맡겨야 한다.

 

하지만 청년은 그 ‘시간’을 뒤집을만한 물건을 알고 있었다.

 

‘...방법은 있어.’

 

청년은 분주해 보이는 노인의 모습을 뒤로 기록소의 다른 방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분명 그곳에 있을 텐데….”

 

초조해진 그는 전력으로 달려 기록소의 이곳저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는 코너를 돌다가 대리석에 머리를 찧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고통이 그의 머리를 강타했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운명의 시계에서 나온 ‘과정’을 막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찾았다.”

 

청년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도착한 곳은 기록소 구석의 으슥한 보관소였다.

 

그는 어둠이 드리운 캄캄한 방 한가운데에 놓인 은빛의 회중시계를 조심스레 집었다.

 

그도 노인처럼 자신의 터전이 파괴되는 것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았기에,

어떤 방식으로든 이 세계를 지키고 싶어 했다.

 

‘과정’은 어떤 방식으로든 존중받아야 한다.

그것이 ‘결과’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인은 ‘결과’만을 중시했다.

그 ‘과정’ 속에서 일어날 일을 그가 알고 있을진 모르겠지만-

 

‘결과’를 지우기 위해 ‘결과’로 모면하는 것은,

생기지도 않은 세계의 균열을 만들어내는 것과도 같다.

 

그것이 청년의 신념이자, 노인의 행동을 막으려는 동기였다.

 

.

.

.

 

 

여행자는 점점 무거워지는 몸을 애써 이끌며 폰타인 성으로 걷고 또 걸었다.

 

“페이몬, 잠깐….”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점점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어지러움도 점점 심해져갔다. 이대로 가다간-

 

“괜찮아? 조금만 더 버텨, 바로 코앞이니까!”

 

페이몬은 여행자의 상태를 걱정했다. 

여행자의 상태는 그녀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심각한 것일지도 몰랐다.

 

“아직, 아직 괜찮으니까- 머리를 툭툭 건드리는 것 좀 그만하면 안 될까…?”

 

“...미안.”

 

여행자는 페이몬에게 의지하며, 

페이몬은 여행자에게 의지하며 천천히 폰타인 성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그 둘은 폰타인 성에 점점 가까워져갔고, 

그럴 때마다 희미하게 보이는 폰타인 성의 내부가 점점 선명해져갔다.

 

“...여행자, 폰타인 성이 이상해….”

 

페이몬의 이야기에 여행자는 흐려지는 눈동자를 폰타인 성 쪽으로 옮겼다.

 

“...뭐야…?”

 

여행자는 점점 가까워지는 폰타인 성의 모습에 이전과는 다른 이상함을 느꼈다.

 

성 밖에 이곳저곳 나 있는 거대한 짐승의 발톱 자국.

부서진 성벽 밑으로 분수처럼 쏟아지는 붉은 액체.

 

붉은빛의 액체를 본 여행자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이 믿기지 않았다.

 

“...대체 무슨…!”

 

점점 밀려오는 피로감이 어느새 씻은 듯 사라진 여행자는,

전속력으로 부서진 성벽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여행자?!”

 

페이몬은 갑작스레 뛰쳐나간 여행자의 뒤를 필사적으로 따르고 있었다.

 

여행자는 달리는 와중에도 성벽 밖으로 쏟아지는 붉은 빛의 액체들을 바라보며 

폰타인 성의 시민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시민들은?

느비예트는?

푸리나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금방이라도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그렇게 한참을 뛰어 도착한 무너진 성벽 앞에, 

여행자는 낯익은 사람 하나가 벽을 붙잡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것을 발견했다.

 

“...슈브르즈?”

 

여행자의 눈앞에 화승총을 목발 삼아 위태롭게 휘청이던 사람은 다름 아닌 슈브르즈였다.

 

“여행자, 윽-!”

 

슈브르즈는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그녀는 여행자의 모습을 보고 여행자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이내 중심을 잃고 휘청이며 쓰러지고 말았다.

 

“여행…. 자, 마침 잘 왔어.”

 

슈브르즈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녀의 상태는 좋지 못했다.

 

여기저기 찢긴 옷,

깊은 허리춤의 상처,

 

그리고….

 

“슈브르즈, 발목이…!”

