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써놨었던 팬픽인데, 본챈에는 안올렸었었음


우선 푸리나가 항상 이벤트에선 우시아 성질의 형태로만 나오기 때문에,

프뉴마 성질은 아직 없다고 생각하고 쓴 글임.


만약 포칼로스와 푸리나가 재회를 할 수 있었다면 에서 시작한 팬픽이니까, 가볍게 봐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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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자신이 신좌에서 내려온 지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던 그날.

 

푸리나는 예전의 일들을 다시 기억하고 있었다.

 

“포칼로스….”

 

포칼로스, 그래.

포칼로스는 푸리나가 탄생하자마자 그녀에게 신을 연기하라는 의무를 주었었다.

 

거역할 수 없었고,

너무나도 막중한 임무였지만-

 

그녀에게 있어서 선택권이 없었기에,

그녀는 받아들이고 그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했다.

 

...이 모든 것은 무엇을 위해서였을까?

 

당연히 폰타인의 백성들을-

 

...아니다.

폰타인의 백성들을 위한 500년의 연기는 제대로 수행한 게 맞지만-

 

더 본질적인 문제가 그녀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예언은 가짜였고,

500년간 자신이 연기한 일도 결국 의미가 없었다.

 

그렇다.

이 모든 것은 대체 누구를 위한 연기였던 것일까?

 

그런 근본적인 문제에 

자신이 해왔던 행동들이 과연 옳은 일인지 아닌지에 대해 생각하던 그녀는,

결국, 자신이 무엇을 해왔는지,

반대로 자신이 필요한 존재인지에 조차 의문을 가졌다.

 

사람은 한순간에 쌓아 올린 탑 같은 존재다.

순간적으로 쌓아 올린 탑은 사람마다 높이와 크기가 다르다.

 

그것이 ‘개성’이고,

그것이 모두가 같지 않다는 사실의 증거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너무나도 쉽게 무너진다.

평평하던, 길던, 크던, 넓던.

누군가의 평가에 쉽게 흔들리고, 부서진다.

 

그녀도 다를 게 없었다.

자신이 맹목적으로 믿으며 헌신했던 신은 결국,

자신에게 그 어떤 것도 남겨주지 못했고.

 

그렇게 그녀는 박수 한번 받지 못하고 쓸쓸하게 퇴장했다.

손가락질 당하면서, 무너져 내리면서..

 

그녀는 결말을 알지 못했다.

무엇보다 자신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인가.

그리고 얼마나 필연적이어야만 했던 존재인가에 대해선

 

...본인은 영원히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에피클레스 오페라 하우스 근처를 걷고 있었다.

 

평범한 거리, 평범한 시민들.

 

언제나 맑게 흐르는, 루키나 분수.

 

루키나 분수에는 이런 전설이 있었다.

 

밤이 되면, 누군가가 ‘춥고, 외롭다’라는 말을 반복하는 것을 희미하게 들을 수 있다고.

 

푸리나는 그 전설을 믿지 않았다.

 

바셰라는 작자가, 루키나 분수에서 물의 정령들에게 살해당했다는 소문도,

그녀는 믿지 않았다.

 

그녀는 그녀 근처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이 너무 낯설고 괴로웠다.

 

변하지 않은 세상,

변하지 않는 이 모든 것들이.

 

그녀가 바꾸고자 했던, 구하고자 했던 모든 것들과,

자신이 생각했던 모습과는 거리가 있어서였을까.

 

그렇게 탁 트인 광장을 걸어 도착하게 된 루키나 분수는,

언제나 그렇듯 밝게 빛나는 물줄기를 쏟으며, 위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녀는 루키나 분수에서 나오는 물줄기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물줄기는 천천히 솟아오르다,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부서졌다.

부서진 물줄기는 물안개가 되어,

루키나 분수 주변을 시원하게 만드는 청량감을 내뿜고 있었다.

 

그녀는 말없이 손을 내밀어 루키나 분수의 물을 천천히 만졌다.

 

차가움.

쓸쓸함.

외로움.

