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사전설명으로


1. 나는 게이임

2. 어머니는 내가 게이인 걸 암. 굳이 터치는 안 함.

3. 어머니와 나 둘이서 살고 있음 (누나 두명이 있긴 한데 다 가족에게 연락 끊듯이 독립함)

4. 어머니는 내 대학등록금을 내기 위해 작년에 음식점을 차렸고, 난 매주 4일씩 무급으로 일하고 있음 (솔직히 매우 불편함. 차라리 학자금대출을 받고 싶음.)

5. 어머니와 내 사이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음. 서로를 별로 믿지도 않고 서로의 성향을 탐탁게 여기지도 않지만, 일단 평화로울 땐 또 아무 벽 없이 화기애애함. 내 성지향성과 무관하게 그냥 사이가 그렇게 됨.


거기다가 이 글이랑 이 글 초반부분을 읽으면 이해가 잘 될거임. 근데 굳이 안 읽어도 돼.





여담으로 이 고민? 황당한 썰? 은 서론, 배경설명이 많이 김. 지루할 것 같으면 먼저 뒤로가기 ㄱㄱ.



*



일이 시작된 건 이번 주 금요일...이라고 기억함.


금요일은 나와 어머니 둘이서 가게를 꾸리는 요일임.


어느 시간에 가게에 어느 아저씨가 오셨음. 40대 쯤으로 보이기도 하고 30대쯤으로 보이기도 한... 뭐 그런 평범한 아저씨였음. 


평소처럼 메뉴를 주문받고 대접했음. 국밥 하나에 소주 하나. 그 때에는 가게가 좀 붐벼서 나도 손님 하나하나에 신경을 다 쓰지 않았음. 애초에 가게에 직원이 부족해서 테이블 15개를 나 혼자서 다 돌아다녀야 하거든...


어느 정도 손님이 다 빠지고, 그 아저씨만 남았음. 어머니가 대충 주방 일을 정리하고 살갑게 말을 걸었음. "국물 데워드릴까요?" "아뇨아뇨, 괜찮아요." 뭐 그런 대화로 기억함... 그런 것에서 "제가 여기 처음 온 것 같은데, 두 번째인가 봐요. 와이파이가 등록되어있네." "그래요? 여기 자주 오진 않나봐요?" "아, 해외로 자주 다니거든요. 여기는 가끔 들르는 정도예요." 뭐 그런... 평범한 대화의 물꼬가 텄음.


난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하는 걸 잘 못하는 성격이라 옆옆 테이블에서 조용히 폰이나 하면서 듣기만 했음. "아들이에요? 과묵하네." 뭐 그런 이야기를 들음.


아저씨는 건축 쪽에 들어가서 A건설(모든 고유명사는 익명화하기로 함)에 들어갔다고 함. 꽤나 큰 곳이지. 그래서 회사에서 연수를 자주 해야지 승진을 할 수 있어서 여러 데를 다니고 있다고 했어. 사우디, 인도, 뭐 그런... "오~"하면서 듣고 있었음.


그러다가 대학 이야기로 넘어갔는데 어머니는 서울의 B대학의 출신인데 아저씨도 그 대학 출신인 게 드러남. 어머니가 선배임. 그때부터 아저씨가 어머니를 보는 눈이 달라짐. 사랑의 눈이 아니라... 존경의 눈? 대단하다, 라는 눈임. 어머니가 딱 박정희전두환 등등에 저항한 학생운동 뭐 그 시기의 대학생이었거든. 아저씨 세대에선 그 시대 선배들을 존경하는 게 당연하다나 봐.


그리고 그런 대단한 선배가 지금은 지방의 식당에서 아들만 데리고 둘이서만 산다는게 측은해보이기도 했는지... 뭐 복잡한 기분이었을 것 같지만, 그런 아저씨의 심정을 내가 하나하나 신경써야 하는 것은 아니고.


여튼 식당에 아저씨 외의 손님이 없고, 그때가 3시니 더 이상 손님이 들어올 것도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고서, 어머니는 나에게 "머리 깎아와. 너 머리 많이 길었다"라고 말함. 나중에 갈게요, 라고 하려 했는데, 아저씨가 "아 내가 그럼 저기에 단골으로 있는 데가 있는데 거기 원장님에게 전화걸게요!"라는 게 되어서 결국 바로 가게 됨.


그렇게 1시간 후, 난 머리를 자르고 돌아옴. 이미 손님의 소주병은 3개가 되어있었지만, 취한 기색은 없었음.