 

그녀의 발목은 갈기갈기 찢겨있었다.

 

발목의 형체는 유지하고 있었으나, 

금방이라도 몸에서 떨어져 나갈 것같이 군데군데가 파여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대답 좀 해봐!”

 

어느새 따라온 페이몬이 중상의 슈브르즈에게 따지듯 지금의 상황을 물어보았다.

 

그녀는 피가 섞인 기침을 여러 번 반복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콜록! 여행…. 자, 갑자기 괴물…. 들이….”

 

슈브르즈가 힘겹게 말을 이어가려던 그 순간-

 

그녀의 뒤쪽에서 거대한 물체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었고, 

페이몬은 잔뜩 창백해진 얼굴로 여행자와 슈브르즈에게 소리쳤다.

 

“여행자, 슈브르즈! 조심-!”

 

‘콱-’

 

페이몬의 외침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여행자의 눈앞엔 핏기가 서린 거대한 발톱이 불쑥 들이닥쳤다.

 

여행자는 반사적으로 양팔로 두 얼굴을 가렸다. 다행히도 자신에게 발톱이 닿지는 않았다.

 

발톱이 자신에게 닿지 않았음을 깨달은 여행자는 

두 눈을 천천히 뜨며 주변 상황을 바라보았다.

 

“슈브… 르즈?”

 

여행자의 두 눈앞엔 발톱에 찔린 슈브르즈가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

 

페이몬은 너무 놀란 나머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여행자는 두 눈을 떠 공중에 힘없이 매달린 슈브르즈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더 이상 빛나지 않았다. 

 

“...”

 

여행자는 넋 놓고 금빛의 늑대가 자신의 발톱에 걸어둔 ‘먹이’를 바라보았다.

 

붉은 핏방울이 툭 툭 툭 하고 차가운 돌바닥으로 떨어졌다.

 

그제야 여행자는 성벽 밖으로 흘러나오는 붉은 액체가 시민들의 피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붉은 액체들은 전부…!”

 

여행자는 자신의 오른팔에 분노가 차오름을 느꼈다.

 

증오, 슬픔, 두려움, 절망.

 

복잡한 감정이 한대 얽혀 여행자의 오른팔을 붉은빛으로 감싸 안았다.

 

여행자는 순간 이성을 잃었다. 눈앞의 모든 것들이 장애물처럼 느껴졌다.

 

“...”

 

여행자는 눈빛을 번뜩이며 순식간에 붉은빛의 힘을 검에 담아 수계 늑대의 왼쪽 눈에 찔러넣었다.

 

수계 늑대는 비명을 질렀다. 금빛의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비릿한 금색의 피 맛이 여행자의 입안을 맴돌았다.

 

“...너희들 짓이구나.”

 

여행자는 말을 끝마치며 칼을 비틀어 수계 늑대의 두개골을 말끔하게 베어내었다.

 

금빛의 피는 공중으로 솟구쳐 여행자의 피부를 금세 금빛으로 물들었다.

 

흘러나온 핏물은 기분 나쁜 끈적거림을 선사했다. 

여행자는 순식간에 기분이 몇 배는 더 불쾌해졌다.

 

“...여행자. 슈브르즈가-”

 

페이몬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슈브르즈의 옷깃을 잡고 있었다.

 

여행자도 눈앞에 쓰러진 슈브르즈가 죽지 않았다고 믿고 싶었다.

 

“...슈브르즈? 장난치지 말고 일어나….”

 

“...그만해, 페이몬.”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 그저 초점 잃은 눈동자만이 허공을 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여행자는 상황이 수습된 뒤에 다시 돌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성안에서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행자는 으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어금니를 악물며 

금이 간 폰타인 성 뒤쪽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젠장.”

 

여행자의 두 눈에 비친 폰타인 성의 내부는 지옥 그 자체였다.

 

불타는 폰타인 성 내부의 건물들,

상반신만 남은 채 여기저기 나뒹구는 시민들의 시체.

 

“...여행자, 위에….”

 

갑작스럽게 들려온 대답에 뒤를 돌아본 여행자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페이몬을 발견했다.

 

“왜그래? 무슨 일-”

 

여행자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폰타인 성 위쪽의 멜모니아궁을 바라보았다.

 

“...멜모니아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