 

그녀는 루키나 분수의 물줄기를 만지며 감정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그녀는 루키나 분수의 물줄기를 만지면 만질수록,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파동을 느낄 수 있었다.

 

[감정]이라는 파동일까,

아니면 그저…. 촉각 때문에 느껴지는 신기한 느낌일까.

 

그녀는 계속해서 분수의 물줄기를 멍한 표정으로 느끼고 있었다.

 

“...푸리나?”

 

공무집행을 위해 멀리서 에피클레스 오페라 하우스로 걸어오던 느비예트는,

평소의 푸리나라면 잘 찾지 않을,

루키나 분수 앞에 있는 그녀를 보게 되었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천천히 돌려 목소리가 난 곳을 보게 된 푸리나는,

가장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눈앞에 있어 당황한 기색이 표정에 드러났다.

 

“어, 그…. 안녕, 느비예트….”

 

오랜만에 만나 얼굴을 붉히며 어색한 인사를 건네는 푸리나를 본 느비예트는,

평소와 다른 그녀의 행동에 의아함을 느끼며 푸리나에게 질문했다.

 

“...오늘은 평소답지 않게 사색에 잠겨있던데, 무슨 일이라도-”

 

느비예트는 루키나 분수에서 흐르는 물을 만지며 사색에 잠긴 푸리나의 얼굴이 평소랑 다르게 매우 무겁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푸리나가 걱정이 된 느비예트가, 그녀에게 안부를 물으려던 때였다.

 

“...느비예트, 곧 공무집행 시간일 텐데. 바쁜 거 아니었어?”

 

...날카로운 말투로 자신의 질문을 어떻게든 피하려는 푸리나를 본 느비예트는,

이내 자신의 일정이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오랜만에 만난 푸리나가 반갑기도 했지만,

침울한 표정을 지은 그녀를 못 본 척할 수 없었다.

 

“...아주 잠깐은 괜찮다. 그러니-”

 

“-느비예트, 신경 쓰지 말고 그냥 가던 길 가주지 않겠어?”

 

푸리나의 대답에 조금 놀란 느비예트가 그녀의 얼굴을 다시 바라보자-

침울했던 그녀의 얼굴은 어느새 더욱 암울한 표정을 지으며 느비예트를 달갑지 않아 했다.

 

그녀의 표정을 본 느비예트는, 

푸리나에게 더 이상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미안하군, 주제넘었다면 사과하지.”

 

“...알면 됐어.”

 

푸리나는 느비예트의 눈조차 쳐다보지 않으며 루키나 분수를 부리나케 떠났다.

 

그렇게 느비예트는 

자신을 피하듯 서둘러 루키나 분수를 떠나는 푸리나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평소와 다른 표정을 지은 푸리나가 신경 쓰였던 느비예트였지만,

당장은 그녀를 만날 시간이 없었기에,

서둘러 에피클레스 오페라 하우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그렇게 푸리나가 루키나 분수를 도망치듯 떠나 도착한 곳은, 

어느 호수 위의 자그마한 별장 앞이었다.

 

“...”

 

푸리나는 저택 앞 조그마한 낚시터에 놓인 정갈한 의자에 등을 기대며 앉았다.

 

그대로 눈을 감고 한숨을 후- 내쉰 뒤 하늘을 바라본 푸리나의 눈앞엔,

수많은 별이 하늘 위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별 하늘은 사람의 운명이 속해있다고 말한다….

 

분명 자신의 운명도 하늘에 속박되어 있으리라고 생각한 푸리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별자리에 속해있는 사람이 죽을 때, 

그 별자리는 땅으로 추락하며 별똥별이 된다고 한다….

 

그런 전설이 있었다.

 

푸리나는 전설을 믿지 않았다.

 

...믿고 싶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자신이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그렇게 존재마저 지워진다는 사실이,

그녀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한동안 하늘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겼던 푸리나는,

다시 몸을 툭툭 털며 일어나 에피클레스 오페라 하우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유는 딱히 없었다.

느비예트를 보고 싶었던 것도,

심판을 구경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다.