어머니는 둘이서 이야기는 안 하고 있었는지 주방에서 잡일이나 하고 있었고... 그래서 내가 아저씨와 두런두런 이야기하다가 (그렇다 해도 난 거의 대꾸정도밖에 안 하는 지경이었지만) 손님이 들어오면 바로 준비해드리고... 뭐그렇게 시간이 흘렀어.


아저씨는 혼자서 마시다가 어느 단골손님분과 의기투합해서 같이 술 마시고 이야기나누고 있더라고.


그리고 그 단골손님이 떠난 것이 8시. 아저씨는 혼자서 술에 반쯤 취해 있더라. 딱 취했다 느낌이었지...


여기는 음식점이지 주점이 아니라서, 보통이라면 이렇게 취한 손님은 어떻게 달래서 내보내는 게 기본이긴 한데...


음... 이건 내가 특이하게 행동했긴 하다. 터치를 안 했다고 해야 하나... 오히려 '더 마셔도 괜찮다' 분위기로 일관했음. 이유는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중년남인 것 때문인가? 싶지만, 내가 그 아저씨에게서 성욕 같은 걸 느꼈다던가 꼴린 건 또 아니란 말이지... 애매함. 그냥 친근감을 느낀 것 같은데, 몇 번 대화하지도 않았는데 친근감이란 걸 느낀 이유는 전혀 모르겠네.


여튼 무슨 이유인지는 관련없이, 다른 손님도 이제 다 가셨고 하니 난 아저씨를 마주보고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하면서 아저씨에게 술을 따라드리기 시작했음.


이때부터 난 말수가 많아짐. 식당일을 하면서 느낀건데, 안 취한 사람보다 취한 사람이 대하기가 조금 더 편해. 취한 사람은 사리분별을 못하는 만큼, 내가 대화를 할 때 미묘한 고민을 할 필요가 없거든. 난 원래 대화할 때 '처음 만난 사람에게 이런 물음은 실례지.. 이런 대답은 안 되고...'하면서 고민하고 주저주저하는 타입인데, 상대가 반쯤 취했으니 그런 고민을 안 해도 되서 편한 거야.


그래서 편하게 대답해드렸지. 아저씨는 어머니가 불쌍하게 느껴졌는지 "어머니 생각 많이 해드려라." "너 나중에 어머니에게 후회할 일이 꼭 생긴다." 그런 말을 하셨고... 확답은 못 드렸지만,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야기했지.


술을 마신 아저씨는 자존심 하나로 버티고 계신 분 같았어. 어렸을 때, 기억도 안 날 때 부모님을 잃으셔서 큰집에서 길러졌는데, 떠맡겨진 처지라 언제나 눈치를 보고 살아야 했다고. 그래서 B대학 건축학과에 붙었을 때, 큰아버지가 그 정도 대학이라면 당연하다는 듯 대학 등록금을 주셨을 때는 '내가 변변찮은 대학에 들어갔으면 아무 돈도 안 줬을 건가?'라는 생각에 더 자존심이 화났다고. 그런 자존심으로 취직하고, 살아온 분 같았어.


나중에야 알았지만 아저씨는 24살쯤 되는 자식이 있는데, 문제는 지금 아내랑 이혼 절차 중이고, 아들과도 거의 못 만나고 있나봐.. 그래서 날 아들하고 겹쳐본 게 아닐까. 연령대가 비슷하니까. 다른 가족들은 다른 도시에 사는데, 자기 혼자 이 주변에 살고 있다나 봐.


그때부터 내가 느낀 감정은 단순한 친근감이라기 보단 연민이 섞인 친근감이었음. 아저씨는 나를 '어머니에게 반감을 좀 가진 내성적인 아들' 정도로 생각하는 모양인데, 내 쪽이 오히려 '가족과 떨어져야 한, 심장에 금이 간 슬픈 분'으로 아저씨는 보고 있는, 그런 아이러니한 인상이 되었네. 여튼 그래서 '만약 아들 대신해서 종종 이야기 나눌 사람이 필요하면, 가게에 오실 때 어울려드리자. 물론 오늘만큼 술 마시게 하지는 말고...'정도로 생각하게 되었어.


*


아저씨는 이내 많이 취했고, 가게가 슬슬 정리 시작할 떄가 되었어. 무엇보다, 어머니는 술 취한 사람 대하는 것을 매우 힘들어하시고, 꺼려하시기 때문에, 술 취한 아저씨가 계속 있는 것 만으로 싫어하셨지. 나를 몇 번이고 주방에 불러서 "저 사람 빨리 내보내"라고 직접적으로 이야기했어. 아니 아무리 그래도 손님이고 학교 후배라는데 그런 태도인가...? 그 정도로 술 취한 사람이 싫나...? 술에 취했다지만 난동도 안 부리고, 큰 소리도 안 치고 있는데... (나도 난동을 부리거나 했으면 학을 딱 뗐겠지.)


