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유튜브듣다가 '깨달음의 역설'이란거를 접한적있음.


깨달음을 얻고자 한다면 모든 집착을 내려놓아야하지만

역설적으로 깨달음을 얻고자하는 이는 '깨달음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가 없다는거임.


그 영상에선 뭐 수행을 통해 어쩌구 하며 이 역설을 해결했던거같은데

나는 좀 다르게 해석함





우리가 살면서 그런적이 있을거임.

어려운 수학문제를 푸는데 도저히 안풀림 or 해설을 봐도 이해가 안됨.

그러다 나중에 길을걷거나, 샤워를 하면서 문득 '아! 그런거였구나'하며 이해가 되는 그런 때.


어려운 이론을 접했는데 그 순간에는 이해가 잘 안돼도 나중에 아 그래서 그런거였구나 할때가 있을거임.


몇몇 작곡가들도 좋은 멜로디를 떠올리고싶을때

작업실에서 건반 두드리고있는게 아닌

고요한 바닷가에 가서 미끼도 없이 낚시줄을 던져놓고 계속 멍만 때리다보면 멜로디가 떠오른다고 그럼.


예전에 이말년 만화에 나온건데

기안도 패션왕 연재하던 시절에 스토리가 구상 안될때 어디 곰팡이 핀 반지하 방에 들어가있으면 참신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럼.


닐스 보어도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의 원리를 알고싶어서 연구실에서 죽어라 연구했는데 답이 안나오니까

머리 식힐겸 스키타러갔는데 그때 불확정성 원리의 해답이 떠올랐다고 그럼.


사람사이의 관계도 그래


나도 예전에 잠시 곁에 두던 애가 하나 있었음.

그때 나는 내 신경의 대부분을 나 자신과 그애 중에 그애한테 거의 투자하고있었음.

그러다가 모종의 사유로 멀어졌음.


그 순간 나는 깨달았던거임.

'아 나는 지금껏 이 애한테 너의 근본은 어쩌니, 너의 미래는 어쩌니, 너는 분명 크게 될 사람이니 등등하고 있었지만 정작 나 자신에대해선 제대로 파악도 못하고 있었구나' 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뒤로 '나 자신'을 관찰하기 시작했고 나에 대해 좀 더 깨달을 수 있었음.


근데 또 신기한게 이번에는 내 신경이 그 애에게선 멀어지고 나에게 더 신경을 쓰게 되니까 그 애에 대해 더 잘 알게됐음.


그때 걔가 왜 그런 선택을 내렸었는지

내가 반대하던 행동을 걔는 왜 했어야만 했는지

내가 얼마나 이기적으로 굴고있었는지 등등



고로

어떤 분야(수학문제든, 음악이든, 나 자신이든, 타인이든)에 대한 나의 이해도를 완성시키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집착했다가 잠시 멀어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거임.


닐스 보어의 이야기로 예를 들면


1. 불확정성 원리를 해석하기 위해 연구실에서 죽어라 연구함(집착)

2. 답이 안나옴

3. 스키나 타면서 머리를 식힘(멀어짐)

4. 아이디어가 떠오름


의 단계가 필요하다는거


누군가는 이걸 우리의 무의식 or 잠재의식이 발현된 덕분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이걸 '음양'으로 설명 할 수 있다고봄.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선 폐가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듯

심장이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듯.


애벌레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몸을 웅크려'야만 하듯.


우리가 어떤 분야에 진전하고 싶다면 '잠시 웅크리는' 과정이 반필수적이라는거임.




음양오행에 대해 더 공부하면 이걸 좀 더 명료하게 설명 가능할거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