 

다시, 루키나 분수에서 느꼈던

감정 밑바닥의 고동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었을 뿐이었다.

 

.

.

.

 

그렇게 다시 루키나 분수를 찾은 푸리나는, 

다시 분수의 솟아오르는 물줄기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분수는 조금 전과는 느낌이 달랐다.

 

아니다, 뭐랄까….

 

[이질감]이라고 설명 해야 할까.

 

부서지는 물방울들이 청량감을 주던 루키나 분수에 손을 댄 푸리나는 

차가운 물의 온도를 느끼다, 어느샌가 온도가 점점 느껴지지 않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어? 아까는 분명-”

 

느껴지지 않는 감각, 

촉각이 붕 뜬 기묘한 이 느낌-

 

이상함을 느낀 푸리나는, 

자신의 허리춤에 있는 신의 눈이 밝게 빛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밝게 빛나는 신의 눈을 허리에서 떼어 물끄러미 바라보던 푸리나는,

점점 루키나 분수 안에서 울려 퍼지는 희미한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푸리나, 푸리나?’

 

순식간에 벌어진 기묘한 상황에 잔뜩 긴장하며 주변을 둘러본 푸리나는,

어느새 주변의 환경이 흑백으로 물든 상태로 모든 게 멈춰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게…. 대체…?”

 

알 수 없는 환경에서 오는 미지에 대한 공포감.

 

순식간에 패닉에 빠진 푸리나는 온몸을 떨며 주변을 이리저리 살피고 있었다.

 

‘푸리나, 여기야.’

 

정신없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울리는 것 같은 목소리-

그녀는 목소리를 듣자마자 본능적으로 루키나 분수가 있었던 곳을 쳐다보았다.

 

“...뭐야.”

 

푸리나가 시선을 옮긴 루키나 분수 쪽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평범한 길바닥과,

저 멀리 보이는 에피클레스 오페라 하우스의 문틈에서, 새하얀 빛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푸리나는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빛이 새어 나오는 에피클레스 오페라 하우스의 문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질적이고, 상식적이지 않은 상황 속에서

그녀는 최대한 주변을 둘러보며 조금이라도 현실과 떨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이내 알 수 없는 현상을 해결할 수 없다고 느낀 푸리나는

깊은 한숨을 쉬며 오페라 하우스의 문을 천천히 열었다.

 

 

https://youtu.be/oXVt2_SWe0U

 

‘♪~♬ ♪’

 

 

그렇게 에피클레스 오페라 하우스 내부로 들어간 푸리나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선율의 노래가 천천히 흘러나오는 무대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천천히, 천천히.

 

매표소를 지나 극장으로 통하는 통로의 문 앞에 선 푸리나는,

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천천히 극장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끼이익-’

 

조금 낡은 소리와 함께 겨우 열린 극장의 문은,

푸리나가 강한 힘을 주어야 열릴 수 있었다.

 

“윽…. 생각보다 훨씬 뻑뻑하네….”

 

오만상을 쓰며 낑낑대던 푸리나는, 

겨우 극단의 문을 자신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열어 천천히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힘들게 입장한 극장 안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극장의 좌석들은 공중에 조금씩 떠다녔고,

평소에 보던 에피클레스 오페라 하우스와는 다르게 굉장히 밝은 톤의 극장은,

푸리나가 보고 있는, 자신 앞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더욱 기괴함을 느끼게 했다.

 

그렇게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신기한 표정으로 극장을 구경하던 푸리나는,

이내 무대 위에 사람의 형상을 한 무언가가 천천히, 우아하게 춤을 추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

 

허리까지 내려오는 푸르스름한 은발,

푸른 눈과 하늘색 눈이 매력적인 무대 위의 여성-

 

“...포칼로스?”

 

-그녀는 포칼로스,

물의 신이자, 폰타인의 집정관이었다.

 

포칼로스는 천천히 팔을 위, 아래로 움직이다가,

우아한 발걸음과 춤사위를 한껏 과시하는 듯, 무대를 장악하는 듯 아름다운 춤사위를 보였다.