뭐 그런 이유로 난 "슬슬 가게 문 닫는다"라고 넌저시 전했고, 아저씨도 일어날 태세를 취했어. 음식 값은 아내분에게 영수증과 가게 통장을 찍어 보내고서, 내달라고 카톡으로 말하시더라. 지갑을 안 가져오셨다나... 사실 술 취한 것도 그렇고, 지갑을 가지고 있는데도 잊어먹은 게 아닌지 의심스럽지만...

벌써 팔다리가 흐느적대서 내가 가게 입구까지 받쳐드려야 했지. 한 번은 진짜 넘어진 뻔한 적도 있었어.


일단 집이 횡단보도 바로 건너라고 하는데... 위험하잖아. 이렇게 잔뜩 취한 사람이 횡단보도라니. 빨간불에 건너서 차에 치이기라도 하면 어떡해. 아까 대화한 덕분에 약간의 친근감이 생긴 나는, '어떻게든 빌딩 입구까지는 같이 가 드릴게요'라고 말했어. 아저씨는 괜찮다고 말하지만... 솔직히 그 흐느적대는 팔다리를 보면 조금도 안심이 되지 않았거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 사람이 그 날에 차에 치여 사고라도 난다면 마음이 편하지 않을 거 아냐. 난 집 앞까지는 꼭 가드려야 겠다고 주장했어. 정말 길 건너라고 하니까...


그러자 아저씨는 웃으며 말했지. "정말? 같이 가 줄 거야?"

"네. 이대로는 위험해요."

"알았어 아라써. 그럼...




뛰어!"




그대로 난 도로 한 가운데를 아저씨와 달리는 처지가 되었어.


다행히 도로 상황 덕분에 오가는 자동차는 없었지만, 정말 위험하구나 술 취한 사람은... 그런 생각이 들었어. 하지만 이대로 뒤 돌아 갈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도로 한가운데에 술 취한 사람이 혼자 서있게 된다는 건데, 아까보다 더 위험한 상황이지.


그렇게 손을 잡고 달리게 되었어. 밤 답게 찬바람이 불고, 차는 안 지나가지만 언제 지나갈지 모르는 도로, 달리다 보니 흔들리는 시야...

진짜 아무 이유없긴 한데...

무슨 둘이서 도피라도 떠나는 느낌이라 그런 걸 생각하는 나 자신이 어이없더라.


결국 건너편까지 같이 가드렸어. 그래도 2차선(합쳐서 4차선) 도로였어서 다행이지...


지금까지 읽고 '글쓴이 이새끼 아싸인데다 호구새끼 아냐?'라고 생각할진 모르겠는데, 난 한 번 '친근감이 생긴다' 같은 사람이 되면 열과 성을 다해 도와주려는 성격인가봐. 고등학교 동창에게도 돈 안 받고 재수 준비 도와주고... 아니 돈을 안 받고, 보상을 안 받고 도와준다는 게 마음이 편한 성격이야. 가능한한 내가 많은 도움이 되고, 그 덕분에 '네 덕이야'라고 웃는 얼굴을 받을 수 있다면 그 이상으로 좋을 게 없는 성격.


뭐 여튼 난 그렇게 아저씨의 집까지 가게 되었어. 정말 가깝긴 가깝더라, 거리 지나고 나서 고작 1분 걸으니 바로 아파트야...


그렇게 가게 앞까지 따라가고, 아저씨에게 전화번호를 받았어. 이상한 의미가 아니라, "내일까지도 입금이 안되면 바로 나에게 전화해! 내가 달려가서 바로 돈 줄게."라고 말하면서 번호를 받았지. 나도 돈 계산은 확실하게 하는 편이라, 알겠다고 말했어. 아무리 이혼사이라도 30000원도 안 되는 돈 정도는 내줄거라고 생각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여기까지가 금요일날 있었던 일.


난 이 시점에서 아저씨에게 호감을 느꼈어. 게이적인 호감이 아니라, 좋은 사람인 것 같다, 그러나 슬프고 무언가 사연이 있는 분이다...라는 호감. 여튼 더 친해질 수 있다면 괜찮겠다 싶은 느낌이지.


*


토요일, 난 늦잠으로 인해 오전 11시에 출근했어. 출근하고 나서 들으니 그 아저씨는 9시부터 와서 어제 값을 다 계산했다는 거야. '역시 믿을 만한 분이긴 하구나' 싶어서 안심했지.


