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입니다


영국 관광 가보면 으레 들르곤 하는 곳이다.

현재 영국 왕가의 성이 윈저인데 여기서 따왔다.

그런데 원래 저렇게 생겨먹었었냐 하면 그건 아니다. 11세기 중후반부터 있어온 나름대로 오래된 건축물인데 개축 한 번 없었을 리가 있겠냐.


윈저 성은 1066년 윌리엄 1세가 영길리 땅 꿀꺽 하고 나서 지은 요새로부터 시작했다. 성 가운데에 둥근 원기둥 비스무리한 거 보이냐? 그게 윈저 성의 기원이나 다름없는 거다.

이게 원래 윈저 성의 모습이다. 1069년에서 1071년 사이에 지어진 요새다. 전형적인 모트 앤드 베일리 형식이다. 왼쪽으로 보이는 다리는 윈저 브리지고, 강은 템즈 강이다. 저딴게 무슨 요새고 성이냐고 할 수도 있겠는데 명심하자. 저기는 동아시아처럼 기본으로 수만씩 치고받던 동네가 아니다. 수백 대 수백 싸움도 우와 쌈 크게 났네 하던 동네다. 저기가 템즈 강폭이 가장 좁은 데라서 건너기 쉬워 그거 지키려고 지었다 카더라.


왜 이런 걸 지었나 보면 결국 윌리엄 1세가 잉글랜드를 집어먹은 것이 꼬운 인간들이 많아서다. 덴마크 놈들이 쳐들어와서 찝쩍대기 시작하고, 스코틀랜드로 도망쳤던 앵글로 색슨 놈들이 다시 쳐들어오고, 곳곳에서 반란이 터졌다. 윌리엄 1세도 나름대로 노르만족 영주들 알박기 시키면서 동화시키려고 노력은 했는데 당대에는 영 시원찮았던 모양이다.


놀랍게도 성은 왕실이 지었지만 지을 당시에 땅 주인은 따로 있었다. 세프리드의 아들 랄프라는 놈 소유였는데, 노르망디에서 윌리엄 따라 들어온 놈이다. 지가 쫄리니 저기다 성을 짓긴 지어야겠는데, 기껏 준 땅을 줬다 뺏기는 뭐했는지 땅을 임차한 형식으로 해서 지대를 왕실에서 지불했다. 어째서인지 이 지랄을 장장 5백년 가까이 왕도 20번 넘게 바뀌는 동안 계속했다. 결국 1546년 헨리 8세가 땅을 랄프의 후손한테서 사들이면서 이 지랄도 종료된다.


그럼 저 꾀죄죄한 게 지속됐냐면 그건 아니다.

이제 얼추 우리 눈에도 성이랑 비슷한 모습이 된다. 이 사진은 1216년의 모습이다.


1105년 무렵에 대규모 개축이 있었는데 동쪽으로 어퍼 워드(Upper Ward)가 신축되고 왕궁을 비롯한 신축 요새가 들어선다. 어디가 왕궁인지는 뻔히 보이니까 딱히 설명하지 않는다. 위 그림에는 석벽으로 둘러쳐져 있는데, 이 때는 목책으로 둘러치고 있었다.


그러다 1170년에 어퍼 워드를 둘러친 목책을 석벽으로 바꾸는 개축이 있었다. 그리고 저 언덕배기 위의 목조 요새도 석조로 바뀐다. 이 무렵에 목책으로 둘러친 로워 워드(Lower Ward)에 각종 부속 건물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위 그림에서 목책으로 둘러친 곳이 로워 워드다.

그러다 1220년대에 드디어 로워 워드의 목책도 걷어내고 깔끔하게 석벽을 두른다. 그래도 나름 궁성인데 13세기까지 목책 두른 영길리 빈곤함은 무엇.


여튼 이 무렵에 성문도 간지나게 하나 새로 뚫는다. 위 그림에서 존재감 뽐내는 성문 보일거다.


1240년대에는 예배당을 지었는데 위 그림에서 한복판에 있는 그거다. 저것도 참 눈물겨운 사연이 있다. 헨리 3세가 한창 신나서 예배당 짓겠다고 돈 쳐들여 가며 희희낙락 하고 있었는데 엘랑스에서 루이 9세가 파리에 간지나게 생트 샤펠을 올려버린거다. 헨리 3세는 지고싶지 않았는지 예배당을 더 크게 짓도록 명령했다. 지붕도 좀 더 간지나게 하고 싶었던지 큼지막한 목조 지붕을 돌로 지은 것처럼 색칠하게 했다. 잠깐 눈물 좀 닦자. 아재요. 없어보이게 색칠은 왜 해요.


그 외에 잡다한 개축이 있었는데 1272년까지 대충 완료가 된다. 위 그림도 1272년의 모습인데 맨 위의 현대 사진과 비교해보면 얼추 비슷함을 알 수 있을 거다.