 

그렇게 천천히 춤을 추던 포칼로스는, 

푸리나가 자신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는 춤을 멈추고 무대 위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푸리나, 오랜만이야.”

 

포칼로스는 자신을 발견하고 얼어붙은 푸리나를 보며 천천히 인사했다.

 

푸리나는 지금 자신의 앞에 그녀가 왜 있는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하나 확실한 건, 그녀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산더미라는 건 알 수 있었다.

 

포칼로스는 그런 푸리나의 생각을 눈치채고,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이야기했다.

 

“내가 너를 부른 건 맞아.

물어보고 싶은 것도…. 알고 싶은 것도 산더미겠지.”

 

포칼로스는 자신을 보며 어찌할 줄 모르는 푸리나의 눈망울에 맺힌 눈물을 천천히 닦으며 이야기를 이었다.

 

“우선, 같이 춤 한번 추지 않을래? 

원무곡(waltz)을 말이야.”


*원무곡 - 남녀가 짝을 이루고 추는 춤. 짝이 있어야 출 수 있는 춤 정도로 해석하면 된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소리를 늘어놓는 포칼로스가 이해가 안 됐던 푸리나는,

자신의 품에서 포칼로스를 떨쳐내며 화를 내었다.

 

“...왜 이제 와서.”

 

푸리나는 포칼로스를 원망했다.

영겁의 시간 동안 단 한마디도 해주지 않은 채,

그 어떤 이정표도 제시해주지 않았고.

 

그렇게 매일매일을 포칼로스 라는 물의 신 때문에 공포에 떨며 버텨야 했으니,

푸리나에게 있어 포칼로스라는 존재는 원망이자, 화풀이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다못해, 수고했다. 한마디 정도는 해줄 수 있었잖아.”

 

그렇게 쌓이고 쌓여 깊어진 감정의 골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늘어놓는 포칼로스의 행동에 더 깊어지고 말았다.

 

포칼로스는 자신을 떨쳐낸 푸리나의 반응을 보며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지만,

그녀도 자신을 떨쳐낸 푸리나가, 한 번만이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 ‘원무곡’이.

그녀가 푸리나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었으니까.

 

...포칼로스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다시 천천히 떴다.

 

그 후, 눈앞의 눈물투성이 이의 푸리나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푸리나, 미안해. 말해주지 못해서….”

 

포칼로스의 진심 어린 사과가 푸리나에게 통했을지, 통하지 않았을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말을 듣게 된 푸리나는, 더 이상 포칼로스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푸리나는 그 순간, 루키나 분수에서 느꼈던 감정의 파동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깊은 마음속에서 파동했던 감정은 대체 뭐였을까.

 

루키나 분수에 손을 대며 느꼈던 감정의 고동은, 어떤 형태의 감정이었을까.

 

그렇게 의문을 가지며 도착한 이 미지의 세계 안에서,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했던, 

그녀 스스로 어딘가 숨겨두었던 마지막 감정의 고동을 알게 되었다.

 

이 감정은, 증오나 경멸이 아니었다.

사랑이나, 기쁨도 아니었다.

 

슬픔이나, 측은함도 아니었다.

 

[그리움]이다-

 

영겁의 시간 동안 느꼈던,

자신이 포칼로스에게 느꼈던 그 감정.

 

마음속 깊은 곳에 오랫동안 담아두었던 그 감정.

 

흐르는 물과 동화되어 잔잔한 물결처럼, 어딘가에 숨겨져 있던 바로 그 감정.

 

...푸리나는 500년 동안 나라를 지켜오며 많은 이야기를 듣고 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항상 의문을 품었었다.

 

‘내가 잘하고 있는가.’

 

본질적인 의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본질적인 의문을 해소해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물론, 자신의 이야기를 발설했다간, 

폰타인의 모든 백성이 멸망을 맞이했을 것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푸리나는 정신적인 지주가 절실했다.

 

가까웠던 사람, 느비예트는 그녀가 어떤 상황인지에 대해 몰랐고,

느비예트마저도 포칼로스의 설계 안에 들어가 있었으니-

 

당연히, 자신이 믿고 의지하고 싶은 신이, 그리울 수밖에 없었다.