그 날은 더 이상 별 일 없었어. 토요일은 나와 요리사 아주머니 둘이서 가게를 운영하는 날이야. 아주머니는 정리하고 떠나고, 나 혼자 가게를 정리하고 있었어. 일하다가 잠시 의자에 앉아서 핸드폰을 슥슥 만지고 있다가, 연락처에 어제 저장한 아저씨 번호가 눈에 띄더라. 


심심하고, 아저씨 집도 가게 근처(횡단보도 건너서 1분 거리)니까 어디서 만나서 코코아라도 얻어마실까, 하는 마음이 들어서 '뭐하고 계세요?'하고 메세지를 보냈어. 답장이 없어도 상관 없다! 라는 느낌으로. 그냥 심심풀이였으니까.


그대로 핸드폰을 집어넣고 다시 가게 정산. 그 날 문자는 안 왔어.


*


문자가 다시 온 것은 일요일이야.


"안마의자에 잠깐 누워있다가 잠들었다 ㅋ"뭐 이런 문자.


짤막하게 대화하고서 다음 주에 밥먹으러 오겠다고 하셔서 "그럼 수요일 3시쯤에 오세요. 그 때 다른 손님이 거의 없을 거예요."하고 말씀드렸어. 다른 손님이 없으면 나하고 아저씨하고 편하게 대화할 수 있을 테니까.


그 정도의 이야기야.



가끔 아저씨는 하루에 한번씩 전화하곤 해. 서로 안부 전달하고, 오늘 뭐하는지 서로 묻고, 끊고, 하는 전화야.

그런데도 매일 하는 걸 보면 뭐... 외로우신 걸까.



*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이건 말이 이상하게. 문제가 이상하게 생긴? 날은 오늘이야.


난 오늘 4개씩이나 되는 수업을 마치고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어.


엄청 화난 듯한 목소리로 '너 그 이후에 그 아저씨와 연락했어?'하고 캐묻는 거야.


평범하게 대답했지. 네, 제가 먼저 문자했다고...


그런데 엄중하게 '절대 연락하지 마. 전화 와도 무시해.' 뭐 이래.


왜냐고 물으니까, 오늘 아저씨가 식당에 왔는데, 나하고 문자했다고 이야기했더래...


어머니가 연락하는 걸 싫어하는 이유라도 있나? 아저씨가 문제 있으신 분인가? 싶어서 물어봤지.


"난동이라도 부리신 거예요? 설마 다치셨어요?"


"아니, 게산하고 돌아갔어. 근데 그 사람 좀 이상해."


"어디가 이상한데요?"


"몰라. 그때도 술 마셨다고 너 데리고 나갔잖아."


"아니 그건 제가 따라간 건데요."


"그러니까 그걸 왜 따라가냐고! 잠깐, 네가 만저 문자하고... 설마 그 사람도 게이니?"


???????????????????????????

아뇨 그 사람은 가정이 있는... 아니 있던... 하지만 어쨌든 있는 사람이고 저도 20살이나 차이나는 아저씨와 연애하고 싶은 마음은 그다지 없는데요...

하지만 그런 걸 하나하나 조목조목 반박하기도 그렇고...


"뭔 개소리예요? 아니 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래요?"


"그 사람이 너가 문자 보냈대. 난 그 사람이 거짓말하는 줄 알았어. 근데 네가 먼저 연락한 게 맞다고?"


"네 맞는데요."


"네가 왜 나이가 아빠뻘 되는 사람에게 문자를 보내?"


"? 안돼요?"

뭐 그사람이 위험한 사람이거나, 게이라는 게 확정되기라도 하면 이해를 하겠지만... 아니 게이라고 확정되어도 이해가 안 되잖아. 남자 두 명이 안부문자 보내는 게 문제되는 일이야? 20살 차이라고? 뭐 사랑 같은 것도 아니고 그냥 아는 사이인데?


"여튼 연락 끊어. 넌 어려서 모르는 건데 연락 끊고 다시는 여지 주지 마."


"아니 그냥 아는 사이에 여지고 뭐고... 그리고 저 성인인데요."


"여튼 엄마 말 들어. 그 사람 다시는 만나지 마."


????????? 나 진짜 만난 적은 토요일날 처음 만난 게 끝임. 그 뒤로 한 번도 없었음.

그리고 어머니에게 아무리 캐물으려고 해봐도 딱히 가게에 문제되는 일은 안 일으켰나봐. 돈도 이번엔 계산했대.


그런데 넌 40뻘 아저씨랑 대화하는 게 문제래. 연락 끊으래.


????????????????????????????????


이거 내가 문제인거임?

아니 왜 그냥 아는 사이인 걸 통제하려 드시는 건지 이해가 안됨.


뭐 내가 그 사람이랑 단둘이 데이트라도 했다면 모를까 그냥 하루에 한 번 전화하는 사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