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화로에 불을 지피고 잔에 술을 따랐다.


지친 데다 배가 고팠다. 나는 동물처럼 게걸스럽게 먹었다.


그 때 메티스가 창문으로 자그만 머리를 내밀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교활하게 웃었다.


"메티스, 어쩐 일로 왔느냐?"


"주피터 사장님, 뭘 좀 가져왔는데요... 과수원집 미호 부인님이... 복숭아 한 바구니에요. 미호님이 그러시는데, 올해 첫 복숭아래요~"


"과수원네라... 왜 내게 이런 걸 보냈을까?"


"제가 어떻게 알아요? 저는 시키는 대로 전할 뿐이에요."


메티스는 복숭아 바구니를 탁자 위에 올렸다. 집은 복숭아 냄새로 가득해졌다.


"가서, 내가 선물을 아주 고맙게 받았다고 전해주렴.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한 끼 대접하겠다고."


"그것뿐이에요, 사장님?"


"그래, 이제 가도 좋아."


"......정말요?"


메티스가 배시시 웃엇다.


"가라니까!"


메티스는 갔다. 나는 복숭아 하나를 깠다. 꿀처럼 달콤했다.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었는데 밤새도록 복숭아 나무 사이를 헤맸다.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내 가슴은 기쁨으로 터질 것만 같았다.










며칠뒤 나는 술집에 앉아 듀랜달과 함께 술을 마셨다.


잔뜩 취한 듀랜달에게 며칠 전 있었던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조용하게 나눴다.


 "주피터, 자네는 아직 젊어." 갑자기 듀랜달이 어조를 바꾸어 소리를 질렀다.


"자네는 젊고, 힘있고, 잘 먹고 잘 마시며 정력을 모으고 있어! 그래, 그 정력으로 밤에 무엇을 하나?

오늘 밤에 그 집에 가게! 시간 낭비 말아....세상 일은 간단한 거야. 간단한 걸 왜 자꾸 복잡하게 생각하나!"


"오늘은 그럴 기분이 아니야. 너무 늦기도 했고 말이야."


듀랜달이 내 팔을 잡고 나를 일으켜 세웠다.


"이것 봐! 대체 뭐가 그렇게 어려운가? 하느님도 여자 앞에선 가슴이 떨린다네."


듀렌달은 한동안 입술을 옴짝였다. 할 말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않고 돌아서서 술집을 나섰다.


저물기 직전의 햇살에 듀렌달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고독을 느낀 순간 나는 움직였다. 

어디로 가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었다.


'그래, 두 눈 꽉 감고 해치우는거다' 이윽고 나는 마음먹었다.


나는 단호하게 과수원 쪽으로 돌아 걸었다. 이따금씩 걸음을 멈춰 깊은 숨을 내쉬었다.

멀리서 작은 냇물 소리가 들렸다. 나는 나 자신을 격려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나는 과수원 뜰 앞에 이르러 있었다. 나무숲 너머로 미호의 부드러운 노랫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노래가 들리는 곳으로 다가갔다. 복숭아 나무 아래 하얀 옷을 입은 여자가 부푼 유방을 

드러내고 있었다. 여자는 꽃가지를 쓰다듬으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희끄무레한 어둠 속에서도 나는 그녀의 반쯤 드러난 흰 가슴을 볼 수 있었다.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이 여자는 남자를 잡아먹는 짐승이나 다름없었다. 미호도 그걸 알고 있었다.

그녀 앞에 사내란 한없이 가련하고, 무방비 상태의 동물이었다.


미호가 나를 알아차린듯 갑자기 노래를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리의 시선이 만났다.

나는 무릎이 무너져 주저앉고 싶었다. 풀숲에서 호랑이를 만난 기분이었다.


"누구세요?" 


미호는 경계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고는 옷을 잡아당겨 가슴을 가렸다.

그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납니다" 

나는 공포에 사로잡혀 이 한마디를 겨우 말했다. 뒤돌아 도망가고 싶었다. 몹시 창피했다.


"나라니, 내가 누구에요?" 미호는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반쯤 감긴 눈이 다가와

내 얼굴을 흝었다.


갑자기 미호의 얼굴이 다시 밝아졌다.


그녀는 입맛을 한 번 다시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장님이군요!" 


미호는 더 가까이 다가왔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한 기세였다.


"주피터 사장님이죠? 미호가 흥분한 목소리로 꼬리를 흔들며 다시 물었다.


"그렇소"


"어서 들어오세요"


미호는 자신의 집으로 나를 안내했다. 미호의 머릿결에서 복숭아 향기가 났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한 장면이 떠올라서 따라 써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