 

그저,

그녀는 마음을 터놓고 모든 것을 이야기할 사람이 필요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랬기에, 그녀에게 있어 포칼로스의 사과는-

 

자신이 힘들 때 너무나도 듣고 싶었던, 한 줄기의 빛과도 같았다.

 

...푸리나는 쏟아지는 눈물을 참으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이야기했다.

 

“왜, 왜 이제 이야기 해주는 거야….

나는 당신을…. 당신을 계속 기다려왔는데….”

 

포칼로스는 그런 푸리나의 모습을 보고는 마음 한켠이 저렸다.

 

자신을 위해 희생한, 자신이 생각한 가장 이상적인 인간.

 

...그런 이상적인 사람이야말로, 

더더욱 영겁의 시간을 버티기 힘들었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포칼로스는 푸리나에게 손을 내밀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푸리나는,

그녀의 상냥한 손길에 감정이 무너졌다.

 

“나…. 너무 힘들었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혼자 걷는 기분이었다고….”

 

그렇게 펑펑 울며 바닥에 주저앉은 푸리나를 본 포칼로스도,

조금씩 자신의 감정도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포칼로스는, 푸리나가 너무나도 자랑스러웠다.

자신의 역할을 맡은바 확실히 해내었고,

무엇보다 그녀는 모르지만, 그녀가 있었기에 폰타인이 구원받을 수 있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푸리나는,

자신보다 더, 집정관이라는 칭호에 걸맞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쌓인 감정을 풀던 푸리나는, 포칼로스에게 조용히 이야기했다.

 

“...아까 말했던 그 원무곡, 한번 추고 싶어졌어.”

 

포칼로스는 잔뜩 울먹이며 기어가는 목소리로 이야기한 푸리나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포칼로스가 손을 내밀어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을 때,

푸리나는 포칼로스의 손을 잡지 못했다.

 

“...포칼로스?”

 

포칼로스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푸리나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푸리나,

나는 사실…. 죽은 몸이야.

네가 보고 있는 난, 내가 죽고 난 나의 잔재일 뿐이야.”

 

푸리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잠깐 얼어붙었다.

 

이미 죽었다.

잔재다.

 

푸리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믿고 싶지 않은 현실에 허무함을 느꼈다.

 

그렇게 울상이 된 푸리나를 본 포칼로스는 , 심호흡하고 이야기를 이었다.

 

“네가…. 신의 연기를 하고 있을 때,

나는 내 힘을 느비예트에게 돌려주어 폰타인 백성을 구원하고자 했어.”

 

고개를 푹 숙인 채 포칼로스의 말을 듣던 푸리나는, 그녀의 말에 다시 고개를 들어 울상이 된 자신의 얼굴을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포칼로스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그녀가 자신을 원망할 거란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렇기에 그녀에게 사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포칼로스는 푸리나의 눈높이에 자신의 눈을 맞추며 말을 이었다.

 

“...결국, 나 자신을 사형해서, 느비예트에게 힘을 돌려주었고,

너와 폰타인 백성들은 전부 구원을 받았어.

...이게, 네가 모르는 이 사건의 전말이야.”

 

푸리나는 포칼로스의 이야기를 듣고 주먹을 불끈 쥐며 파르르 떨었다.

 

그리고 흐릿해진 시야로 포칼로스를 쳐다보며, 

감정을 어떻게든 짓누르며 이를 악물고 이야기했다.

 

“이런 게…. 뭐가, 뭐가 구원인건데….”

 

그렇게 잔뜩 화난 얼굴로 눈물을 흘리는 푸리나를 본 포칼로스가, 그녀를 위로하려 했지만-

 

“괜찮아, 푸리나. 네가 있어서-”

 

“결국, 널 구원할 수 없었잖아….”

 

포칼로스는 그녀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한마디에, 조금 놀랐다.

 

하지만 이내 미소지으며, 그녀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https://youtu.be/lVPDJwTwhxU?list=RDoXVt2_SWe0U


 

 

“푸리나, 괜찮아. 

그리고, 이 ‘원무곡’은…. 내가 너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야.”

 

포칼로스의 속삭임을 들은 푸리나는,

울먹거리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양팔의 옷소매로 급하게 눈물을 닦고 그녀를 따랐다.

 

그렇게 그녀를 따라 무대 위로 올라간 푸리나는, 손에 잡히지 않는 포칼로스가 살짝 당황스러웠다.

 

“...원무곡은 둘이서 추는 건데, 나는 널 잡을 수 없는걸….”

 

포칼로스는 그녀의 말에 생긋 웃으며 그녀를 천천히 도와주었다.

 

“괜찮아, 내가 있다고 생각하며 춤을 추면 돼.

왼팔은 이렇게, 오른팔은 이렇게 하고….”

 

포칼로스는 최선을 다해 푸리나를 도와주기 시작했고,

이윽고 푸리나는 천천히 춤을 추기 시작했다.

 

“포칼로스, 이렇게 하는 거…. 맞아?”

 

“음…. 팔을 좀 더 위로, 이렇게.”

 

중간중간 푸리나의 질문에 대답하며 그녀의 자세를 교정하던 포칼로스는,

언제나 그렇듯 친절히 그녀의 상태를 점검해주었다.

 

그렇게 푸리나는 천천히 원무곡을 끝까지 출 수 있게 되었고,

 

포칼로스는 그런 그녀와 함께 춤을 추었다.

 

우아한 손동작,

서로의 호흡,

정확한 타이밍-

 

그렇게 천천히, 천천히 춤을 전부 추게 된 푸리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되었다.

 

“포칼로스, 그런데 이게 왜 나에게 주는 선물인 거야?”

 

푸리나는 순수한 궁금증에 포칼로스가 서 있던 자리를 바라보며 그녀에게 질문했지만-

 

“...포칼로스?”

 

그녀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포칼로스…?”

 

푸리나는 포칼로스를 애타게 찾았다.

무대 위의 커튼 뒤도, 

공중으로 떠오른 관객석 사이도.

 

그러나 그녀는 끝내 포칼로스를 찾지 못했다.

 

“...마지막까지, 이러기야…?”

 

푸리나는 사라진 그녀를 다시 한번 더 원망하고, 원망했다.

 

그렇게 무대 위에 서서 주먹을 꽉 쥐고 눈물을 흘리던 푸리나의 뒷 머리는,

 

포칼로스처럼, 어느새 허리까지 길게 닿아있었다.

 

.

.

.

 

느비예트는 어두운 얼굴로 뛰쳐나간 푸리나가 신경 쓰여 그녀를 찾고 싶었지만,

다시 그녀의 자유를 빼앗고 싶지 않아,

업무가 끝난 후 루키나 분수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천천히 분수를 바라보며 물의 흐름을 느꼈다.

 

그렇게 천천히 루키나 분수의 물흐름을 구경하고 있을 때-

 

에피클레스 오페라 하우스의 문이 열리면서, 

평소와 조금 다른 푸리나가 문을 열고 나오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느비예트는 곧장 그녀에게 다가갔고,

푸리나는 자신의 눈에 맺힌 눈물을 옷소매로 닦고 있었다.

 

“...푸리나,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보다, 언제부터 이곳에….”

 

분명 그녀는 오페라 하우스의 반대편으로 갔었고,

심판 내내 모습을 관중석에서 비치지도 않았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그녀가 이 건물에서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하던 느비예트였다.

 

그렇게 푸리나는 혼란스러워하는 느비예트를 보며 ‘쿡’ 하고 웃다가,

이내 느비예트에게 힘차게 이야기했다.

 

“다녀왔어, 느비예트.”

 

...여전히 그녀의 생각을 알 수 없었던 느비예트였지만,

그녀의 기분이 풀린 것을 보았기에, 

그는 그녀에 대한 근심이 마음속에서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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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 이후로 이야기를 더 쓸 생각이 없었는데, 어쩌다보니 점점 커져서 분할해서 올리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